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71)

영욱이 반지와 팔찌 아이템을 꺼내자 화리의 눈이 빠질 듯이 튀어나왔다. 설마 이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듯했다.

-우와! 반지가 열 개나 되고 팔찌도 다섯 개나 되네. 대체 어느 녀석을 사냥하고서 나온 거야?

-그건 알아서 뭐하게?

-환수라고 해서 모두 이런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

-그럼 나는 완전히 봉 잡은 거네?

-당연하지. 환수 가죽보다도 훨씬 비싼 아이템들이 이렇게 많은데 봉 잡은 게 아니면 뭐겠어? 사실 환수보다 더 비싼 포획 아이템을 사용하면서까지 사냥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템 때문이지.

영욱도 대룡으로부터 아이템을 뺏은 후로 환수 사냥의 진정한 목표가 바로 아이템 획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환수에게 당하는 환수사냥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차피 세상은 도박판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잃는 자가 있어야 따는 자도 생기는 법이니. 

-역시 나는 운이 좋다니까. 아무튼 다 끼지는 못하는 거니까 그저 돈으로서의 가치일 뿐이야.

-그래도 그게 어디야? 반지 아이템들은 대충 15골드에서 20골드 사이를 오가는 것들이고, 팔찌 아이템들은 50골드에서 60골드를 오가는 것들이야. 특히 팔찌 아이템들은 두 배 정도는 충분히 증폭 가능한 아이템들이야. 제 고유의 명령어가 있다면 말이지.

-그럼 난 부자가 된 거네? 다소 아쉽지만 60%는 받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실제로 현실 세상의 화폐로 환전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워낙 고가라서 말이지.

영욱이 부자라고 한 말의 의미를 화리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템을 직접 구할 수 있으니 골드는 현금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챙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 같이 돈 많은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겠지.

-그도 그렇지만 아이템 거래는 워낙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일이라서 실소비자와 상인 간의 연결이 쉽지 않아. 신문에 내거나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상설 경매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구입한 거야?

-아는 사람으로부터 알음알음 소개를 받았어. 집안이 워낙 빵빵한 편이니까 주변에 아이템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지.

-나는 불가능하지만 너는 충분히 내다팔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은 그게 내 진짜 능력인 셈이지.

화리야말로 상류 계층의 자제였다. 상류층을 지향하며 흉내나 내는 된장녀가 아니라……. 그러니 그 신분을 이용해서 살아도 충분히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러운 배경이군. 하지만 나는 10억만 있어도 풍족하게 살 수 있으니까 굳이 바꾸지 않아도 아쉬울 것은 없어.

-가난뱅이들에게야 그 정도도 적지 않은 돈이겠지만 부자들에게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차 한 대 값일 뿐이지. 

-돈이 썩어나가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흥청망청 살고 싶지는 않아.

-너는 그럴지 모르지만 네 여자는 그렇게 사는 걸 원치 않을 거야.

-그래서 된장녀는 사절이라니까.

영욱은 자신도 모르게 은영과 진소희가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가진 아이템만 팔아도 충분히 거느릴 수 있는 재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뿐만이 아니라 된장녀는 사절이었다.

-우리 세 사람도 눈에 차지 않는 네가 된장녀가 아닌 여자와 결혼할 확률이 있을 것 같아?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고 마음까지도 예쁜 선녀는 동화책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몰라?

-가끔이지만 동화 속의 내용이 실현되기도 하는 2QB 세상에서 새삼스럽게 그런 말이 나와?

-결국 결혼은 현실에서 해야 하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곳 역시 대등한 가치를 지닌 세상이니까. 아니, 이곳이 훨씬 더 우월한 세상이지.

-이곳의 배우자와 현실 세계의 배우자를 달리 할 셈인가? 듣고 보니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네.

-누가 그런다고 했어? 이곳 세상에서의 결혼 역시 불가능할 리 없다고 한 것이지.

둘의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배우자와 2QB 세계의 배우자가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이미 그런 짓거리를 하는 치들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영욱은 아니다. 그저 된장녀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것에 불과했다.

-어쨌든 그게 그거잖아.

-아직 현실 세계에서는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까 전혀 달라.

-아무튼 나도 좋은 거 배웠다. 두 남자와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호호호!

-꼭 그런 식으로 활용하면 좋아?

-나는 상인이니까 현실적인 이익을 많이 따지는 편이지.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사귀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네 마음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네 짝이 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렇게 알아. 이곳 세상이든 현실이든 말이야.

화리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은 없다. 그러니 영욱의 이러한 말을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재벌가의 상속녀나 자제쯤으로 보이는데 자신을 마음에 둘 리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화리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누가 너하고 결혼한다고 했어? 지금 나를 너무 낮춰보는 거 아냐?

-그럼 왜 날 따라다녀? 오해하기 딱 좋잖아.

-그야 이익이 발생하니까 따라다니는 거지. 네가 멋있는 남자로 보인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야. 저 두 여자들도 나와 마찬가지 생각일 거고. 호호호!

-젠장! 나도 그런 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자신들이 남의 사냥감이나 노리는 파리 떼라고 인정하는 게 그렇게도 좋아?

-이왕이면 독수리 떼라고 불러줘. 사냥하는 자와 그 사냥감을 빼앗아먹거나 뒤처리를 하는 자는 엄연히 따로 존재하지. 존재 자체가 그런 걸 어떡해?

화리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욱의 놀림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한 술 더 뜨기까지 했다.

-내 배는 아주 큰 편이야. 그러니 하이에나와 같은 청소동물들에게 나눠줄 고기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살점이 거의 남지 않은 뼈다귀라도 좋다면 따라다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염려 마. 그건 그렇고, 노예들에게 나눠주기에는 반지와 팔찌 아이템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로 노예들의 숫자를 소대 병력으로 늘일 거야. 그러니 아직도 많이 부족한 거지.

-그게 그리 쉬운 줄 알아?

이야기는 다시 반지와 팔찌 아이템으로 돌아왔다. 영욱이 팔지 않겠다고 해도 화리의 시선은 좀처럼 아이템을 떠나지 못했다.

-주먹으로 노예를 만들려면 쉽지 않겠지. 게다가 쓸모 있는 놈도 거의 없을 거고. 그리고 나는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도 않아.

-대체 어떻게 노예를 만든다는 거야?

-현실 세계에서 노예 제도가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생겨난 이유를 몰라?

-그건 그 세계의 이야기고.

-다를 것도 없지. 서로 조건만 잘 맞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영욱도 꼭 그럴 요량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다. 노예 계약으로 묶여있는 박상태마저도 신뢰가 가지 않는데 고용하는 노예에게 등을 맡기고 함께 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화리 역시 이미 그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지 대번에 콧방귀를 끼면서 반응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망상에 불과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노예로부터 충성을 이끌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처음부터 거래가 가능할 것 같아? 이미 현실 세계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몰라도.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기에는 이미 30년 이상 뒤져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까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아.

-그렇다면 이곳에 거대한 제국이라도 세울 계획이야?

-필요하다면.

-그리 거창한 꿈을 가진 것 같지는 않던데 언제부터 황제의 꿈이 생겨난 거야?

영욱은 농담하는 중이지만 말의 진위를 잘 구분하는 화리조차도 그저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영욱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소릴 수도 있다.

-꿈이야 누구나 다 꾸는 거잖아. 그리고 그 꿈이 그저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꾸는 게 뭐가 이상해?

-누구는 노예나 병력의 중요성을 몰라서 이러고 다니는 줄 알아?

-아는데 왜 그 모양이야?

영욱은 한극상과 다른 남자들을 훑어보면서 다소 부실하다는 인상을 감추지 않았다.

-너는 병력을 거느리는데 골드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노예의 숫자를 늘리겠다는 거야. 사냥에서 얻은 아이템과 전리품들을 상인들에게 파는 것보다 직접 소모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테니까.

-효율 면에서야 그게 낫겠지. 하지만 병력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사냥이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은 버려.

-그야 병력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전투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거겠지.

영욱의 경우라면 자체적으로 소모하는 것이 몇 배 이상의 효용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다. 영욱이 파는 아이템의 가격과 소매가의 차이가 열 배까지도 날 수 있으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계산이다.

물론 병력을 무장시키는 것과 전투력을 끌어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긴 하지만 육군병장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영욱으로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전술학이라도 공부한 것처럼 구는데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쉬운 일이라면 벌써 누군가가 하고 있을 테지. 어려운 일이라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결국 나와는 가격이 맞지 않아서 팔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맞아. 그리고 이미 말했다시피 더 이상의 골드가 필요하지도 않고.

-그건 네가 아직도 사냥 아이템을 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일 뿐이야.

-그런 걸 사용하면 남는 것도 없는데 그걸 왜 사? 그리고 사냥에 성공해도 아이템이 무조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아이템이 꼭 환수에게만 사용될 것 같아?

영욱의 거듭되는 재투자 불가론에 화리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다. 화리의 말처럼 환수사냥꾼에게도 그런 아이템이 사용될 수 있다면 문제가 적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미국식 사고방식이군. 대체 그 아이템을 만드는 자들은 누구야? 엄청 부자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설마 재벌은 아니겠지?

-만드는 자들이 아니라 파는 자들이 재벌이겠지. 그것도 거대한 군수업체를 가진 재벌일 가능성이 높지.

-젠장. 이곳이 현실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또 망각하고 있었군. 아무튼 이곳도 국가나 정부만 없을 뿐이지 있을 것은 다 있잖아.

-그들이 2QB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 지도 벌써 30년이나 흘렀으니까 그러고도 남겠지. 아무튼 우리는 일회용 공격 아이템을 만드는 자들을 마법사라고 불러. 실제로 초능력이 아닌 마법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퍼모어와 주니어 사이에 있는 특별 등급인 셈이지.

-무시무시한 소리군. 개개인의 무력으로 부딪치는 것도 버거운데 수십 발의 수류탄 위력을 상회하는 공격 스크롤까지 팔아대는 재벌들이 있다니 말이야.

영욱은 마법사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쭙잖은 활인심방으로도 기운의 통제와 집적이 그렇게 용이한데 만일 마법이라는 체계적인 수단이 있다면 더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템이 있다는 소리에 마법사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짐작했지만 막상 그게 사실임이 밝혀지자 충격이 적지는 않았다.

-그게 스크롤 타입인 걸 어떻게 알았어?

-마법사라고 부른다니까 무심코 그렇게 말한 건데 그게 맞다니 더 놀랍군.

-아무튼 잔머리 하나는 정말 잘 돌아가는구나.

-어떻게 생긴 것인지 구경이나 좀 하자.

-좋아. 하나만 보여주지.

화리는 창문에 커튼 대신에 설치하는 롤 스크롤을 축소한 것과 같은 모습의 스크롤을 보여주었다. 용도로 추정되는 글씨도 영어로 적혀 있었다.

-폭스Fox라고 적혀있는 걸 보니 여우 환수 처리용인 모양이군.

-맞아.

-그런데 번개 마법이나 얼음 마법이 아니라 이렇게 적용할 수 있는 환수의 이름이 적혀있는 거야?

-응. 그게 바로 상술이야. 그래서 환수사냥꾼들의 부담이 더 가중되는 거지.

각 환수마다 알려진 약점을 이용해서 제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몇 가지 마법의 조합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른 환수를 제압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적용 대상을 일일이 명시해 놓으면 환수들마다 다른 사냥 아이템들을 모두 준비해야 하니 사냥꾼들의 재고 부담이 늘어날 게 분명했다. 그것은 곳 아이템을 파는 마법사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친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상술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네가 가진 공격 스크롤들만 해도 수백 골드는 족히 되겠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이 근처에서 우릴 위협할 수준의 환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열 개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그것만 해도 수백 골드니까 소규모 사냥꾼 일행이 아니라 움직이는 기업이나 마찬가지군.

영욱은 화리가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던 것들의 의미를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아이템이 있으면 어차피 병력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으며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소리였다. 사냥 아이템을 사용할 계획이 없는 영욱으로서는 전혀 다른 입장이지만 화리로서는 그럴 듯했다.

-맞아. 그러니까 사냥도 열심히 하고 거래도 잘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어?

-이해할 수는 있지만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라면 그런 식의 사냥은 하지 않을 거야.

-그건 네가 진짜 임자를 만나지 않아서 하는 소리야. 환수에 따라서 특화된 능력이 얼마나 다른지 당해보면 사채를 끌어들여서라도 사게 될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신경 꺼. 그런데 그 마법사들은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지?

있으면 물론 좋을 것이다. 누군들 탈진할 때까지 도망치거나 이박삼일 동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겠나. 하지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처음에는 비상 탈출용 아이템 하나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환수마다 다른 사냥 아이템들을 모두 구비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것도 한 장씩이 아닌 여러 장씩이나.

그러니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게 남는 장사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임자를 만나게 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고, 바로 소멸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지만 미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튼 영욱은 얼른 화제를 마법사의 소재에 관한 것으로 돌렸다.

-그건 왜?

-나도 마법이나 배워보려고.

-마법이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인 줄 알아?

-어차피 배우지 않아도 대충 흉내 정도는 낼 줄 알잖아.

영욱의 염동력이나 발화 초능력과 결빙 초능력 그리고 치유 초능력까지도 따지고 보면 마법과 비슷한 이능이다. 그런 게 가능한데 마법을 배우지 못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몰라서 하는 착각이다.

-맞아. 마법도 일종의 초능력이야. 하지만 마법은 정신력의 효율을 극대화시켜서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이야. 그 차이가 어느 정도냐면 마법마다 조금씩 다른데 예를 들어 발화 초능력과 발화 마법으로 일으킨 불의 위력 차이는 보통 열 배가 넘어.

-그것 참 흥미롭군. 혹시 마법에 관한 내용이 적힌 책도 있나?

화리의 입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 기계체조 역시 정신력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효용을 가지고 있으니 화리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영욱으로서는 마법에 대해서 점점 더 빠져들었다.

-마법서가 존재하긴 하지만 비싸서 살 수 있을까?

-얼마나 하는데?

-보통 1,000골드부터 시작한다고 들었어.

-1,000골드짜리는 시시한 마법이겠지?

-그야 당연하지. 가장 기초적인 마법서일 테니까. 

-이젠 목표가 생겼으니까 좀 더 열심히 사냥해야겠군.

영욱은 이제야 겨우 골드를 모아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늦기도 했지만 구입해야 할 마법서의 가격이 천문학적이니 날 새는 줄 모르고 사냥해야할 것 같았다.

-마법사가 되는 것이 황제가 되는 것보다는 쉬울 거야. 열심히 해.

-그게 아니라 일단은 마법서라는 것을 읽어보고 싶은 거야. 사실 나는 독서광이거든.

-그래서 얼굴에도 학구적인 티가 줄줄 흐르는구나. 살다 살다 별 시답잖은 소리를 다 들어보겠네. 책을 읽고 싶어서 1,000골드짜리를 구입한다고?

-그냥 읽어볼 수도 있다면 굳이 살 생각까지는 없어.

-너 같으면 1,000골드짜리 책을 남에게 만지게 하겠어?

-하긴. 아무튼 열심히 사냥해서 한 권이라도 마련해야겠어.

마법서를 읽어본다고 표현했지만 내심으로는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지만 1,000골드짜리 책을 그저 읽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과하다.

-아무튼 좋은 생각이다.

-네가 좋아할 것은 없어. 아이템들을 굳이 너한테 팔 생각은 없으니까.

-나만큼 후하게 쳐주는 상인도 드물다.

-그러니까 알아보고 나서 제일 비싸게 사겠다는 상인에게 팔겠다는 거 아냐.

-분실할까봐 불안해서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

-그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법사가 있다면 작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는 마법주머니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화리는 그런 게 있는 듯했다. 상인으로서의 필수 아이템일 테니까.

하지만 영욱으로서는 굳이 그런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전혀 없다. 먹고 튈 우려가 전혀 없는 대룡이 있으니까. 가끔씩 영욱이 세상 물정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긴 하겠지만 적어도 맡긴 물건을 속일 리는 없다.

-70% 쳐줄 테니까 팔아.

-그런데 마법사들은 소속이 따로 있어?

-75% 쳐줄 테니까 팔아.

-혹시 마탑 같은 것도 존재하는 거야?

영욱 화리의 표정 변화를 보아가면서 계속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정보를 내놓든지 구입 가격을 더 올리든지 하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화리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마탑도 존재하는 듯했다.

-78% 쳐줄게. 더 이상은 나로서도 곤란해.

-그럼 마탑이 하늘 끝까지 조용한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배후 세력인 거야?

-80% 쳐주지. 이게 마지막이야.

-그게 아니라면 신이 되고자 하는 시니어가 정말 존재한다는 거야? 

-정말 모르는 거야?

영욱의 말이 막나가기 시작하자 화리도 흥정을 멈추고는 확인에 나섰다. 마탑이 조용한 바벨탑을 쌓아올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까지는 사실인 듯했다.

환수사냥꾼들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부터가 마탑에 골드를 보태주는 것이고, 결국 그 골드는 바벨탑을 쌓는 일을 시킬 노예와 환수를 사서 모으는데 사용되는 듯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골드의 흐름이 눈에 보이니 바벨탑을 쌓는 주체가 마탑임이 자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주체의 일부이든지.

-90% 쳐주면 팔지. 어차피 네가 말한 시세가 진짜 시세인지도 모르니까.

-정말 모르는 거냐고 물었잖아.

-좋아. 88% 쳐준다면 팔지.

-내가 마법사들은 사퍼모어와 주니어 사이의 등급이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이번에는 둘의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화리가 정보를 제공하는 만큼 영욱이 가격을 깎아주는 형태가 되었다. 마법사들의 위치가 최상층은 아니니까 그들이 주체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좋아. 86%로 거래하지.

-주니어로 알려진 자들 중에는 독립된 마탑을 거느린 자도 있다고 들었어. 

-85%. 더 이상은 못 깎아.

-너도 스크롤에 적힌 글씨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마탑이 없어. 마법사들도 아주 드물고.

-84%. 

영어로 적혀있으니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또 1%를 깎아주었다.

-하지만 현실 세상의 교보문고에 가면 마법서를 파는 곳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 물론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83%.

-내게 10% 할인 티켓이 있는데 네가 필요하다면 넘겨줄 의향도 있어.

-좋아. 80%로 하지.

화리가 제공하는 정보의 질과 양에 따라서 할인율이 다르게 적용되었다. 10% 할인권이라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앞으로 네가 판매하는 물건을 모두 그런 가격으로 넘긴다면 고려해보지.

-너로부터 1,000골드를 장만하려면 딱 250골드를 손해 보겠군. 그래봐야 겨우 10% 할인을 받게 되는 것인데 내가 미쳤냐?

-계산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사기당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 10% 할인 티켓은 재벌 가문의 후계자들에게만 발행되는 것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비싼 마법서를 거래하는 데에도 그런 일이 발생해? 비싼 물건은 당연히 품질보증서라는 게 따라다니지 않아? 

-보통 물건이라면 그게 당연하겠지만 2QB 세상의 물건들은 달라. 사는 사람에게 진품과 위품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어야 속지 않고 살 수 있지.

할인 티켓의 출처가 그렇다면 사기를 당할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진품과 위품의 구분 능력이 없으니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또한 그냥 가서 사더라도 100% 사기 당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화리에게 250골드를 지불하고 10% 할인권을 제시하는 게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 

마법서의 가격이 정확하게 1,000골드라면 총 125골드를 더 지불해야 하는 셈이지만 워낙 비싼 물건이니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경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마법서의 진위를 가릴 수는 없겠지. 그런데 2QB 세상이 아니라 왜 현실 세상의 교보문고에서 마법서를 팔지?

-그곳이 바로 미국에서 제조한 마법서를 한국으로 수입하는 총판이니까.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주로 현실 세계의 인간들로 구성된 모양이군. 

2QB 세상의 인간들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과 2QB 세상에서만 머무를 수 있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2QB 세상에 원래부터 마법이 존재했다면 영혼들이 마법사일 공산이 큰데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맞아. 그냥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던 마법을 결국 인간들이 실현시킨 것이지.

-마법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인간들이군. 

-마법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지.

-미국에도 이은석 박사 같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지?

-<비몽사몽2>의 저자가 '실버스톤 리'라는 이름을 쓰는데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그런 책도 있었어?

제목으로 보나 이름으로 보나 이은석 박사의 두 번째 저서다. 확실한 것은 읽어봐야 알겠지만.

-비몽사몽이 출판되고 바로 다음해에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되었지. 전부 영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렇다면 마법 언어가 포함되어 있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한문도 일부 섞여 있다는 소리야.

-혹시 그 책 가지고 있어?

-당연하지. 마법 탄생의 기초가 된 책이니까 소장용으로라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지.

화리는 의외로 유식했다. 또한 영어도 곧잘 하는 듯했다. 여느 재벌 자제들이 그러하듯이 외국에서 몇 년 정도는 살다온 게 분명했다.

-너도 마법서를 읽은 적이 있어?

-아직은 아냐. 워낙 비싸서 말이야.

-그럼 돈을 반반씩 내고 마법서를 사서 같이 읽는 게 어때?

-그러다가 내가 들고 도망치면 어떡하려고?

-계속 내 물건을 구입하지 않을 거야? 서로가 이득이 되는 상황인데 왜 튀지? 적어도 나는 안 튈 테니 염려 마.

-당장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해.

-그러지 뭐.

재벌가의 자제가 위험한 2QB 세상에서 상인 노릇이나 하는 게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경험을 쌓거나 경영 수업으로서 수행을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후계자가 많은 가문이라서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것일 수도 있다. 일정 자본을 대주고 얼마를 버는지 본다는 식의.

한극상이 비서실장 분위기를 풍기고 나머지 네 명의 남자들이 노예내지는 직원처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럴 공산이 높다.

어찌되었건 간에 화리는 골드도 많이 벌어야 하고 강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영욱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물론 마법서를 손에 넣기 위한 것이 단기적인 목표지만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장기적인 목표를 암시해준다. 

다시 말해서 이 길에 들어선 이상 남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다소 비약적인 결론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정답이다. 

그리고 영욱으로서는 일단 시작한 이상 기계체조와 활인심방의 끝을 보고 싶기도 했다.

*기계체조 응용 동작

결국 영욱은 마법서 구입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이템들을 팔기로 결심했다. 화리 또한 판매 조건이 정해졌으니 빠르게 셈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반지 아이템 열 개의 가격이 180골드이고 팔찌 아이템 두 개의 값이 120골드야. 그래서 총 300골드의 80%인 240골드가 바로 이 아이템들의 거래가야.

-그런데 뭐가 문제지?

-240골드를 네가 좋아하는 1골드짜리로 지불할 수는 없으니까 하는 소리야.

-1골드짜리가 아니면 있기는 있고?

-당연하지. 100골드짜리 세 개를 줄 테니까 60골드와 아이템들을 넘겨줘.

-그러지.

화리의 재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튼 영욱은 이제 317골드를 가진 큰 부자가 되었다. 317억이라면 빈둥거리며 놀아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부자겠지만 현금으로 바꾸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니 별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물론 영욱이 갈망하는 마법서를 구입하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리고 백족 껍질들도 어느 정도는 넘겨야 하지 않겠어?

-좋아. 너에게도 100개를 넘겨주기로 하지. 그런데 맞춤형이 필요해? 아니면 너도 제임스처럼 그냥 껍질만 필요해?

-그야 당연히 맞춤형이지.

-그럼 개당 1골드니까 80%인 80골드를 줘.

-백족의 기운을 확실하게 뽑아준다면야 주지.

-그야 당연하지.

마법서에 대한 욕심 때문에 거래가 팍팍 이루어졌다. 영욱은 일단 목표가 생기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드를 모으는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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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거래를 위해서 대룡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들었지?

-무슨 말씀이신지?

-네 뱃속에 있는 백족 껍질과 백족 기운을 좀 나눠줘야겠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욱이 흡수한 백족의 기운으로는 백 개의 껍질을 맞춤형으로 바꿀 만큼의 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욱은 대룡이 그리 고분한 노예가 아님을 착각하고 있었다.

-백족 껍질이야 당연히 꺼내드릴 수 있지만 백족 기운은 좀 곤란합니다. 

-뭐가 곤란해?

-주인님의 거래에 제가 왜 기운을 보태야 하죠?

-내가 강해져야 너도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어?

-잘 알고 있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잖아요.

-싫어?

-예, 싫습니다.

-싫으면 관둬.

-정말로 마법서를 구입하려는 겁니까?

영욱이 너무나도 빠르게 포기해버리자 이번에는 대룡이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피 한 바가지 더 얻어 마시려고 튕겨본 건대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비협조적으로 나온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표정을 고수하고는 있었다.

-당연하지. 남자가 뜻을 세웠으면 끝을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마법서를 구한다고 해서 마법사가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는데 아시겠지만 그런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기초 마법서 한 권으로 마법사가 된다고 해도 강해질 수는 더더욱 없고요.

-그래서 백족의 기운을 못 주겠다는 거였어? 

-의미 없는 일에 기운을 빼고 싶을 리 없죠.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실패를 해도 내가 해. 

-그렇다면 주인 행세라도 해보겠다는 건가요?

-그건 벌써 포기했어. 무슨 수로 네 고집을 꺾어? 대신에 앞으로 너와 함께 하는 사냥은 없다. 그러니 너는 네 갈 길이나 가. 백족 껍질이나 몽땅 꺼내놓고 꺼져! 내 복에 무슨 파트너가 있겠어.

-무슨 남자가 충고 한 번 했다고 이렇게 성질을 내시는 거죠?

-난 남자 아냐. 아직 키스 한 번 제대로 못해봤는데 그게 무슨 남자야? 그러니까 썩 꺼져!

영욱 역시 피 한 바가지를 달라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처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피를 뽑아주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방시켜 주시니 꺼져드리지요. 하지만 그냥은 못가겠습니다.

-그냥 못가면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러고도 싶지만 오늘은 참기로 하죠. 다만 제가 빌려드렸던 정수와 내단 들은 돌려주셔야겠습니다.

-흥! 내 덕분에 호그질라와 백족을 통째로 삼키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 녀석들의 뱃속에서 나온 정수와 내단 들이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을 텐데.

-증명할 수 있습니까?

-증명하라면 해야지.

-잘하면 한 판 하실 것 같은 분위깁니다. 제 말이 맞나요?

헤게모니를 잡고 싶은 것은 대룡으로서도 마찬가진 듯했다. 꺼지라고 해도 꺼지지 않고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니 이런 억지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맞아. 네 배를 갈라놓고 정수가 몇 개 들어있는지 헤아려볼 참이야.

-호호호! 꿈은 크지만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군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저를 어떻게 공격할지가 기대되는군요.

-병신아! 네가 넌 줄 알아? 대룡 소환!

-이, 이 무슨?

-주인 무서운 줄 모르는 지렁이 새끼야! 어디 맛 좀 봐라!

소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있었던 대룡은 대경실색했지만 영욱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룡이 자신의 옆에 소환되자 영욱은 포크를 타고서 그 동안 갈고 닦았던 잔상무를 추기 시작했다. 여승들이 추는 승무처럼 부드러운 동작이 이어지면서 마치 쓰다듬듯이 대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 아프잖아요. 먼저 시작했으니까 원망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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