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6)
* * *
까마귀.
뒷골목을 양분하는 세력 중 하나인 그들은 여관 안으로 들어간 하만과 에포나를 감시하며 그들의 처우에 대해 논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까마귀의 수장, 갈가마귀는 고민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뒷골목의 불문율을 무시하는 상대를 응징하는 것이 그들의 일 중 하나였지만, 오랜세월 뒷골목에서 살아온 그의 직감이 소리쳤다.
저들을 건드리면 위험할 수 있다고.
아무리 수장의 자리에 앉은지 꽤 된 탓에 녹슬어 버린 감이라고 해도, 직감이라는 걸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를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건 실력과 번뜩이는 직감 덕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의 조직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던 전갈단이 암시장에서 일방적으로 박살 났는데, 까마귀가 대응하지 않는다면 까마귀의 위상에 금이갈 것이 뻔했다.
몇 년 동안의 세력 싸움에서 겨우 우세를 점했는데, 조직원을 위한 복수조차 해주지 않는 집단이라고 인식이 박히면 조직원들의 충성심이 약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보았지 않은가. 검은 머리 미녀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이 나라의 수도에 있다는,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한 정예기사에 필적하는 힘. 그가 부리는 까마귀를 통해 본 에포나의 발차기는 가볍게 걷어찬 것에 불과했음에도 사람을 돌멩이 처럼 날려 버렸다.
그 와중에도 자세는 날카로웠으니, 한 두 번 발차기를 날려본 것이 아닌 모양이라고 갈가마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조직원들이 필요할까.
열? 스물? 백?
어느 쪽이든 수지 맞는 장사가 아니었다. 저쪽이 강자라면, 그들도 그에 걸맞은 강자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방법 밖엔 없었으나, 그런 강자가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닐리도 없다.
그렇다고 치졸하게 저주 같은 것으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힘은 두려운 것이지만, 조직의 위신을 세울 때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으니.
비열함은 악인의 미덕이지만 조직의 미덕은 아니다.
“아주 귀찮은 일이로군.”
“그렇습니다.”
상사의 심중을 헤아린 그의 심복, 막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일은 충분히 골치 아픈 일이었으니까. 그들이 아무리 천이 넘는 조직원을 거느린 범죄조직의 수장이라 하나, 초인적인 힘을 가진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에 비하면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의 옆에서 대책을 강구하던 막심은, 돌연 떠오르는 기억에 눈을 번뜩였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갈가마귀님. 제게 괜찮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 한번 말해 보게.”
“싸우는 것이 굳이 저희 조직원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누가 싸운단 말이냐?”
“...몇달 전에 나타난 정신 나간 놈 기억하십니까?”
“아, 그 이상한 놈 말인가.”
갈가마귀는 몇 달 전 뒷골목에 나타난 청년을 떠올렸다. 뒷골목에 이상한 사람이 흘러들어오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그 청년은 그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특이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기에 그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자기에게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을 허리춤에 찬 검조차 뽑지 않고 주먹과 발로 전부 쓰러트린 청년의 무위도.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뜻 모를 말을 외치곤 했지만, 그 강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따금 뒷골목에 사는 빈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러 오는 그는 뜻 모를 말을 하긴 했지만,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행동을 하곤 했다.
“그놈과 싸움을 붙여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놈을? 어떻게 말인가?”
“그놈은 협행이니 뭐니 하며 눈앞에서 악행을 하는 인간을 보면 제압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적당한 누명을 씌워서 둘을 싸움붙이게 하고, 그들이 지쳤을 때 제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힘을 빼놓고 잡겠다는 거군. 하지만 그놈이 그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나?”
“이기든 말든 시선만 끌어 주면 됩니다. 그사이에 독과 암기를 뿌려 둘을 포획하면 조직의 위신도 서고 조직원들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그 괴짜놈도 저희 조직에 꽤 많은 피해를 입혔고, 그 여자는...극상품이지 않습니까.
붙잡아서 봉인구로 힘을 봉인시키고 경매에 올리기만 해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듯 하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자네의 말대로 하도록 하지. 이번 일은 책임지고 자네가 진행하게.”
“맡겨만 주십시오. 보란 듯이 잡아 오겠습니다.”
막심은 탐욕이 번뜩이는 눈으로 갈가마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흠, 흠~주인님한테 이야기해야지~”
에포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에 앉아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요 며칠간, 에포나는 호기심이 닿는 대로 도시를 돌아다니며 활기찬 도시를 만끽했다. 적어도 수백 년간, 활기찬 도시에 가 본 저기 없었던 에포나였기에 사람이 넘치는 도시란 아주 재밌는 곳이었다.
가판대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물건을 흥정하는 손님들. 각양각색의 복장을 입은 여행객들과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유랑극단의 공연을 구경하며 에포나는 아주 즐거워 했다. 활기차고 명량한 성격의 에포나는 이런 소란스러움을 사랑했다.
그녀에게 정적이란 고통에 불과했으니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하나 떠날 때마다 에포나는 오히려 명랑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는 정적은 싫다.
그녀의 주인마저 조용해졌을 때, 에포나는 도대체 얼마만의 외출인지 알 수조차 없는 시간 만에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그녀가 있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새로운 세상은 아주 흥미로운 것 투성이었다. 그녀가 태어난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생명체들부터 아인종, 성 하나 정도는 몸으로 밀어버릴 수 있을 법한 거대 괴수까지. 세상은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다.
주인님도 같이 여행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에포나는 맨날 방에 앉아 졸기만 하는 그녀의 주인님이 불만이었지만, 이유를 알고 있으니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다. 나리를 잃은 날의 슬픔을 주인인 유진 뿐만이 아니라 그녀도 알고 있었으니까.
나리는 그녀에게도 아주 친한 친구였다.
어두운 생각하지 말자!
기껏 소란스러운 곳에 와서 암울한 생각하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잖아!
시무룩했던 에포나의 얼굴이 금세 미소를 머금었다. 에포나는 이렇게 뛰쳐나온 이상,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즐기고 주인님께 한껏 무용담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방구석에서 칩거하는 주인이라고 해도 그녀의 말은 귀기울여 들어 주곤 했으니까.
에포나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암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녔을까, 에포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여관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멈추시오!”
“나?”
“당신 말고 누가 있소! 이 악적!”
에포나는 갑작스레 자신을 지목하며 소리치는 남성을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복장을 입은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악적이라고 말했다. 에포나는 자신이 그렇게 불릴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었나 골똘히 생각했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 보아도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크흠! 그토록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거늘, 심성이 그리 악할 수가 있다니! 이 몸이 근대의 악한 심성을 단단히 고쳐 놓겠소!”
“무슨 소리야?”
“야야, 싸움나나 본데?”
“저놈 그놈 아니야? 그 단죄니 뭐니 하면서 나대는 놈 있잖아.”
“이름이 특이했던 것 같은데. 그. 처, 처, 처...”
“그것도 기억 못하냐 병신아? 천마잖아 천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