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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319화 (319/352)

〈 319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5)

* * *

암시장의 소란은 금방 뒷골목 전체에 퍼졌다.

대중들은 심심풀이가 될 사건을 좋아했고, 작은 여자애가 발차기 한 방에 거구의 사내를 공처럼 날려 버리는 장면이 결코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제 저쪽 보러 가자!”

그리고 지금 친 사고가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생각하지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지 모를 에포나의 행동에 하만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뒷골목에서 이름 좀 떨친다는 조직들이 소란을 피운 자들을 그냥 놔둘 리는 없으므로, 귀찮아지기 전에 뒷골목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이럴 시간이 없소. 여길 빠져나가야만 하오.”

“왜?”

“...조금 전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까.”

방금 전에 본 까마귀가 하만이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미 이 소란은 이 뒷골목의 지배하는 자들의 귀에 들어갔을게 확실했다. 강함 약함을 떠나서, 뒷골목을 지배하는 조직에게 찍히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해도, 숫자에는 장사없는 법이고, 뒷골목에서 목숨을 노려진 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숨 쉬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노려지게 되니까.

범죄를 여럿 저지른 자들도 대놓고 소란을 피우지 않는 이유였다. 뒷골목의 지배자들은 암시장에서 일어난 소란을 자기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여겼으니. 작은 실랑이라면 모를까, 공개적으로 암시장을 관리하는 조직원들을 박살 낸 상대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 에포나를 데리고 당장에라도 뒷골목 밖으로 나가고 싶은 하만이었지만, 에포나의 괴력에 하만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이든, 다른 전갈단 단원들에게 습격당하는 것은 시간문제.

...어쩌면 하부조직인 전갈단 보다 위쪽의 조직원들이 움직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이 사태를 얼마나 크게 보고 있냐에 따라서 하만의 상황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뒷골목을 지배하는 집단에게 찍힌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결국 하만은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요정이시여. 이곳은 위험하오. 슬슬 이곳에서 나가야 하오.”

“왜 위험해?”

“방금 전에 당신이 쓰러트린 자가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나타날 지도 모르오. 그렇게 되면 아주 곤란해질 거요.”

“음~하지만 약하던데?”

전갈단 대장 같은 거구의 사내가 한 다스로 몰려와도 에포나의 몸에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하리라. 하지만 하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하만은 칼밥 먹은 전사도 아니었고 호신술을 배우지도 않은 평범한 상인이었다.

“그래도 숫자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오. 막말로, 나를 인질로 잡는다면 그대가 날뛸 수 있겠소?”

“그런 거야?”

“그렇소.”

등줄기에 차가운 땀이 흐른다. 하만은 도저히 눈앞의 소녀가 하는 생각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당장 지금도 딱히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서, 하만은 소름이 끼쳤다. 당장 일으킨 일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

인간이 아니기에 그러는 걸까.

아니면 성격 자체가 그런 걸까.

에포나와 하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럼 돌아가자!”

“잘 생각했소.”

둘은 곧장 발길을 돌려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저놈들입니다!”

“이런...달려야 하오! 잡히면 좋은 꼴은 못 볼 테니!”

벌써 온 건가!

하만은 곧바로 에포나의 손목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에포나는 처음에는 하만의 손길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다가, 답답하단 표정을 짓고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종종걸음에서 뜀박질로, 뜀박질에서 질주로.

잔상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가속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모래 먼지가 인다. 어느새 에포나를 끌고 달리던 하만은 에포나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하만이 경악할 즈음, 에포나는 발끝에 힘을 실었다.

“넌 너무 느려!”

“내가 느린 게 아니라 그대가 빠른 것이오!”

정신 나간 속도에 하만이 버티다 못해 소리쳤다. 아무리 빨라도 전력으로 달리는 말보다 빠른 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하만은 당장에라도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직감적으로 손을 놓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손목을 붙잡은 상태였다.

“내 팔이 먼저 떨어지겠소!”

“팔 하나 정도 떨어져도 괜찮지 않아?”

“전혀 안 괜찮소! 사람 팔을 무슨 도마뱀 꼬리처럼 생각하는 거 아니오?!”

당연하게도 사람 팔은 뜯겨나간다고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상식 따윈 싸그리 무시하는 에포나의 발언에 하만은 사색이 된 얼굴로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 정도 속도라면 절대 못 따라오니 슬슬 멈춰도 되겠소! 제발 멈춰주시오!”

“진짜? 알았어!”

피아식별이 불가능할 만큼 정신없이 움직이던 시야가 점점 식별이 가능해질 정도로 보이기 시작하자, 하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버티지 못하고 손을 놓을 뻔했다. 아름다운 소녀와 손을 잡고 달린다는 낭만적인 감상 따위는 사치였다. 낭만 이전에 죽을 뻔했다는 현실이 그의 감상을 뒤덮어 버렸으니까.

“제 명에 못 살겠군...”

에포나에게 끌려다닌 탓에 팔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아플 지경이라 하만은 팔뚝을 연신 주물러댔다.

“여기까지 오면 쫓아오지 못할 거요. 이미 뒷골목은 한참 벗어났으니 말이오.”

“그럼 이제 다른 데 가자!”

“후...일단 숙소에서 쉬는 게 어떻소? 죽을 것 같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 이상 어딜 돌아다니면 제 명에 못 살것 같았다. 인간 아니랄까 봐,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에포나의 변덕스러운 행동은 일개 인간인 하만이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 그럼 가자!”

밥도 사준 인간이 힘들다는데 어쩔 수 없지!

복잡한 건 모른다. 에포나는 그저 관심이 가는 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주인이 칩거에 들어간 지금, 에포나를 막아 세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그녀의 주인은 힘으로도, 말로도 에포나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일개 인간에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나마 그가 밥을 사주었기에 좋은 인간이라 생각하고 ‘지금은’ 말을 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하만과 에포나는 여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쉴 시간이었다.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등 뒤를 까마귀가 은밀히 지켜보고 있음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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