소설리스트

65화 (66/71)

게다가 중심 회전축의 도움으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니 영욱의 머리가 아니라 202층의 바위맷돌 아랫부분이 고운 가루가 되어서 눈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맷돌이라면서 뭐가 이리 약해?"

영욱은 자신이 강해졌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생긴 모습이 맷돌이지 실제로 무엇을 갈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그저 연자방아처럼 돌리기 위함이니 굳이 강한 재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바나를 생성시키는 재질 자체가 원래부터 약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영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물론 구멍을 뚫어야하는 영욱으로서야 좋지만 바벨탑의 심기를 거스르기 위해서라도 비아냥거리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층을 뚫는 것만으로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가능한 비아냥거림이기는 하지만.

영욱은 마나와 유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바나를 대량으로 흡수하면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세 가지의 유사 마나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기계체조의 기운들이 바나의 추가 공급으로 더욱 진해지면서 기계체조의 경지가 또다시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족한 것은 비단 마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영욱은 이러한 기적이 가능한 이유를 기계체조보다는 활인심방의 수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법사들도 이미 보다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한 성질을 지닌 마나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유나 따위야 씨 마나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들이 만들어내지 못할 리 없다. 그리고 바나는 이미 가지고 있고, 마나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 단순히 세 가지를 섞는 간단한 실험을 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물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기계체조가 없으니 활용 수단이 마땅치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법사들 중에는 기계체조를 아는 자들도 많으니 벌써 진중권이나 영욱에게 손을 뻗쳤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변수는 활인심방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욱은 열심히 활인심방의 구결을 외우면서 돌고 또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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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층의 노예들이 레코드 LP판처럼 돌리고 있는 바위 맷돌의 가운데 뚫고 올라갔으니 마치 양파 두 겹의 사이를 뚫고 올라간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안과 밖으로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휙! 크아악!

손잡이가 달리지 않은 안쪽의 바위맷돌이 멈추어 서버리자 노예들이 게으름을 부리는 것으로 간주하고서 마법 채찍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욱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걸 맞아줄 리가 없었다.

"뭐, 뭐야?"

"고장났나봐!"

"어서 마법사 새끼를 불러!"

바위맷돌을 빠르게 돌려도 마법 채찍이 계속해서 날아들자 220층 맨 안쪽에 있던 30여 명의 노예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물론 대부분이 채찍을 피해내고 있었지만 문제는 식량 공급이 끊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채찍을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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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의 고함 소리가 커지자 결국 202층을 관리하는 마법사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냐? 201층의 노예인 모양인데 감히 바위맷돌을 망가뜨리다니 죽고 싶으냐?"

"최근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 실연당했을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

"이제 보니 탈출하려고 층간에 구멍을 뚫었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너는 큰 실수를 한 거야."

"그게 왜 실수라는 거지? 나는 판단을 잘한 것 같은데?"

영욱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말과 썰렁한 농담으로만 일관하면서 202층 관리 마법사를 계속적으로 자극했다. 평정심을 잃게 만들어야 이중천금의 암습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운을 빼앗는 초능력 역시 상대에게 적중시켜야 가능하니까.

"그야 네 피를 노리는 노예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지. 201층과 202층을 같은 수준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로빈보다도 별로 강해보이지는 않는데 그런 주장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로빈보다 약하다고? 살다가 처음 듣는 말이군. 하하하!"

"이중천금, 뭐하고 있어?"

영욱은 202층의 회전축에 기대서 헤드 스핀을 돌기 시작하면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기계체조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강력한 마법사와 싸우려면 회전축의 도움을 받은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냐?"

"너에게 한 말이 아니니까 신경 꺼도 된다."

"뭐, 뭐냐?"

"뭐긴 뭐야? 죽음의 거미줄에 걸려든 것이지. 하하하!"

영욱의 도발이 마법사를 흥분시킨 덕분에 이중천금의 공격이 성공할 수 있었다. 사실 로빈보다는 훨씬 약한 녀석이었다. 그것은 마법사들이 가장 꺼리는 이중천금을 그나마 다룰 수 있었던 자가 바로 로빈이라는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로빈은 자신이 마법사들 중에서는 손꼽을 정도라고 했으니까. 

"감히 내 마나를 노리고서 이런 소동을 벌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맛 좀 봐라! 라이트닝 볼트!"

번쩍! 콰콰쾅!

크아아악!

거미줄에 걸려서 움쩍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마나를 한 순간에 빼앗기는 것은 아니니 이러한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그 공격은 숨어 있는 이중천금이 아니라 영욱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마나 강탈이 영욱의 소행이라고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때우기로 자처했지만 라이트닝 볼트의 위력은 번개의 위력 이상이었다. 하지만 회전축과 한 몸이 되어서 돌고 있으니 영욱으로서는 피뢰침의 도움을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속이 온통 전기로 가득 차버렸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영욱은 화상 당한 부분을 치유 능력으로 고치는 한편 허세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법 따끔한 편이지만 겨우 그 정도로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이럴 수가! 내 라이트닝 볼트의 위력이 절반도 나오지 않아."

"그럴 수밖에. 마나를 절반 이상이나 빼앗겼으니까 당연하잖아."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정말 놀라울 정도의 강탈 능력이었다. 이중천금은 마법사들의 진정한 천적이었다. 그는 마법사의 마나를 빼앗는 한편 빼앗은 마나를 빠르게 영욱에게로 보내주었다. 

지금 영욱은 또 다른 기연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계체조로 경지를 올리는 것은 생체 전기의 전압과 전류량을 높이고 늘이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수백만 볼트에 이르는 라이트닝 볼트에 직격 당했으니 몸속의 생체 전기 흐름에 변화가 없을 리 없다. 

물론 과전압과 과전류는 생체에 무척 해롭다. 하지만 영욱은 자기 치유 능력은 물론이고 강제적인 치유 능력까지도 가지고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세포 손상은 즉각적인 복구가 가능했다.

게다가 마나의 유입으로 인한 기계체조의 기운들이 폭증함에 따라서 새로운 기연을 만나게 되었다. 기계체조의 진한 기운들이 생체 전기들을 이동시키는 통로 구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생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 부작용은 사라졌다.

지직! 지지직!

"네 머리털이 온통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도 큰소리를 치는구나. 라이트닝 볼트!"

번쩍! 콰콰쾅!

크아아악!

"쳇! 눈치 챘구나. 상당히 괴롭긴 하지만 그까짓 번개 조각으로는 나를 죽이기 어려울 거다."

"웃기고 있네. 라이트닝 볼트!"

번쩍! 콰콰쾅!

크아아악!

영욱은 202층 관리 마법사를 자극해서 전기 세례를 좀 더 받기로 했다. 그래야 생체 전기의 전위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나는 언제든지 다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니 이중천금으로 하여금 잠시 멈추게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번 것은 조금 더 따끔하구나. 하지만 정전기보다 못한 수준일 뿐이다. 하하하!"

"머리카락이 다 타버렸는데도 그런 개소리를 뱉다니, 어디 맛 좀 봐라! 기가 볼트!"

번쩍! 콰콰쾅!

크아아악!

머리끝까지 화가 난 마법사는 십여 조각의 번개를 동시에 날리는 기염을 토했다. 두세 개의 번개 조각만을 예상하고 있던 영욱은 하마터면 심장이 멈출 뻔했음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심장이야말로 생체 전기로 인해 규칙적인 심박동이 이루어지는 기관이다. 그러니 벼락에 맞으면 과전압으로 인한 화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심장마비가 직접적인 사인死因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크어어어! 이번에는 조금 세구나. 하지만 더 이상 번개를 만들 마나는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쩌지?"

"나를 아직도 우습게보다니 용서할 수 없다. 기가 볼트!"

번쩍! 콰콰쾅!

크아아악!

영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히죽거리며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벼락 세례는 수차례나 더 지속되었다. 갈수록 벼락의 위력은 약해졌고, 영욱이 기대하는 전위 변화는 거의 사라졌다. 이젠 벼락을 일부러 맞아줄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젠장! 이젠 약발이 다 떨어졌군."

"또 무슨 개소리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면 그냥 가만히 있어. 바보 소리 듣기 싫다면 말이야."

"괘씸한 녀석! 지금 네 꼴이 어떤지 알고 하는 말이냐?"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이중천금, 어서 처리해!"

마법사는 초반에 마나를 강탈당했던 기억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영욱의 소행이라고 오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사실은 라이트닝 볼트 공격 이후 마나 강탈이 사라졌으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이중천금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제야 겨우 상황 파악이 된 것이다. 무슨 이윤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영욱은 일부러 번개 세례를 받고 있었고, 처음에 자신의 마나를 강탈했던 녀석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201층과 202층 사이에 구멍이 난 이유를.

"서, 설마 그 녀석의 이름이냐? 마나를 빼앗아간다는?"

"빙고!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럼 잘 가라."

"비, 비겁하게 남의 마나를 빼앗다니."

"지킬 힘이 없으면 그것은 네 마나가 아냐."

영욱은 이중천금이 했던 대사를 습관처럼 읊어댔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지만 약육강식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법사의 전기 세례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 너무 일찍 왔기 때문에 짜증이 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가파르게 늘어나던 기계체조의 경지가 70% 근처에서 멈추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나와 유나 그리고 바나를 섞어서 기계체조로 만들어낸 기운과 유사한 기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무려 8%의 성장을 이룬 것에 반해서 번개 조각 처방은 심장이 여러 번이나 정지할 뻔했는데도 겨우 2%의 성장을 이룬 것에 불과하니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온 것이다. 

그 정도만 해도 고마워하고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네 녀석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중천금의 능력은 마법사들에게만 특히 강한 것에 불과하니까."

"202층의 노예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으니까."

"그들은 마법사에게만 상대적으로 약할 뿐이다. 그러니 너 같이 하찮은 사퍼모어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누가 나를 사퍼모어라고 하더냐?"

"그럼 주니어라도 된다는 소리냐? 개소리라면 집어치워."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마법사는 마법 공격 대신에 입으로 공격했다. 일종의 저주인 셈이다. 하지만 말싸움이라면 영욱의 특기와도 같은 것이니 끝까지 분위기 파악을 못한 셈이다. 

"나야 영원한 프레시맨이지.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흥! 마나홀도 없는 녀석이 마법을 사용해?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그게 네 녀석이 로빈보다 훨씬 약하다는 증거야. 로빈은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던데 너는 끝까지 부정하잖아."

그 대신 로빈은 변변한 공격 마법이 없는 듯했다. 최후의 발악도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그 점이 궁금해서 이런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마법사라도 전공 마법에 따라서 격이 다른 법이다. 우리 전격 마법사들은 최고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감히 로빈 따위와 나를 비교해?"

"그랬었구나. 하지만 강함이란 상대적인 것이지. 번개가 빠르고 강하다고는 하지만 전기가 전혀 흐르지 않는 바위 공격보다는 약할 것이 분명해."

"흥! 바위가 나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바위를 날린 상대는 죽는다. 그게 바로 속도의 차이지."

"하지만 내가 지금 바위를 날린다면 너는 어떡할 건데? 나는 너의 번개로도 죽지 않는데?"

어린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말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영욱은 바위를 날릴 수 있지만 조그만 자갈 하나를 날려서 마법사의 이마를 가격하는 것으로 그쳤다.

"악! 아프잖아! 그것은 이중천금에게 상당량의 마나를 이미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나가 넘칠 때라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소리를 하려는 거냐?"

"당연하지. 제대로 된 기가 볼트면 너는 오징어 신세를 면할 수 없어."

"좋아. 그렇다면 마나를 회복할 시간을 주도록 하겠다. 네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는 정말 죽는 거다. 알겠지?"

이것이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온 이유였다. 텃밭의 채소는 뿌리째 뽑는 게 아니라 잎만 몇 장 따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수환한다. 그게 훨씬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으니까.

"그, 그게 정말이냐?"

"단, 여기서 회복해야 할 것이다. 달아나 버리면 곤란하니까."

"그야 당연하지."

꿀꺽꿀꺽!

죽음의 직전에서 기적적으로 복수할 기회를 잡은 마법사는 품에서 음료수 비슷한 것을 꺼내서 마신 다음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하는 순간은 무방비 상태라서 남들이 있는 곳에서는 하지 않는 게 상식이지만 어차피 마나를 거의 다 빼앗긴 상태니 그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영욱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제 3의 눈을 동원해서 마법사의 몸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를 잠시라도 더 살려두는 이유는 마나를 더 빼앗으려는 의도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202층 드림헌터들의 준동을 잠시라도 막아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마나 호흡법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마법사는 드링크 속의 농축된 기운을 마시고는 빠르게 마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그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보유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중천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생산된 마나를 실시간으로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약속이 틀리잖아.

-드링크가 더 있잖아. 싸울 만큼은 확실하게 남겨줄 테니까 얼른 더 만들기나 해.

-젠장!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너는 이기고도 진 것이 될 것이다.

-꼭 지킬 테니까 얼른 서둘러. 노예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꿀꺽꿀꺽!

도전할 기회를 주는 대신 그 대가로 상당량의 마나를 상납해야 한다는 소리였지만 202층 마법사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품에서 또 하나의 드링크를 꺼내서 마시고는 추가적인 마나 생산을 서둘렀다.

덕분에 영욱은 마법사 둘을 사냥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의 마나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아주 조금이지만 마나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도 체득하게 되었다. 비록 마나홀은 없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회전할 수 있으니 불가능한 작업은 아닐 듯했다. 그것은 씨 마나가 유나를 씨 마나로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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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더 만들지 않고?

-이젠 마실 드링크가 없다. 그러니 이제는 마나를 그만 가져가라고 해.

-그렇다면 이걸 마시도록 해라.

-이, 이것은?

202층 마법사는 영욱이 내미는 드링크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로빈이 이미 죽었다는 것은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데 선입견 때문에 아직까지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빈의 연구실에 잔뜩 있는 걸 가져왔지.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마시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마법사 전용 음료인 줄은 조금 전에 알게 되었지.

-시, 싫다! 마나를 생산해봐야 다 빼앗길 텐데 그 짓을 왜 해? 내가 젖소라도 되는 줄 알아?

-마나를 가득 채울 기회를 주겠다고 하지 않느냐? 그게 가장 마지막 순서가 되겠지만.

-그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드링크가 마지막 한 병이 남으면 나는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면 너를 죽이면 마나 구경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그렇다면 나를 살려주는 대신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마나를 빼앗겠다는 소리냐?

-나로서야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네가 노예들을 이용해서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공산이 더 커겠지. 너의 입장에서는 이중천금을 죽이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잘 아는군. 좋아, 그렇게 하지.

202층의 마법사까지 다 죽이면 두 층의 노예들을 통제할 방법이 완전하게 사라진다. 그리 되면 가장 먼저 공격받게 될 사람이 바로 영욱이다. 두 층이 통하는 통로에 있으니까.

마법사의 마나를 빼앗아서 기계체조의 경지가 무려 70%대에 이르렀지만 그들 모두와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 

그러니 202층 관리 마법사를 살려두는 게 영욱으로서는 이익인 셈이다. 실제로도 그가 가진 마나의 두 배는 흡수했으니 굳이 죽일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를 살려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마법사가 202층의 모든 노예들을 201층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왜냐면 좁아터진 구멍을 통해서 201층으로 내려와야 하니까 각개격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욱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202층의 노예들이 아니라 201층에 웅크리고 있는 노예들이다. 그들은 높은 층의 노예가 더 강하다는 상식과는 판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었다. 

사실 202층에 있는 노예들이 다 달려드는 것보다 201층의 노예 하나하나가 더 두려울 정도니까 층을 뚫고 마법사를 사냥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조용한 바벨탑도 그런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영욱을 내버려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영욱이 탈출하겠다는 소리를 반겼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201층이 바로 바벨탑의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겠군.'

마법사가 마지막 드링크를 마시자 약속대로 영욱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마나를 너무 많이 빼앗아서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다.

영욱은 중심 회전축에 기대서 헤드 스핀을 돌면서 마지막 작전에 돌입했다. 이제는 마나와 바나에 비해서 유나가 부족한 상황이니 다른 괴인들의 기운을 빼앗을 필요성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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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바로 왔다. 기운을 빼앗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벌컥 내면서 불쾌한 기분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영욱으로서는 나름 자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괴인들의 능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감히 내 기운을 탐하다니 죽고 싶으냐?

-그러게 말이야. 어린놈의 간덩이가 너무 큰 거 아냐?

-겨우 이중천금 따위를 제압했다고 우리도 같은 수준으로 보다니 실수한 거야.

-여러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제가 하늘 높은 줄을 몰랐습니다.

영욱은 세 명이 아니라 두 명만 건드려야 했다고 후회하면서 얼른 용서를 구했다. 

*산 너머 산

-이제 와서 꼬리를 만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그래. 넌 이제 죽었어.

-이제는 말려줄 로빈 녀석도 없으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지만 수명이 며칠이라도 더 줄었다고 봐야겠지.

-로빈을 처리한 사람이 저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 명의 괴인들이 바로 날아올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 협박만 해대자 영욱도 입으로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강탈이 가능할 거라고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건 네 녀석의 능력이 아니라 이중천금의 능력이지.

-맞아. 이중천금과 같은 허접한 녀석이 201층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마나 강탈 능력 덕분이지. 

-그 녀석을 제압하는 것은 우리들 중의 누구라도 가능하지. 그러니까 네 능력이라는 소리는 사양하겠어.

-선배님들께서 이중천금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괴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곳 바벨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장소가 바로 201층인 듯했다. 괜한 자부심일 수도 있겠지만 영욱이 보기에는 손가락 안에 꼽힐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감히 우리 기운을 훔치려고 했다는 거야?

-맞아. 피 같은 내 기운을 도둑질하려고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알면서도 그랬다는 게 더 괘씸한 거야. 넌 이제 죽었어.

-제가 실수했습니다. 사실 이 층에서는 제일 약한 분들 같아서 슬쩍 건드려 본 건데 이것은 명백한 저의 실수가 분명합니다.

영욱은 깐죽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의도로 건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제일 약하다는 거야?

-그래. 중간 정도는 간다고.

-맞아. 내가 10등인데 그 무슨 개소리야?

-그렇다면 나머지 17분들 중에 절반 정도는 선배님들보다 약하다는 겁니까? 이상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우리들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세 괴인의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걸 보니 도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안쪽에 자리를 잡고 계신 겁니까?

-그, 그건 우리가 다른 녀석들보다 상대적으로 이중천금에게 강하기 때문에 자처한 일이다.

-마, 맞아.

-중간은 간다니까.

-대신에 바깥에 계신 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신 모양이군요. 그렇지요?

영욱은 집요하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적어도 자존심만큼은 중간 이상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실력은 그렇지도 않은 게 분명했다. 그 정도만 해도 불감당不堪當의 강적에 속하지만.

-그래도 중간은 간다. 

-맞아.

-우리들의 말을 믿어도 좋아.

-그렇다면 한 명만 처리해보십시오. 그래야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욱은 제발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괴인들에게 증거를 대라고 강요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맞아.

-동네 아이들을 이간질해서 싸움 붙이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야 저와 이중천금은 물론이고 제 부하들까지 독식하실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예쁜 여자들도 취할 수 있고요. 그동안 외롭지 않았습니까?

영욱은 떡밥을 듬뿍 뿌렸다. 강하다는 게 확인되면 다 주겠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여자들마저도.

-여자 좋지. 하지만 우리도 세 명이니까 사이좋게 나누면 되는데 굳이 다른 자들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제가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다른 분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요상한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좋아. 내가 누군가를 하나 처리한다고 치자. 그러면 네 여자들을 독식할 수 있다는 보장이라도 있어?

-제가 선배님의 노예가 되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선배님들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결국은 살려달라는 소리잖아.

-죽이고 싶다면 노예로 취하고 나서 죽이면 되잖습니까? 하지만 저를 죽이면 제 여자들을 취할 수 없을 테니까 그 점을 잘 고려해야할 겁니다.

영욱은 협박과 회유의 경계선을 절묘하게 넘나들면서 괴인들을 충동질했다. 다른 괴인들을 죽여서 중간은 간다는 증거를 보이지 못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형기가 괴인들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다. 

지지직! 지지직!

왜냐면 지금 라이트닝 볼트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휼버린이 준 마법서에 라이트닝 볼트 마법도 있어서 배운 바가 있었다. 하지만 위력이 별로라서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기 세례를 수십 차례나 받고 전격 전문 마법사의 마나를 배가 터지도록 흡수했으니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이러한 영욱의 행동은 세 괴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말싸움이 이렇게 길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너를 따라서 죽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그렇게까지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분들로부터 지킬 수가 없을 거라는 소립니다. 싫으면 마세요.

-조, 좋아! 한 녀석을 처리할 테니까 약속을 꼭 지키도록 해라.

-세 분이니까 각각 하나씩 해서 도합 셋을 처리하셔야 할 겁니다.

-다, 당연하지.

영욱이 여러 개의 라이트닝 볼트를 만들어내자 세 괴인들은 얼른 영욱의 제의를 수락하고 말았다. 회유 역시 협박처럼 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영욱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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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퍼벅!

꾸에엑!

영욱은 소희와 은영 그리고 화리의 미모를 이용해서 괴인들끼리 싸움을 붙이고자 했다. 세 괴인은 가장 약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영욱의 선동에 넘어가서 자기들보다 강한 괴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협박도 협박이지만 예쁜 여자라는 상품이 걸리니 갑자기 눈이 뒤집혀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인정하면서 지냈던 서열을 이제는 한 번 바꿔보고 싶던 차였기도 했다. 나름 수련을 계속했으니.

세 곳에서 동시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제 3의 눈을 총동원한 영욱으로서도 누가 유리한지 모를 정도로 빠르고 팽팽한 대결이 이루어졌다. 다들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은 의외로 팽팽하게 이어졌다. 덕분에 영욱은 그들이 흘리는 기운만으로도 배를 불릴 수 있었다. 강력한 괴인들의 기운으로 만든 유나는 유난히 강했다.

여섯 명의 괴인들은 그들이 흘린 기운들이 모두 영욱에게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싸우고들 있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되면 예쁜 여자도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고, 영욱의 기운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쾌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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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하루가 꼬박 지나고서야 끝이 났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다른 괴인들의 승리였다. 영욱도 괴인들이 흘린 기운을 유나로 바꾸고 또 마나, 바나와 버무려서 기계체조의 경지를 올리던 작업을 중단하고 입을 열었다.

-이제야 승부가 났군요. 정말 대단한 실력들입니다.

-어서 여자들을 우리에게로 보내라.

-나는 키 큰 여자가 좋아.

-나에게는 요염한 애를 보내라.

-하지만 세 분께서는 다른 세 분을 이기셔야 저와 제 여자들을 취하실 자격이 생깁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어처구니없는 영욱의 대답에 세 괴인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영욱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서 입을 열었다.

-도전을 한 게 아니라 도전을 받은 것이잖습니까?

-이기면 네 녀석과 네 여자들을 취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다른 노예들도.

-맞아.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싸웠겠어?

-그것은 조금 전에 운명運命을 달리하신 세 분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이긴 세 분과는 그런 약속을 한 바가 전혀 없었지요.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같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세 분을 이긴다면 저희 모두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영욱은 라이트닝 볼트의 숫자를 점점 더 늘여가면서 뻔뻔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게 싫다면 전기통닭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들이 빠르기는 하지만 번개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흥! 우리들을 상잔시킬 생각이라면 어림도 없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게 분명해.

-우리가 바본 줄 알아?

-그런 게 아니라 저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데 서열이 꼴지에 가까운 분들을 모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꽁꽁 숨겨두었던 실력을 보여 달라는 거지요.

-여자 애들이 예쁘긴 하지만 굳이 그럴 가치까지야 있을까?

-맞아. 모처럼 몸을 풀었더니 좀 피곤하네.

-주기 싫으면 마. 나는 잠이나 좀 자야겠다.

-쟤들의 얼굴과 몸매도 예쁘지만 춤도 아주 잘 춥니다. 얘들아, 뭐하고 있어?

세 괴인들이 꼬리를 말자 영욱은 준비된 다음의 수를 동원했다. 영욱의 지시에 의해서 소희와 은영은 잔상무를 추기 시작했다. 

-넌 뭐해? 죽고 싶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화리도 어쩔 수 없이 발레를 해야만 했다. 영욱이 괴인들에게 자신들의 춤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킬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에는 괴인들이 보이지 않으니 과감하게 노출도 시키고, 최대한으로 요염하게 춤을 추었다. 그것이 바로 영욱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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