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 외전:10주년 방송(2)
* * *
“...이 방도 벌써 10년이나 썼네.”
매일 드나드는 방인데도 10년이나 썼다고 생각하니까 감회가 새롭단 말이야. 이제는 이 방에서 하는 방송이 아니면 뭔가 불편해. 뭐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어쨌든 10년 전이랑 비교하면 컴퓨터도 바뀌고 책상도 바꿨지.
방송하다 부셔먹어서 그런 거지만...벌칙 방송으로 호러게임 추천 좀 그만해! 방에 피칠갑 된 거 벗겨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망할 놈의 시청자들은 내가 공포게임 할 때마다 방에 피 냄새가 진동하는 건 모르겠지!
으아악!
...의자에 앉아 방을 둘러본다. 한 구석에는 10년 동안 썼던 방송기재들이, 책상 한 구석에는 어느 정도 보급화 된 트래킹 장비들이, 그 옆에는 VR용 장비가. 세상이 변하면서 내 방송실의 기기들도 점점 다양하게 추가되었다.
요즘은 VR방송도 많이 하다 보니까 점점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진단 말이야. 아예 전문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노가리 방송도 VR로 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방송 진입비용도 높아졌다는 소리가 자주 나오곤 한다.
하지만 애초에 각 잡고 방송하려고 하면 돈 깨지는 건 무슨 분야든 똑같다고. 어디는 덜 들어가고 어디는 안 들어가고 그런 거 없어. 결국 개인 사업이라는 건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게 있는 법이니까.
요즘은 인터넷 방송인이나 시청자 숫자나 너무 많아져서 잘 나가는 방송은 10만 단위까지 찍는 시대라 인터넷 방송인이 진지하게 각광받는다지만...뭐. 여전히 인터넷 방송은 블러드오션이다. 우리 회사에 소속된 애들도 나나 한솔이 네임밸류로 대기업된 애들이 많기도 하고.
하꼬는 이제 수십만 단위로 세어야할 지경이고,
그런 시장에서 나름 10년을 버틴 나는 방송인으로서 꽤 고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솔직히 무난하게 순항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사고를 치거나 아니면 건강 문제로 그만두거나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곤 했었는데, 10년 동안 별 문제없이 계속 갈 수 있을 줄은 몰랐지.
근데 계속 보니까 기기들 책상위에 널려있는 게 좀 거슬리네. 좀 치워놓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책상위의 기기들을 정리했다. 암만 보급화 된 기기라고 해도 백만원 단위는 하는 물건들인지라 실수로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쓰면서 나름 정도 든 기기들이고.
머리카락으로 여러 개를 집어 차곡차곡 정리하니 책상은 금세 깔끔해졌다. 생각해보니까 보통은 세연이가 청소 해 놨을 텐데 오늘은 그대로네. 나중에 하려고 그랬나? 하긴 보통 점심때 쯤 돼서나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좀 늦는다고 큰 문제는 없지.
나는 컴퓨터를 켜고 기지개를 폈다. 내 몸이 기지개를 편다고 좀 개운해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기분 전환으로는 나쁘지 않지. 내 몸은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늙어가는 데 언제나 똑같은 모습인 스트리머라니,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싶지만, 5년 가까이 주름 하나 안 생기는 엘프 스트리머도 있는데 이제 와서 크게 놀랄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나는 이유진이라는 이름으로 변이자대책본부의 일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듀라=이유진이라는 건 알음알음 알려진 상태였다. 애초에 내가 방송에서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애들이 다 크기 전까지는 혹시 모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으니까.
이제는 애들도 클 만큼 컸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방송하는 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라 10주년 기념으로 얼굴 공개를 할 생각이었다.
10년 동안 버튜버 활동 했으면 충분하지. 시대가 많이 변하다보니 트렌드 따라가기도 힘들고, 이젠 알고 있던 버튜버들은 대부분 은퇴해서 같이 합방할 사람 찾기도 힘들었다. 기껏해야 내 회사 소속 스트리머들과 합방을 정도였지만 이건 이것대로 사장인 나를 어려워하는 애들이 많아서...오히려 찐팬이라 내가 부담스러운 방송도 있고.
하긴 젊으면 20대 초반인 애들 노는데 이제 40을 바라보는 중년이 껴있으면 부담스러울만 하지. 나라도 그런 상황이면 부담스러워서 멘트도 제대로 못 칠거야.
결코 내가 듀라한이라서 애들이 식겁하는 건 아니라고 믿어.
나아도 내 회사에서 마음 편하게 머리만 써서 일하고 싶단 말이야. 솔직히 듀라한이 아직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긴 해도 나름 이름값이 있는데 그 정도는 괜찮잖아? 내가 듀라한인 거 모르는 사람 이 세상에 없을 걸?
내가 광고도 나가보고 강연도 나가보고 멘토링도 해봤는데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이제 굳이 숨길 필요성도 없어졌고.
시청자들 반응은 어떠려나.
놀라는 척을 해줄까?
아니면 정말로 놀랄까?
10년 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유명 스트리머가 얼굴을 공개하는 건 분명 큰 사건이지만, 알음알음 얼굴이 알려져 있는 나니까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싫어하진 않겠지?
어쩌면 내가 버튜버라서 보던 사람도 있겠지만, 나를 좋아해서 보는 사람도 있엇을 테니까.
방송 세팅을 마친다.
10년 동안 해온 일이니만큼 몇분 걸리지도 않는 단순한 반복 작업. 켜고, 끄고, 켜고, 끄고.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면 자동으로 세팅이 될 만큼 익숙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릴까.
“유진아, 떨리나봐?”
“떨리긴. 그냥 감상에 젖어있었을 뿐이야.”
“그래?”
10년 동안 지정석이었던 곳에 앉은 세연이가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면 세연이도 10년이나 지났는데 그대로네. 뭐 빈약한 몸이야 귀신이니까 변할 이유가 없고,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도 놀라울 만큼 바뀌지 않았어.
어쩌면 나처럼 정신적으로도 나이를 먹지 않는 유일한 친구가 아닐까? 나리가 커가면서 편식을 하지 않게 되었듯이 말이야.
“벌써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네.”
“...그렇지. 그 때는 매일 햄버거만 외치는 귀신이었는데 말이야.”
“...그건 흑역사니까 잊어줘.”
“이제와서 그래봐야 소용없이 이 햄버거 성애자야.”
“하지만 햄버거는 맛있는 걸.”
네가 10년 동안 먹은 햄버거 숫자가 만개는 넘을거다. 오죽하면 패스트푸드점에 갈 때마다 직원들이 알아서 메뉴를 척척 만들어올까. 덕분에 나는 햄버거는 거의 먹지도 않는데 햄버거 성애자로 소문이 나버렸다고!
그렇다고 내가 햄버거를 먹을 수도 없고!
x렌 버핏도 아니고 내가 패스트푸드 마니아가 되어버리다니!
아이고난!
...이것도 도대체 언제 적 밈이더라.
“오늘은 일 빡세겠네. 평소보다 시청자 수도 많겠네. 으, 또 5만명 넘는 거 아니지? 그럼 진짜 힘든데. 어차피 일은 봇이 다하니까 못 찝어내는 것만 찾아서 밴하면 된다지만...”
“그렇겠지...좀만 수고해줘. 오늘은 햄버거 세트 원하는 만큼 사줄 테니까.”
“오케이! 열심히 할게!”
또 10개씩 시키는 거 아니겠지? 저번에 맘껏 시키라고 하니까 열 두 개 정도 시켜서 먹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귀신은 배부르단 개념이 없나? 그렇게 먹고도 뭔가 모자라단 듯이 말하던데 x오나시야?
“근데 유진아, 괜찮겠어?”
“왜?”
“얼굴 드러내는 거 말이야.”
세연이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방송에 타격이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버튜버로서의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겠지. 세상엔 굳이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넘쳐나니까.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이미 10년이나 한 방송이고, 콘크리트 층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내가 얼굴을 공개한다고 실망하지는 않겠지. 물론 반발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일단 드러낼래.
“괜찮아 괜찮아. 언젠가는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 십년 동안 했으면 충분히 많이 한 거야. 방송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얼굴 공개는 필수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게다가 나도 이제 방송 10년차 베테랑이야.
어지간한 상황은 다 겪어봤고 무난하게 대처해 왔다고. 이제 와서 사소한 이슈로 무너질 내가 아니다 이 말이야.“
“하긴, 너라면 잘 해낼거야.”
“내가 누군데.”
조금 자뻑 같지만 오늘 만큼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오늘의 방송이 10년동안의 나를 되돌아보는 방송이 될 테니까.
“으, 시청자들 팍팍 들어오네. 세연아, 너도 자리에 앉아. 이제 방송 시작해야지.”
5만명...예상했던 것보다 증가폭이 큰데? 잘하면 10만명도 가능할지 몰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까. 나는 끝없이 오르는 시청자 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든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 신경 끄자.
어차피 오늘의 나를 평가하는 건 내일의 사람들이니까.
나는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입을 열어 방송 시작 멘트를 쳤다.
“듀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