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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332화 (332/352)

〈 332화 〉 강시 아니라고(6)

* * *

코앞까지 핏불이 불거진 손아귀가 다가왔다. 뭐 때문인지 창백하게 변색된 팔은 짐승의 팔처럼 보였다. 마공이라서 그런 걸까.

“소저!”

가깝다. 그가 당황해서 외친 시점에서 팔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피할 수 없다.

보통이라면.

나는 슬쩍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내 머리가 있었던 자리를 인간인지 짐승인지 모를 손가락이 훑고 지나갔다. 불쾌한 악취에 나는 무심코 코를 막고는 내게 등을 보인 습격자의 발목에 슬쩍 로우킥을 갈겼다.

“으아악!”

부러지는 느낌이 확실한 걸 보니 제대로 들어갔나 보네. 나는 발목을 부여잡고 넘어진 녀석을 무시하고 인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싸울 줄 모르는 연약한 소녀처럼 있어야지.

나는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라서 내공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순수하게 신체 능력이 뛰어날 뿐이다.

애초에 신의 영혼을 견딜 수 있는 육체가 평범할 리 없잖아.

마리아처럼 죽은 몸에 빙의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그쪽도 내 몸처럼 어느 정도 개조를 했다고 했었지. 인간의 몸으론 신의 영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변하기 이전에 나처럼 각성하지 않았다면 괜찮겠지만...

아무튼, 객잔의 상황은 갈수록 난장판으로 변해 갔다.

수십 명이 병장기를 들고 휘둘러대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난장판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검을 쳐다보았다. 고수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이 검기란 것을 증명하듯 검기가 곳곳에 닿을 때마다 벽이든 식탁이든 사람이든 평등하게 잘려 나갔다.

저게 검기? 신기하네.

어떤 원리로 검기가 생겨나는 걸까. 나도 무공 배우면 쓸 수 있으려나. 내가 인간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혈도 같은 게 있는지도 의문이고. 애초에 머리랑 몸이 별거부부 마냥 독립한 내가 평범하게 무공을 배워도 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딱히 배우고 싶지 않, 아니 배우고 싶긴 한데 배울 수는 있나?

“아이고...새로 맞춘지 얼마 안 됐는데...망할 의화단 새끼들. 상납금도 그렇게 바쳤는데 또 지랄이야 지랄은...”

...좀 짠하네. 어찌 됐건 객잔은 주기적으로 박살 나는 게 중원의 법칙이라지만 맞춘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부서지면 그거만큼 눈물 나는 게 없지. 어떤 무협지에선 객잔을 불태워서 미치광이가 된 주인공도 나오니 뭐.

시대가 어느 때든 사유재산이 작살나고 있는데 마음이 아프지 않은 인간은 없는 법이다. 심지어 사이코패스도 자기 재산 박살 나면 빡친다고.

아무튼, 싸움은 갈수록 남궁 세가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량에 장사 없다고, 무사 한 명에 두세 명씩 달려드니 잔상처가 늘어나다 결국 한 명씩 부상을 입고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리기 시작했으니까.

의화단 놈들 다들 시뻘건 눈으로 역한 냄새를 뿌리면서 날뛰는 걸 보니 저건 분명 마공이 틀림없었다. 내가 마공을 본 적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런 역한 냄새를 뿜어내는 게 마공이 아니면 뭐야.

최소한 정파에서 사용할 법한 무공은 아니라고. 적어도 마공이거나 마공에 준하는 무언가일 확률이 높다.

...근데 잠깐, 마공이면 의화단에서 대놓고 마공을 쓰고 있다는 거야?

나는 불현듯 떠오른 최악의 가정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 걸 느꼈다. 의화단 숫자가 8개국 연합이랑 비벼볼 정도로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에 반의반이라도 마공을 익혔다면? 혹시 그거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마공을 사용한다면?

그전에 보통 무협지에서 마공을 배운 마인은 관이든 무림이든 척결대상 1순위인데, 객잔에서 부청멸양을 외치며 대놓고 마공을 사용하는 놈들이 있다는 건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공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거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마공도 신경 안 쓰는 쓸데없이 오픈 마인드인 무림에 내가 떨어졌거나, 관이든 무림이든 마공을 쓰는 놈을 배척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거나.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듯했다. 남궁뭐시기, 아니 수호가 말하길 당가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의화단이다. 의화단이 나타났던 시기는 청이 멸망 외세의 침략과 부패로 멸망으로 치닫는 때였으니까.

게다가 뿌리세계에서도 중국버전 탈레반 소리를 듣던 조직이니 대놓고 마공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놈들이지.

오히려 마공을 쓰지 않는 놈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놈들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객잔은 점점 피투성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습격자와 방어자의 피가 골고루 객잔에 뿌려지니, 저걸 다 걸레질로 지우는 것보다 차라리 붉은 물감으로 객잔을 도배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근데 안 도와주면 애들 진짜 죽을 거 같은데.

분명 실력 자체는 남궁 세가 쪽이 우위지만, 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상대 탓에 고전하는 걸 보니 결국, 내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필요는 있어 보였다. 어떻게 할까. 너무 과하게 끼어들면 받을 관심이 좀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을 버리고 갈 정도로 정 없는 인간도 아니니까. 내가 조용히 살겠다고 얘네들 버리면 그건 사람 새끼가 아니잖아. 좀 귀찮아 지더라도 내가 도움을 주는 게 낫다.

근데 어떻게 돕지?

내가 칼 좀 쓴다고 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칼이 있을 때고, 그마저도 무협지에 나오는 검법 같은 수준은 아닌데. 그냥 전생의 경험을 견본삼아 휘두르는 칼질일 뿐이다. 그게 수백 년 단위라서 그렇지.

나는 일단 내 발밑에 쓰러져 있던 마인이 다시 일어나는 것부터 막기로 했다.

“발목 부러졌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

나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놓으라는 말을 떠올리며 반대쪽 발목도 밞아서 부러트렸다. 일단 이러면 날뛰지는 못하겠지?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인파에서 빠져나와 마인들과 검을 맞대고 있는 남궁수호의 뒤통수를 노리는 검을 잡아냈다.

“소저?!”

“뒤통수는 조심해야죠.”

남궁수호가 경악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놀랄 일...은 맞지. 내공 한 줌 없는 여자가 검을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아채면 놀라지 않을 리가 없잖아. 혹시 몰라서 머리카락을 몇 개 감아 놓기는 했지만.

나는 손에 힘을 주고 검을 빼내려 하는 마인의 뺨을 갈겼다. 힘을 좀 과하게 담았나?

짝, 하고 뺨 맞는 소리가 객잔에 울려 퍼졌다.

내게 뺨을 맞은 마인이 객잔의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오랜만에 사람을 때려 봐서 힘 조절을 잘못했네. 그래도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닐까? 어차피 마공까지 배운 놈들이면 되먹지 못한 놈들인데 내가 목숨을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잖아?

살 놈은 알아서 살겠지.

애초에 서로 죽고 죽이겠다고 싸우는 난장판인데 목숨 걱정하는 것도 웃기겠네.

“...안 싸워요?”

미처 도망치지 못해 객잔구석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도, 객잔 한가운데에서 드잡이질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기껏 도와 줬는데 분위기가 왜 이래. 양쪽 다 날 경계하지 말라고.

방금 너희 공자님 구하는 거 못 봤어?

이렇게까지 내가 신경 써서 도와 줬는데 이 틈에 빨리 제압하든 죽이든 해서 끝내면 안 되겠니?

“그, 그대는 누구시오?”

넌 답지 않게 존댓말 쓰지 마라. 다짜고짜 객잔에 들어와서 칼부림하는 놈이 어디서 예의 바른 척이야.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바탕 둘러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던 일 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대충 휘저어 내게 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미친 자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무공의 ㅁ도 모르는 내가 대충 휘두르는 손바닥이었지만, 내 힘은 어지간한 고수들 수준은 될 테니 이런 조무래기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고맙소.”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물리치는데 집중해요.”

나는 남궁수호의 뒤편에 조용히 버티고 서서 다시 시작된 싸움에 참가에서 남궁수호에게 다가오는 적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공을 쓴다 해도 본래 경지가 허접하니 그렇게 위협적인 적은 아니지만, 남궁수호는 부상을 입은 상태니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래도 잘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전세가 조금씩 뒤집히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남궁수호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둘 쳐 내자 창궁무애단의 무사들도 나를 믿는 건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광기의 현장을 쳐다보며 이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차라리 신들이랑 싸우는 건 현실감이 없어서 괜찮은데, 사지가 잘려서 굴러다니고 객잔에 갇힌 사람들은 공포에 떠는 이 상황이 기분 나쁘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금방 진압될까?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무공을 모른다. 그 말 즉 슨, 내가 신체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예상치 못한 수에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나는 직선으로 우직하게 달려오기만 하면 허접 마인들만 적당히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말이야.

“다 덮쳐! 남궁수호만 죽이면 우리 임무는 끝이다!”

“죽어어어어!”

실핏줄이 터져서 두 눈 시뻘겋게 한 놈 여섯이 달려오는 건 좀 아니지!

나는 급하게 손을 뻗어 좌우에서 날아오는 마인을 막아 냈다. 내가 잡은 마인들 실력은 대동소이 했으니 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가 6명이란 거고.

불꽃이 튄다.

남궁수호가 3명의 검을 검으로 막아 낸 소리였다.

“으윽...”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나는 남궁수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검붉은 기가 서린 검을 보며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남궁수호의 등에 몸을 붙이고 내 이마로 남궁수호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리고 내 머리에 잔잔한 충격이 달렸다.

막은 거 맞지...?

자세가 좀 기괴해지긴 했지만, 위험한순간은 넘겼다. 나는 곧장 몸을 떼어내며 내가 양손으로 붙잡고 있던 마인들을 집어던지곤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정수리를 베려다 부러진 검과, 검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습격자를 보곤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내가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씁.

“뭘 봐?”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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