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5/71)

이중천금이 완전히 항복해서 노예가 되었을 무렵 로빈이 나타났다.

"겨우 며칠 사이에 놀라운 변화로군."

"오셨습니까? 로빈 님."

"일신우일신이라더니 바로 자네를 두고 한 말이었어."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만, 아무튼 칭찬은 고맙습니다."

영욱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 반복해서 수련했으니 겨우 며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왜 또 그자를 죽이지 않는 건가?"

"노예로 거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자는 음흉하고 교활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말일세."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으니까 이제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겁니다."

영욱은 로빈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내 말뜻을 모르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어서 그 자를 죽이란 말이다."

"이중천금을 죽이는 것은 간단하지만 죽이는 순간 제가 도전자가 된다는데 왜 죽입니까?"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저 자가 한 말은 모두가 다 거짓말이야."

느물거리는 영욱의 태도에 로빈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영욱의 말은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이중천금을 죽이는 게 손바닥을 뒤집듯이 간단하다고 하니까. 그런 말이야 사실 농담일 수도 있으니 극도로 흥분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이중천금의 처리가 쉽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럼 아니라는 겁니까? 거짓말이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마법사의 맹세를 아무에게나 하는 줄 아는가?"

"제가 알기로는 마법사의 명세는 곧 시니어가 만들어둔 족쇄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법사들의 충성심을 점검할 때마다 충성 맹세를 해야만 하는데 그게 만일 거짓말이면 마나홀이 붕괴된다고 들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제 말도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러니 진실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제가 이중천금을 죽여도 도전자가 되지 않는다고 맹세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세요."

"감히 마법사를 능멸하다니 죽고 싶으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로빈은 강한 기세를 드러내면서 영욱을 압박했다. 사실 관리 마법사가 노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영욱은 흔한 노예 하나가 이미 아니지만.

"그렇다면 제가 잠정적인 도전자가 틀림없군요. 도처에 강자들이 즐비한데 왜 하필 저같이 비리비리한 놈이 도전자 후보라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조용한 바벨탑의 판단은 여태까지 틀린 적이 없다. 게다가 너는 이 바벨탑의 존망을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왜 도전자가 아니라 노예 취급을 한 거죠?"

"그래야 너도 정신을 차리고 강해질 거 아냐? 도전자에 어울릴 정도로 강해질 기회를 준 것이지."

거창하게 도전자 운운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수작으로 느껴졌다. 정말 조용한 바벨탑을 위협할 싹이라면 자라기 전에 밟아버리는 것이 상식이니까.

"제가 강해진 것을 알고 계셨군요."

"당연하지. 그 누구도 이 조용한 바벨탑의 안배를 벗어나지는 못해."

"이 탑이 그런 판단을 한다고요? 어째,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 알면 다쳐!"

영욱의 지적에 로빈이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큰소리를 치면서 영욱의 입을 닫게 했다. 영욱 역시 조용한 바벨탑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진상의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을 쌓는다는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조용한 바벨탑 자체가 여의주를 물고서 승천하고 있는 용이거나 혹은 이무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상의 하늘에 올라서 신이 되고자 하는 일종의 환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환수지왕이라는 아주 어설픈 타이틀만으로도 도전자로 결정된 것이다. 게다가 거대한 바벨탑은 보나마다 환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몸속에 회전축이 달린 환수라? 그런 것도 있었나?'

영욱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조용한 바벨탑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비밀

하지만 조용한 바벨탑이 텔레파시를 보내옴으로써 추적 작업을 잠시 중단해야만 했다.

-멍청한 로빈 녀석의 말 한 마디로 내 정체를 알아차리다니 제법 똑똑한 놈이었구나.

-네 녀석이 바로 조용한 바벨탑 행세를 하고 있는 놈이구나. 

-조용한 바벨탑은 그저 허상일 뿐 나는 2QB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다.

-네가 2QB 세상 자체인 듯이 말하는구나. 그렇다면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잖아.

-마지막 도전자답게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두 번째 바벨탑의 말투에는 흡족함이 흠뻑 배어 있었다. 모처럼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서 즐겁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몽마와 비슷한 거냐? 너도 사람들의 꿈을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지?

-그냥 꿈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하기가 쉬울 거다. 아무튼 네 녀석이 마지막 도전자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나서는 도전자니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상대해주도록 하겠다. 

-보통은 다른 놈들이 상대한다는 말인가? 마법사나 골렘과 같은?

-당연하지. 내가 허접한 도전자들까지 직접 상대할 시간이 있는 줄 아느냐?

조용한 바벨탑은 자신이 공사다망公私多忙하다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했다. 그것은 뭔가 중대한 작업을 완성하기 직전이라는 소리기도 했다. 또한 그 작업에 영욱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기에 그렇게 바빠?

-그야 사람들의 헛된 꿈을 모아서 이 2QB 세상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지. 처음에 비하면 거의 열 배는 넓어졌으니까 바쁠 수밖에.

-망상? 몽상? 어떤 게 헛된 꿈이지?

-둘 다. 그리고 희망까지도 헛된 꿈에 속하지. 말은 그럴 듯하지만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니까.

영욱에게 희망을 버리라는 의미로 하는 말인 듯했다. 사실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복권 당첨보다도 낮으니 조용한 바벨탑의 주장도 엉터리는 아닌 셈이다.

-혹시 절망은 취급 안 해?

-그런 건 줘도 안 먹어.

-덩치는 큰데 식성이 무척 까다로운 편이구나.

-왜냐하면 절망은 항상 인간들의 몫이거든.

-내가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볼까?

-그것은 바로 절망이 희망의 씨앗이기 때문이지. 절망 속에서 희망이 생겨나면 너는 그걸 꿀꺽하겠다는 거잖아. 퇴비를 잔뜩 뿌린 땅에서 야채가 자라면 먹겠다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겠지.

영욱은 말도 되지도 않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상대의 논리가 아무리 정연하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상대가 환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꿈을 지배하면서 꿈들을 갈취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풀어낼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오로지 싸움뿐이니 자신도 모르게 비아냥거린 것이다.

-말장난이라면 사절이야. 좋아! 지금부터 너를 상대하도록 하겠다.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냐? 이미 삼킨 상태니까 그냥 소화시키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왜 상대하겠다는 거야?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주겠다는 것이다. 싫다면 굶어죽게 될 것이다.

-좋다. 지금부터 한 달 안에 이 바벨탑을 탈출할 계획이다. 그것을 막는다면 네가 이긴 걸로 간주해주겠다.

-목숨을 한 달이나 연장시키다니 아주 지능적이군. 좋아, 나로서야 절망하는 네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으니까 그 정도는 참아주기로 하지.

-실망과 절망으로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하하하!

-과연 그럴까? 아무튼 딱 한 달의 시간을 주겠다.

말장난은 아무래도 영욱의 승리로 끝난 듯했다. 그런데 미묘한 분위기를 감안하자면 일 년의 기간을 달라고 해도 주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아직 도축 시기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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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바벨탑과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동안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로빈이 다시 움직임을 재개했다. 주둥이부터 마비가 풀리는 게 영욱의 눈에도 보였다.

"왜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거냐?"

"조용한 바벨탑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 그게 정말이냐?"

"의심스러우면 바벨탑의 탈을 쓰고 있는 그 환수 녀석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이중천금을 죽여라."

로빈이 반쯤 혼이 나가서 미쳐 날뛰자 영욱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그도 두 번째 바벨탑이 살아 있으며, 정체가 환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갔으니 이제는 죽음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중천금! 죽기 싫으면 로빈을 죽여라."

"예. 주인님."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관리 마법사다."

"이중천금은 상대의 기운은 물론이고 마법사의 마나까지도 빼앗을 능력이 있지. 그래서 네가 직접 처리하지 못하고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겠지."

"아,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이건 실수하는 거다. 나를 죽이면 조용한 바벨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로빈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움쩍달싹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중천금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 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마법사가 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중천금의 능력은 마법사를 사냥하는데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녀석과는 이미 교전 중이다. 그러니 너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버, 벌써 도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냐?"

"그런 셈이지. 그럼 잘 가거라."

"사, 살려줘."

"나도 너를 살려서 노예로 거두고 싶지만 멀리 달아나 버리면 잡으러 갈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네."

"이런 흡혈귀 같은 놈들에게 당하다니 원통하다."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로빈이 다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가 변할 리는 없었다.

"세상에는 천적 관계가 있는 법이지. 그것도 서로가 물고 물리는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은 경우도 더러 있지."

"너는 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나로 하여금 이중천금을 자꾸 죽이라고 한 게 너의 실수였다."

영욱도 이중천금에게 유나를 빼앗긴 적이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을 알려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지간한 생각마저도 읽어내는 조용한 바벨탑과 싸우는 중이니 중요한 내용은 아예 머릿속에서조차도 떠오르지 않도록 딴생각을 해야만 했다.

사실 딴생각으로 머리에 실드를 치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경시 동작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실 기계 체조 경시 동작이란 시간의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 또한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효용도 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구 뒤섞여버리기 때문이다.

"아깝다. 저 녀석만 처리하면 내 세상인데……."

"조용한 바벨탑의 꼭두각시로 사는 주제에 네 세상은 무슨 네 세상?"

"그것은 논외다. 사람들이 신을 모시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니까."

"신은 적어도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아."

반면에 조용한 노벨탑은 사로잡힌 노예들의 노동력은 물론이고 마지막 남은 기운 한 방울마저도 삼켜버리는 개미지옥인 셈이다.

"어차피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이나 가축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다만 육질이 저급하고 노린내가 심해서 입을 대지 않을 뿐이지."

"살다보니 별 소리를 다 듣겠네. 아무튼 잘 가라."

컥!

영욱은 로빈의 목을 꺾어버렸다. 이제는 마나의 흡수가 거의 끝났으니까 고통 없이 보내주려는 것이었다. 살인이라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지만 전혀 후회는 없었다.

이중천금은 로빈으로부터 빼앗은 마나의 대부분을 영욱에게로 보내주었다. 이제는 노예가 되었으니까 마나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주 조금은 몰래 챙겼지만.

영욱은 드디어 상당한 량의 마나를 구하게 되어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드디어 유나와 바나 그리고 마나를 비교 분석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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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영욱은 바벨탑의 회전축에 바짝 기대서 헤드 스핀을 돌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회전축의 속도보다 무려 4배 이상이나 빨랐다. 회전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나를 생산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바나를 흡수하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영욱은 그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마나와 유나 그리고 바나를 섞기 시작했다.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믹서처럼 세 가지의 기운들을 골고루 섞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바로!'

어느 순간 영욱은 자신의 생각을 중단시켜 버렸다. 바벨탑에게 읽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기운은 바로 자신이 기계체조로 모은 기운과 거의 흡사했다. 은영과 소희가 모은 기계체조의 기운도 조금씩은 다르니 기계체조의 기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실험의 결과가 참으로 묘하게 나와 버렸지만 그러니까 생각 자체를 지울 수 있는 것이다. 늘 하던 기계체조를 수련하는데 생각이라는 게 있을 리 없다. 

영욱은 그 기운이 늘어날수록 헤드 스핀이 점점 더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기계체조의 경지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

경지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기운이라는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반대로 기운이라는 물질적인 것이 추상적인 경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 다소 이채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물질과 완벽한 정신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또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한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정신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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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으로부터 흡수한 마나를 기계체조의 기운으로 죄다 바꾼 영욱은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연신 헤죽거리고 있는 은영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은영아.

-왜 오빠?

-지금 내 경지가 어느 정도나 되는 것 같아?

-가, 가만 보자. 51%야.

-그래? 나는 좀 많이 오른 줄 알았더니 겨우 그거야?

영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아직도 헤드 스핀을 돌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1%가 어디야? 그리고 50%에서 51%로 오르는 게 쉬운 줄 알아? 하여튼 오빠는 연구대상이야.

-그보다 네가 더 신기해. 어떻게 자기도 오르지 못한 경지를 어떻게 척척 알아맞히지?

-누구나 잘하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야. 

-너의 잔상무도 일품이니까 잘하는 것도 많다. 아무튼 또 오르면 알려줘. 

-칭찬 고마워. 하지만 더 잘하는 것도 많아. 오빠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영욱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헤드 스핀을 계속했다. 은영 역시 경시동작의 도움으로 바벨탑에게 생각을 읽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영욱으로서도 그녀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잘하는 게 뭔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영욱이 경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51을 표시하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51%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도 손가락으로 영욱의 경지가 무려 60%임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녀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었다.

그녀로서는 영욱이 마법사 로빈의 마나를 흡수한 것으로 기계체조의 경지를 획기적으로 높이게 되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영욱이 가능하다면 그녀 역시 높은 경지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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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천금!

-네, 주인님.

-아무래도 마법사를 하나 더 잡아야겠다.

영욱은 내친 김에 기계체조의 끝을 보고 싶었다. 층마다 마법사가 하나씩은 있을 테니까 그저 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00층과 202층의 마법사 중에서 하나를 사냥하라는 말씀인가요?

-왜? 어려운가?

하지만 이중천금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가 마법사를 사냥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텐데도.

-마법사들이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자들 사이에 숨어 있는지라 결과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거리에서 마나만 빼앗는 것은?

-그것도 힘듭니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너는 그 사이에 마나를 취해라.

-하지만 201층의 괴물들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혹시 밀리기라도 하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이중천금은 영욱의 욕심이 과하다는 사실을 완곡하게 지적했다. 당장 처리해야할 일부터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자는 거지.

-그럼 주인님을 믿겠습니다.

-맡겨둬.

하지만 영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중천금의 판단도 옳지만 그것은 마나의 효용이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노예인 이중천금은 주인인 영욱을 말릴 수가 없었다. 시쳇말로 거시기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까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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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

영욱은 강력해진 헤드 스핀을 이용해서 천정을 뚫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회전만 했지만 원래 헤드 스핀의 용도가 땅을 파는 것이니 방향이 바뀌었다고 해서 어려울 리가 없었다.

물론 단단한 바위 이상의 강한 재질로 이루어진 천정이자 바닥이었지만 회전축의 도움을 받으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멍을 뚫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영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2층의 바위 맷돌이었다. 각 층마다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욱이 머무르고 있는 201층의 바위맷돌을 부수지 않으려고 힘들게 천정을 뚫었던 것인데 괜한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젠장! 바보짓을 했군. 바위맷돌을 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이 정도로 일을 벌이는 것은 바벨탑이 싫어할 텐데 어쩌지?"

"그렇다면 부수는 척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중천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름 훈수를 두었다. 그가 보기에는 영욱이 모르고서 한 실수는 아닌 것 같은데 큰소리로 자책하는 게 다소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예가 주인에게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202층의 관리 마법사가 달려올 거라는 말인가?"

"기반 시설물이 부서지는 것이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 역시도 근무 태만을 하게 되면 바벨탑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테니까요."

"좋아. 그러지 않아도 저 바위맷돌을 한 번 갈아보고 싶었어. 대체 무슨 성분으로 되어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지."

드드드드!

기계체조의 경지가 60%대로 오르자 이제는 포크의 소환이나 ULM 코팅 따위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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