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 (11)
* * *
“...이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이오?!”
“몰라!”
온몸에 내공을 두르지 않았으면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살가죽이 벗겨졌을지도 모른다고 천마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다. 전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도 이렇게 빠르게 달릴 수는 없다.
천마는 무림에서으로 환생하고 나서 이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다. 생사결이나 사파인과의 전투에서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생살여탈권이 그의 손목을 잡은 여성에게 쥐여져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에포나가 손을 놓친다면, 온몸에 내공을 두른다고 해도 중상을 면치 못하리라.
하지만 슬프게도 선택권 따위는 없다는 사실에, 천마는 통탄을 금하지 못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찾으려는 상대의 위치도 모르면서 도대체 어딜 가고 있는 건지.
“그럼 일단 멈추는 게 어떻겠소! 이러다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럼 방향을 바꾸면 돼!”
미치겠군.
상대가 아름다운 소녀가 아니었다면, 그보다 훨씬 강하지 않았다면 당당하게 욕을 박았으리라. 협객 코스프레 중이어서 욕을 안 한 거지,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알기론 이 숲은 안전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어지간한 국가보다 넓다는 숲의 면적에 수많은 동물들과 괴물들, 요정들이 산다는 숲이 인간에게 친절할 리가. 차라리 감옥이 이 숲보단 안전하리라.
나름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급의 고수였던 천마라도 숲 한복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단 보장이 없다.
“그대가 찾는 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숲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겠소! 그대는 지금 숲 안쪽으로 달려가고 있소!”
“숲 중앙을 지나면 바깥으로 나가는 거니까 바깥으로 나가는 거 맞아!”
“그거참 참신한 발상이오!”
“칭찬 고마워! 너 좋은 애구나!”
“칭찬으로 들리오?!”
미쳐 버리겠군!
천마는 에포나와 도시에서 추격전을 벌인 것을 후회했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눈치껏 놓쳤으면 이런 개고생하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쓸데없이 집착하다 끌려다니는 처지라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달린다. 그리고 또 달린다. 에포나는 주인의 기운을 따라 계속해서 달렸다.
아주 희미한 기운이라도, 그게 주인의 기운이라면 에포나는 주인이 어디에 있든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주 희미한 기운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에포나는 주인님의 냄새. 기운, 취향부터 버릇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스토커처럼 주인님을 따라다닐 수 있다는 소리였다.
“주인님의 냄새! 냄새가 나!”
아직 숲에서 벗어나지 않은걸지도 몰라!
에포나의 다리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천마의 몸에 가해지는 부하도 더욱 강해졌다. 천마는 이를 악물고 내공을 더 많이 두르기 시작했다.
소리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는 미친 말의 질주를 버티기 위해선 더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단전에 남은 내공까지 싹싹 긁어서 써야 할 정도로.
“그래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모르오!?”
“몰라! 가다 보면 만나겠지!”
지나친 속도에 땅이 귀가 찌를 듯이 아프다. 내공으로 온몸을 보호했음에도 천마는 고통을 느꼈다. 소리보다도 빠른 속도를 맨몸으로 견디는 것은 절정 고수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발로 직접 달리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입장이었으니 더더욱.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에포나는 점점 주인님의 기운이 희미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숲의 중앙에 도착하자 주인님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인님?
에포나는 숲의 중앙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주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 이상 더 이상 달리는 일은 무의미했으니까.
천마도 점점 느려지는 속도에 드디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무슨 일이오?”
“주인님의 기운이 사라졌어.”
“그럼 못 찾는 것 아니오?”
“응!”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대책 없는 대답에 천마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럼 이제 어떡할 생각이오?”
“음...주인님을 찾을 거야!”
“어떻게 찾을 거라고 묻고 있는 것이오.”
“대륙을 전부 돌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답 없는 계획이로군.
천마는 당장에라도 튈 수 있도록 발에 슬며시 내공을 실었다. 숲은 수많은 나무들로 직선 주행을 하기 힘드니, 속도가 모자라더라도 따돌릴 수는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그럼 나는 가 봐도 되겠소? 할 일이 있어서 말이오.”
“같이 가야지! 아직 주인님을 못 만났잖아!”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지 않소!”
인내심이 끊어진 천마가 에포나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약자의 입장이라고 하지만 이런 폭거를 참을 수 있는 것은 소림승도 힘들 일이었다.
하지만 에포나는 그의 반발에도 뭐 어쩌라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에포나는 목표가 달성되기 전에는 절대 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얼마 안 걸려!”
“위치를 모른다고 했잖소!”
“전력으로 달리면 일주일 안에 만나지 않을까?”
“일주일 동안 끌려다니란 말이오?! 그대가 양심이 있다면 사람을 일방적으로 끌고 다니면 안 되는 거잖소!”
“하지만 주인님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단 말이야!”
“적어도 내 발로는 뛰게 해주시오. 이대로 가다간 내가 먼저 맞바람에 눌려 죽겠소...”
실제로 그렇게 죽지는 않을 테지만, 천마는 동정심을 절로 불러일으킬 법한 처량한 얼굴로 애원했다. 암만 내공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면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너 느린데?”
“그대가 너무 빠른 것이오!”
이대로 계속 대화하다간 답답해 죽을 것 같군! 답답한 가슴을 펑펑 치며 천마는 에포나를 노려보았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상황임에도 눈앞의 검은 머리 소녀는 앵무새처럼 주인님을 보러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천마는 땅에 드러누워서 강짜라도 부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 비상식적인 소녀는 그가 땅에 드러누워 버리면 발목을 붙잡고 끌고 가겠지. 천마는 눈앞의 소녀가 그렇게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의 말은 듣는 척 조차 안 하는 마이페이스.
그게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느낀 에포나였으니까.
“내가 잡고 뛰면 금방 찾을 수 있어!”
“그러다가 내 목이 망가져서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목이 망가져?”
“그렇소.”
목이 망가지기 전에 몸이 박살 나겠지만. 음속을 넘나드는 속도를 내공 없이 버틸 수는 없으니, 계속 끌려다니다 보면 절대 좋은 꼴을 보지 못하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그건 곤란해!”
“그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발로 뛰어가는 게 맞지 않겠소?”
“그러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말이오.”
천마는 말이 끝나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단전 속의 내공을 확인했다. 나름 1갑자 반이나 되는 내공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5분만 더 달렸더라도 좋은 꼴은 보지 못했으리라.
“에이, 너 몸 약하구나?”
“...그렇소. 소인은 약하니 쉬게 좀 냅두시오...”
천마는 더 이상 반박할 기운도 없었다.
반박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이득이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던 도중이었다.
“...피하시오!!!”
재수도 없군.
천마는 언제 쓰러졌냐는 듯 몸을 튕겨 일어서더니, 에포나의 손을 잡고 땅을 박찼다.
화창한 숲을 뜨거운 열기가 쓸고 지나간다.
닿지 않았음에도 미칠 듯한 열기가 천마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콜록...이런 미친...”
붉고 붉다.
녹음이 우거진 숲에 화염이 들이닥친다. 화염이 파도처럼 숲을 휩쓸고 지나가는 광경에, 천마는 멍한 눈으로 불타기 시작한 숲을 바라보았다.
“와! 대단해!”
“정신 차리시오! 숲이 불타면 그대가 살던 저택도 안전하지 못하잖소?!”
“괜찮아! 이 정도로 안 부서져!”
물어본 내가 잘못이오.
천마는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발에 내공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멀리 도망 쳐야...!!!”
거대한 마력. 천마는 도망치려던 것도 잊고 하늘 위로 시선을 향했다.
그의 시선을 검은 생명체가 가득 채웠다.
“...말도 안 돼.”
“와! 신기해! 저게 뭐야?”
“...정말 모르겠소?”
드래곤이오!
천마가 비명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