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화 〉 강시 아니라고(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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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이라니! 어떻게 놈들이 화산을 습격아니지, 어디인가? 의화단?”
“의화단은 아닙니다. 그런 놈들이 수백 수천씩 올라와봐야 체력이 다 빠져서 제대로 싸우지도못할 겁니다. 아무래도...그놈들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마교!”
그래, 무협지에서 마교가 안 나오면 섭섭하지. 근데 나는 니들이 나와서 섭섭섭하다. 그냥 안 나오면 안 돼? 안 그래도 요 세상이 아주 개판인데 니들까지 있으면 그냥 아포칼립스 그 자체잖아!
“마교라니...”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알았지만, 대놓고 화산을 습격하다니...”
화산파의 무인들이 술렁이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림 맹에 다녀왔다니 화산파가 습격당했다니, 그리고 그 범인이 마교라니.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로는 하얗던 얼굴을 분노로 붉게 물들인 채로 거지꼴을 한 무인에게 물었다.
“화산파의 식솔들은 어찌 되었는가?”
“장문인님과 장로분들이 막는 동안 전부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사들은...”
그가 말끝을 흐렸지만, 모두가 뒷말을 눈치챘다. 그들은 내려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나는 목적은커녕 같이 도망쳐야할 듯했다.
“그들이 무공을 쓰는 것을 보았느냐? 그들의 힘을 파악했느냐?”
“모르겠습니다. 다만...그들이 사용한 것은 검이 아니라...총이었습니다.”
“허어...”
장로가 침음성을 흘렸다. 나도 듣고 나서 귀를 의심했다. 총?
무협에 총이 왜 나와!
아니지, 여기 정통무협 같아 보여도 20세기 근처였지?
연사가 되는 총은 아직 안나왔더라도, 우리가 흔히 아는 레버액션 총기 정도는 한창 현역으로 굴러다니고 있을 시기다. 그리고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구팔이나 모신나강 같은 볼트액션 소총이 한창 잘 나가고 있을 시기기도하고.
...그래도 무협에 총이 왠 말이냐.
무협이면 그래도 검창총성, 아니 검창활암기 이런 거 들고 싸우면 안 돼? 의화단 애들은 그래도 화기를 혐오하는 애들이라 총은커녕 주먹이랑 검들고 싸우던데 정작 마교는 총을 들어? 니들이 그러고도 마교야?
아닌가? 오히려 마교니까 총을든다고 봐야 하나?
머릿속이 쓸데없이 복잡해지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화산파의 무인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화산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총이라...무림인이 아니었나?”
“아닙니다. 그들이 경공을 쓰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무림인입니다. 그저...총을 쓸 뿐입니다.”
“인원이 몇인지는 알고 있는가?”
“적어도 세자릿수는 되어 보였습니다.”
“일단 올라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네.”
“위험합니다. 장로님.”
“마교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고...없다면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해야지.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느냐...”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남아 있을지 떠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화산은 정말 커다란 산이고, 입구가 하나는 아닐 테니까. 그들이 이미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남아 있다면...죽고 죽이는 전쟁이 되겠지.
나는 무림인들의 전투에서 총이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총의 위력도 잘 모른다. 옛날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검날에 총알이 닿으면 총알이 잘렸던 걸로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정해 놓은 칼에 총알이 닿은 것뿐이었다.
아마 검기를 쓰면 총알을 잘라 내거나 튕겨낼 수 있기야 하겠지만, 그게 무한정 가능한 건 아니니까, 결국 총알의 비를 뚫고 지나갈 수 있느냐, 아니면 그전에 벌집이 되냐의 차이가 아닐까.
“소저는 여기 남으시오.”
“네?”
“이것은 화산의 일, 외인에게 사지에 함께 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오.”
그들의 눈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지만, 나에 대한 걱정도 섞여 있었다.
그래, 나는 빠지는 게 낫다.
이건 내 일도 아니고, 나는 집에 돌아가야만 한다. 죽지야 않겠지만 여기서 굳이 싸움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사람들이 사지로 걸어들어갈지도 모르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총기라면...그래도 제가 좀 아는 편이어서요.”
적당히 덧붙인 말이었다. 나도 실제 총기는 군대에서밖에 쏴본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희미하게나마 이런저런 잡지식은 머릿속에 살아 있으니, 그거라도 끄집어내 보고, 수틀리면 머리카락으로 전부 다 막아 내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총이 만병지왕이라지만 결국 장전을 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고, 총에는 내공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활을 쓰는 무공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화살에도 내공을 담아서 쏘는 무협지도 있지만...직접 봐야 알 듯했다.
“그럴 필요 없소. 이건 어디까지나 화산의 일”
“정파의 무인들은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떠나도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뭐 하나 단서라도 찾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소저...”
장로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내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다른 화산파 무인들도 내게 감동받은 시선을 보내 왔다. 어쩐지 쑥스러워 나는 장로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가겠소.”
화산은 더럽게 크고 넓었다.
계속 달려서 올라가니 그 아름다웠던 경치도 쏙 잊고 올라오지 말 걸, 하는 후회가 턱 밑까지 치솟아 오를 정도였다.
경공도 알려달라고 할걸!
“소저, 괜찮소?”
“괘, 괜찮아요...”
니들 너무 빨라!
내가 힘들어하거나 말거나, 험준한 산을 지나 산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 잃은 검들이 널브러져 있고, 무사들의 가슴팍이나 머리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급소에 구멍이 난 걸 보면 사격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돌아오면 같이 식사나 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무사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은 한눈에 보기에도 당장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산문 위를 바라보았다. 분노가, 증오가, 슬픔이 피부에 진득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아무 말없이 시체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장로가 검을 뽑아 들었다.
“가자꾸나, 복수는 해 줘야지...”
“맞습니다.”
나도 허리춤에 맨 검을 뽑아 들었다. 마치 그때를 기다린 듯이 총성이 울렸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건지, 아니면...
“가세.”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한 몸처럼 걸음을 내디뎠다.
나도 그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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