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3)
* * *
“앙? 형씨는 뭔데 참견이야? 피보기 전에 빠지쇼.”
‘그린 듯한 양아치들이군.’
하만이 생각했다. 샤르자라고 뒷골목이 없는 것은 아니고 양아치가 사고를 치는 것을 보곤 했지만, 이 여관에서 대놓고 말썽을 부릴 거라고는 하만도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다른 상인들이 그를 구해 준 에포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대놓고 행동을 보일 줄이야.
하만은 양아치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뒷배가 없다면, 이곳에서 말썽을 부릴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니.
“이분은 내 손님이다. 남의 손님은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이곳의 법도인 것을 모르나?”
상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용이다.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가 거래를 약속하는 대로 이행할지의 여부이니, 거래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신용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신용이 없다면 상대가 어떤 제안을 한들 믿을 수가 없을 테니.
심지어 샤르자는 한 때 상인들 끼리의 분쟁으로 내전까지 일어난 도시였다. 그 전쟁으로 인해 샤르자가 무역거점으로서의 가치를 꽤 오랫동안 잃었다는 점 때문에라도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상인들도 다른 사람의 손님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켰다.
“허, 그건 상인들한테나 통용되는 거 몰라? 이거 완전 샌님이구만. 그 잘난 법도는 우리 같은 놈들에게는 의미가 없단 말이외다.”
양아치들의 타깃이 에포나에게서 하만으로 바뀌었다. 하만은 양아치 둘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향하자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상인의 미소는 여러 가지 뜻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상대를 주춤하게 만든다.
뭔가 뒷배가 있나? 이놈이 왜 자신만만하지? 아무것도 없어도 쓸데없이 자신만만 하면 상대가 생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하만의 기만술이 성공하지 못했다.
“이 도시에서 이름도 안 알려진 잡상인따위가 지금 우리한테 건방지게 굴어?”
‘이런, 실패했군.’
하만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양아치에게 멱살을 잡힌 탓이었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하만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양아치에게 붙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여관의 신고를 받은 위병이 오겠지만, 그 전에 어디 하나는 나갈 판이었다.
“뭐 해?”
“엉? 거 예쁜 얼굴에 상처나기 싫으면 가만히 있지?”
양아치가 치근덕대든 말든 음식을 음미하고 있었던 에포나가 드디어 관심을 가지고 양아치를 올려다보았다. 양아치 중 하나가 휘파람을 불었다. 팔아치우면 거대한 저택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미모였다.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소녀는 양아치를 올려다본 채로 닭 다리를 뜯었다. 위기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였다. 백치미가 느껴지는 소녀의 행동에 양아치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러싸여있는데도 소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마치 밥을 먹으면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라, 양아치들은 그들이 타깃으로 삼았던 소녀가 실은 제정신이 아닌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멍청한 년이. 우리가 우습냐?”
“내 닭 다리...”
거구의 양아치가 소녀가 들고 있던 닭 다리를 쳐날리며 위협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녀, 에포나는 땅에 떨어진 닭 다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슬픈 눈으로 닭 다리를 바라보던 에포나는 양아치를 올려다보았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였다. 그 모습도 혹할 정도로 아름다웠던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소녀의 얼굴에 꽂혔다.
“그렇게 쳐다 보면 어쩔 건데. 이 쪼끄만 년이...!!!”
북터지는 소리가 여관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산만한 거구가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과정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빠른 출수였다. 에포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양아치의 배에 주먹을 날리고는 포크로 샐러드에 들어가 있는 당근을 찍어먹었다.
“먹는 걸 함부로 하면 안 돼.”
그게 문제였냐고!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딴죽을 걸었다. 양아치들은 쓰러진 동료를 보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양아치들의 강약약강 사고가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진짜 뒤진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우리 두목님이 아시면 넌 끝장이야!”
양아치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소리쳤다. 겁먹은 강아지가 짖어대듯이 외치는 양아치의 말에 그 누구도 위협을 느낄리가 없었다. 하만은 어이없는 상황에 멱살을 잡힌 채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치 삼류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양아치들처럼, 그들은 에포나가 다가오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에포나는 당근을 우물거리며 하만의 멱살을 잡은 양아치의 손목을 후려쳤다.
바람을 찢는 살벌한 소리를 내며 작렬한 에포나의 손날이 양아치의 손목에 닿자,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양아치가 울부짖었다.
“으아악!”
“거...참. 잠자는 드래곤을 깨웠군.”
하만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마차를 들고 사막을 횡단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무지막지한 괴력이었다. 일개 양아치들 따위는 세자릿수로 와도 아무렇지 않게 박살 날 낼 수 있을 만큼.
어쩌면 정말 오우거에 필적할 수준일지도 모른다.
양아치들이 사라지자, 에포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하기 시작했다. 하만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에포나를 바라보다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고맙소.”
“주인님이 음식 함부로 하는 놈들은 혼내줘야 한다고 그랬어.”
“주인님이라...섬기는 분이 있으시오?”
“응! 주인님은 밥도 잘해주고, 놀아주기도하고, 마법도 할 줄 알아!”
주인이라 불리는 자는 꽤 마법사인 것 같군.
마법사는 정말귀한 존재였기 때문에, 일반인은 평생 보기도 힘든 경우가 많았다. 마법사의 시종이라면 어느 정도 저 강함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마법사의 시종이라고 해 봐야 보통 같은 마법사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에포나의 존재는 여전히 미스테리 했다.
“주인님이 요즘 방에서 안 나와서 나 혼자 나와서 세상구경하러 나왔지! 주인님이 날 타고 같이 여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내가 뭔갈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탄단 말인가. 자네를?”
“응! 난 에포나니까!”
대답이 전혀 되지 않는 답변에 하만이 묘한 눈으로 에포나를 바라보았다. 타고다닌다고? 이 소녀를? 도대체 주인이란 작자는 뭐 하는 작자인가.
에포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묘해졌다.
“그렇군...”
하만은 에포나의 주인이란 자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언제 나갈 거야? 벌써 좀이 쑤셔!”
“지금 나가도록 하겠네.”
식사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식탁은 에포나에 의해 굶주린 거지떼가 지나간 것처럼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하만은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소녀를 데리고 도시 구경을 하기 위해 여관을 나섰다.
“여기가 샤르지의 행정을 담당하는 시청이오.”
“와! 지붕이 둥그랗네!”
‘왜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지 모르겠군.’
하만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옆에 있어야 할 에포나가 없었다. 하만은 잽싸게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요!”
“달려서 올라왔어!”
행인들의 시선이 두 남녀에게 향했다. 하만은 지붕 위에 올라탄 에포나를, 에포나는 울타리 밖에서 하만을 내려다보았다. 하만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요정들은 말썽꾸러기라더니, 정말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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