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2)
* * *
“정말로...살았군.”
마차 밖의 광경을 보며 하만이 중얼거렸다. 사막을 건너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도시인 샤르자에 도착한 첫 소감이었다.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도시에 이렇게 도착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하만은 도시의 땅을 밞았음에도 긴가민가한 얼굴로 도시한복판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도시네! 재밌는 게 많을 거 같아!”
“정말...고맙소.”
“아니야!”
“답례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만, 괜찮습니까?”
“밥? 밥이면 언제나 환영이야!”
...엄청나게 밝으신 분이로군. 하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텐션을 가진 요정, 아니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많이 소란스러운 성격이긴 했지만, 그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고, 하만은 적어도 은혜를 갚을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짐이 없다면 모를까 짐도 함께 실려왔으므로, 에포나를 대접할 여력도 충분했고.
“자, 가시죠. 제가 잘 아는 여관이 있는데,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하만은 짐을 창고에 맡겨 놓고 에포나를 이 도시에서도 유명한 여관인 ‘모래바람’ 여관으로 데려갔다. 모래바람 여관은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여관이었고, 돈이 많은 상인들이 부하들과 함께 주로 이용하는 여관이었다.
상인들이 많이 모여 있어 근처에서 흘러들어온 소문을 듣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기도하고, 손님들이 대부분 같은 상인이기에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여관에 묵는 영세상인들도 존재했다.
“어서 옵쇼!”
“식사를 가져다주게. 사막을 건너느라 지쳤으니 이왕이면 화려하게 말일세. 조용한 자리면 더 좋고.”
본래라면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소문을 주워들으려 했겠지만,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에포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온 것이었기에 일부러 구석진 자리를 요구했다. 구석진 자리라고 주변 상인들이 이야기하는 소문을 아예 듣지도 못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 손해도 아니었다.
“물론이죠 나으리!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만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잽싸게 나타난 여관 직원에게 꽤 많은 돈을 손에 쥐여주며 식사를 요청했다. 여관직원은 손에 쥐인 금화에 밝은 미소를 짓고는, 하만과 에포나를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이 여관의 주방장이 요리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요.”
“맛있겠다!”
“그렇습니다. 부드럽게 속을 달래주는 야채 스프에 야들야들한 살결을 자랑하는 닭고기와 감칠맛이 나는 꼬치를 양념에 찍어먹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지요.”
“고기? 나는 야채가 더 좋은데!”
“걱정 마십시오. 고기를 잘 먹지 못 하는 분들을 위해 야채들로 이루어진 요리들도 나오니까요.”
하만은 에포나의 투정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온갖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인 만큼 이곳의 요리는 종류도 많고 다양했다. 사막의 서쪽에 위치한 해안 가에서 매일 마법으로 잡혀 오는 싱싱한 해산물과, 북쪽의 평원에서 넘어오는 야채들, 동쪽의 산맥에서 사냥되어 잡혀 오는 동물들까지.
대륙 최고의 교역도시라 불리는 샤르자의 이름에 걸맞은 풍부한 재료공급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혹, 여행을 나오신 목적에 대해서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목적?”
“그렇습니다.”
눈앞의 소녀는 왜 여행하는가. 하만이 소녀와 동행하면서 줄곧 생각했던 의문이었다. 애초에 맨몸으로 사막을 건너는 말도 안 되는 행동도 그렇고, 인간 같지 않은 힘과 자유분방한 성격까지, 하만은 눈앞의 소녀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런 소녀와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다고 상인으로서의 직감이 소리쳤다.
가능하면 이대로 계속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리라. 하만은 직원이 요리를 테이블에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음~그냥?”
“목적이 없다는...말입니까?”
“사실 저택에 있기 심심해서 뛰쳐나온 거거든! 이 땅에는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하고 말이야!”
“그렇습니까...”
목적 없는 여행자라. 참 기묘한 이야기였다. 목적 없는 여행은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거기에 ‘저택’이라...하만은 눈앞의 상대가 예상외로 꽤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가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하며, 도저히 여행자 같지 않은 차림새에 하얀 피부까지, 어딜 보아도 여행자라고 부르기 힘든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신체능력을 갖춘 것은 몇몇 가문이 가진 축복이라고 하면 아주 말이 안 되지는 않았으니까.
“와! 요리 많네! 이건 뭐야?”
“사막에서만 잡힌다는 레드 스콜피온을 쪄서 만든 스콜피온 찜입니다. 이렇게 껍질을 반으로 갈라 먹...”
우걱우걱!
“어야 합니다만 에포나님이 그게 편하시다면야...”
레드 스콜피온의 갑각은 엄청 단단하기로 유명한데 그걸 어떻게 씹어먹는 거지. 하만은 잠시 벙찐 얼굴로 에포나를 바라보았지만, 에포나는 레드 스콜피온을 통째로 씹어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거 맛있네!”
“다행이군요.”
“이건 뭐야?”
“아, 그건 사리마녹이라는 새를 통째로 구운 것입니다. 사리마녹이라는 새는 물고기를 먹고살기에 닭의 변종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맛이 느껴지는 아주 특이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입니다.”
“진짜네! 물고기 맛이 나!”
하만은 느긋하게 스프를 떠먹으며 테이블에 올라온 요리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에포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 드시니 좋군. 워낙 활기차게 먹어 치우는 통에 주변 상인들의 시선이 에포나와 하만에게 꽃혔지만, 하만과 에포나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둘 다 다른 의미로 시선 받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둘의 식사는 소란스럽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테이블 위의 요리가 전부 깨끗하게 비워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대부분 에포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맛있었어! 고마워!”
“하하, 별말씀을요.”
“그럼 나는 가 볼게!”
‘이렇게 갑자기?’
에포나가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이별 선언에 하만은 당황하며 에포나를 올려다보았다. 에포나는 왜 그렇게 쳐다보는 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하만을 내려다보았다.
“그,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응! 이 도시는 재밌어 보이니까 한 바퀴 돌고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안내인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이 근방의 지리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샤르자와 포르샤를 오가며 장사하는 장사치라 이 근방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꼭 잡아야 해!
하만의 상인으로서으 직감이 소리쳤다. 다른 건 몰라도, 쉽게 마주칠 수없는 인연이었으므로 하만은 최소한 인연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직감했다. 상인에게 이런 우연한 만남은 예기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했으므로.
애초에 그가 사막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눈앞의 소녀이니만큼 상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은혜를 갚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이 사막의 법도였으니까. 상인은 언제나 은원이 확실해야 했다.
은원이란 곧 돈과도 연관이 있었으므로.
게다가 반나절 동안 겪은 소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어디 가서 사기라도 당하지 않을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사기꾼이나 인신매매범이같이 어디 좀 가자고 하면 곧이곧대로 따라갈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안내인? 안내 해주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럼 안내해 줘! 재밌겠다!”
“하하.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짐을 전부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여관에 방을 잡고 짐을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혹, 이곳에서 묵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음~아니! 나는 달릴 거야!”
하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당장 눈앞의 소녀가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무섭게 달리는지 체험한 장본인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시가지에서 달리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 있기에, 절대로 달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이곳은 사람이 많아 함부로 달리면 안 됩니다.”
“재미없어!”
“대신 제가 이 도시의 명물들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하만은 의자옆에 내려놓았던 짐을 들고 카운터에서 방을 두 개 잡고는, 짐을 내려놓으려 올라갔다.
“허...”
짐을 전부 내려놓은 하만은 다시 식당으로 나왔다. 다시 찾아온 식당은 아까에 비해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만의 시선이 에포나가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하만 기다려야 돼!”
“그러지 말고 어떻습니까. 우리 나으리께선 이래 봬도 이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거상이십니다...”
‘골치 아프게 됐군.’
하만은 에포나에게 치근덕 대는 하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여관이었도, 이용하는 자가 고급스럽지 못하다면 이런 일도 드물게 일어나는 법이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하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에포나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누가 보아도 노기를 띈 얼굴이었다.
하만은 에포나에게 치근대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게, 자네들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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