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2/71)

"뜨내기장사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정직하게 거래를 했어야지. 감히 나를 호구 취급해?"

"내, 내가 언제?"

"휼버린 씨가 10% 할인권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는데도 자꾸만 개소리를 할 거야? 마법서를 사는데 사기를 당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했고."

"그,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사기당한 거야. 난 분명히 그걸 돈을 주고 샀어."

변명치고는 아주 허접한 변명이었다. 만일 그 변명이 사실이라면 그녀도 허접한 시절을 겪고 나서야 겨우 노련한 상인이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집안에는 더 노련한 상인들이 득실거릴 가능성도 높다.

"집안이 재벌이라서 받은 게 아니고?"

"집안은 재벌인데 나는 재벌이 아니라서 잘 몰라."

"온다."

"얼른 줘."

"내가 미쳤어?"

영욱은 화리가 벌들이 무서워서 백오 가죽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환수사냥꾼들은 환수들에게 당해도 상인들은 절대로 당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비상 탈출 수단들은 가지고 있으니 걱정해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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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노리고 있던 대봉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영욱도 자신의 노예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일단 여기에서 물러난다."

"악!"

"박상태."

"악!"

"저 능선까지 후퇴한 후에 마른 나뭇가지를 신속하게 채취한다. 알겠나?"

"악!"

"인솔해서 출발해!"

"악!"

영욱의 노예들이 신속하게 도망치고 나서도 삼삼오오 모여서 새로운 환수가 나타나길 기다리던 환수사냥꾼들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대봉이 나타나자 그제야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붕붕.

영욱도 노예들과 함께 자리를 떠야 했지만 휼버린에게 맡긴 사파이어 귀걸이 아이템이 아쉬워서 잠시 지체하다가 다른 환수사냥꾼들과 함께 커다란 벌들의 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봉 환수들이 백오 환수의 기운을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대부분의 벌들이 다른 환수사냥꾼들을 쫓는 대신에 영욱과 영욱의 부하들을 쫓았기 때문이다.

"젠장! 이게 뭐야?"

투둑. 투툭.

영욱은 미처 포크를 소환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맨손으로 수박 크기의 벌들을 쳐내야만 했다. 하지만 대봉 환수들의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는 영욱의 공격을 피해내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봉 환수들도 위협을 느끼고는 영욱을 독침으로 쏘는 걸 잠시 뒤로 미루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십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 준비를 했다. 보통의 벌들이라면 수만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겠지만 대봉 환수들은 덩치가 있으니 불과 백 마리도 한꺼번에 달려들 수가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반드시 죽는다고 봐야만 했다.

각다귀의 침도 막지 못하는 실드를 쳐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나마 도움이 될 것 같은 화구 공격으로는 오히려 화만 돋우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겹겹이 걸친 환수 가죽들을 믿고서 수비 대신 오히려 공격을 가하자는 것이었다.

수십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면 분명히 자기들끼리 치여서 피할 공간이 부족해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경시 동작이라도 나와 주면 공격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는 조금 더 강해진 염동력도 믿기로 했다. 이희승 교수로부터 염동력의 효율적인 사용법을 배우고 왔으면 더 좋아졌겠지만 두 달이나 밀린 공부를 하고 리포트를 제출하느라 그럴 시간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염동력을 사용하는 김홍곤을 노예로 받아들인 덕분에 그의 기운을 일부나마 취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부하들과 은영과 소희도 대봉 환수들의 집중 공격을 받느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지만 당장으로서는 도와줄 여력이 전혀 없으니 아예 신경을 끊어버렸다.

일차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녀석들은 백 마리 미만이지만 이차적으로 대기하고 있는 벌들은 수 만 마리도 넘었다. 그러니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만일 걸치고 있는 환수 가죽들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살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죽은 목숨일 것이다.

부우웅. 부다다다.

대봉 환수들의 날갯짓 소리는 요란하고도 빨랐다. 원래 덩치가 커지면 날개의 크기가 제곱에 비례해서 커져야 하는데 작은 말벌과 똑같은 체형을 가진 대봉 환수들이니 벌새보다도 많은 날갯짓의 횟수로서 빠른 비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니 수박만한 녀석들에게서 커다란 헬기의 프로펠러와 같은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빠르고 민첩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하면 실력을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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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자신의 만능칼을 꺼내들었다. 칼이 접히면 오히려 자신의 손을 다치기 십상이지만 작은 가시가 잔뜩 돋아있는 대봉의 날개를 주먹으로 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커다란 침이 무기가 아니라 날개에 빼곡하게 돋아난 가시가 독침일 가능성이 더 컸다.

"활인심방, 폐목, 명심좌, 잔상, 수족, 잔상, 권, 잔상, 각, 잔상, 무!"

주변이 워낙 시끄러우니 눈치 볼 것도 없이 큰소리로 구결을 외치며 기계 체조의 심화 동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편이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방금 전에 습득한 경시 동작을 펼치려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영욱은 제 3의 눈을 믿고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대봉 환수들의 움직임을 놓치게 되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라 더더욱 졸릴 리 없지만 휼버린의 수면 마법을 선선히 받아들였던 느낌을 기억해 내면서 졸아도 된다고 자신을 세뇌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조건 졸아야만 했다.

'그렇지. 내겐 백족의 독정이 있었지.'

영욱은 백족의 독성분인 세로토닌을 아주 조금씩 방출하기 시작했다. 과량의 세로토닌은 독이지만 소량일 때는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깊은 숙면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은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서 분비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영욱이 독정에서 추가의 세로토닌을 공급하자 점차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인심방의 놀라운 진정 작용도 큰 도움이 되어서 마음을 깊이깊이 가라앉힐 수 있었다.

꾸벅꾸벅. 퍽!

영욱은 드디어 졸기 시작했다. 졸고 깨는 것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경시 동작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속도가 변화무쌍해진 영욱의 잔상권과 잔상수족에 당하는 대봉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두둑. 퍽.

만능칼에 ULM 실드를 씌우기는 했지만 대봉의 날개를 잘라낼 정도의 강한 절삭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잘리는 게 아니라 날개의 뿌리부터 뜯어져 나가거나 칼에 밀려서 튕겨나다가 다른 대봉과 날개를 부딪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십여 마리의 대봉 환수가 갑자기 변해버린 영욱의 공격에 의해서 순식간에 추락하자 다른 대봉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서 포위망을 조금 더 넓혔다. 

툭. 툭. 툭.

영욱은 땅으로 추락한 대봉 환수들을 잔상각으로 밟아서 확실하게 처리했다. 물론 벌들의 피와 체액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으니 서둘러서 포크를 소환했다. 

우우웅!

"활인심방, 폐목, 명심좌, 윈드밀 스핀! 헤드 스핀! 윈드밀 스핀!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자갈 소환!"

포크는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뒤집어진 채로 빙빙 돌면서 수백 개의 자갈을 연신 뿌려댔다.

백오를 상대로는 제법 큰 바위를 발사했지만 대봉 환수들을 상대로는 정신력으로 소환한 자갈로 대체했다. 이른바 새를 잡는 데는 산탄총이 가장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새를 잡는데 바위를 발사하고 벌을 잡는데 산탄총의 원리를 응용하는 격이다.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상대의 크기를 보고서 결정한 것이니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제아무리 동체 시력이 좋고 반응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영욱이 포크의 커다란 기계 삽으로 쏘아대는 자갈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단발이 아니라 분당 60회에 이르렀으니 대봉들은 기함을 했다. 

바위는 무려 분당 360회에 이를 정도로 쏘아댈 수 있었지만 자갈의 소환이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서 영욱으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부우웅.

총알보다 위력적인 자갈 총알을 피하지 못한 대봉 환수들이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추락했다. 하지만 환수는 과연 환수라서 그 정도로 죽을 리 없었다. 

그리고 100% 진짜 자갈이 아니라서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대봉들도 거의 없었다.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고 추락하긴 했지만 다들 머리를 툭툭 털더니 다시 힘차게 날아올랐다.

영욱은 남는 잔상의 손으로 녀석들을 후려치거나 으깨버리려고 했지만 그것을 피해서 달아나는 대봉 환수들이 훨씬 더 많았다. 

"젠장!"

그리고 문제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영욱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봉들이 일제히 부하들과 여자들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가뜩이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부하들과 은영 그리고 진소희는 기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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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소환!"

영욱은 대봉들에게 당하기 직전인 부하 스물일곱 명을 모두 자신의 곁으로 소환했다. 그러자 화가 잔뜩 난 대봉 환수들은 남아 있는 두 여자를 노리고서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부하들이 모두 영욱의 곁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지만 영욱에게 접근하는 것이 마뜩찮은 듯했다.

문제는 두 여자들이었다. 가뜩이나 힘겹게 버티고 있던 소희와 은영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젠장! 21번, 작은 돌을 소환해라. 할 수 있지?"

"악! 스톤 스톰!"

"좋았어. 계속해."

영욱은 삼족백오와 싸울 때 바위를 소환했던 자가 21번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초능력에 의해서 자갈이 산더미처럼 소환되자 영욱은 은영과 진소희를 새까맣게 둘러싸고 있는 대봉 떼를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대봉들이 워낙 두껍게 둘러싸고 있어서 은영과 소희에게는 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혹여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많이 떨어진 다음이니까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고, 또한 기계체조에 능한 두 사람이 충분히 자갈을 피해내거나 쳐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도 백족과 백오 가죽을 여러 겹 포개서 입고 있으니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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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여자는 난데없는 영욱의 자갈 공격에 기함을 했다. 자갈들이 대봉들이 쌓은 벽을 뚫고서 여자들에게도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빠! 대체 뭐하는 짓이야?

-잔소리 말고 피하기나 해.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어떻게 같은 편을 공격해?

-그럼 너희 둘에게만 집중적으로 달려드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럼 공격하지 마?

-아냐. 어떻게든 피해볼 테니까 계속해서 도와줘.

결국은 두 여자를 미끼로 삼은 격이 되어버렸다. 두 여자를 공격하려고 새까맣게 몰려들었던 대봉들은 예상치 않았던 영욱의 자갈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상당수가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그나마 21번이 소환한 자갈이라서 위력이 좀 더 크기는 하겠지만 잠시 후면 정신을 차릴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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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하고 있어? 얼른 공격하지 않고."

"악!"

부하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영욱의 명령에 대답했지만 스물일곱 명의 절반 정도는 벌써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정말로 죽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이 퉁퉁 부어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수십 개의 물집이 생기거나 이미 터져서 진물이 줄줄 흘렀다.

"벌에 쏘인 놈들은 대기!"

"악!"

겨우 열네 명만이 영욱의 명령에 따라 소희와 은영을 둘러싸고 있는 대봉들을 향해서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이나 바람 공격 그리고 얼음 공격이나 전기 공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직접 달려가서 파리를 잡듯이 주먹과 들고 있던 엽총을 휘둘러댔다. 

사실 반대편에 두 여자가 있으니 총을 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쏘더라도 맞아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엽총도 그냥 몽둥이 대용으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눈 먼 공격에 맞아줄 대봉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소환! 도움이 되는 놈이 딱 하나밖에 없네. 21번, 얼른 돌을 소환해."

"악!"

영욱은 오로지 자신의 공격만이 통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다시 자갈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번의 도움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번에는 자신도 자갈을 소환해서 두 배나 많은 양을 날려 보냈다.

'활인심방, 폐목, 명심좌, 윈드밀 스핀! 헤드 스핀! 윈드밀 스핀!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자갈 소환!'

부하들이 옆에 있어서 이제는 큰소리를 지를 수가 없으니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또 외었다. 하지만 위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두 배 이상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던 사파이어 귀걸이 아이템의 빈자리는 매우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봉들은 영욱의 자갈을 피하지는 못했다. 워낙 숫자가 많고 발사 속도 또한 빨랐기 때문이다.

후두둑. 후두둑.

은영과 소희가 대봉들의 공격은 물론이고 자신의 자갈 공격까지도 예상보다 잘 막아내자 영욱은 자갈 산탄총 공격의 속도와 강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붕! 붕! 붕!

결국 견디다 못한 대봉 환수들은 돌 세례를 피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은영과 진소희가 얼른 영욱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왔다.

대봉 환수들은 영욱의 돌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높이 날아오르더니 한 곳으로 똘똘 뭉쳐서 거대한 대봉을 만들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백오들이 삼족백오로 변신하는 것과 비슷했지만 영욱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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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아야 하는데 정말 돌아버리겠네."

"막지. 왜 안 막는데?"

사거리 밖이라 영욱이 노심초사하면서 투덜거리는데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웬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높이 있어서 저기까지는 돌이 날아가지 않아요."

"동영상으로 보니까 전에는 충분히 날아가던데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위력 증폭용 귀걸이 아이템이 없어서 그래요."

"하지만 작은 돌인데도 못 날려?"

"크기가 작은 대신에 숫자가 많으니까 크기의 혜택은 볼 수 없어요."

"그럼 돌의 숫자를 줄이면 되잖아."

"돌의 숫자를 늘려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상황인데 줄여서는 공격하나마나예요."

영욱은 공격 자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욱에게 자꾸 말을 시키던 여자가 무엇인가를 불쑥 내밀었다.

"그럼 얼른 귀걸이 아이템을 끼고 공격해."

"귀걸이가 있어야 끼죠."

"여기 있잖아."

"누, 누구세요?"

"나? 헬렌 컬러야."

"아, 깜짝이야. 정말이세요?"

사실 영욱도 그녀가 공간이동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이 의외로 눈에 빤히 보이는 과장된 행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에 최대한으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헬렌 컬러도 그러한 영욱의 과잉 반응을 아주 좋아했다.

"호호호! 휼버린과는 오랜 친구 사이지.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귀걸이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연락을 접하고는 직접 방문해서 확인해보니 사실이었어. 그래서 기꺼이 바위 소환 마법을 새겨주기로 했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주문은 어떻게 되죠?"

영욱은 세상에서 몇 되지 않는 고위 마법사 헬렌 킬러가 직접 바위 소환 마법을 새겨주었다는 말을 듣고는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서 고마움을 표했다. 어쩌면 샘플 수준을 넘어서는 마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환 주문은 큰 바위 소환, 중간 바위 소환, 작은 바위 소환이라고 각각 외치면 되고, 기존의 증폭 기능은 그대로 적용될 거야."

"그런데 증폭 주문은 뭐죠?"

"나도 몰라."

"예? 만든 분이 어떻게 몰라요?"

"만든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잊어버렸어."

"알아낼 방법은 없나요?"

"그러는 것보다는 새로 만드는 게 훨씬 더 빠를 거야."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럼 상황이 급해서 공격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보기에도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마법사가 자신이 만든 아이템의 증폭 주문을 잊을 리 없다. 그것은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망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영욱도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지만 가르쳐주기를 거부하는 헬렌 컬러에게 재차 강요할 수는 없으니 포기해야만 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한가한 상황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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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밀 스핀! 중간 바위 소환!"

영욱은 서둘러서 사파이어 귀걸이 아이템을 귀에 걸고는 아이템에 탑재된 마법으로 중간 크기의 바위를 소환했다. 그런데 그게 중간 크기가 아니라 지름이 3미터는 족히 되는 거대한 바위였다. 그래서 얼른 치워버리고 다시 작은 바위를 소환하기로 했다.

"윈드밀 스핀! 작은 바위 소환!"

이번에는 지름 1.5미터 정도의 적당한 바위 몇 개가 기계 삽 안으로 소환되었다. 총알이 준비되자 영욱은 빠른 회전력을 이용해서 힘차게 발사했다.

슝! 후두두둑.

마음속으로 

'커져라 세져라!'

와 구결들을 열심히 외친 보람이 있어서 바위는 두 배 이상 날아올랐다. 사정거리 밖이라 마음 편하게 합체를 진행하고 있던 대봉 환수 수백 마리가 작은 바위에 부딪쳐서 추락하고 말았다. 

슝! 후두두둑.

영욱의 작은 바위 공격이 거세게 이어지자 추락하는 대봉들의 숫자도 순식간에 수천 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영욱이 우려하던 합체는 결국 완성되고 말았다. 수박 크기의 대봉 수백만 마리가 모여서 거대한 빌딩 크기에 달하는 대왕대봉이 만들어졌다.

슝! 빠지직.

진정한 합체가 이루어지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영욱이 발사한 작은 바위가 대왕대봉에게 부딪치더니 맥없이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삼족백오의 경우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약한 공격으로 해치우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진위를 차치하고라도 삼족백오 환수보다는 대왕대봉 환수가 훨씬 더 강한 듯했다. 그러니 다른 환수사냥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백오의 가죽을 걸친 영욱과 영욱의 부하들부터 공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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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이고 마땅한 공격 방법이 사라진 영욱은 다급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헬렌 컬러에게 도움을 청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미안하지만 대왕대봉을 잡을 수 있는 사냥 아이템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어."

"설마 대봉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겠죠?"

"대봉이야 숱하게 보았지. 하지만 대왕대봉으로 합체하는 것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니 대왕대봉을 사냥하는 아이템이 있을 리 없지."

"그냥 다른 마법으로 도와주시면 안 돼요?"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보호막이 있는데 무슨 마법이 듣겠어?"

고위 마법사라는 헬렌 킬러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다만 영욱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확인하지 못한 보호막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보호막이라고요? 그게 뭐죠?"

"실드가 수비적인 개념이라면 보호막은 적극적으로 적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거나 파괴해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를 테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지."

"헐! 그렇다면 보호막에 닿으면 죽겠군요."

"맞아.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셈이지."

강력한 환수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영욱은 이제야 비로소 진짜 환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합체 과정이 유난히 길었던 이유가 바로 무적의 보호막을 만들어내기 위함인 듯했다. 

물론 자신도 ULM을 섞은 실드를 만들어서 칼이나 기계 삽의 절삭력을 높이려고 했던 적이 있으니 전혀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저 보호막을 뚫을 마법은 없나요?"

"없어. 적어도 내게는 없어."

"그렇다면 달아나실 거죠?"

"당연하지."

"그렇다면 저도 달아나야겠군요."

영욱 일행으로서도 방법이 전혀 없으니 또 다시 산개해서 달아나야만 했다. 복불복으로 운이 나쁜 자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또 발생하고 말았다.

"날개 달린 대왕대봉을 상대로 어떻게 달아나?"

"크긴 하지만 그리 빠를 것 같지는 않는데요."

"보호막에 닿은 공기마저도 소멸시키는데 과연 느릴까?"

"공기 저항이 없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군요. 하지만 저는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들 도망쳐!"

"악!"

영욱의 명령에 서른 명에 가까운 노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무적의 보호막

하지만 영욱의 예상대로 대왕대봉은 영욱의 뒤를 ㅤㅉㅗㅈ기 시작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영욱은 사력을 다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쫓는 이유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약해빠진 환수사냥꾼에게서 각종 환수의 기운들이 느껴지니 보약이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수천 마리의 대봉들을 죽이고 그 체액과 피를 빨아먹은 원수니까 영욱의 뒤를 따르는 게 당연했다.

대왕대봉은 헬렌 컬러의 지적대로 공기 저항을 무시하고 빠르게 추격을 시작했다. 저항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아예 소멸시킴으로써 저항 자체를 없앤다는 점이 영욱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공기를 소멸시키는 작업에도 에너지는 소모될 테니까.

영욱은 빠른 도주를 위해서 이곳 백우산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올라왔던 곳으로 되돌아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무적에 가까운 보호막을 뚫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위 마법사 헬렌 컬러도 뚫지 못한다는 보호막을 뚜렷한 공격 초식도 없는 영욱이 뚫을 궁리를 한다는 게 사실상 난센스nonsense인 셈이다.

말이 보호막이지 공기나 바위마저도 소멸시키는 걸 보면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기사들의 전유물인 오러를 연상케 했다. 그러니까 오러로 만들어진 초강력 실드인 셈이다.

"젠장! 언제 저기까지 쫓아온 거야?"

영욱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대왕대봉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의 이동 속도가 비슷한 점을 고려하자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대왕대봉의 머리가 꽤나 영리하다는 점이 상황을 이렇게 절망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영욱이 내리막을 이용해서 최고 속도로 달아나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대왕대봉은 그야말로 최단거리를 이동하며 추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대왕대봉의 치명적인 보호막이 채 10미터도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녀석은 보호막으로 부딪쳐서 영욱과 포크를 통째로 소멸시킬 듯이 달려들었다.

"좋아. 나도 꽤 강한 금속이 있으니까 한 번 부딪쳐보자. 잔상권!"

갑자기 오기가 생긴 영욱이 기계 삽에 ULM 실드를 잔뜩 두르고서 힘차게 부딪쳐 갔다. 물론 여전히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나는 상태로 기계 삽만 살짝 갖다 댄 것에 불과했다.

치지직.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기계 삽의 끝 부분이 소멸되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림없다. 잔상권!"

영욱은 다른 잔상의 주먹으로 맞서나갔다. 놀랍게도 새로운 잔상은 끝이 멀쩡한 새 것이었다. 

치지직.

영욱은 잔상각을 이용해서 계속 도망치면서도 잔상권을 이용해서 더 이상 대왕대봉이 붙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자신의 몸은 잔상권과는 달라서 결코 멀쩡할 수만은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쿵! 쾅! 쿵! 쾅!

산비탈을 한달음에 내려간 영욱은 이제 44번 국도를 따라서 칠정리가 있는 남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대왕대봉으로부터 추격을 받고 있는 입장이니까 최대한으로 좋은 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공사의 항의를 받게 되거나 남의 눈에 띄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니는 차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영욱은 제 코가 석 자라서 차가 있더라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났을 것이다. 사실 이런 괴물이 나타났으니 군부대나 경찰이 출동해서 처리하는 게 상식일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제법 한참을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한 대도 나타나지 않자 어쩌면 2QB 세상과 현실 세계가 겹쳐진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지역 바깥의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 어? 어?"

그런데 451번 국도 방향으로 좌회전하려던 영욱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리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달리던 속도가 좌회전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빨랐던 것이다.

쿵. 우지직.

갈 길이 바쁜 영욱은 포크와 함께 얼음이 꽁꽁 얼어있는 홍천강으로 빠지고 말았다. 영욱은 기계 삽으로 두꺼운 얼음을 깨고서 물 밑으로 숨으려 했다. 

이제는 두 개에 이르는 산소 발생 나노캡슐이 있고, 생체 전기의 전류량도 많아져서 한동안 숨을 참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수심이 얕은 곳에 빠져서인지 마치 세숫대야에서 목욕을 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원래 홍천강의 수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얕아도 너무 얕았다.

"젠장!"

숨을 곳이 사라진 영욱은 얼른 윈드밀 스핀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바닥의 자갈과 물을 기계 삽으로 퍼서 대왕대봉에게로 퍼붓기 시작했다. 가속을 붙여서 달아날 때에도 상대적으로는 속도가 늦었으니 넘어졌다가 다시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도주를 포기하고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 것이었다.

치지직.

대량의 물과 자갈들이 대왕대봉의 보호막에 닿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뿌연 수증기를 발생시켰다. 대왕대봉의 보호막에 닿는 자갈과 물들이 기괴한 음향을 내면서 소멸되었지만 소멸시키는 속도에도 한계가 있는지 일부는 수증기가 되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갸갸갸.

겨우 물과 자갈로 강력한 대왕대봉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발생되는 짙은 수증기로 인해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후두두둑.

조그만 희망이라도 보이자 영욱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물과 자갈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영욱은 질긴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기 위해서 발악에 가까운 윈드밀 스핀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자신의 목숨이 이제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서 쉽게 포기할 수도 없지만 합체한 대왕대봉이 영원히 합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합체한 상태로 나타났을 테니까.

영욱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윈드밀 스핀을 이용한 물과 자갈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강물이니까 물은 퍼내도 변함이 없지만 자갈은 금방 부족해져서 조금씩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대왕대봉은 물과 자갈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보호막에 닿고도 소멸되지 않고 뿌연 수증기를 일으키는 현상에 살짝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영욱에게로 다가서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가시적인 효과만 그럴 듯하게 보일 뿐이지 자신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한 듯했다. 만일 깨달았다면 그냥 밀고 들어와서 영욱과 포크를 동시에 소멸시켜 버렸을 테니까.

으갸갸갸.

치지직.

영욱은 윈드밀 스핀의 회전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회전 속도의 증가는 곧 물과 자갈 대포의 발사 속도의 증가를 의미했다. 

경시 동작으로 윈드밀 스핀 동작을 실시할 수 있으면 좀 더 위력적이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녀석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느라고 무리를 했더니 오히려 과도한 정신력의 소모로 인해서 현기증이 몰려들었다.

영욱은 어지러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했지만 결코 윈드밀 스핀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순간이 바로 소멸로 이어질 테니까.

그런데 지독한 현기증은 두 가지의 여파를 가져왔다. 하나는 바로 경시 동작이 가능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뒤로 물러나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욱은 홍천강의 바닥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서 더 많은 물과 자갈 대포를 대왕대봉에게 퍼부었다.

꼬르륵.

영욱은 홍천강물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고서야 비로소 그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뿌연 수증기에 시야를 빼앗긴 대왕대봉은 아직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영욱의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포크의 땅 파는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대왕대봉의 접근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다. 결국 영욱은 대왕대봉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잔상무!"

그러나 영욱은 포기하지 않고 충돌 직전 큰 소리를 지르며 잔상무를 시전했다. 다행히 경시 동작이 성공해서 포크는 잔상을 남기고 대왕대봉의 뒤쪽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공격을 재개했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헤드 스핀!"

치지지직.

아직도 남아있는 잔상에게로 접근하고 있는 대왕대봉의 등 뒤에 상당한 량의 물과 자갈 세례가 쏟아졌다. 게다가 우연의 일치로 대왕대봉은 영욱이 파놓은 깊은 구덩이를 향해서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20층 빌딩 크기의 대왕대봉이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얕지만 발을 담근 정도로도 수증기의 발생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대형 산불이 난 곳에서 발생하는 연기의 양을 가볍게 초과했다.

닿는 족족 모든 물질을 소멸시키는 보호막은 공기 중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했지만 밀도가 높은 물속에서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엄청난 양의 수증기 때문에 대왕대봉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시 동작에 의한 어마어마한 량의 물과 자갈이 쏟아지자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윈드밀 스핀이 대공포라면 헤드 스핀은 거의 직사포에 가까웠다. 그리고 360도로 발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경시 동작은 한 방향으로만 집중해서 발사하는 것도 가능했다.

"좋았어!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헤드 스핀!"

영욱은 대왕대봉의 보호막을 뚫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 보이자 지독한 현기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소모했던 기운의 양으로 보자면 벌써 쓰러졌어야 정상이겠지만 환수 가죽들과 가죽들 사이에 저장해 놓은 기운들 덕분에 여태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하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

"젠장!"

더 이상 짜낼 기운이 없어서 막 포기하려는 순간 응원군들이 도착했다. 전에는 달아나기에만 급급했던 녀석들이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박상태의 인솔 하에 한 명도 빠짐없이 영욱을 도우러 왔던 것이다. 

"대장님! 저희들이 왔습니다."

"오! 너희들이 왔구나. 김호진은?"

"저도 왔습니다. 대장님."

"얼른 기운을 전달해 줘. 얼른!"

"예. 갑니다."

무엇보다 트랜스파워 초능력을 가진 김호진과 그를 포함한 27명에 달하는 연료통들이 도착했으니 영욱은 한 동안 더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오빠! 우리들도 왔어."

"잘 왔다. 호진아! 은영과 소희의 기운부터 먼저 부탁해."

일이 잘 풀리려니까 경사가 거듭되었다. 이번에는 두 여자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서 도우러 왔던 것이다.

"예. 선배님."

"마음껏 가져가. 오빠, 정말 멋있어."

"영욱 씨! 정말 멋있어요."

"내가 좀 멋있기는 하지.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헤드 스핀!"

영욱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자신이 만든 구결을 큰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초식마다 다른 조합이 있는 것이니 전부 다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영욱이 애지중지하던 구결이 만천하에 누설된 셈이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노예들이고 은영과 소희는 진짜 구결을 가지고 있으니 누설된 것도 아닌 셈이지만 그 파급 효과는 아주 컸다. 노예들은 감동해서 영욱이 외쳤던 구결을 되뇌었고, 은영과 소희는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소희의 표정은 울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뭘 어떻게 알아?

-그 구결 말이에요.

-설마 진짜 구결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진짜 구결일 리가 없죠. 하지만 제가 예전에 그런 식으로 조합해 본 적이 있었던 구결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죠?

-나도 내가 조합한 것이야. 진짜 구결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아무튼 존경스러워요. 

소희가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걸어온 것 자체가 남들이 들어서는 곤란한 이야기라는 소리다. 소희는 알쏭달쏭한 태도와 애매한 미소로 영욱이 입에서 뱉은 구결에 대해서 확실하게 정리하려고 들었다. 

영욱도 이러한 두 여자의 반응과 맞물려서 자신이 만든 구결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진짜에 상당히 근접한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왜? 허접한 구결로 대왕대봉과 맞서고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는 거야?

-아뇨. 영욱 씨가 발휘하는 기계 체조의 위력이 존경스러워요. 위력으로만 보자면 진짜 구결의 70%는 족히 되는 것 같아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 법이야. 아무튼 기운을 나눠줘서 고마워. 네가 기계체조로 모은 기운은 정말로 큰 도움이 돼.

-잘 하면 저 녀석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꼭 이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을 테니까.

-죽을 가능성이 99%인데도 이곳으로 달려오는 부하들을 보고서 정말 놀랐어요.

영욱이 70%에 만족하는 표정을 보이자 소희는 얼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최소한 80% 정도는 되는 듯했다. 그리고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도 자신이 재미삼아 알려주었던 것을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그 정도의 힌트로 이렇게까지 비슷한 구결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내 부하들은 모두 이길 가능성이 99%라고 생각했을 거야.

-낙천적인 성격이 부하들에게도 이어졌나 봐요.

-내가 아니라 반백신감의 말을 믿는 거겠지. 내가 볼 때에는 겨우 50%의 진실이지만.

-그 미래를 보는 거울을 말하는 것인가요? 저도 보았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뿐이었는데요.

-대체 뭘 보았기에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영욱은 대왕대봉에 대한 공격을 계속 이어나가면서도 소희의 이야기에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수증기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대왕대봉에게 물과 자갈을 퍼붓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있었다.

-영욱 씨에게 머리를 조아린 부하들의 수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어요. 얼핏 헤아려 보아도 수백 명은 족히 될 것 같았어요.

-그래? 내가 보기에는 그럭저럭 믿을 만하던데 좋은 일이 생기려나?

-그렇게 되길 빌게요.

-그게 사실이래야 당장 이 녀석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그냥 믿어. 사실 울 엄마도 내가 커서 왕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될 거라고 하셨어. 지금도 가끔 술에 취할 때마다 하시는 말이야. 하하!

이제 영욱은 소희와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가로막는 것은 뭐든지 소멸시켜 버리던 대왕대봉의 보호막에는 의외의 약점이 존재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고 공략에 나선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태! 이 육포를 나눠 주도록 해. 그리고 천천히 활인심방과 기계체조를 수련하도록 해.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헤드 스핀!"

"예. 선배님."

영욱은 이 전투가 한두 시간 내에 끝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김호진의 트랜스파워 초능력이 아직까지는 두 명의 기운을 동시에 전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서 최대 출력은 별로지만 보유한 기운의 여유는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왕대봉의 강력한 보호막은 홍천강의 물들이 다 말라붙어야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니 미리 먹어두고 기계체조를 통해서 소화, 흡수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영욱 역시 잔상의 숫자를 하나라도 더 늘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경시 동작에 의한 잔상의 수가 세 개와 네 개 사이를 오가고 있는데 그 정도로는 대왕대봉의 보호막을 뚫는데 많이 부족했다.

영욱은 은영의 경시 동작을 떠올렸다. 춤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동작에는 확실히 치명적인 무엇인가가 숨어 있었다. 영욱은 그게 진정한 기계 체조로 가는 열쇠가 될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은영에게서 발견된,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수 있는 매력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執着일지도 몰랐다. 

집착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린다는 것이지만 은영의 인생 자체가 집착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딸 부잣집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성격상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악착같이 노력했을 게 분명했다. 언니들보다 출발이 느리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 두 배 이상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함량 미달의 구결도 어깨 너머로 훔쳐 배웠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경시 동작까지도 훔쳐 배워서 어설프게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 부질없는 집착이지만 은영은 그 집착을 통해서 경시 동작이라는 아름다운 기계 체조의 꽃을 피워냈다. 영욱은 그러한 은영의 춤사위를 보면서 경시 동작에 입문했다. 어찌 보자면 은영이 영욱의 두 번째 사부인 셈이다.

그녀는 듬직한 신랑감을 구하려는 데에도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러니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예전의 영욱으로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욱이 탈태환골에 성공하자 그녀의 집착은 다시 살아났다.

영욱은 속물근성이나 집착마저도 뭔가를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영욱은 집착도 없이 살았던 자신이야말로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살아버린 인생이나 앞으로 살아갈 인생 자체를 통째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약간의 집착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자신에게 기꺼이 목숨을 맡긴 노예들을 떠올리면서 적어도 이 싸움만큼은 무슨 수를 쓰서라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게 비록 집착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생겨날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십 명의 목숨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책임감이었다.

영욱은 그 동안의 무책임함을 탓하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자 감긴 눈꺼풀 사이로 몇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영욱은 다시 눈을 떴다.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니 마침내 기계 삽이 다섯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헤드 스핀!"

영욱의 물과 자갈 대포가 더욱더 강력하게 불을 뿜기 시작했다. 소멸 한계 용량을 훨씬 넘어서는 물과 자갈들이 보호막을 마구 두들겨대자 급기야 물과 자갈의 일부가 대왕대봉에게 도달하기 시작했다. 

겨우 그 정도로 대왕대봉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도달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는 상황이었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원드밀 스핀, 중간 바위 소환!"

영욱은 우렁차게 구결을 외치며 이제는 지름이 3미터는 족히 되는 거대한 바위를 소환해서 날리기 시작했다.

쿵. 쿵. 우지직.

드디어 영욱의 바위 대포에 의해서 보호막의 일부가 뚫리고, 20층 빌딩 크기의 대왕대봉이 조금씩이나마 부서지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그 뒤로도 대왕대봉은 한참이나 더 버텼지만 불리해진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결국 합체가 깨어지면서 다시 수백 만 마리의 대봉 환수들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를 기다리고 있던 백오기사단의 공격이 동시에 쏟아졌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파이어볼!"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스트롱 윈드!"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광역 바인딩!"

영욱이 얼떨결에 가르쳐준 구결을 다들 응용해서 자신들의 초능력을 발휘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위력이 평소보다 상당히 강해졌다고 느끼는 듯했다. 전투는 또 다시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욱은 전투 대신 대봉 사체를 수거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냥 두면 빠르게 흐르는 홍천강물에 다 떠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피와 기운을 흡수하거나 심지어 식용으로도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영욱으로서는 전리품의 수거인 셈이다.

주문의 효과인지 플라시보의 효과인지 그것도 아니면 대봉들의 합체로 인한 후유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오기사단은 영욱이 돕지 않아도 대봉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영욱도 손을 놓고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윈드밀 스핀!"

영욱은 대봉 사체들이 흘러가는 하류 방향에 자리를 잡고 사체 수거를 하면서도 쉬지 않고 자갈 대포를 쏘아댔다. 대봉 사체는 강가로 던지고 강바닥을 깊숙이 파서 물보다는 자갈을 위주로 쏘아댔다.

@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헬렌 컬러가 나타났다. 어디에선가 편안하게 구경하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실력이군."

"오셨습니까?"

"닿는 것은 뭐든지 소멸시키는 보호막을 겨우 물과 자갈로써 무력화시키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군."

"저 녀석도 모든 것을 다 소멸시키는 전가의 보도가 오히려 아킬레스건이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컬러 님께서 새겨준 바위 소환 마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영욱은 잠시 거들먹거리던 것을 멈추고는 컬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사실 공치사를 들어야 할 사람은 컬러였다. 대왕대봉의 파훼법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녀가 사파이이 귀걸이 아이템에다 바위 소환 마법을 장착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무찌를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갈 소환 모드는 입력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작은 바위도 너무 커서 '더 작은 바위'라고 외쳤더니 더 작은 바위가 소환되기에 '한참 더 작은 바위'라고 외쳤더니 자갈이 소환되더군요. 하하! 물론 그 뒤로는 자갈 소환이라고 해도 소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력하지 않으셨다고요?"

"호호호! 한참 더 작은 바위가 자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귀찮아서 그냥 작은 바위, 중간 바위, 큰 바위, 이 세 가지만 입력했다네."

"그렇다면 아이템에 의한 마법 소환이 아니라 제 소환 초능력에 의한 결과라는 겁니까?"

"그런 것 같네만 마나의 유동이 일부 느껴지는 걸 보니 반쯤은 마법과 뒤섞인 것처럼 보여. 혹시 마법을 배운 적이 있었나?"

고위 마법사 헬렌 컬러의 관심은 대왕대봉 환수를 무찌른 것보다 자신이 장착해주지도 않은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말로는 전혀 대책이 없다고 했지만 그녀의 수준에서 보자면 그런 보호막 정도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듯했다.

"아뇨. 정말 배우고 싶었지만 아직 마법서조차도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정말 신기한 일이군. 아무튼 간에 저 대봉 환수들의 사체를 내게 넘겨줄 수 있겠나?"

"전부 다 말입니까?"

"왜? 자네도 쓸 곳이 있나?"

헬렌 컬러의 대답을 보아하니 전량을 원했던 듯했다. 하지만 영욱으로서는 그럴 의향이 별로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은 전리품이니까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버리지 않으면 먹기라도 할 건가?"

"예."

"벌을 먹다니 한국인들은 정말 비위도 좋군. 그것도 대봉 환수를 말이야."

"한 번만 먹어보시면 다시는 그런 말이 나오는 않을 겁니다. 얼마나 달콤한지 아세요?"

영욱이 축구공 크기의 대봉 사체를 하나 집어서 맛있게 빨아먹자 그 모습을 본 헬렌 컬러는 기함을 했다.

"난 비위가 약한 편이라서 사양하겠네."

"아무튼 절반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나도 그 정도면 충분하네. 대가는 골드로 줄까? 아니면 달러가 필요해?"

"신세 진 것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가져가십시오."

영욱은 손사래를 치면서 대가를 사양했다. 어떤 게 이익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였다.

"내가 자네의 마법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해 주었다고 그 보답 차원인가?"

"예. 그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당연하죠."

"그렇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네."

헬렌 컬러는 절반에 해당하는 대봉 사체를 자신의 마법 주머니로 옮겨 담았다. 영욱은 절반의 대봉을 공짜로 주었지만 별로 아깝지 않았다. 사실은 남은 절반도 어떻게 처리할 지가 고민스럽기 때문이다.

토룡피 사이의 공간에 넣는 것도 한계가 있고 부하들은 상인이 아니라서 마법 주머니를 가진 자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몽땅 먹어치울 수도 없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

"대장님. 대봉 사체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짊어지고라도 가져가야지."

"다 수납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들 마법 주머니를 가지고 있으니 짊어질 일까지는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얼른 수납해 두도록 해."

"예. 선배님."

하지만 영욱의 고민을 알아차린 상태가 일거에 해결해 버렸다. 영욱은 자신이 거느린 노예들의 수준이 생각보다는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전투도 기대 이상 잘 치러주었으니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진짜 백오기사단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짝퉁 마나심법

고위 마법사 헬렌 컬러가 떠나고 나자 영욱은 자신의 귀에 끼고 있던 사파이어 귀걸이 아이템을 빼냈다. 그리고 몸으로 직접 기계 체조를 실시하면서 자갈의 효과적인 소환이 가능한지를 체크해 보았다.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윈드밀 스핀, 한참 작은 바위 소환!"

놀랍게도 소환되는 자갈의 숫자도 많아지고 진짜 자갈과 싱크로 비율이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것은 소환 초능력의 숙달이라기보다는 마나를 이용하는 것이 마법 아이템의 도움 없이도 가능해졌다는 소리였다. 물론 아이템을 끼고 있을 때와는 상당한 효율의 차이가 있지만.

"활인심방, 고치, 삼십육, 윈드밀 스핀, 작은 바위 소환!"

확인 차원에서 아이템에서 제공하던 소환 마법을 시도해 보았더니 역시 어느 정도의 수준이지만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소환 초능력에 비하자면 서너 배의 효율이 있고, 정신력 소모율도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맨몸으로 그것을 던질 수는 없었다.

'내 몸 속에 있는 마나와 비슷한 기운이 증식해서 유사 마나를 만들어 낸다는 소린가? 아니면 기계체조와 활인심방이 유사 마나를 만들어 낸다는 소린가? 그것도 아니라면 헤드 스핀이나 원드밀 스핀의 회전이 유사 마나를 만들어 낸다는 소린가?'

정상적인 마법사들처럼 마나홀이 존재하지도 않고 각종 기운과 정신력을 마나로 전환시킬 수 있는 마나 심법이 존재하지도 않으니 정상적인 마나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소량이지만 꾸준히 생겨나고 있는 걸로 보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영욱은 다른 것도 관련이 있을 수 있겠지만 특히 회전 속도가 유사 마나의 생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스핀 속도를 달리함으로써 금방 가능했다.

'이럴 수가! 빠른 회전이 내가 흡수했던 환수의 기운들을 유사 마나로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마법사의 징표라는 마나홀은 환수의 기운이나 씨 마나를 빠르게 회전시켜서 마나를 생산하거나 증폭시키고 생산된 마나를 보관하는 장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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