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꿈이 단지 꿈일 뿐이라고? 웃기고 있네."
이은석 박사는 세상을 향해서 콧방귀를 뀌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꿈은 잠자는 동안에도 마치 깨어 있을 때처럼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느끼는 정신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꿈이 과연 정신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더러 존재한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란 말은 꿈도 아니고 꿈이기도 하다는 이율배반적인 뜻을 가진 한자성어다.
이처럼 꿈속의 세상이 실존하는 또 하나의 세상임을 주장한 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꿈은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한다고 한다. 꿈에 의한 소망의 충족과 잠을 지키는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좌절되었거나 억압되었던 소망들을 꿈을 통해서 충족시킨다.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평소에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을 꿈속에서 혼내주는 게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잠을 지키는 꿈의 두 번째 기능 덕분에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잠을 잘 수가 있다.
꿈을 꾸는 주된 재료들은 최근에 겪은 강렬한 경험이나 과거의 경험, 그리고 생리적인 현상들을 반영한다.
생리적인 현상에 대한 꿈은 누구나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에 별도의 꿈 분석 작업은 필요치 않다. 예를 들어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내용의 꿈은 실제로 소변을 배출하고 싶다는 신체의 신호를 꿈속에서도 표출한 것이니까 꿈 해몽 전문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꾸는 꿈들의 경우에는 이미 일반적인 분석이 내려진 경우도 많다. 예를 들자면 나체가 되거나 속옷 바람으로 방황하는 꿈들은 자신의 숨겨진 노출 욕망을 해소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시험을 보는 꿈은 자기비판을 의미하는 것이고, 가까운 사람이 죽는 꿈은 껄끄러운 상대의 해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석이 쉬운 꿈도 있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해석이 그리 용이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해하기 힘든 꿈들을 꿀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꾸는 꿈들은 모두 꿈 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꿈에는 잠재 내용과 현재 내용이라는 두 가지의 내용이 있는데, 잠재 내용은 숨겨진, 상징적, 무의식적 동기, 소망, 두려움으로 이루어진다.
잠재 내용을 이루는 무의식적, 성적, 공격적 충동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또 위협적이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비교적 쉬운 현재 내용으로 변형되어서 나타나게 된다. 즉, 꿈의 잠재 내용이 덜 위협적인 현재 내용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일컬어 '꿈 작업'이라고 한다.
이것은 꿈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자아는 완전히 활동을 멈춘 것이 아니기에 무의식적인 활동들에 대해서 검열을 계속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속 가위질을 해대는 검열관으로서의 자아 때문에 우리의 꿈은 부분적으로 왜곡되고, 우리가 전체적인 꿈을 보는 것도 방해를 받게 되고, 마치 무의식과 현실의 그림을 어지럽게 합쳐놓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검열을 받는 부분은 역시 성적 충동과 공격 충동에서 나오는 욕구들이다. 이 검열 작용 때문에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는 꿈이 엉뚱하게도 그 누군가와 불편한 여행을 떠나지만 그 누군가 대신에 전혀 엉뚱한 사람이 죽는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꿈들이 단순한 소망 충족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장했던 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은석 박사다.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드는 깨고 나면 꿈을 잊어버리는 이유가 불쾌한 소망을 감추기 위한 망각 작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박사는 그게 아니라 위기를 느낀 자아가 꿈이라는 엄연히 실존하는 다른 세상을 은폐하려는 수작이라고 단언했다.
이은석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꿈이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고, 그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그 단적인 예로 이미지컨트롤 작업을 들었는데, 이것의 중요성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두드러지는 일종의 명상법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컨트롤의 진짜 중요성은 시합 당일뿐 아니라 평소 훈련 과정에서 더 큰 도움이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챔피언을 꿈꾸지 않았던 선수가 덜컥 챔피언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은석 박사는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박사가 아니다.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한국대 수의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수의학 박사다.
물론 동물들에게도 우울증 등의 정신병이 있으니까 그의 주장을 그저 우습게만 볼 것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의 박사 학위는 그의 심각하고 무거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심각한 주장은 대다수 심리학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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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속의 세상은 현실과는 전혀 별개로 존재한다. 내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어."
그는 갈릴레이와 비슷한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게 벌써 30년 전의 이야기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가 남긴 유일한 저서 '비몽사몽'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속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입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꿈의 새로운 해석 방법
-오나이어러크리틱oneirocritic은 해몽가解夢家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꿈속 세상이 실존하는 세상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대놓고 그렇게 떠들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당할 테니까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아는 정도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2QB라고 부르는 꿈속 세상을 이용해서 육체적으로 강해지거나 전날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집필 중인 소설가의 경우에는 꽉 막혀 있던 부분의 소설을 이어 쓸 수 있는 실마리를 2QB 세상에서 잡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비몽사몽 157페이지 내용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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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때리지 마. 제발 좀 살려줘.
퍽. 퍽.
-상태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제발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
퍽. 퍽. 퍽.
-아고고. 나 죽네.
영욱은 빌고 또 빌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영욱을 패고 또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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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박영욱은 오늘도 박상태에게 두들겨 맞는 꿈을 꾸다가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났다. 며칠 동안 반복해서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니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꿈이 계속 이 지랄이야?"
꿈속에 나타나서 자신을 다짜고짜 두들겨 패는 녀석은 군대 시절의 후임이었던 박상태인데, 그때 품은 앙심이 있었는지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는 복날 개 패듯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빌어보기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막상 대적을 해보려고 하면 자신의 몸이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미줄에 걸리거나 속박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은 무기력한 상태로 속절없이 두들겨 맞기만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아프고 두려웠지만 똑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마음속으로는 점점 오기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입으로는 제발 살려달라고 열심히 빌고 있는 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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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신소재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영욱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다. 성격이 밝고 사교성이 좋은 그는 살아오면서 주변에 적을 만든 적이 거의 없다.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얼굴을 붉힌 녀석이라면 바로 자신의 한 달 후임인 박상태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갈구거나 얼차려를 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달이나 후임인 주제에 툭하면 맞먹으려고 들기 일쑤였고, 매번 사고를 치거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처리하지 않는 녀석이라서 영욱도 연대 책임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싫다는 표정을 드러낸 적이 서너 번 정도 있었을 뿐이다.
군대의 전역과 함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그 녀석이 갑자기 꿈에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자신을 두들겨 패자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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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은 잔뜩 어두워진 영욱의 표정을 보더니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반복되는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치고, 똑같은 꿈에 시달리다보니 영욱의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얘기했잖아. 요 며칠 동안 꿈자리가 사나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또 그 꿈이야?"
"그래. 이젠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까 대체 무슨 일인지 한 번 알아보기라도 해야겠어."
"그렇다면 내가 해몽 잘하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는데 수업 끝나고 나서 나랑 서울로 가자."
"네 둘째 언니?"
"응."
같은 학과의 후배이면서 같은 3학년이고 여자 친구이기도 한 은영이 지금 언급하는 사람은 바로 역술인 혹은 무속인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인데 바로 은영의 친언니를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대학생 시절에 신내림을 받아서 무당이 되었는데 그 바닥에서는 꽤나 용하다고 알려진 여자였다. 서울의 신촌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용한 무당이니까 영욱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욱의 생각은 달랐다.
"해몽이 아니라 그 자식을 직접 찾아가봐야겠어."
"악몽과 악몽 속의 그 사람이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래? 꿈은 원래 반대로 나타난다고 하잖아."
"관련이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서 물어보기는 해야겠어."
"그 자식이 어디 사는 지 알아?"
"몰라."
"전화번호라도 있어?"
"없어."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