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71)

"이번 주말에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 가보면 녀석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

후임들 중에서 박상태와 개인적으로 친한 병사가 남아있다면 당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상태의 사교성과 인간성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영욱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보려는 것이었다.

"주말이라고? 그럼 강릉에 놀러가기로 한 데이트 약속은 어쩌고?"

"다음 주에 가기로 하자."

"그러지 뭐."

"미안해."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은영은 잔뜩 기대하던 둘만의 여행이 뒤로 미뤄지자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자면 자신의 권유를 정면으로 거부한 영욱의 무성의함이 더 서운한 듯했다. 

여자 친구의 비위를 잘 맞춰주지 못하면 언제 버림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인데 영욱은 그 평범한 진리를 잘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의 영욱으로서는 그녀의 기분을 맞춰줄 컨디션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은영이 언짢아하는 것도 알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서 도피하는 것보다는 박상태를 만나서 정면으로 돌파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영욱의 성격이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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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까지 강원도 고성군 근처에서 군 생활을 했던 영욱은 주말이 되자 한달음에 자신이 근무했던 옛 부대를 찾아갔다. 

꿩 대신 닭이라며 따라나서겠다는 은영을 굳이 떼어놓고 간 것은 자신이 고생했던 군대를 다시 찾아간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가롭게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자 치마만 봐도 피가 끓어오르는 군바리들의 염장을 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은영은 사람들의 눈에 번쩍 띌 만큼 예쁜 여자라서 그 원망이 더 클 게 분명했다. 

아무튼 자신의 권유도 무시하고 심지어 함께 가겠다는 자신을 떼놓고 돌아서는 영욱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은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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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김 병장님 아니십니까?"

초소를 통과해서 면회실에 들어선 영욱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인사했다. 머리가 길어지긴 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선임의 얼굴이었다. 

바로 위의 선임이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후임들을 엄청나게 괴롭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경례가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박 병장, 설마 너도 당한 거야?"

"예? 당하다니요?"

"박상태 그 자식 때문에 온 거 아냐?"

"그렇다면 김 병장님께서도 그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겁니까?"

"시달리는 정도가 아냐. 그 새끼가 말이야……."

김정식 예비역 병장이 늘어놓은 이야기는 영욱이 겪은 악몽의 수준을 훨씬 더 상회했다. 그도 꿈속에서 박상태에게 시달리다가 견디지 못하고 저항을 포기했는데 그 이후부터가 더 문제였다는 것이다. 

박상태가 그를 때리는 게 아니라 무시무시한 이빨로 신체의 일부를 뜯어먹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공포와 고통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꿈에서 녀석에게 뜯어 먹힌 부분이 현실에서도 문제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럼 그 자식이 김 병장님의 꿈에서 왼쪽 팔을 통째로 뜯어먹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그 팔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는 겁니까?"

비록 꿈에서지만 괴물이 되어버린 박상태 이야기가 나오자 김정식은 몹시 흥분했다. 한편으로는 공포에 질리기도 해서 그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횡설수설이었다. 그래서 영욱이 중간에서 말을 자르고 간단하게 요약했다.

"응.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한국대학교 대학병원까지 가서 CT와 MRI까지 찍고 정밀 검사까지도 해 봤지만 진단이 전혀 나오지 않았어."

"섬뜩하군요."

"너도 내가 강력한 왼손잡이라는 건 잘 알지? 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오른팔의 절반 밖에 힘을 쓸 수가 없어. 그야말로 반병신이 된 거지.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원래대로 될 지는 의문이야."

영욱도 김정식의 왼손에 맞아 보았으니 모를 리 없다. 잘라버리고 싶었던 그 공포의 왼손이 반병신이 되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고소하기도 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김 병장님의 왼손 팔씨름은 우리 부대에서 제일 강하기로 유명했는데 모를 리가 없죠."

"그래서 그 녀석을 직접 찾아가려고 녀석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온 거야. 그런데 너는 아직 악몽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아직 뜯어 먹힌 것은 아니고?"

"예. 아직까지는 두들겨 맞고 있는 중입니다."

영욱은 박상태가 왜 말없이 패기만 했던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반복되는 폭력으로 자신의 영혼까지 굴복시킨 후에 김 병장처럼 자신의 어딘가를 뜯어먹으려는 의도인 듯했다. 말없이 패기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버텨. 포기하는 순간 그보다 더한 악몽을 꾸게 될 테니까 말이야."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군요. 저도 그 녀석에게 밤새도록 터지고 나면 실제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찌뿌듯했는데 그게 그저 기분만이 아니었군요."

영욱은 모처럼 동지를 만난 기념으로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김 병장은 그러한 영욱의 말을 듣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예? 제가 뭘 모른다는 거죠?"

"<비몽사몽>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이 있는데 너도 그 책을 읽어보면 꿈이 그저 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다. 표정을 보니까 정말 몰랐던 모양이구나."

"예. 저도 책 좀 읽는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처음 듣는 책입니다. 그런데 책의 이름이 비몽사몽인가요?"

"응. 이은석 교수라는 사람이 저자인데 그는 그 책에서 꿈속의 세상을 2QB 즉 Second Quiet Babel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꿈이 아니라 실존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옛날 같았으면 김 병장의 급한 성질이 폭발해서 영욱을 한 대 쥐어박든지 얼차려라도 주었겠지만 이제는 같은 민간인의 신분이니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야기는 얼차려 이상의 위력이 있었다.

"두 번째의 조용한 바벨탑이라는 건가요? 이름 한 번 무시무시하군요."

"그래. 옛날에 인간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쌓은 탑이 바로 첫 번째 바벨탑이었지. 그 바벨탑은 이를 경계하는 신에 의해 탑을 쌓는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져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지. 그래서 두 번째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처음부터 침묵으로 쌓았다고 주장하더군. 아니, 아직도 열심히 쌓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군."

"설마 혀를 잘라낸 사람들이 모여서 그 탑을 쌓는다는 말인가요?"

"침묵이 상징적 의미인지 실제로 혀를 자르는 구체적 행동인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튼 그 세상에서 남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를 드림헌터라고 부르는데, 나도 상태 그 놈에게 직접 당해보기 전에는 막장 싸구려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책이야."

판타지 소설광인 김정식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책 욕심이 많은 영욱은 춘천으로 돌아가면 꼭 구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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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면회 요청에 면회소로 나온 사람은 의외로 후임이었던 병사들이 아니라 중대장 김 대위였다.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를 운용하는 공병 부대라서 그런지 장교인 김 대위의 옷에서도 기름 냄새가 물씬 풍겼다.

"충성!"

"충성!"

"집어 치우지 못해? 오래 전에 제대한 놈들이 무슨 경례야? 그래, 무슨 일들이야?"

김 대위는 기쁘게 경례를 받으면서도 둘의 방문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중대장님. 박상태 그 새끼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제길! 너희들도 당했냐? 그러지 않아도 제대했던 병사들이 벌써 열 명도 넘게 찾아와서 하소연하기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젠 너희 둘까지 포함해서 열두 명으로 늘어났군."

중대장이 직접 면회소까지 나온 이유가 밝혀졌다. 두 사람의 면회 요청이 그러한 이유임을 짐작하고서 대신 나왔던 것이다. 

"전역한 저희들 때문에 중대장님께서 골머리를 썩일 이유는 없을 테니까 박상태에게 당한 병사들이라도 있는 모양이죠?"

"역시 김정식이 너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맞아. 복무 중인 병사들도 서른 명이나 돼."

"그렇다면 군 당국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군요."

"그렇지도 않아. 기무사에 신고했더니 그런 모호하고 피상적인 이유로 민간인을 사찰할 수는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역시 증거불충분이라서 난감하다는 반응만 보였어."

김정식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는데 공감을 표했다.

"2QB 세상과 현실 세계의 함수 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 도움을 받을 수 없더군요."

"맞아.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심부름센터를 통해서 알아보니까 박상태, 그 개새끼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더군."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갔을까요?"

"그걸 알면 찾지 왜 못 찾아?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몇 달 동안 조사하고도 그 새끼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어. 마치 증발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늘어놓았을 뿐이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욱으로서는 박상태가 나타나는 악몽을 꾼 지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특히 중대장 김 대위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벌써 몇 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는 문제인 듯했다.

"그렇다면 다른 병사들은 어디를 당했다고 하던가요?"

"머리를 물어 뜯겼다는 병사도 있고, 다리를 물어 뜯겼다는 병사도 있는데 박영욱 너는 대체 어디를 뜯긴 거야?"

"저는 아직까지 두들겨 맞고 있는 중인데 김 병장은 왼팔을 물어 뜯겼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사냥감의 가장 튼튼한 부위만을 노리는 게 그 악몽의 특징이거든."

"그렇다면 저는 손일까요?"

"너의 손재주는 유난히 좋은 편이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눈알을 빼먹기도 한다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

영욱의 손재주는 중대장 김 대위가 인정할 정도로 좋은 편이었다. 특히 섬세한 포클레인 작업은 소속 공병 부대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였다. 

영욱은 군 생활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 입대했고, 그의 희망대로 군 생활 내내 포클레인을 질릴 정도로 몰았다. 그래서 포클레인의 삽을 마치 자신의 손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다는 주변의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중대장님은 괜찮습니까?"

"나도 아직까지는 두들겨 맞고 있는 중이야. 아무리 전역했다지만 한때 데리고 있었던 부하에게 항복할 수는 없어서 악착같이 버티는 중이야. 그런데 요즘 들어서 얼마나 더 극성스럽게 구는지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은 없어졌어."

"그래도 견뎌내셔야 합니다."

"너도 견디고 있다니까 힘을 내야지. 쪽팔리게 너보다 먼저 백기를 들 수는 없지."

김 대위와 영욱은 묘한 공통점으로 의기투합해서 갑자기 투쟁 의지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그러셔야죠. 그런데 마흔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 모두가 매일 밤마다 그런 꿈을 꾼다는 건가요?"

"일단 한 번 뜯어먹고 나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 하지만 굴복하지 않은 경우에는 수십 명이라도 밤마다 같은 악몽을 반복해서 꾸게 되지. 너는 안 그래?"

"예. 저도 매일같이 같은 악몽을 꿉니다. 아무튼 한 사람의 꿈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꿈에도 제 마음대로 나타날 수 있다니 박상태 그 새끼는 정말 괴물이 되었군요."

괴물도 보통 괴물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중대장 김 대위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니까 영욱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끈 생겨났다. 아무튼 자신감이 생겨나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일종의 몽마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도 몽마가 존재한다니 매일같이 당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제 생각으로는 몽마는 아닐 겁니다. 몽마라면 인큐버스나 서큐버스처럼 상대의 정액이나 정혈을 빼앗을 테니까요."

영욱은 자신의 얕은 판타지 지식을 동원해서 박상태가 몽마는 아닐 거라고 반박했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싸잡아서 몽마夢魔라 불리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마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인큐버스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서큐버스는 여성의 모습인데, 인큐버스는 '위에서 자다', 혹은 '올라타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의 'incubo'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리고 서큐버스는 '밑에서 자다', '아래에 눕다'라는 'succubo'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박상태가 그런 식의 성추행을 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 고전적 의미의 몽마가 아니긴 하지. 하지만 너도 비몽사몽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누구나 몽마가 될 수 있다고 적혀 있어. 하지만 몽마라는 표현보다는 드림헌터라는 고상한 단어로 바꾸어서 사용하기도 하더군."

"드림헌터라고요?"

"그래. 그 말의 의미는 꼭 성교를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힘을 갈취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즉, 사냥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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