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강시 아니라고(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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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아니 오래전이라고 하기엔 이제 2년 남짓인가?
아파트 붕괴사고 때, 나는 중상을 입은 유라를 치료했다. 치료도구가 아닌,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상조차 고쳐낼 수 있었다. 아마 잘 이용하면 잘려 나가거나 끊어진 힘줄 정도는...
“자네, 지금 뭐 하는 겐가?”
책망하는 것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장백파에 내려오는 선술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선이 되고자 하는 분들이 모여 있던 곳이라, 연단술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여 있답니다. 저도 그쪽을 중점으로 두고 연습하던 터라...단전이 파괴된 게 아니라면 시도해 볼 법 합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하게 되는 터라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래도 선의의 거짓말이니 정상참작되지 않을까?
나는 무사의 손을 칭칭 감은 붕대를 천천히 풀어냈다. 환자가 아파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이 잘려 나간 부위를 살펴보았다. 검을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엄지가 첫 마디 위로 잘려 나가 붉은 속살이 채 아물지 못한 채였다.
“혹시 잘려 나간 손가락을 찾았나요?”
“다행히도 찾을 수 있었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미 떨어져 나간 것을...”
손가락을 또 찾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에게 있어선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아예 없어진 엄지를 나게 하는 것보다는, 잘린 엄지를 붙이는 게 훨씬 쉬운 일이었으니까. 나는 노인에게 엄지손가락을 받아 조심스럽게 잘린 부위에 갖다 대었다.
상처 부위에 손가락이 닿자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손가락을 고정하고, 다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봉제 인형을 기우듯 봉합을 하기 시작했다.
나리한테 사준 인형을 꿰메줄 때 하던 봉합질을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이야.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통에 어째 환자들의 시선이 공포에 질리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아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이 고작 이런 거에 무서워 하지 말라고!
칼빵맞는 게 일상인 놈들이 뭐 그리 무섭다고. 나는 엄살피우는 주변환자들을 째려보며 입을 다물게 한 뒤, 다시 봉합에 집중했다.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손가락을 꿰메는 걸 끝내자, 내 하얀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젠 게거품까지 물었네.
이러다 쇼크사 하는 거 아냐? 나는 실신한 환자를 잠시 쳐다보다가, 손을 살포시 옆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의원님,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럼...”
소란을 듣고 찾아온 의원에게 진료를 맡기니, 의원이 내게 묵례를 하고는 환자의 손을 잡고 상태를 확인했다. 손을 몇 번 만지작거리던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나를 보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정말로 멀쩡해졌소! 이 무슨...”
“정말이오?!”
“...놀랍군!”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상처가 깔끔하여 붙일 수 있었답니다. 의원님이 환자를 잘 돌보시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적당히 공을 의원에게로 돌렸다. 나한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도 곤란하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고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겸손해 보이는 효과도 있고.
“아닙니다. 이건 순전히 소저의 공입니다. 참 신기한 주술이로군요...”
“연단술이라네.”
맹주님이 직접 틀린 단어를 정정해 주자, 의원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환자를 돌보러 갔다.
아, 시선이 뜨겁네. 원래 날 보는 시선이 뜨겁지 않은 남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는 했지만, 약간 경우가 다른 미소였다. 구원자를 찾은 듯한 미소라고 해야 하나. 근데 니들은 애 정도로 심한 부상 아니잖아.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한 분 더 다치셨다고 들었는데...어디 있나요?”
“저쪽에 있네. 허나 저놈은 근맥이...아니군, 일단 가봅세.”
잘린 손가락도 붙였는데 근맥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중간에 말을 바꾼 노인이 나를 환자에게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아까 전의 환자보다 좀 더 젊어 보이는 무사였다.
“이제 갓 매화 검수가 된 아이일세. 내 제자이기도 하지. 자네가 고친다면...화산파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걸세. 내 개인적으로도 말일세...”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스럽게도, 치료는 아주 수월하게 끝났다.
“고맙네. 화산파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걸세.”
“아니예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걸요.”
뭔가 다른 환자들도 자기들도 고쳐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너희 다 경상이잖아. 누굴 대머리로 만들 작정이냐. 물론 머리카락 수백가닥 뽑는 다고 아미파 여승이 되지는 않겠지만, 경상 입은 애들은 그냥 운기조식하고 그러면 금방 낫잖아.
그러니까 나는 치료해 줄 생각 없다.
애초에 너무 남발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다. 물론 체력적인 문제나 내공을 쓰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너무 남발하면 환자부터 몸이 좀 불편한 인간들까지 죄다 내게 와서 고쳐달라고 할 테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소문은 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적게 나는 게 좋지.
“흠흠, 장백파의 신물을 찾는다고 했나? 내가 힘 좀 써 주겠네. 내 장문인께 말씀드릴 테니 화산파의 서고를 뒤져서라도 찾아주겠네!”
“혹시, 제가 직접 방문할 수는 있을까요? 같은 도문의 선배님께 여쭈어볼 이야기도 있고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네! 평생 검을 잡지 못할 뻔했던 매화 검수 둘을 치료해주었으니, 이 패를 보여주면 귀빈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 걸세! 언제든 찾아오게나!”
호쾌하시네.
나는 내 손에 들어온 패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 패가 있으면 화산파의 귀빈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 거기서 진짜 신선과 만날 방법을 찾기가 수월하겠지.
“대단한 능력이로군.”
“잔재주일 뿐이옵니다.”
“아주 가끔 말일세, 무림사에 자네 같은 능력을 갖춘 의인이 등장하곤 했다네. 혼란의 시기에 그들은 살해당하기도하고, 납치당해 선술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당하기도 했다네. 부디 조심하게.
일단...입단속은 시켜뒀네만...역사에서나 나왔던 선술을 쓰는 여인이 나왔으니, 곧 강시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겠구먼...”
나는 머리카락으로 목을 더 빡세게 고정했다.
아니 내가 강시는 아니지만 어쨌든 목이 떨어지면 적어도 인간 취급은 못 받을 거고 그러면 강시 취급받을 거 같아서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좀 신경 쓰이잖아.
“흠? 자네...혹시 몸이 안 좋나?”
“아뇨. 그냥 아까 선술을 써서 좀 피곤할 뿐입니다.”
내 얼굴색이 좀 창백해진 모양이었다.
“그렇군. 허허,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직 많네만...그럼 일단 들어가서 쉬게. 내가 이야기는 잘해 놓을 테니.”
감사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어쩌다 보니 숙소 근처까지 맹주님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무수히 많은 악수 요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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