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멋진 왕자님이 다 되었어요."
"돈 없는 왕자도 멋있어? 그건 아니잖아."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지자 이를 경계한 영욱이 먼저 돈 이야기를 꺼냈다.
"돈은 없지만 골드는 많잖아요."
"미안하지만 그 골드는 부동산을 사는데 죄다 써버릴 거거든."
"빌딩을 사두는 것도 좋죠. 이왕이면 강남 소재의 빌딩이 더 좋겠죠?"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이왕이면 그게 좋겠다는 말이죠. 그런데 뭘 사기에 그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거죠?"
"산과 임야지. 아주 쓸모없는 것들로만 골라서."
"사기는 해도 팔기는 아주 어렵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소희는 영욱이 썩은 미소를 짓는 이유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사냥의 교두보로서도 활용하겠지만 자신과 같은 파리 떼를 ㅤㅉㅗㅈ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맞아. 아마 은행에서 근저당으로도 잡아주지 않을 걸?"
"뭔가 착각하시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제 영욱 씨의 돈에는 관심 없어요."
"그럼 뭐가 요즘의 관심사야?"
"강해지는 거요. 잘 아시잖아요."
"나를 손아귀에 넣으면 돈도 함께 거머쥐는 것이라는 생각인가?"
"그건 부정하지 않겠어요. 다만 예전처럼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어요."
"좋은 생각이야.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백우산이 시작되는 초입까지는 불과 2km도 되지 않아서 둘의 이야기는 곧 중단되었다. 일단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영욱은 잡담을 멈추고 제 3의 눈을 동원해서 주위를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는 원수를 진 환수들은 없지만 그 난리를 피웠으니 혹시라도 현실 세계에서 힘이 약해진 틈을 노리는 녀석들이 있을 지도 몰랐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환수들의 출현을 알아차리고 접근하는 드림헌터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소지하고 있는 골드가 많으니 주의하지 않으면 드림헌터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진 게 없을 때에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던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400억에 가까운 현찰을 들고 다니는 셈인데 불안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화리 역시 바꿔주겠다는 말만 하고 뒤로 미루는 것을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남의 돈을 맡아줄 이유가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2QB 세상에 비하면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힘들고 포크를 소환할 수도 없어서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러니 가능하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사용이 가능한 제 3의 눈을 최대한으로 가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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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욱의 희망과는 달리 백우산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한겨울의 산에 사람이 많다는 소리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근처에 용소계곡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혹시라도 자신의 골드를 노리는 자들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영욱에 비해서 화리는 별로 대단치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용소계곡은 여기서 8km는 떨어져 있어. 저 개울을 따라 가면 언젠가는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트레킹 코스로는 좀 험하지 않나?"
"그렇다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이겠지. 제법 유명한 산이라서 등산객도 제법 많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등산객들의 대부분이 드림헌터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어제 있었던 토룡의 출현을 우리만 알아차린 것은 아닐 테니까."
화리가 계속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영욱은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게 된다면 네가 말했던 가격보다는 훨씬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흥! 다른 드림헌터들이 나처럼 신사적으로 돈을 지불할 거라고 생각해?"
"숙녀가 신사 행세라니 좀 그렇군. 아무튼 그냥 강탈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인가?"
"당연하지."
"힘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2QB 세상을 지배하는 룰이 약육강식이다.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드림헌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룰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영욱도 많이 강해졌으니 쉽게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요즘 네 힘이 세진 줄은 알고 있지만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퍼모어 급은 대충 다 모인 것 같은데 거기에 대고 힘자랑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아? 어쩌면 주니어 급의 고수가 왔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구나. 말해! 그게 뭐야?"
"환수가 출현한 지역에서는 다른 환수들의 출현 가능성이 아주 높아. 그것은 2QB 세계와의 중첩이 순간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법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지."
영욱이 언성을 높이고 나서야 화리의 입에서 이 백우산에 드림헌터들이 우글거리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두 세계를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채로 일정 기간 지속된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의 환수는 그렇게 할 수 있잖아."
"달라."
"뭐가 다르다는 거야?"
"일단 열린 곳이니 다시 출구를 열기 위한 힘 소모가 훨씬 적어져서 훨씬 더 강력한 환수가 나타날 수도 있지. 경우에 따라서는 떼를 지어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러니 그러한 환수들을 사냥하려는 드림헌터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환수들이 드림헌터들에 비해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지역 자체가 한정되어 있으니 인근에서 몰려든 드림헌터들의 인구 밀도가 훨씬 더 높아서 유리한 사냥인 셈이다.
"근처를 지나가던 환수 녀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세계로 소환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맞아. 앞으로 세 달 동안 강원도 일대의 산에서는 피의 페스티벌이 펼쳐질 거야."
"왜 진즉 말하지 않았어?"
"너한테서 물건을 구입할 생각인데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도망가게 만들 수는 없잖아. 사실 지금도 괜히 알려준 것 같아."
"지금도 도망갈 생각은 전혀 없어. 다만 입산 타이밍을 조정할 수는 있었을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백우산에 진입하기 전에 기계 체조 수련을 좀 더 했어야 했다는 의미에서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골드를 미리 처분했어야 했다는 소리기도 했다.
"미리 충고해 두겠는데 무조건 싸우지 말고 해결하는 게 유일한 살 길이야. 다들 너만 집중적으로 노릴 테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참조하도록 하지. 그런데 왜 나만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거야?"
"그야 네가 걸치고 있는 토룡피 때문이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가장 안쪽에 토룡피 두 장을 입고 그 바깥에 백족 껍질 열 장과 호그질라 가죽 그리고 몽구스 가죽까지 차례로 겹쳐 입었으니 토룡피를 알아챌 리가 없다. 총 열네 장이나 되지만 그래봐야 입은 것 같지도 않은 얇은 두께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소문을 퍼뜨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것도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시골 오일장이라도 선 것 같아서 좀 혼란스러워."
"비밀을 노출시켜서 내가 득 보는 게 뭔데?"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나와 같은 상인들은 물론이고 너와 같은 사냥 팀들이 냄새를 맡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뿐이야. 다만 예민한 후각과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토룡피의 소유에 대해서 들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라는 소리였어. 특히 토룡피 두 장은 너와 교감이 이루어진 가죽이 아니라서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니까 하는 말이야."
화리는 의심의 화살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그게 아니라는 의미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설명은 길었지만 어서 자신에게 팔아넘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대룡피 정도는 되어야 교감이 가능하니까. 그러니 토룡피가 교감했을 리는 없잖아."
"왜 그런 생각을 하지? 꼭 말이 통해야 교감이 가능한 것은 아닌데 말이야."
"그런 억지가 나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퍼모어들에게는 쉽지 않을 거야."
"너는 꽃이나 나무들과 교감하는 게 말이 통해서라고 생각하는 거야?"
영욱은 화리가 해주는 경고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더 관심의 대상이었다. 단 한 번도 교감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테지만.
"말은 아주 멋진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교감이란 일방적인 감정의 접촉이 아니니까."
"누가 일방적이라고 했어?"
"관두자. 아무튼 조심해."
빠르게 접근하는 자들이 있어서 둘의 대화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영욱 역시 새로운 경험에 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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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접근한 자들은 중장년으로 구성된 열 명의 사냥꾼들이었다. 모두가 엽총으로 무장한 채로 영욱 일행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런! 풋풋한 어린이들로 구성된 사냥꾼들이군."
"게다가 아리따운 여인네들까지도 있군요. 아무래도 우리가 봉 잡은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상인들이 붙어버린 거야?"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무례한 사냥꾼들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 말없이 지나치려고 하자 사냥꾼 일행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재빨리 영욱의 앞을 막아섰다. 영욱이 일행의 리더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듯했다.
"이봐! 어른이 말하고 있는데 경청하지 않고 어딜 가려는 거야?"
"개소리를 경청하라고?"
"이 새끼 봐라.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었군. 내가 네 부모들을 대신해서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
우두머리 사냥꾼은 영욱의 도발에 참지 않고 다짜고짜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러한 상황을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퍽. 퍽. 어구구.
영욱은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냥 맞아주는 것이다. 겹쳐 입은 환수 가죽의 방어력을 믿기도 했지만 맷집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물론 도발하는 상대의 의도대로 해주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더 컸다.
"주먹맛이 어떠냐? 이 어린놈아."
"지나가는 사람을 왜 때려요?"
"버릇이 없어서 고쳐주려고 그런다. 이제야 어른의 말이 귀에 들리는가 보구나."
"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지?"
"요 새끼 좀 봐라. 일단 좀 더 맞자."
퍽. 퍽. 어구구.
영욱을 패는 우두머리 드림헌터는 근력 강화 계열의 초능력을 사용하는 자인 듯했다. 여러 장의 환수 가죽을 걸친 영욱으로서도 엄청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연신 해댔다.
사실 환수 가죽들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영욱이 그렇게 원했고, 기운의 소모를 막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도 모르니 현재로서는 최대한으로 기운을 아껴야만 했다.
퍽. 퍽. 아고고.
영욱이 무방비 상태로 얻어터지자 박상태와 김호진 등도 대놓고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열 장의 백족 껍질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듣기에 애처로울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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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매타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영욱과 일행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다른 드림헌터들이 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안신조! 너는 왜 지나가는 아이들을 패고 그래?"
"배신혁!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꺼져!"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는데 왜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가 먼저 찜했으니까 다들 꺼져!"
"찜은 유화리가 가장 먼저 한 것 같은데, 안 그래?"
"저 년이야 이미 챙길 것을 다 챙긴 다음이니까 지금은 내 차례야."
일이 아주 요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욱이 화리와 시선을 맞추려고 했지만 화리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영욱과 눈길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영욱은 아직도 이게 무슨 요지경속인지를 몰라서 멍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좋아. 딱 10분의 시간을 주기로 하지."
"10분이면 거래가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지. 좋아."
퍽. 퍽. 아고고.
안신조는 영욱을 패는 강도를 두 배 이상으로 올렸다. 10분 안에 영욱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의도인 듯였다. 영욱은 곡소리를 내면서도 항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매타작을 즐기기 시작했다.
몽구스 환수는 압도적인 빠르기와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사리 무너진 것이 바로 맷집의 부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박상태의 경우 역시 맷집의 부재로 인해 그리 쉽게 항복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맷집을 키워둘 필요가 있었다. 맷집이란 인내력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충격을 받아낼 근육은 물론이고 단단한 뼈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안신조의 주먹과 발길질의 위력은 강력했다. 어느 정도로 강하냐면 영욱의 갈비뼈와 공격을 막아내는 팔다리의 뼈들이 금이 가거나 부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영욱 역시 드림헌터니 금이 가거나 부러진 부분을 어느 정도는 복구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는 과정에는 가골假骨들이 생성되기 때문에 뼈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칼슘과 인 성분이 침착되면서 보다 더 강해진다.
게다가 영욱의 경우에는 백족의 키틴질도 함께 침착되었다. 뿐만 아니라 백족의 기운까지도 함께 깃들었다. 그 기운들이 여태까지 겉돌았던 것은 뼈가 부러지지 않고서는 뼛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듯했다. 하지만 온 몸의 뼈가 성한 곳이 없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정말 어린 녀석이 지독하군.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도 항복하지 않다니……."
"늙은 개새끼가 목소리만 시끄럽구나. 이런 솜방망이로는 어림도 없다."
"어린 녀석이 정말 버릇이 없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나도 이제부터는 제대로 힘을 줄 수밖에 없다. 죽어도 어쩔 수 없으니 내 탓은 하지 마라."
"병신아. 그 주먹으로 날 죽여? 어디 한 번 죽여 봐!"
퍼버벅! 퍽. 아이고.
영욱이 매를 자초하자 분노에 찬 안신조의 주먹질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위력도 두 배쯤이나 강해졌다. 이젠 뼈가 금가는 정도가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부러지는 복잡골절複雜骨折이 일어날 정도였다.
워낙 상처가 크고 부러진 곳이 많아서 자가 치유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꼬불쳐 두었던 치유 초능력까지 동원해야만 했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도 없이 컸지만 영욱은 맷집을 키우는 재미로 버틸 수 있었다. 만일 처음부터 이런 공격에 노출되었다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서 걸치고 있는 각종 환수 가죽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아니면 벌써 기절했든지.
그리고 한 번 부러졌던 부분은 잘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안신조 주먹질과 발길질의 위력이 워낙 강하니 두 번 이상의 공격을 견디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시 부러지기는 해도 이번에는 살짝 금이 가는 정도로만 그쳤다.
"솜방망이도 이보다는 강할 것이다. 병신아."
"죽어라!"
여러 조각으로 부러진 뼈들을 염동력으로 제자리에 맞추고 치유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러진 부위가 치료 전에 다시 공격당하지 않도록 기계체조의 초식을 동원해서 살짝살짝 피해내면서 치유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박상태와 김호진의 부러진 부위까지도 뼈의 위치를 맞추고 치유해주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다. 윤승언은 치유 능력이 있으니 자신이 알아서 잘 고치고 있었다. 다들 달리 지시하지 않아도 영욱의 뜻에 따라 맷집을 키우고 있으니 그 정도의 배려는 해 주어야만 했다.
*반백신감
"안신조! 10분 지났다."
"정말이지 지독하고 교활한 녀석들이군. 알량한 치유 능력을 그런 식으로 활용할 줄이야."
안신조는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나고서야 영욱과 윤승언이 치유 초능력을 발휘했음을 알아차렸다. 뼈가 부러져도 여러 번이나 부러졌는데 다들 멀쩡하게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데 무조건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반백신감 배신혁, 네 녀석도 10분 내에 뭘 해낼 수 있을지 어디 한 번 구경하기로 하자."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해. 이봐!"
배신혁이라는 중늙은이도 영욱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개새끼가 친구들을 데려왔나? 왜 이렇게 시끄럽지?"
"나를 저 녀석의 솜방망이 주먹과 같이 여긴다면 후회하게 될 거다."
"달라? 그럼 개새끼답게 물어뜯기라도 하려고?"
"반백신감半白神鑑이라는 내 닉네임을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애송이 중의 애송이로구나."
"반백신감이라면 머리가 반백에다 병신 영감이라는 소리가 아니냐? 그런데도 내가 왜 겁을 먹어야 해?"
"이 새끼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어디 맛 좀 봐라."
반백신감은 반백의 머리를 한 자가 가진 귀신 거울이라는 소리다. 상대의 약점을 귀신처럼 알아내곤 하는데 그게 그가 가진 귀신 거울이라는 아이템 덕분이다. 그 거울은 비춘 대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퍽. 퍽. 아고고.
반백신감은 자신의 다리를 사용해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도와 위력이 장난이 정말 아니었다. 맷집이 제법 강해졌다고 내심 방심했던 영욱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이다.
배신혁은 영욱을 공격하는 한편 품에서 신감이라는 손거울을 꺼내더니 영욱을 비춰 보았다.
"하하하!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 여자였구나. 너와 닮았지만 늙은 것을 보니 네 어미라고 봐야겠군."
"엄마를 무서워하는 아들이 어디 있겠냐? 아버지라면 몰라도. 병신아."
"내 신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내게 토룡피를 넘기지 않으면 네 어미가 무사하지 못할 거다."
"엄마가 무섭기는 하지만 없는 물건을 내놓을 수는 없지."
영욱은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엄마를 인질로 삼겠다는 소리에 발끈하기도 했다.
게다가 토룡피를 넘기라는 소리를 듣고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부에서 정보가 새지 않고서야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신혁의 시선은 정확하게 영욱이 걸치고 있는 토룡피를 향하고 있었다.
"네 몸에 걸치고 있는 그 토룡피는 뭐냐?"
"이건 이미 교감이 끝난 것이라서 팔 수가 없다."
"하하하! 겨우 토룡피 따위가 교감을 이룰 수 있다고? 나를 놀리려는 거라면 사절하겠어. 하하하!"
"그럼 벗겨봐. 벗길 수 있으면 네 놈에게 우선적으로 팔 테니까."
일단 교감이 이루어진 가죽이라면 타인에 의해서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다. 강제로 벗기려면 영욱을 죽이고 나서야 가능하지만 벗겨봐야 사람 가죽이나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래서 일단 교감이 이루어진 가죽은 판매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주인은 마음대로 벗을 수도 있고 가죽들 사이의 공간에 골드와 같은 귀중품을 넣어둘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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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신감 배신혁이 영욱의 토룡피를 벗기려고 끙끙 대는 사이에 10분이 지나가고 말았다.
"배신혁! 10분 지났다."
"지금 거래하고 있는 거 안 보여?"
"10분 안에 했어야지. 다음 차례는 누구야? 변정석 너냐?"
"그래. 나다."
"웃기고 있네. 왜 너냐?"
"우리 일행이 먼저 도착했으니까 나지."
"웃기지 마. 배신혁 일행 다음에 도착한 사람은 바로 나, 쾌도난마快刀亂魔 이기춘이다."
영욱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드림헌터들이 아니라 영욱의 토룡피를 노리고 달려든 상인 파리 떼들이었다.
자기들끼리 나름대로 순서를 정해서 영욱의 물건을 강탈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별 해괴한 닉네임까지 사용하는 꼴이 우습지도 않았다.
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누가 영욱의 물건을 강탈하든지 간에 다들 영욱의 혼을 쏙 빼놓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화리가 고용한 알바들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거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니까 너희들은 빠져."
"배신혁, 웃기지 마라. 네게 주어진 시간 10분은 이미 끝났다."
"그런 식이라면 저 녀석이 질질 끌기만 해도 거래를 성사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질질 끌지 못하게 확실하게 맛을 보여주었어야지. 너처럼 남의 약점이나 잡아서 협박이나 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지금 거래가 진행되는 중이니까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용서치 않겠다."
"설마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오지합졸들을 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덤빌 테면 덤벼라."
반백신감 배신혁은 일전불사를 외치며 분위기를 점점 더 험악하게 몰고 갔다. 하지만 영욱은 이 모든 행동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을 바로 이 대목에서 확신했다.
2QB 세상에서 만난 보부상 녀석도 협박에 능하더니 현실 세상에서 만난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숫자가 많으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깐! 일단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하고 나서 이야기를 다시 하자."
"설마 토룡피가 교감했다는 말을 믿은 것은 아니겠지?"
"확인이야 간단하잖아."
"좋아. 내가 대표로 확인해 보겠다."
"배신혁, 네 차례는 이미 끝났다. 확인은 나, 쾌속항진快速航進 변정석이 하겠다."
"웃기지 마라. 나 쾌도난마 이기춘이 하겠다."
"병신 새끼들아. 한꺼번에 확인하면 되잖아."
영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상대의 목적이 토룡피에 있으니 팔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만 확인시켜 주면 상황이 끝날 것 같아서였다.
"어린놈이 정말로 싸가지가 없구나."
"날강도 주제에 말이 많네. 어서 확인해 봐. 어서!"
영욱이 강하게 나가자 상인들은 오히려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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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달려들어서 토룡피를 벗기려고 했지만 그저 묵은 때의 일부만 벗겨졌을 뿐이었다.
"뭐, 뭐야? 정말로 교감이 이루어졌잖아."
"말도 안 돼. 허접한 토룡피가 이 애송이와 교감하다니."
"확인했으면 길 비켜! 미친놈들이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을 패고 지랄들이야."
영욱이 반백신감 등을 밀어버리고 길을 열자 이번에는 다른 녀석들이 영욱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그냥 보내줄 것 같으냐?"
"넌 또 뭐냐? 병신아."
"나는 한전상이다. 네가 가진 골드를 현찰로 바꿔주겠다."
"환전상이라니 대충 이해는 가지만 골드가 옆집 개 이름이냐? 내가 골드를 들고 다니게?"
"네 녀석이 정확하게 397골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으냐?"
영욱은 딱 잡아뗐지만 녀석의 시선이 정확하게 골드를 넣어둔 백팩을 향하고 있었다. 한두 개라면 토룡피 사이에 넣어두겠지만 너무 많기 때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것인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화리로부터 정보가 샜을 수도 있지만 상대의 가장 두려운 것을 보여주는 반백신감이라는 요상한 거울도 있으니 골드의 위치를 알려두는 아이템이 없을 리 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남의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는 대단한 아이템을 가진 모양이군. 좋아! 어차피 현찰로 바꿀 참이었으니까 먼저 돈부터 꺼내봐."
"현금을 들고 다닐 리 없잖아. 먼저 골드를 넘기면 네 계좌로 이체해주지."
"먼저 내 계좌로 이체하면 확인 후에 골드를 넘기기로 하지."
"좋아. 계좌번호를 불러."
"농협, 585-551-0055998 박득환이다."
환전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분위기가 좀 더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현금으로 바꿀 생각이었으니 영욱으로서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욱만의 착각이었다.
"정확하게 39억 7천만 원을 계좌이체 했으니 397골드를 넘겨라."
"환전 비율이 1골드에 1억이라고 들었는데 그 무슨 개소리냐?"
"그건 네가 희망하는 시세일 뿐이고 우리 환전상들은 시세의 10% 밖에 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거래하지 않겠다. 그리고 통장에 넣어준 돈은 잘 쓰겠다."
상대방이 사기와 협박으로 나오니 영욱도 어쩔 수 없이 똥배짱을 부리기 시작했다. 약하게 나가면 정말 이 여사에게까지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허허! 어린 녀석이 나보다 더 뻔뻔한 놈일 줄은 몰랐군."
"나는 위약금을 챙긴 것인데, 사기와 협박으로 열 배의 골드를 삼키려는 네 놈보다 뻔뻔할 리가 없지."
"계약을 위반한 것은 바로 네 놈이다. 환전상들이 바로 그 환전 비율을 적용한다는 것은 상식이니까."
"상식과 적법은 전혀 별개의 사실이다. 병신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지. 토룡피는 벗겨지지 않겠지만 골드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각오해라."
"어떡하지? 이제 막 토룡피와 토룡피 사이에 넣어버렸는데?"
영욱은 남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백팩 속의 골드를 토룡피 사이의 공간 속으로 쏟아 버렸다.
"특이한 가죽이군. 아무튼 네 녀석은 죽을 것이고 네 애비와 어미 역시 가진 재산을 다 토해낸 후에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