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330화 (330/352)

〈 330화 〉 강시 아니라고(4)

* * *

수색?

수색을 한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었는 내 청각에도 희미하게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풀숲을 헤치고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습격자? 아니면 이 남자를 찾으려는 사람들?

어느 쪽일까.

소리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적인가요? 아니면 동료?”

“모르오. 하지만...나를 마중 나와 줄 사람이 있을거로 생각하지는 않소.”

그럼 적이란 소리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만큼 마주치지 않는 쪽이 좋았다. 최소한 숨어서 상대의 신원을 파악하는 게 유리했으니까.

“이쪽으로 오시오.”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발로 대강 사람이 있었던 흔적을 지운 후, 조용히 나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계절이 한 여름인지 아니면 봄인지, 나무들이 울창한 덕에 우리는 풀숲에 완전히 몸을 숨긴 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따금 앞서 걸어가나는 남자가 상처 때문인지 멈칫대긴 했지만, 한가하게 쉴 시간 따위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이대로 내려갈 생각인가요?”

“그렇소. 일단은 산에서 내려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배편을 구하든 열차표를 구하든 해야 하오. 그대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니 적어도 만주까지, 아니면 조선까지 가는 열차표를 구해야겠군.”

...돈 없는데.

이 시기의 조선구경도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일단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다. 일단 청나라, 그러니까 중국땅에서 내가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조선에서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그리고 아직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무려 무공이 진짜로 존재하는 세계다.

남궁씨에 사천당가 이야기 나오는 걸 보면 구파일방에 오대 세가도 존재하는 모양이고. 내가 집에 돌아갈 단서를 찾으려면 진짜 신선이 있을 법한 화산이나 무당, 아니면 소림사를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결코 내가 구파일방을 구경해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무림에서 뭔가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신선이랑 접촉할 수 있을 법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그쪽에 있을지 몰라서 가보려는 거지. 아니 그렇잖아. 무협지에서 볼 법한 평범한 무림이어도 가보고 싶을 텐데, 이런 시기의 구파일방이라면 더 궁금하지 않나...?

남궁 뭐시기가 넌지시 망해 버린 사천당가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구파일방 정도면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무당파랑 소림사는 현대에도 살아남은 곳이니까 아직 남아 있을 법 하고.

이런저런 생각하며 나는 군데군데 찢어진 무복을 입고 있는 남궁 세가의 무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다행히도 제때 도망치는데 성공한 건지, 추격자는 없...진 않네.

“...뒤에 숨으시오.”

“...뒤에도 있는데요?”

“무림인이다! 함부로 다가가지 말고 포위하도록!”

홍콩영화에서나 볼 법한 옷을 입은 남자가 소리치자, 우리를 둘러싼 남자들이 죄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어수룩한 동작이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무기를 꺼내 드는 것 자체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검, 창, 쇠스랑, 도끼...뭐야?

무기가 중구난방이네. 무림인보다는 민병대 같은 느낌인데. 얘네들이 그 의화단인가? 이 정도면 그냥 떨쳐 내면 그만 아닌가 싶지만, 수 앞에 장사 없다고 못 해도 스물가까이 되는 인원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답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 말고 남궁 뭐시기가.

나야 도망가려면 그냥 도망칠 수 있었다. 무공같은 건 몰라도, 애초에 내 신체스펙 자체가 인간을 한참 초월한지 오래였으니까. 눈에 띄기 싫어서 그렇지, 무공도 안 배운 일반인들 따돌리는 거야 뜀박질 몇 번 하면 될 일이니까.

에포나가 없는 게 아쉽네. 에포나만 있었어도 이미 중국 대륙을 가로질렀을 텐데. 근데 도와줘야 하나? 재 몸 상태가 말이 아닐 텐데. 아무리 내가 막아줬다지만 거의 코앞에서 터진 폭탄의 여파가 온몸을 덮쳤을 거다.

당장 산을 내려오면서도 이따금 휘청였으니, 싸울 수 있는 몸 상태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내가 싸워야 하나? 우리를 둘러싼 병력을 훑는다. 적당히 제압만 하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내가 힘을 숨겨야 한다지만, 찐따도 아니고 나름 도움을 준 사람을 버릴 순 없잖아. 그렇게 내가 앞으로 나서려고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이놈들! 그 분이 누구신줄 알고 무기를 겨누느냐!”

“뭐, 뭐야?”

“누구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초류연!”

남궁뭐시기랑 비슷한 복장에 잘 정련된 기세를 뿜어내는 무인들. 남궁뭐시기의 목소리가 반가운 기색을 띄는 걸 보니 아는 사이인 것 같네.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의화단의 일을 방해하다니!”

“...창궁무애단이라고 하면, 알겠나?”

“차, 창궁무애단!”

어, 음. 맨날 주인공한테 개기다가 털리는...아니, 아니지. 애초에 남궁 세가가 초중반 사이다의 제물이 하도 자주 되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니들 샌드백으로 너무 많이 나와!

자연스럽게 재내 털리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저런 무인 코스프레하는 팔푼이들한테 지지는 않겠지만.

나는 슬쩍 앞으로 내민 발을 다시 회수했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으니 무공이라도 견식해볼까. 솔직히 아주 관심이 있다. 10대 시절에 내가 얼마나 많은 무협지를 읽었는데. 군대에서도 비치된 무협지를 열심히 읽었다고.

“피차 피를 보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이니, 물러나는 게 어떤가?”

“큭...두고 보자! 애들아! 가자!”

“조, 조장님!”

아니 오합지졸 그 자체잖아. 태생이 민병대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던 녀석이 부리나케 도망치자, 창궁무애단이 남궁뭐시기에게 모여 들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신데 뭐가 괜찮으십니까?! 당장 의원에게 가야겠습니다!”

“진정하게. 일단은 적당한 객잔으로 가세. 겉보기완 다르게 심하게 다친 것이 아니니, 객잔에서 운기를 좀 하면 나아질 거야.”

“그래도...”

“그만. 내 손에 달린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단 말인가? 나는 꼭 가주께서 주신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네...쿨럭...”

니들 나 있는 거 까먹었냐.

“이, 일단 쉬시죠. 그리고 뒤에 있는 여인분은...혹시 당가의 사람입니까?”

“아니다...고향에 가려 이 산을 지나다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간호해준 여인이다. 생명의 은인이니 예를 갖추거라.”

“알겠습니다! 저희 남궁수호 공자님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공! 남궁 세가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남궁 세가가 예전같지 않지만...”

뒷말은 사족이야 이 사람아.

“아니예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아 이거 그만하고 싶다. 슬슬 속이 메스꺼워.

내숭떠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그냥 좀 털털한 스타일로 연기할 걸.

“일단 객잔에 저희와 함께 가시죠. 호위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궁무애단이라 불린 검사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우리를 둘러쌌다. 호위 대형 같은걸까.

호위 대형이 완성되자, 모두가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보폭을 맞추며 객잔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다.

무협하면 객잔, 객잔하면 동소면, 소면하면 죽엽청, 죽엽청하면 점소...이게 아닌가?

아무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두 눈으로! 객잔 체험이라니 이건 못 참지!

나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그들과 함께 객잔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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