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71)

쾅. 쿵.

영욱은 삼족속보는 물론이고 풍차돌리기와 좌충우돌의 초식들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날아오는 바위들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화망火網을 구성한 것처럼 날아오는 바위들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고,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빨라서 바위들 중의 일부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맞아줄 수는 없으니 잔상의 기계 팔로 막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포클레인의 기계 삽으로 막기에는 바위의 위력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영욱에게는 결정적인 공격 수단이 없다고 비아냥거릴 만큼 대단한 위력이었다. 그야말로 운석의 위력을 떠올릴 정도였다. 

영욱은 어쩔 수 없이 날아오는 바위의 궤적만 조금 바뀌게 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아슬아슬해도 피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쾅.

하지만 포크 본체와 기계 팔에 부딪치는 바위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희승의 염동력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안 되겠다. 더는 못 버티겠어.'

영욱은 포크의 망가진 부분이 자동적으로 수리되면서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포크의 소환을 해제하고 말았다. 

이제 영욱은 맨몸으로 기계체조의 초식을 운용하면서 운석 세례를 벗어나야만 했다. 이제는 하나라도 걸리면 그야말로 빈대떡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위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삼족속보! 풍차 돌리기! 좌충우돌!'

아직까지 맨몸으로 시전하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기계체조의 초식들이지만 쥐포가 되어서 죽지 않으려면 빠르게 날아오는 바위들을 피해야만 했다.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피하기에만 급급하구나. 하하하!

이희승 교수가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냈지만 영욱은 대꾸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위화감違和感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인데 학과장은 아직도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영욱은 자신이 학과장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학과장님, 뭐하세요?

-큰 걸 준비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봐. 

-제가 당하게 되면 학과장님도 곤란해질 텐데 그렇게까지 여유를 부리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자네가 근접전을 펼쳐야만 나로서도 비로소 공격할 기회가 생기는데 오히려 자네가 도망치기에만 급급하니까 공격 기회가 잘 생기지 않잖아.

영욱의 질책에 학과장은 자신의 개입이 늦어지는 것은 모두 영욱의 부실한 실력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그럼 일대일 싸움은 대체 어떻게 치르신 거죠?

-그러니까 죽을 뻔했다고 했잖아.

-아무튼 저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으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영욱은 학과장 김진명이 아군이 아닐 수도 있음을 확신했다. 

자신을 배신했다기보다 큰 거 한 방으로 이희승 교수와 영욱 둘 다를 한꺼번에 녹다운시킬 생각인 듯했다. 이른바 어부지리의 계책을 사용하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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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영욱은 이희승 교수에게 접근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는 조금 떨어져서 몸으로 하는 기계체조의 초식 수련에만 몰두하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이희승과의 거리를 띄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과장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침으로써 이 교수의 바위 공격을 자연스럽게 학과장에게로 유도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뭐가요?

-왜 내 쪽으로 피하는 건가?

-그야 피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같은 편에게 짓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다니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

-자네 때문에 애써 준비하던 공격이 무산되었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 그런 짓을 하고도 윗사람에게 따지는 게 아랫사람의 도리야?

-여기서 윗사람 아랫사람이 왜 나옵니까? 그리고 큰 것은 마무리를 지을 때나 사용하시고 일단 작은 것부터 보여주세요. 저도 더 이상은 못 버티니까 알아서 하시라고요.

-제길! 고작 그 정도의 능력으로 저 인간을 합공하자고 한 거야? 팔을 통째로 떼어냈다는 그 실력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영욱이 최후의 통첩을 보내자 김진명도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그로서는 영욱이 아직까지도 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것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그땐 이 교수가 방심했고, 운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역시 프레시맨의 능력은 보잘 것이 없군. 그게 다라면 자네와의 동맹은 없었던 일로 하겠네.

-그러시죠. 저도 일석이조의 기회만 노리는 학과장님과는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가소로운 놈! 어디 맛 좀 봐라. 파이어 필드!

어부지리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학과장은 기회를 잡는 것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고는 아예 영욱과 이 교수가 있는 곳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앗! 뜨거워.

김진명의 공격을 조심하고 있긴 했지만 파이어 필드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 영욱은 미처 몸을 빼내지도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버렸다. 

땅에 데굴데굴 굴러서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지만 보통의 불과는 달리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집요하게 영욱을 감싸고서 태우기 시작했다. 

'조커 괴물의 얼음 공격처럼 이 불꽃 또한 내 몸을 완전히 감싸버렸어. 젠장! 다들 괴물이잖아.'

세찬 불길이 영욱의 옷과 살을 태우는 것은 물론이고 얼음처럼 숨도 쉬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영욱은 이미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커 괴물의 얼음 기운도 아주 조금이지만 다룰 수 있는 상태였다.

'온! 온!'

급히 나노캡슐을 작동시켜서 심장에 미량의 산소와 포도당이나마 공급하는 한편 얼음 기운이 섞인 실드를 쳐서 사나운 불길이 몸을 태우며 파고드는 것을 차단했다. 조커 괴물의 손가락을 흡수하고 얻은 초능력인 셈이다.

살아서 날뛰는 화마火魔의 뜨거움과 생살이 타는 고통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통이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보다는 그리 더 크지 않음을 깨달았다. 참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영욱이었다.

영욱은 이희승 교수와 학과장 짐진명이 불길에 휩싸인 자신을 내버려두고서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시작이군. 둘 다 얼마나 잘 싸우는 지 어디 구경이나 좀 하자고.'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 섞인 실드는 강력한 불길에 금방 녹아버렸다. 하지만 또 만들어냄으로써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었다. 

하지만 화상에서 회복되는 속도보다 뜨거운 불길로 인해서 입는 피해가 더 큰 상황이라서 영욱의 몸은 온통 벌겋게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욱은 둘의 싸움을 구경하기로 했다. 고수들의 대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아두는 게 남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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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저런 녀석을 도움이 될 거라고 데려온 거야?

-그러게 말이야. 자네의 팔을 온전히 잘라냈다고 하기에 숨겨둔 한 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지켜봐도 아무 것도 없었어. 오죽 화가 났으면 내가 저 녀석을 공격하기까지 했겠나?

학과장은 자신의 기회주의적인 공격을 모두 영욱의 탓으로 돌렸다. 아무리 부실하다고 해도 동맹군을 공격하는 게 정당화될 리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동맹 조약을 지킬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소리다.

-흥! 공격한 거야 나까지 싸잡아서 피해를 주기 위함이었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가 피해낼 줄은 이미 알고 있었네. 그 정도의 공격에 당한다면 사퍼모어가 아니지.

-그런다고 해서 우리들의 싸움이 끝나지는 않아.

-나 역시 자네를 그냥 둘 생각은 추호도 없네. 자, 그럼 2라운드를 시작해보자고.

두 고수의 싸움은 의외로 단조롭게 진행되었다. 이희승은 영욱에게 했던 것처럼 바위들을 빠르게 날리는 방식으로 공격했고, 학과장은 수십 개의 불덩어리를 날려서 공격과 방어를 겸했다.

펑!

놀랍게도 날아오던 돌들이 불덩어리들과 허공에서 부딪치자 큰 소리를 내면서 폭발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외양은 불덩어리라도 성능은 폭탄과 비슷했다.

가끔 돌과 불덩어리가 상쇄되지 않고 서로에게 날아들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큰 기술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미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탓에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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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사퍼모어 급 드림헌터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한편 자신도 염동력과 얼음 초능력 연습에 몰두했다. 그래야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이희승 교수는 커다란 바위를 수십 개씩이나 날릴 수 있는 염동력의 대가였다. 그런 그의 팔 하나를 통째로 흡수했으니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강한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연습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음 초능력을 사용했던 조커 괴물의 피와 살점과 여러 개의 손가락을 삼켰으니 얼음 섞인 실드도 지금보다는 좀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 초능력 역시 연습 부족으로 인해서 위력이 아주 약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극단적으로 부족한 산소 공급과 빠르게 소모되는 정신력이지만 영욱에게는 해결 방법이 있었다. 먼저 불길의 벽은 얼음 속에 갇힌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니까 그것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영욱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입과 코 부분에 모습이 피노키오의 코와 닮은 긴 관을 변형된 얼음 실드로 만들어서 호흡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염동력을 동원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빠르게 안으로 옮기니 다소 부족한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호흡다운 호흡이 가능해졌다. 

만일 이게 성공하지 못했다면 무시무시한 싸움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노캡슐의 동작이 멈추는 쿨타임 때문에 벌써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음 섞인 실드를 만드느라고 빠르게 소모되는 정신력은 기계체조와 활인심방을 통해서 보충하기로 했다. 이희승과 학과장에게는 영욱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로 뜨거워서 지랄발광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기계 팔 대신 자신의 발로 기계체조를 운용하면서 활인심방을 동시에 돌리는 것이었다.

물론 기계체조의 시전 속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면 정신력이 생겨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모된다. 그러나 느릿느릿하게 시전하면 오히려 정신력이 보충되는 기능이 있음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다. 

몸으로 하는 기계체조는 손으로도 가능하지만 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손과 발, 둘 다로도 시전이 가능하다. 두 손과 두 발로 동시에 잔상의 팔을 시전하면 여섯 개의 팔과 여섯 개의 다리가 생겨나는 셈이다. 

그러니 총 열두 개의 팔다리는 겨우 세 개의 기계 팔에 비해서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두 손은 활인심방을 돌리기 위해서 머리를 두들기는 데 사용되었고, 기계체조도 정신력 보충을 위해서 느릿느릿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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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두 마리의 고래싸움에 끼어드는 대신에 열심히 염동력과 얼음 실드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소모량에 비하자면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활인심방과 기계체조는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상당한 양의 정신력을 만들어 내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희승과 김진명은 마치 서로에게 공 던지기를 하는 것 같은, 다소 무료해 보일 수도 있는 단순 공격들만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나게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임을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잘 아는 영욱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둘의 싸움을 구경했다.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을 것 같았다. 특히 이희승 교수가 아주 효과적으로 염동력을 사용하는 방법과 학과장이 효율적으로 불덩어리를 만들어내고, 또 효과적으로 날리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물론 싸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눈으로 보는 것은 아주 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게다가 둘은 사력을 다해서 싸우는 중이니 영욱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싸움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영욱이 발휘하는 염동력과 얼음 실드가 조금씩이나마 강해짐으로써 증명되었다. 

겉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지만 영욱은 이제 자신을 감싼 채로 끝없이 타오르는 불길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실행의 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었다. 자신이 불을 끄는 순간 그것이 빌미가 되어 이희승 교수와 학과장의 싸움이 중단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 자신을 협공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와 학과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괴로워하고 있는 영욱을 이상하다는 듯이 힐끗힐끗 쳐다보면서도 그래봐야 결과는 똑같다고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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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

어느덧 밤이 되었다. 영욱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신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내용이기도 하고 포도당을 생성시키는 나노캡슐을 장착하기까지 했지만 몸으로 허기를 느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벌에 쏘인 것이 실제 상황이니까 2QB 세상에서도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원의 보충이 가능함을 이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몸에 불이 붙은 상황이니까 수련하면서 열두 시간이나 하루 정도를 머무를 때와는 에너지 소비의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 발생하는 문제였다.

지직. 지지직.

일단 에너지 보충의 필요성을 느끼자 영욱은 즉시 행동에 옮겼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달려들다가 날개가 타서 추락하는 곤충들이 바로 에너지원이었다. 영욱은 불에 타고 있는 잔해들을 염동력으로 주워 모아서 닥치는 대로 삼키기 시작했다. 

칠흑처럼 완전히 어둡지는 않지만 오로지 영욱 혼자서 불을 밝히고 있으니 주변의 벌레들이 달려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불나방만이 불을 향해서 달려드는 것은 아니다. 주광성走光性은 대부분의 곤충이나 어류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로 영욱을 감싸고 타오르는 불길은 먼 곳에 있는 곤충들까지도 불러 모았다.

영욱은 가끔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를 필요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도 되겠지만 이동할 때는 조명과 식량 조달이 한꺼번에 가능하니 그리 나쁘지 않은 발상이었다.

'곤충들은 먹자마자 바로 소화가 되는군. 좋았어.'

기계체조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드림헌터들의 피와 살에 비하면 곤충구이는 이유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곤충을 먹는다는 것이 다소 징그러울 수도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나라와 지역에 따라서는 맛있는 간식과 영양식으로도 이용되곤 한다. 사실 새우도 바다에 사는 곤충인 셈이니 질색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영욱은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굼벵이는 물론이고, 살아있는 번데기도 삼키거나 갈아서 말린 다음 장복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곤충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에 바싹 구운 곤충은 맛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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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QB 세상이 현실 세계와는 독립적인 세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보낼 수도 있지만 그 부작용으로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2QB 세상에서도 그러한 룰이 적용되어서 드림헌터들이 원한다면 며칠이고 머무를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물론 2QB 세상에서 12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12시간이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꿈처럼 몇 초에서 삼십 분 이내의 짧은 시간만이 지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 세상에서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일 뿐이지 착각은 아니다.

두 사퍼모어 급 드림헌터들의 싸움이 10시간 이상 이어지자 결국은 둘 다 컨디션 저하를 보이면서 날아가는 돌과 불덩이의 위력과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신력은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지만 어느 누구도 좀처럼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이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싸움을 멈추더니 현실 세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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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무승부군.

-굳이 승부를 낼 생각도 없으면서 웬 승부 타령이야?

-맞아. 서로의 실력이 엇비슷하니까 괜히 무리해서 상잔할 이유가 없지.

-웃기지 마. 실력이야 내가 훨씬 더 뛰어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염동력을 얻겠다고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어서 그러는 거야.

-흥! 나야말로 불장난 따위의 능력은 전혀 필요치 않아서 살살 놀아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염동력이 무식하게 바위만 집어던지는 것인 줄 알아?

-그럼 또 무슨 용도가 있는데?

-내가 나노캡슐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나 보군.

-듣고 보니 그럴듯하군. 하지만 내가 연구할 일은 없으니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야.

상대를 언제든지 압도할 수는 있지만 전리품으로 취하기에 마뜩치 않아서 무리하지 않았다는 게 서로의 주장이었다. 지극히 프로다운 발상이었다. 둘은 남은 승부를 현실 세계에서 낼 참인 듯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네. 

-그러게. 저러고도 살아있다니 놀랄 일이야. 아무튼 버티는 것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겠군.

-정말 지독한 독종이야. 하지만 고통만 길어질 뿐이지. 그럼 또 보세.

-그러지.

둘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더니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배신 또 배신

빠각! 빠각!

하지만 둘은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영욱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길을 순식간에 끄고는 포크를 소환해서 두 사람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희승 교수를 공격해서 학과장 쪽으로 날려 보낸 다음에 둘을 한 곳에 모아놓고는 번갈아 가면서 짓밟는 공격을 했다. 서로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던 두 사람은 졸지에 영욱의 공격 범위에 들고 말았다.

물론 당장 기계 삽에 짓밟힌 사람은 없었지만 장시간의 싸움으로 가진 힘을 거의 다 소모한 두 사람은 영욱의 공격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본의 아니게 아주 가까이 있게 된 상황이니 영욱보다는 서로를 더 견제하고 의식하느라고 제대로 반격할 수도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영욱의 공격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김진명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희승은 이미 당해본 적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긴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희승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학과장 김진명 역시 영욱을 너무 얕잡아보았다. 비록 어젯밤부터긴 하지만 직접 몸으로 하는 기계체조를 수련하기 시작한 영욱의 움직임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제는 발로도 포크의 운전이 가능해졌으니 세 개나 되는 포크의 레버와 조종간을 동시에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풍차돌리기와 좌충우돌 초식을 섞어서 구사할 수도 있었다. 포크의 움직임이 확실히 전과는 많이 달랐다.

쿵. 쿵.

-뭐야? 이 새끼가 미쳤나?

-아야! 이 개새끼가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였군.

이윽고 더욱 빨라진 포크의 기계 삽이 두 사람을 마구 짓밟기 시작하자 영욱에 대한 평가가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살벌한 욕부터 먼저 늘어놓았다.

-파이어 필드!

특히 처음으로 당해보는 학과장은 자존심이 상해서 자신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는 화염 초능력을 발휘하고 말았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을 각오한 초식인 셈이다. 

죽더라도 같이 죽자는 소리는 아니고, 조커 괴물처럼 자신은 불에 대한 내성이 있다는 것을 이용한 작전이었다. 게다가 이희승도 함께 잡자는 어부지리성의 공격이었다.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영욱과 포크는 물론이고 이희승 교수와 학과장까지도 감싸고 타올랐다. 

하지만 영욱은 금방 불을 꺼버리고 동시에 포크의 주요 부위에 붙은 불도 꺼버렸다. 물론 이희승 교수도 강력한 염동력을 발휘해서 불을 껐으며, 불에 내성이 있는 학과장은 불에 휩싸인 채로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욱이 너무 쉽게 불을 꺼버리자 학과장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불이 어떤 불인데 그렇게 쉽게 끌 수가 있는 거지?

-그냥 맥없이 꺼지던데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영욱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별 것 아닌 불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얼음 실드를 불의 바깥쪽에 쳐서 산소와 접하는 것을 막으니 지옥의 불에 가까운 불덩어리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염동력으로 실드 전체로 꾹 눌러버리니 더욱더 잘 꺼졌다.

콜럼부스 달걀 세우기처럼 모를 때나 어려운 거였지, 알고 나니 불 끄는 작업이야말로 쉬워도 너무 쉬웠다. 아무튼 영욱은 잔상의 팔, 삼족속보, 풍차 돌리기 그리고 좌충우돌의 초식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두 사람을 빠르고 강하게 짓밟고, 또 짓밟았다.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한 거야?

-그래, 반말했다. 어쩔래? 배신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바보도 있냐? 병신아.

-드림헌터끼리의 말에는 존칭이 없지만 그래도 너무 하는 거 아냐?

-지랄하고 자빠졌네. 개 맞듯이 맞으면서 존댓말을 들으면 덜 아파? 어차피 서로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넜는데 이제부터는 그냥 말 트기로 하자. 응?

학과장이 영욱의 반말지거리에 광분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영욱의 작전에 말린 것이었다. 물론 자신을 배신하고도 모자라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녀석에게 존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튼 흥분으로 인해서 학과장의 회피 확률은 이희승에 비해서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포크의 기계 삽에 밟히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2QB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잠이 들거나 기절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니 두들겨 맞는 도중에는 아파서라도 잠이 드는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오로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영욱의 공격이 워낙 강렬해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제발 나를 그냥 보내주게. 부탁하네.

-웃기고 있네. 꼭 제정신에 돌아가고 싶다면 너도 공평하게 팔 하나를 내놓아야할 거야.

-아무리 그렇지만 스승에게 이럴 수는 없다. 그것도 나는 보통 스승이 아니라 학과장이 아닌가?

-그건 저 세상에서의 관계일 뿐이다. 게다가 난 이미 자퇴한 몸이다. 그러니 학과장은 무슨 개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김진명이 태도를 바꾸어서 영욱에게 통사정했다. 하지만 영욱은 그저 시니컬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제발 좀 봐주게. 대신 이 교수를 통째로 삼킬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네 녀석의 말처럼 이 교수의 염동력은 더 이상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어. 오히려 통째로 삼키고 싶은 자는 바로 너야. 

-괴물은 바로 너였구나. 어떻게 프레시맨 주제에 어떻게 이런 괴력을…….

-너처럼 책상물림이나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서 그럴 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괴물들과 부딪치면서 성장했으니까 말이야.

영욱도 자신이 드림헌터로서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은 것만으로는 늘 이길 수 없는데 영욱은 여태까지 전승全勝을 거두는 중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자신이 진정한 괴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이 교수를 완전히 뭉개버린다면 자발적으로 팔을 하나 떼어주겠다. 

-먼저 네 팔을 잘라준다면 너에 대한 공격은 그만 둘 수도 있다. 이 교수에 대한 집중 공격은 그 뒤에 이루어질 것이다.

-먼저 이 교수를 뭉개버려라. 그래야 팔을 줄 수 있다.

-그러다가 네 녀석이 달아나버리면 어떡하라고? 이 교수 저 새끼는 나를 실험동물로 사용하려고 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히 뭉개버릴 거니까 내 말을 믿고 어서 팔을 내놓도록 해. 

-크흑. 여기 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이만 놓아줘.

영욱의 빈틈없는 요구에 버티지 못한 학과장은 직접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팔을 어깨부터 떼어내서 영욱에게로 던져주었다. 이러한 모습이 가능한 것 역시 현실 세상과는 다른 점이었다.

-어차피 치러야할 대가였으니 억울하게 생각지 말고 돌아가. 만일 또다시 나를 공격한다면 그때는 소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 공격할 테니까.

-내가 바본 줄 아는 거야? 그럼 또 보자.

-그러지.

영욱은 외팔이가 된 학과장을 보내주고는 이제 홀로 남은 이희승 교수를 집중적으로 조지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같이 잠든 학과장이 조금이라도 먼저 깨어나겠지만 현실 시간으로는 불과 1, 2초에 불과할 테니 자신을 공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희승 교수와의 일을 빨리 처리해야만 안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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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겠다.

-너의 능력은 이미 흡수했다. 그런데 뭘 더 내놓을 게 있다는 거냐?

-나노캡슐을 원하지 않았느냐? 그걸 주겠다.

이희승도 덜 맞으려면 뭔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희승은 또다시 신체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으로는 협상의 조건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영욱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던진 것이다.  

-나노캡슐은 연구실에 있는 걸로 아는데?

-내가 가진 것도 있다.

-설마 나중에 딴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더 이상 너 같은 괴물과 적대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두 번이나 당하고서도 또 달려든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붕어다.

-내가 괴물이라니 어째 기분이 좀 이상하군. 하지만 거래는 이루어졌다.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할 테니까 현실 시간으로 한 시간 후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지.

먼저 깨어난 학과장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한시바삐 현실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영욱은 이희승의 제안을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들였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추가의 나노캡슐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살려줘서 고맙다.

-그건 거래가 끝나고 나야 확실해질 것이다.

-나는 드림헌터이기 이전에 학자다. 더 이상 너와는 맞서고 싶지 않으니 이 약속을 꼭 지킬 것이다.

-좋아. 꺼져도 좋아.

-고맙다.

영욱은 이 약속이 불발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희승을 살려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과장도 문제지만 서둘러서 학과장이 떼어준 팔을 삼키고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늦어지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 학과장이 무슨 위해를 가할 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희승이 사라지자 영욱은 얼른 김진명의 팔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포크의 소환을 해제하고는 맨몸으로 기계체조를 실시했다. 

마음은 무척이나 급했지만 소화 흡수를 돕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니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소화시고 흡수한 후에야 겨우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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