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욱은 염동력을 동원해서 몸속에 있는 환수의 기운들을 심장 주변으로 모으고는 자신의 몸이 헤드 스핀으로 도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서 가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라서 그게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보았더니 한결 더 수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전하는 속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심장을 포함하는 회전축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빨라진 것이다. 이 상대 속도의 증가가 곧 유사 마나의 생성 속도를 촉진시켰다.
그것은 몸이 회전한다고 해서 환수의 기운들이 같은 속도로 회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믹서 칼날의 회전 속도와 그에 의해서 회전하게 되는 야채 주스의 속도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의 회전 속도와 기운들의 회전 속도 차이가 바로 유사 마나를 만들어 내는 속도였던 것이다. 만일 둘의 회전 속도가 같다면 결코 유사 마나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유사 마나는 회전 운동 에너지에 의해서 활성화된 기운이었구나. 휘발유도 차가운 것보다는 따듯한 게 더 불이 잘 붙듯이 활성화된 기운이 초능력을 마법이라는 보다 효율적인 초능력으로 만들어준 것이었구나.'
영욱은 경험과 고찰을 통해서 마나에 대한 진실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었다.
말은 아주 쉽지만 피겨스케이팅의 스핀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빨리 돌 수 있는 방법은 흔치 않다. 그러니까 사람이 돌지 않고 대신 기운만 돌게 하는 마나홀과 마나심법이라는 것이 고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잡다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영욱은 염동력과 실드 능력 등으로 일시적인 마나홀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나심법 대신 기계체조 응용 동작의 빠른 회전과 염동력으로 가속이 가능했다. 물론 제아무리 빠른 헤드 스핀이라고 해도 그것으로는 회전 속도가 부족해서 유사 마나를 능률적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경시 동작도 필요하고, 염동력도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모터의 회전 속도가 축을 둘러싸고 있는 자석 혹은 전자석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상대적인 회전 속도가 유사 마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기계체조 구결도 짝퉁이고 마나 홀과 마나 심법도 짝퉁이구나. 하지만 이게 어디야?'
영욱은 쾌재를 부르면서 기계체조 응용 동작 중의 헤드 스핀과 토마스 스핀 그리고 윈드밀 스핀의 수련에 열중했다. 그것은 유사 마나를 능동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함이었다.
'잠깐! 내가 굳이 자갈밭 속에서 이 지랄을 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포크를 탑승했을 때는 홍천강의 얼음이 버텨내지를 못하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영욱은 잔상수족의 초식으로 빠르게 얼음 위로 이동한 다음 다시 헤드 스핀 등에 열중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전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다.
'빨리 회전한다고 무조건 유사 마나가 생성되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해.'
그것은 응용 동작을 수련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때에는 거의 생겨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생겨났을 지도 모르겠지만 느낄 수 있는 수준 저 이하였다.
그런데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유사 마나가 회전 운동에 의해서 많이 생겨난 것은 회전 속도도 더 빨라졌지만 박상태의 기운 중에서 종자가 될 만한 마나의 기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씨 마나를 회전축에 놓고 빠르게 회전하면 잡다한 기운들이 유사 마나가 되는 형식이다. 마치 그냥 쇠막대가 자석에 의해서 일시적이지만 자석이 되는 것처럼.
아마도 대왕대봉과의 싸움에서 은영과 소희 다음으로 박상태의 기운을 많이 끌어다 썼는데 그때 상당량의 씨 마나가 영욱의 몸으로 넘어온 것이 아마도 기연이 된 듯했다.
무려 200명이나 삼킨 박상태에게는 다양한 기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런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그 씨 마나는 비활성 상태였고, 조금 전의 빠른 회전에 의해서 활성화되었다.
영욱이 의식적으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간절하게 그 기운을 원하니 김호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운을 집중적으로 빼내서 전해주었던 듯했다.
그리고 기연은 또 있었다. 마법을 배운 적이 전혀 없지만 마법 아이템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어설프게나마 마법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구별하자면 아직도 마법이라기보다는 소환 초능력에 가깝지만 어쨌든 간에 위력 증가와 에너지 효율에서는 큰 도움이 되니 기연이 아닐 수 없다.
영욱은 빠른 회전을 통해서 유사 마나를 생산하는 한편 대봉 사체를 염동력으로 짓이겨서 그 체액을 삼키고 흡수하는 작업도 함께 병행했다. 그것은 유사 마나 생산 공장이 잘 돌아가게 하려면 원료가 되는 환수의 기운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욱이 헤드 스핀과 토마스 스핀 그리고 윈드밀 스핀을 집중적으로 수련하자 백오기사단은 물론이고 은영과 소희도 얼음판 위에 자리를 잡고는 뱅뱅 돌기 시작했다. 씨 마나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인 줄도 모르고.
또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었다. 유사 마나가 농축되니 아주 일부지만 씨 마나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순환만큼이나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씨 마나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혜는 아니라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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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왜?
-얼음 위라서 잘 돌기는 하지만 솔직히 왜 도는지를 모르겠어. 비슷하긴 하지만 이건 땅을 뚫고 들어가는 동작이 아니니까 응용 동작의 수련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야.
-궁금해?
-응. 궁금해서 미치겠어.
-그럼 입 벌려!
-입 닥치는 게 아니고?
-응. 네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큰 상을 주려고.
은영은 아주 영민해서 자신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영욱과는 달리 도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영욱에게 약간의 여유가 생긴 시점이었다.
-먹는 거야?
-응. 하지만 그걸 먹으면 왜 내가 뱅뱅 도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아!
-삼키고 뭔가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 돌아봐.
꿀꺽!
-응. 아직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워.
영욱은 대봉의 체액과 함께 씨 마나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는 반응을 보기로 했다. 워낙 소량이라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녀의 몸에서 줄줄 흐르는 치명적인 매혹으로 쉽게 느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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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은 경시 동작으로 헤드 스핀 동작을 구사하니 그 빠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은영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백오기사단 기사들의 숫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야? 그래서야 훈련이 되겠어?"
"죄송합니다. 대장님."
"상태야, 쟤네들 정신 교육 좀 시켜."
"예. 대장님."
당장으로서는 백오기사단 모두에게 나누어줄 씨 마나는 없으니 관심을 끊으라는 의미에서 얼차려를 지시하고 말았다. 영욱이 보아도 은영의 몸에서 발산하는 매혹의 수준 자체가 달라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영욱이 건네준 씨 마나로 인해 유사 마나가 생성되어서 매혹 초능력에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생산되는 유사 마나의 양이 적어서 당사자인 은영도 아직까지는 무슨 일인지 모르는 듯했지만 효과는 눈으로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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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몸속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빠, 지금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기계체조처럼 정신력이나 환수의 기운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이제는 너도 가지게 된 거라고 봐야겠지.
-그게 오빠가 돌고 또 도는 이유였어?
-맞아. 다만 노력만으로는 어려워서 마법사들처럼 자질을 타고 나야 하는데 그 종자가 될 수 있는 씨 마나를 너에게 조금 나누어 주었어. 고맙지?
-고마워, 오빠.
-그 씨 마나가 네 몸에도 정착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일장춘몽처럼 사라져버릴 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돌도록 해. 이왕이면 더 빠르게 말이야. 알겠어?
-알았어. 대신에 대봉의 체액은 아까처럼 내 입에 넣어줘. 부탁해.
-그러지 뭐.
영욱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은영의 경시 동작을 혼자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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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혹시 은영에게 마나 생산 방법을 가르쳐준 건가요?
눈치는 소희도 만만치 않았다.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은영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고 나서야 입을 여는 침착함도 함께 보여주었다.
-역시 네 눈치를 당할 수는 없군.
-그런데 저는 왜 변화가 없는 거죠?
-그건 네가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없어서 그래.
-저는 없고 은영은 있다는 말인가요?
-너도 없고 은영도 없어. 심지어는 나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왜 뱅뱅 돌고 있죠? 돌다보면 없던 자질이 생겨나는 수도 있나요?
-맞아. 지금은 탈태환골이 필요한 순간이야.
영욱은 소희에게 나누어줄 만큼의 씨 마나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저 딴소리로만 일관했다.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은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소희도 아는지 모르는지는 보채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욱 씨는 언제 경시 동작에 입문하신 건가요?
-조금 전에 대왕대봉과 싸울 때야.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경시 동작에 익숙해졌어.
-멋져요. 정말.
-이제 너도 입 벌려.
-예? 닥치는 게 아니고요?
-응. 네 덕분에 응용 동작을 배웠으니까 은영처럼 씨 마나를 조금 나눠줄게. 다만 그것으로도 꼭 마나 생산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
만일에 화리처럼 보챘다면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평소와는 달리 아주 조신하게 굴었고, 그러한 행동이 영욱으로 하여금 씨 마나를 기꺼이 나누어주게 만들었다. 그걸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느낌도 들지만 지금은 자신을 구하러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고마워요. 영욱 씨.
-닥치고 입이나 벌려.
-아!
-삼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돌아.
-고마워요.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소희는 여전히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염동력으로 기운들을 심장 주위에 모으고 그것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은영과 소희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고, 퍼줄 수 있는 것은 다 퍼준 셈이다. 나머지는 자기들의 몫이다.
하지만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더 이상 대가를 얻어낼 것도 없으니 어찌 보면 바보짓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까 영욱으로서는 과거의 인연을 정리하는 이별 선물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씨 마나가 그녀들의 몸속에서 안착한다는 보장도 결코 없으니 어쩌면 일회용 부스터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사실은 지금 임상 실험을 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공한다면 그녀도 기분이 좋겠지만 영욱은 부하들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가지게 되는 셈이니까 그 기쁨의 크기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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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소희마저도 유사 마나를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잘 웃지 않는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몸속에 큰 변화가 있음을 의미했다.
은영보다는 기운의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아차린 듯했다. 물론 영욱이 먼저 씨 마나를 나눠준다고 언급했으니까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
-이건 정말 놀랍군요.
-진짜 마나를 대량으로 전환시키는 마법사들도 있는데 겨우 이 정도로 탄성을 지를 거야?
-구결도 이상한 것을 만들어서 진짜 구결을 대체하시더니 이제는 마나도 짝퉁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수도 없이 존재하는 구결들처럼 마나의 종류도 아주 많다고 들었어. 그러니 짝퉁 취급은 사절이야.
영욱은 소희보다도 더 날아갈 것 같았지만 애써 목소리를 깔고서 대화에 임했다. 생색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것도 알기에.
-아무튼 마법사들이 만들어내는 마나는 아니니까 유사 마나라고 해두죠. 짝퉁은 어감이 좀 그러니까.
-맞아. 마나가 있어도 마법을 배우지 못하면 반쪽짜리 효과밖에 누릴 수 없으니 유사 마나라고 해두지. 줄여서 유나라고 부르지. 나는 여동생도 없으니 그런 기분으로. 하하하!
-호호호! 유나라는 이름도 좋네요. 아무튼 이번 기회에 저도 마법이나 한 번 배워볼까 싶어요.
-돈 많아? 대체 누구의 등골을 빼먹으려고 그런 말을 해?
영욱은 진중권을 떠올리면서 다소 강한 어조로 소희를 질책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희망하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이젠 제 힘으로 배울 수 있으니까 염려 붙들어 매세요.
-돈이 조 단위는 있어야 한다는 소리 못 들었어?
-이제 마나심법은 배우지 않아도 되니까 절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오천억 원이 애들 장난이야?
영욱은 반론을 제기하면서도 솔깃한 심정이었다. 조 단위가 아닌 것만 해도 한결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리고 꼭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초능력 사용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야 현존하는 마법 체계가 초능력의 효율 개선에 불과한 거니까 당연히 큰 도움이 되겠지. 획기적이긴 하지만 크게 다르다고 보기도 어려울 테니까…….
-영욱 씨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니 어렵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좋아. 너에게 마법적인 재능이 있는지를 보게 나에게 블라인드를 걸어봐.
-예. 블라인드! 어때요?
실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전에 비해서 오히려 위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욱은 자신이 그 동안 강해졌다는 생각을 놓쳤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2초 정도인데 내가 방법을 잘못 생각했나봐.
-맞아요. 영욱 씨가 그동안 아주 많이 강해졌으니까 전에 10초였던 것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죠.
-그래. 그보다는 몇 번이나 걸 수 있는 지를 체크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누구에게 걸죠?
-누구긴 누구야? 실험 대상을 잔뜩 놔두고.
영욱은 전과 달라진 자신의 위상을 지금 처음으로 느꼈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무려 서른 명에 가까운 부하들을 거느린 대장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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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
"악!"
"지금부터 서열을 다시 가리는 전투력 측정을 실시하겠다. 다들 즐겁지?"
"악!"
"먼저 2조와 3조가 단체전을 벌여서 이긴 조가 1조와 다시 겨루게 된다. 불만 없지?"
"악!"
"단체전 방식은 서로 10미터의 간격을 띄우고 나란하게 서서 시작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소희의 블라인드 초능력이 너희들의 눈을 동시에 멀게 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아직은 모르겠지?"
영욱은 자신이 생각해도 감탄할 만큼 기발한 대련 방법을 생각해냈다. 서열을 다시 정하는 것도 좋지만 부상자나 사망자가 생겨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악!"
"가장 강한 자가 가장 먼저 시력을 회복하게 되는데, 이제는 다들 알겠지만 그게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불필요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손에 묻힌 숯검정으로 상대의 얼굴을 문지르면 이긴 것으로 간주하겠다. 진 자는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길 바란다. 알겠나?"
"악!"
"준비, 시작!"
"광역 블라인드! 광역 블라인드!"
우당탕탕.
소희는 놀랍게도 아홉 명을 한꺼번에 눈멀게 했다. 게다가 거의 동시에 두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게 유사 마나 덕분인지 아니면 영욱이 준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는 것은 분명했다.
소희의 놀라운 초능력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던 2조와 3조가 잠시 동안 멍청하게 서 있다가 눈이 회복되는 순서대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달리기 능력이라면 10미터를 1초에 주파 가능하니 상대보다 1초만 먼저 눈을 뜨면 바로 달려가서 상대의 얼굴에 숯검정을 묻혀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능력이라서 그런지 비슷비슷한 시기에 눈을 뜨고는 진흙탕 개싸움이 벌어졌다. 실제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초능력을 가진 자들도 많으니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먼저 시력을 회복한 백오기사들 대부분이 저항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얼굴에 숯검정을 칠할 수 있었다. 오뉴월 하루 땡볕이 무섭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해주는 대련이었다.
"동작 그만! 3조의 승리다. 3조와 1조는 단체전을 준비하라."
"악!"
"준비, 시작!"
"광역 블라인드! 광역 블라인드!"
우당탕탕.
부상도 없고 체력의 소모도 거의 없으니 똑같은 일이 별다른 휴식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1조와 3조 사이에서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1조 조장 박상태의 맹활약으로 1조가 간단하게 이겨버렸다.
대부분 10초 이내에 시력을 회복했지만 약 7초 만에 시력을 회복한 상태가 달려가서 3조가 눈을 뜨기도 전에 3조 전원의 얼굴에 숯검정을 칠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서 아홉 명을 무력화시킬 만큼이나 소희의 블라인드의 위력은 막강했다.
"상태가 이끄는 1조의 승리다! 다음은 조별 순위를 정하겠다. 각 조의 9번과 8번이 맞대결을 펼쳐서 이긴 자가 7번과 겨룬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