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등골산의 영역이니까 제법 지독한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까?
-등골을 빼먹는다는 뜻인가요?
-맞아. 너희들이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는 것처럼.
진중권의 수입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늘 막걸리 값을 아낄 정도로 지갑에 돈이 없었던 것은 진소희의 비싼 아파트와 그녀가 걸친 명품들을 장만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영욱으로서는 그저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영욱은 진소희의 그러한 삶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지만 산의 이름과 그 산을 지배하는 환수들의 특징이 거의 일치한다는 전제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아니에요. 제 앞길은 제가 헤쳐 나갈 생각이니까요.
-그야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영욱은 소희와의 대화를 멈추고 멀리서부터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기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저건…….
제 3의 눈으로 느껴지는 실루엣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했더니 몽구스였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껍질은 요즘의 새로운 등골브레이커의 대명사로 알려진 몽클레어 패딩과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녀석의 크기가 어지간한 늑대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크기를 많이 줄일 수 있는 녀석이 진정한 강자이기 때문이다.
덩치를 줄이고 기세를 많이 감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줄줄 흘러나오니 영욱으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어캣도 몽구스과에 속하지만 몽구스가 좀 더 사납고 강하다. 사향고양이과에 분류될 정도로 고양이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뱀의 천적으로도 유명하다.
성질이 사납고 동작이 워낙 재빨라서 코브라 같은 독사도 어렵지 않게 제압해서 죽일 수 있다. 물론 코브라 독에 대한 내성도 강해서 물리더라도 잘 죽지도 않는다. 성질은 몹시 사납지만 길들일 수는 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코브라 구제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의 몽구스일 뿐이고 지금은 대룡의 최대 천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몽구스 환수였다. 얼마나 강력할 지는 도무지 짐작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영욱이 대룡을 일주일 동안이나 공격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 나타났다는 것도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 이길 자신도 있지만 이미 사냥감들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
-주인님, 이제 우린 죽은 목숨이에요.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난 아직 죽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은 호그질라나 백족과는 완전히 달라요.
아니나 다를까 대룡은 절망에 찬 탄식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몽구스 환수
-당연히 다르지. 하지만 더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
영욱은 미리 절망하는 대룡과는 달리 애써 담담한 척했다. 그라고 해서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지만 미리 절망해봐야 전혀 득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달려들지 않고 기세를 피우는 것 역시 대룡과 영욱이 더욱더 절망하기를 기다리는 얄팍한 수작이라고 판단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는 말처럼 매를 기다리는 동안의 누적된 공포는 사람을 절망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주 영악한 녀석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사납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고 민첩해서 저로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에요. 그리고 제아무리 주인님이라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녀석의 손을 묶어 놓으면 되겠지. 그러니까 싸울 준비나 해. 만일 내 명령을 어기고 도망치면 내 손에 죽는 거 알지?
-예. 주인님. 그런데 이번에는 도망가는 작전 없이 그냥 싸울 건가요?
잠시 망설이던 대룡이지만 몽구스에게 죽는 것보다는 영욱에게 맞아죽는 게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러 싸울 생각이 들자 작전에 대해서도 궁금해진 것이다. 하지만 영욱은 도망갈 생각이 없는지 고개부터 내저었다.
-이왕이면 아군들이 많은 곳에서 싸우는 게 유리할 테니까 그렇게 해야지.
-아무튼 주인님만 믿을게요.
-덩치가 아깝다.
-저 녀석의 원래 덩치를 보지 않아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커지면 녀석의 장점인 재빠름이 줄어들겠지.
물론 영욱의 기대일 뿐이다. 하지만 은영과 진소희도 이제는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리 절망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화리가 몽구스 사냥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죽기 싫다면 그녀 옆에 바짝 붙어있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가지고 있는 골드로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있고.
-정말 낙천적이시군요. 물리는 순간 두 토막이 날 수도 있는데.
-그럼 너도 물어.
-제가 이빨이 어디 있어요?
-그럼 꼬불쳐 둔 독정을 활용해.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까짓 것들을 뒀다 어디에 쓸 거야?
-그깟 지네독이 통할 것 같아요? 저 녀석은 코브라 환수에게 물려도 끄떡없는 녀석이라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지네독과 코브라독이 같아?
-다른가요?
-당연히 다르지. 독사들의 독도 종류마다 다 달라. 그러니 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통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통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사실 몽구스의 주된 먹이 중의 하나가 지네니까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몽구스가 지네에게 물리고도 괜찮은 건지 워낙 동작이 빨라서 물리지 않아서 괜찮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죽지는 않더라도 물린 부분이 붓거나 열이 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동작이 굼떠지게 되거나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서 전투력의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해볼 만하다는 게 영욱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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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이 태연자약한 태도로 기다리니 몽구스 환수가 어쩔 수 없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내 산에서 소란을 피우더니 제법 간덩이가 있는 놈이구나.
-어쭈! 너는 텔레파시를 할 줄 아는 놈이었구나.
-말장난이라면 사양하겠어. 아무튼 도망 칠 시간과 기회를 주었는데도 마다했으니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우리가 힘이 빠진 지금에야 나타난 주제에 무슨 기회를 주었다는 거냐?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거지.
-너희들의 숫자가 많으니 기회를 노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니겠어?
몽구스 환수는 유창한 말솜씨로 영욱의 말을 받아쳤다. 눈매에서도 교활함이 줄줄 흐르는 게 보통이 아닌 듯했다.
-그래. 네가 기다리던 기회가 왔으니까 어서 덤벼라.
-허접한 기계를 타는 주제에 허세 작렬이군.
-맞아보면 얼마나 아픈지 너도 알게 될 거다.
-그런 굼벵이 같은 속도로 나를 건드릴 수나 있을 것 같으냐?
-너처럼 재빠른 놈들의 약점을 알지.
-내게 약점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군. 그게 뭐지?
-맞아본 적이 거의 없으니 맷집이 약하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살짝 스쳐도 중상이야. 알겠어?
영욱은 나름 격장지계를 동원해서 몽구스 환수를 엮어 넣으려고 했다. 영욱 일행의 숫자가 많음을 경계한다는 소리에서 빠른 공격력에 비해서 맷집은 약할 수도 있다고 보았는데, 몽구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꽤나 그럴 듯한 이론이군. 하지만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확인하기는 불가능할 거다.
자기가 해야 할 말을 마친 몽구스 환수는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소희, 지금이야.
-블라인드! 블라인드!
-뭐, 뭐야? 이건?
-뭐긴 뭐야? 네 말대로 눈이 먼 거지. 모두 공격해! 잔상권! 잔상각! 잔상무!
영욱은 포크를 몰고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잠시 눈이 멀었지만 녀석의 반응 속도는 발군이었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달려드는 박상태 등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일일이 피하는 걸 보니 예상대로 맷집은 그리 강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영욱은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서 이동 예상 경로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빠른 놈이라서 꼬리 끝부분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일단 붙잡는데 성공하자 사정없이 패대기를 쳤다. 그리고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크억! 감히 나를 밟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영욱의 말처럼 맷집이 거의 없는 몽구스 환수 녀석은 고통에 몸서리를 치면서 몸의 크기를 원래대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룡, 뭐하고 있어?
-예. 지금 가요.
뻥!
땅을 뚫고서 나타난 대룡 역시 원래대로 덩치를 불리면서 수십 배나 커진 몽구스 환수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잔상수족의 초식으로 로봇의 모습으로 변신한 영욱은 최대 출력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구! 화구! 화구! 잔상권! 잔상각! 잔상무!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이 나를 속였구나.
몽구스 환수는 영욱과 대룡의 힘이 거의 다 빠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음을 깨닫고는 절규했다.
-병신아. 일주일이나 지켜보고도 속은 네가 바보지.
-하지만 나를 겨우 이 정도로 봤다면 오산이다.
몽구스는 날카로운 앞발과 이빨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칭칭 감은 대룡을 풀어내려고 했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더욱 강해진 대룡으로서도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주인님! 더는 못 버텨요. 이 자식, 완전 괴물이에요.
-못 버티면 죽는 거야. 도망쳐도 내 손에 죽는다는 걸 기억해!
-녀석의 괴력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요? 나 같은 건 약해빠진 칡넝쿨보다도 못하다고요.
-독정을 주입해! 어서!
-겨우 그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가리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어서!
-예. 주인님.
영욱은 대룡과는 별개로 자신이 집중 공격해서 상처를 낸 부분이 재생되기 전에 얼른 독정의 일부를 주입해 보았다. 척추에 가까운 곳이니 좀 더 강한 효과를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백족의 독에 내성이 강한지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가진 독정을 전부 다 주입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래도 버텨! 무조건 버텨!
-하, 하지만…….
호그질라와 백족의 경우에는 대룡이 감싸서 조이기만 하면 어느 정도는 제압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몽구스 환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을 물어서 질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독정 남은 것을 내게로 줘. 어서!
-다 썼어요.
-웃기지마. 그 말은 절반이나 남아있다는 소린 줄 모를 줄 알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이, 이제 보니 몇 개 있군요. 그런데 소용없는 걸 왜 달라는 거죠?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얼른 줘.
-여, 여기요.
영욱은 ULM으로 날카롭게 코팅된 포크의 기계 삽 끝에 독정을 묻히고 최대한 깊게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놀라운 재생력으로 금방 치유되고 말지만 척추에서 뻗어 나오는 신경 부분 근처라서 그런지 마비 효과가 아주 조금이나마 발생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몽구스의 근육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분인 뒷다리를 예전처럼 사용하지는 못했다.
사실 빛보다 빠를 것 같은 몽구스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촘촘한 신경망일 것이다. 그런 뒷받침이 없다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를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약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다.
거의 삼백족에 달하던 백족의 독은 영욱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용지물은 아니었다. 이빨과 앞발로 조금이나마 벌린 대룡의 조임을 강력한 뒷발로 한방에 처리하려던 몽구스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뭐죠?
-독이 들어. 그러니 너는 버티기만 해.
-그래도 앞발과 이빨은 멀쩡해요. 이러다가 빈혈로 죽겠어요.
-그렇다면 너도 가만히 있지 말고 녀석의 피를 빨아.
-아, 알았어요.
-다들 뭐해? 공격하지 않고? 그리고 녀석의 피를 빨아!
-예! 선배님.
박상태가 거인으로 변신해서 몽구스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다들 총이나 활을 소환해서 각자 할 수 있는 공격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리 넌 뭐해? 그냥 구경만 할 거야?
-몽구스를 사냥할 수 있는 아이템은 없어.
-설마 등골산을 지키는 환수가 이 녀석인 줄 몰랐다는 것은 아니겠지?
-몰랐어. 전에는 북쪽 절벽에서 사는 산양 환수가 등골산을 지키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 바뀐 것 같아.
-그 절벽 이름이 혹시 북벽 아냐?
-북벽 맞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북벽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노스페이스'인데 알프스의 삼대 절벽 중 하나다.
몽클레어 이전에 유행했던 등골브레이커의 대명사였기에 농담 삼아 해본 말인데 공교롭게도 그것마저도 일치하는 듯했다.
-다 아는 수가 있지. 하지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뭐가 뭐라는 거야?
-아무 것도 아냐. 아무튼 네가 보탤 힘은 전혀 없다는 거지?
-응. 우린 구경이나 할게.
-맘대로 해.
영욱은 화리의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지만 그리 아쉬운 상황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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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 환수는 작전을 바꾸어서 자신을 옥죄고 있는 대룡의 피와 살점을 닥치는 대로 뜯어먹었다. 영욱이 자신의 신경에 주입한 백족의 독 때문에 뒷다리에 힘이 빠져서 당장은 탈출이 불가능하니 그런 식으로라도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어차피 잡아먹을 생각이었으니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대룡을 산 채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주인님! 이 녀석이 날 뜯어먹어요.
-너는 더 많이 뜯어먹으면 되잖아.
-제가 이빨이 어디 있다고 뜯어 먹어요?
-그럼 파먹어. 내가 상처를 벌려줄 테니까.
-고마워요.
서로를 산 채로 뜯어먹는 이상한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뜯어먹어도 순식간에 재생되니 결국은 누가 더 많이 뜯어먹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게 분명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무래도 대룡보다는 몽구스가 더 많이 뜯어먹고 있었다. 하지만 영욱이 빠는 피의 양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진짜 흡혈귀로 변한 듯한 진소희와 은영은 물론이고 박상태와 김호진 그리고 윤승언까지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피를 빨자 얼추 균형은 맞아떨어졌다.
-주인님, 어지러워요.
-더 열심히 빨아.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빨고 있는 중이에요.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최선이 아냐. 적어도 녀석보다는 많이 빨아야 최선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야. 내 말 알겠어?
-이겨야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지는 것은 최선을 다한 게 아냐.
스포츠 경기라면 이번에 져도 다음에 다시 이길 기회가 있지만 생사투는 영욱의 말처럼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이 있으니까.
-좋아요. 일주일 동안 주인님으로부터 배운 인내심을 테스트해 보기로 하지요. 이 녀석은 그렇게 당한 적이 없을 테니까 보나마나 제가 이긴 싸움이에요.
-이제야 겨우 내 말을 알아들었군.
-사실 주인님에게 두들겨 맞는 것보다는 아프지 않아요.
-잔소리 그만하고 녀석을 좀 더 세게 조여. 그래야 뿜어져 나오는 피가 조금이라도 많아지지.
-알겠어요. 영차!
대룡이 힘을 주어서 감고 있는 몽구스를 조이자 다들 피를 빠는 게 훨씬 더 용이해졌다. 빨아먹는 게 아니라 쏘아대는 피를 입대고 마시기에도 급급해졌다. 대룡 역시 훨씬 더 많은 양의 피를 마시면서 연신 몽구스에게 빼앗기고 있ㅆ는 피와 기운을 보충해나갔다.
-이런 진드기 같은 놈들이…….
-남의 등골을 파먹는 것은 바로 네 녀석의 특기잖아. 그러니 우리를 욕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흥! 내가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으냐?
-그럼 어쩔 건데?
-네 녀석들의 뱃속에 들어간 피가 네 녀석들의 것인 줄 아느냐?
-그럼 아닌가?
-남의 피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환수에게도 그리 많지 않다. 인근에서는 오로지 나만이 가능하지.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다. 하하하!
몽구스 환수는 남의 피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녀석의 말처럼 대부분의 환수나 드림헌터들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활한 이 녀석은 자신의 피를 마음껏 빨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영욱 일행을 응징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욱 일행도 그 예외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으악!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내 피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과연 무슨 짓일까? 너희들은 모두 장이 터져서 죽게 될 것이다.
-으아악! 살려줘!
영욱이 일부러 호들갑을 떨었지만 몽구스 환수는 콧방귀를 끼면서 입을 열었다.
-웃기지 마! 너는 마지막 차례니까.
-그럼 누가 처음인데?
-누구긴 누구야? 네 노예들과 여자들이지.
-노예들 앞에서 내가 먼저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된다니 잘됐군. 그런데 왜 아직 시작하지 않은 거야?
-벌써 시작했다. 네 노예들과 여자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안 보여?
-음. 정말 고통스러워 보이는군.
다들 고통스러워하긴 하는데 몽구스 환수가 의도했던 그 고통은 아니었다. 피를 많이 빨아서 배가 터질 듯이 불러서 고통스러운 것과 방광이 터질 정도로 부풀었는데 상황이 급해서 소변보러 갈 수도 없으니 죽을 것처럼 인상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 체면에 앉은 자리에서 실례를 할 수는 없으니 참담하게 일그러진 표정들이 볼 만했다.
사실 몽구스의 기대와는 달리 백족의 껍질을 여러 겹 걸친 노예들과 여자들의 뱃속에 들어간 피는 몽구스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얘들아! 소변을 참으면 병이 되니까 싸도록 해. 소희와 은영도 얼른.
-싫어. 옷을 입은 채로 어떻게 싸?
-그럼 벗고 싸.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끄러워서 어떻게 옷을 벗어?
-그럼 조금씩 싸서 말려. 아니면 나처럼 염동력을 이용해서 치우든가.
영욱은 몽구스 환수를 놀리기 위해서 진한 농담을 늘어놓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드라큘라처럼 피를 빨면서도 여전히 예쁜 척하는 여자들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은영을 놀려먹는 재미는 더 쏠쏠했다.
-염동력은 없어. 그러니 얼른 가서 해결하고 올까?
-네가 빠지면 몽구스가 힘이 남아돌게 될 거야. 그러니 무조건 피 빠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돼.
-하지만 정말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
-좋아. 소희가 너보다 강해지는 걸 감수할 수 있다면 다녀와. 몽구스 환수의 피가 몸에 좋다는 것은 너도 느낄 수 있을 거 아냐.
-그, 그럴 순 없지.
-그러니 얼른 소변부터 비워.
-안 돼! 그럴 순 없어.
-아무튼 한 명이라도 피 빠는 걸 멈추는 순간 모두가 죽은 목숨인 줄 알아.
-아, 안 돼!
쏴아아.
-…….
피를 빠는 속도가 있으니 소변이 만들어지는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빨랐다. 그러니 제아무리 드림헌터라고 해도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피를 빠는 그 자세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들 피를 빠느라고 얼굴을 몽구스에게 박고 있으니 집단 방뇨 사태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오직 영욱만이 염동력을 동원해서 몽구스의 피가 오줌으로 오염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항상 시작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요도괄약근을 조이기가 무섭게 다시 방광이 팽창해 버리자 아예 긴장을 풀어버렸다.
다소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마시는데 싸지 않을 수는 없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피 빠는 것을 멈추는 순간 죽게 될 테니 마시는 걸 멈출 수는 없다.
대룡이 쥐어짠다고는 하지만 일행들이 피 빠는 걸 멈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흐르던 피가 멎어버릴 테니까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마시는 것을 고수하면서 화장실을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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