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에포나의 기묘한 모험(1)
* * *
“미치겠군.”
사막을 건너던 남성, 하만은 사막 한복판에서 한탄했다.
이대로면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될것은 뻔한 일이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조난당한 여행자가 흔히들 겪는 결말이었다. 그도 사막을 지나오면서 모래에 파묻힌 시체들을 몇구나 보았는지 생각해 본다면, 곧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기 직전이 되니 별의 별생각이 다 드는군.
하만은 사막 전갈의 습격으로 죽어 버린 낙타옆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호신용 무기로 어떻게든 전갈을 죽이긴 했지만, 낙타는 이미 죽은 뒤였다.
살갗을 태워 버릴 더위에, 사막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즐비한 곳에서 멈춰 선다는 것은 곧 죽기를 원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하만에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짐을 전부 버려놓고 도망친다 한들, 알 거지가 되어서 사막 지역에선 값비싼 식수를 사지도 못하고 말라 죽어버릴게 뻔했다. 몬스터들의 밥이 되느냐, 아니면 사막 한복판에서 말라 죽느냐, 잔인한 이지 선다가 그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확실하게 목숨을 잃을게 뻔했기에, 하만은 자기 마차와 함께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하다못해 오아시스라든지, 외곽이었다면 이런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은 사막의 중심부.
도저히 걸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차 안에는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식량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 일주일을 더 버티어보아도 죽기까지의 시간을 더 벌릴뿐. 하만은 희망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복판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이한 불청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저씨 여기서 뭐 해?”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누구냐 넌?”
내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건가? 하만은 어릴 적들었던 사막의 전설을 떠올렸다.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에게 이따금 나타난다는 요정의 전설. 요정인 사막 한복판에서 길 잃은 자가 사막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 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해내려오는 오래된 전설은 그의 머리 한구석에서 잊혀져 있었지만, 눈앞에 나타난 소녀를 보며 하만은 다시금 그 전설을 떠올렸다.
...전설 속의 요정이라기엔 다소 기묘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사막을 건너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다리가 훤히 노출된 반바지에,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반팔, 허리에 묶은 옷가지. 아무리 보아도 사막을 돌아다닐 만한 복장은 아니었기에 눈앞의 소녀를 바라본 하만의 얼굴이 멍해졌다.
복장뿐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소녀는 요정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윤기 넘치는 검은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 푸르른 눈. 자그마한 입술. 오뚝한 코.
그림에서 튀어난 것 같은 외모의 미인.
요정이라 그런지 복장도 기묘하군.
하만은 눈앞의 소녀를 요정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복장의 기묘함이야 요정이니 그렇다 치고, 애초에 저런 가벼운 복장으로 사막을 돌아다니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 당신은 요정님이십니까?”
“요정?”
“그렇습니다. 이 사막에 떠돌아다니는 전설입니다만, 당신은 저를 구해주러 오신 요정님입니까?”
“아닌데?”
“...그럼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말이야!”
요정들 이름은 저렇게 특이한건가? 요정들의 이름은 해괴망칙하다고 들었지만, 자기를 말이라고 소개하는 요정이라니. 기묘하군.
“그, 그렇군요. 그럼 말님. 어떻게 그런 가벼운 복장으로 이 사막을 건너가시는 겁니까...?”
뒤에 상인 행렬이라도 있는 걸까. 하만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떠올렸다. 요정이 아니라면 인간이란 뜻이고, 그럼 혼자서 이 사막을 건널 수는 없을 테니.
“뛰어서 가는데?”
“네?”
“뛰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보고 있는 게 혹시 요정이 아니라 사신이었나. 태연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고 있는 눈앞의 소녀를 보며 하만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막을 뛰어?
자살도 그렇게 미련한 자살이 아닐 수가 없다. 어떤 미친놈이 사막을 뛰어서 건너갈 생각을 하겠는가. 철저하게 준비해서 탈것까지 동원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 사막인데, 뛰어서 사막을 가로지른다?
사막 오아시스에 사는 사막민족들도 고개를 저을 만한 헛소리였다.
“후...헛것이라면 그냥 사라져 주게.”
“아저씨 평소에 밥 골고루 안 먹었어? 주인님이 고기든 야채든 골고루 먹어야 헛것이 안 보인다고 했는데, 편식하면 안 돼!”
“미치겠군.”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인데 편식은 또 뭔가. 눈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소녀가 당장 꺼져 줬으면 좋겠다고 하만은 생각했다.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헛소린가? 헛소리만 할 거라면 갈길 가시게.”
“왜 죽어?”
“사막 한복판에서 낙타를 잃었다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모르나!”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저년은 죽기 전에 나를 비웃으러 온 악마인가!
하만은 죽어 버린 낙타의 시체를 손으로 치며 고함쳤다. 모래바람에 입안까지 모래가 들어갔지만, 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분노섞인 외침에, 소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하만과 낙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해되지 않는단 얼굴이었다.
“도와줄까?”
“헛소리하지 말고 꺼져! 네년 따위가 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냐! 썩 물러가라!”
“음~이렇게?”
소녀는 그가 기대고 있던 마차로 다가가, 마차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짐이 가득 실린 마차 답지 않게 마차는 소녀가 번쩍 든 팔에 올려져있었다.
짐이 가득실린 마차를 저렇게 번쩍 들려면 오우거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미치겠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만은 장난감처럼 번쩍 들어 올려진 마차와 소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녀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자!”
어쩌면, 아주 고약한 요정을 만난 걸지도 모르겠군.
하만은 안도감과 허탈함이 뒤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에서 꼼짝없이 말라죽은 시체가 되는 것 보다야, 저 정신나간 소녀를 따라가는 것이 살아남기엔 더 좋을테니까.
"어서 타!"
"어디에 말인가?"
"음~마차에 타! 전력으로 달릴거니까!"
"...우선 내려놓고 이야기해주지 않겠나?"
"아! 그렇네!"
남자는 소녀가 내려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레 번쩍 들린 탓에 몇몇 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어차피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럼 가즈아~! 꽉 잡아!"
마차를 번쩍 든 소녀, 에포나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난 망아지, 에포나의 첫 모험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