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 강시 아니라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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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이 거기서 왜 나와?
의화단이면 무협지에서 숱하게 나오는 송,원,명 시대를 넘어서 청나라, 그것도 청나라 말기에, 한반도 시간대로 따지면 고종이 대한제국 만들고 황제를 자칭하고 있을 시절이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구한 말(?韓?)이라는 거다.
무협지로는 가뭄에 콩 나듯이도 나오지 않는 시기이고, 그나마 홍콩 무협 영화에서나 좀 나오는 시간대였다.
이때쯤이면 서양에서 청나라를 카와이하게 별 모양으로 잘라먹을 시기에다, 총이 발전할 만큼 발전 된 시대이기까지 하네? 게다가 의화단 운동이면 아주 개판이 나도 제대로 난 시기인데 무림이 남아 있긴 한 건가?
그쯤 되면 무공은 사기꾼들이 사기 치는 용도로 밖에 남지 않은 시대 아냐?
어중간한 무림인들은 총알 한 방에 죽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암만 초인 같은 힘을 낸다지만 그래 봐야 납탄 한 방에 골로 가는 건 똑같을 테고.
애초에 무협X청나라 말기라는 기묘한 조합이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판타지 소설 속 용사가 AK47을 성검이랍시고 들고 다니는 거랑 거의 똑같은 수준이잖아.
“...의화단이면, 부청멸양(???)?”
“...그건 어떻게 아시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마라. 내가 의화단 운동에 대해 아는 게 딱 그거밖에 없어서 그래. 기껏 해야 꺼무위키 랜덤으로 돌려보다 나온 게 그거여서 살짝 본 게 전부라고.
백합교인가 백련교인가하는 놈들이랑 붙어먹고 색목인 주거! 하다가 유럽연합군한테 처맞고 망한 그 운동이다. 국사 교과서인가 세계사 교과서인가에도 딱 한 줄 나오는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 그렇게 써 있는 대자보를 본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군요.”
나는 대충 둘러대며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도, 크게 의심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꿔 말하면,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런 외딴 산에,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나타난 여자가 자기를 구해줬으니 뭔가 위화감을 느낄 법은 했으니까. 나라도 의심할 만한 타이밍이다.
“혹시 인근 마을까지 길을 안내해 주실수 있나요?”
최대한 애처롭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눈앞의 남자에게 질문하자, 남자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절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겠소.”
“일단 좀 더 쉬죠.”
얼마나 긴 길이 될지 모르는데, 험한 산길을 좋지 않은 몸으로 막 내려갈 수는 없었다. 내가 이 남자를 들고 뛰면 되겠지만, 나는 최대한 힘을 숨길 생각이었다.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시기라면, 뭐 하나만 잘못해도 수 많은 사람이 죽이려고 달려드는 광기의 시대였으니까. 일단 외국인처럼 생겼다 싶으면 고문하고 죽이고, 말 안 들으면 죽이고, 여자는...우욱.
생각하는 것도 역겹네.
문자 그대로 광기의 시대. 이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릴 수 있는 만큼 사리는 게 좋았다. 내가 살인마도 아니고 달려드는 놈 다 상대하면서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게다가 목이 잘린다?
...개판 나는 거지.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서라도 힘숨찐 마냥 힘을 숨겨야할 필요성이 있다. 쓸데없이 힘을 쓰면 이래저래 경계 받기 너무 쉽기도하고.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네. 물어보세요.”
“소저는 어디로 가려는 것이오?”
...뭐라고 대답하지?
적당히 둘러대는 게 맞겠지. 내 목표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거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간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
“고향에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허어...열차를 타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거요.”
“열차역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네요.”
내 말에 살짝 삭아버린 인상의 청년이 눈가를 찌푸리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자세였다.
“무림인들은 그냥 쉴 때도 그런 자세로 앉나요?”
“걸음마를 할 적부터 이렇게 앉게 되니 습관이 되더군요.”
어릴 적부터 가부좌를 시키니 저게 제일 편해졌다 이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좀 안쓰러운데. 만신창이인데도 저런 포즈로 쉬고 있는 걸 보니까 뭔가 좀 그래.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이 시간에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이나 생각하는 게 낫지.
가능하면 신선을 붙잡든 귀신을 붙잡든지 해서 정보를 캐내고 싶은데, 일단 이 남자를 떼어내야 한다. 물론 그전에 이 남자한테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죄다 뽑아내야 하고. 웬만하면 금전적 도움도 받고 싶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난 ‘고향으로 귀향하려 하는 외국인’ 정도의 포지션을 잡을 생각이고, 짬 좀 먹을 대로 먹고 좀 쉬고 싶은 말년병장처럼 최대한 있는 듯 없는 듯 정보만 빼먹고 사라질 생각이었다.
물론 먼 이국에서 혼자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평범한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아니니까.
“그런데...무림인이라는 걸 어떻게 아셨소?”
아, 실수했나.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아주 잠깐의 시간을 고민한끝에, 나는 이번에도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요즘 세상에 검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무림인 말고 더 있나요?”
“그건 확실히...그렇군.”
의화단도 무술로 외세를 물리친다고 날뛰던 놈들이니 검을 차고 다녀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검이 절대 가격이 싸지 않다. 게다가 저런 좋은 검이면 진짜 무림인이 아니고서야 들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다.
...는 그럴듯한 이유였다.
적당히 생각나는 대로 둘러대는 것뿐이지만 남궁 뭐시기는 납득했는지, 별 말없이 넘어갔다.
“밤이 깊었소. 은공도 이제 쉬시오.”
“아...네.”
뭔가 소름 돋아.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말을 들으니 참 이상한 기분이다. 하루 종일 산속을 돌아다녔던 것도 있어서, 나는 그의 말대로 누워서 쉬기로 했다.
적당한 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흐릿한 서울의 하늘과 다르게 과거의 밤하늘은 별이 가득하...지는 않았다. 단지 몇몇 별들이 이상하리만큼 점멸하고 있었을 뿐. 생각해 보니 중국 쪽 별자리는 별 하나하나가 담당 신이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멍하니 X튜브 틀어놓고 딴 짓하다가 흘려들은 거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별에 대고 소리치면 여기 동네 신들이 반응할까?
당장 시도하면 저놈이 날 미친년으로 보겠지?
헤어지고 나면 몰래 인적 없는 곳에서 한번 해 봐야겠네.
어떻게 불러야 신들이 대답할지 고민하며, 나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시오.”
“세연아...햄버거 좀 그만 처먹어...”
“잠꼬대 하지 마시고 일어나시오!”
아.
“으음...무슨 일이예요?”
체감상 이제 해가 뜰락말락 한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깨운 남궁 뭐시기를 바라보았다. 남궁 뭐시기는 내 얼굴을 보자 잠시 헛기침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 여자의 쌩얼을 함부로 봐서 그런 건가. 얼굴을 살짝 붉힌 걸 보니 그거 맞는 거 같은데. 아니면 자는 사이에 침을 흘렸나 아님 눈곱이라도 끼었나.
아니지, 내 몸 특성상 그런 건 생기지도 않을 텐데.
복장도 노출이라곤 거의 없는 셔츠에 청바지 조합이라 딱히 맨살이 보일 일도 없지. 생각해 보니까 복장관련해선 질문이 안 들어왔네. 그냥 서역에서 입을 법한 옷이라 생각한 건가?
내가 잠시 멍하니 생각하는 동안, 남궁 뭐시기는 불을 피운 흔적을 발로 짓뭉개서 없애버리고, 검을 허리춤에 달고,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심각한 일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어제보다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누군가가 이 주변을 수색하는 것 같소. 도망쳐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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