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화 〉 외전:10주년 방송(1)
* * *
“시간 참 빠르다. 내가 너 출근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이야기 벌써 10번 넘게 한 거 알아요?”
“아니, 그 만큼 신기하니까 그렇지.”
그 수다쟁이 여중생이 이제 직장인이라니.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너무 빠르잖아. 솔직히 이 집에서 살다보면 시간감각이 이상해져서,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아는데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지.
그도 그럴게,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한솔이도, 에포나도. 그나마 나리는 좀 자라긴 했지만, 그게 10년치 성장이라고 하기엔...좀 느렸다. 이제 잘 쳐주면 고등학생 정도일까.
10년 정도는 지나야 20살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어쩌면 20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엘프의 생태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내가 친한 엘프라곤 나리랑 그 옷가게 점원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면 없는 일이었다.
당장 변이자 엘프들도 성장속도가 천차만별이라 아직도 엘프의 수명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하고. 확실한건 사람보다는 평균 수명이 높다는 정도? 당장 나리네 엘프들 어르신은 300살도 넘게 사셨다니까 뭐.
생각해보니까 나도 몇 년 더 지나면 40대인데? 새삼스럽지만 나도 나이를 많이 먹긴 했어. 외견연령은 처음 변했을 때랑 차이가 거의 없기는 하지만. 시청자들은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젠 그 자식이 내 방송을 보기까지 하는데 말야...
내 방송을 자식까지 보게 하다니, 애들 교육에 안 좋다고. 그래도 애들 보는 걸 알고 있으니까 수위조절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녀올게요~”
“다녀와~”
나는 유라를 보내고, 쇼파에 앉아 축 늘어졌다. 내 시야 끝에 천장을 닦는 세연이가 보였다. 근데 천장까지 닦을 필요가 있는 건가? 천장에 먼지가 붙긴 한..,가? 뭐 10년 넘게 청소를 하고 있는데 세연이게 맞겠지?
“엄마, 여기서 뭐해요?”
“아, 그냥 쉬고 있지.”
나리였다. 나리는 밖에 나가려는 듯, 외출복을 입고 가방을 맨 채였다. 아, 오늘은 일찍 나가는 날인가. 오늘 강의가 일찍 있나보네.
“오늘은 언제 돌아오니?”
“어...아마 친구들이랑 저녁 먹고 들어올 테니까 9시? 쯤은 될 것 같아요.”
“그래? 잘 다녀오고, 용돈 줄까?”
“...충분해요.”
아...그래. 내가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넣어 줬으니까 넉넉한가? 솔직히 외식을 거의 안하니까 요즘 물가가 어떤지 잘 모르겠어. 야채 가격은 조금 오르기는 했는데...그럼 오늘 저녁은 조금만 하면 되는 건가.
오랜만에 유라랑 에포나랑 셋이서 먹게 되겠네.
아침은...적당히 챙겨먹고, 방송 준비나 할까. 10주년 방송이니까 준비해야 될 것도 많고...방송 기재도 새로 들여왔으니 테스트도 해봐야지. 진짜, 내가 10주년 방송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막연하게 몇 년 하다가 그만두면 되겠지 싶었는데, 1년, 또 1년 하다가 보니 10년을 채우네. 별다른 사건 사고도 없이 롱런할 줄이야.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 사이에 사라진 방송인들이 산처럼 쌓여있는데 말이야.
큰 사고치고 방송을 그만둔 사람도 있고, 결혼하면서 그만둔 사람도 있고, 그냥 나이 때문에 은퇴한 사람도 있고...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그 자리를 새로운 방송인들이 채우다보니까 이제는 내가 아는 방송인도 얼마 안 되더라.
나랑 합방했던 사람 중에 지금도 방송하는 사람이 손에 꼽으니까...시영이도 지금은 결혼해서 버튜버는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한솔이도 몇 년 전에 결혼해서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고, 라쿤 박사님은 은퇴해서 잘 살고 계시고.
마리아도 나이를 좀 먹긴 했는지 요즘은 게임을 줄...였을 리가 없지. 내가 보기에 개는 무조건 게임하다 죽을 거야. 그래도 편집 일은 곧잘 하니까 딱히 터치할 생각은 없지만. 회사 규모도 좀 커져서 모범이 됐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이제 부사장인데 한결같이 그러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뭐 본인은 잘 숨기고 있긴 하지만. 회사도 건물을 사서 아예 방을 따로 만들어 놨으니 어지간해서 들킬 일도 없고. 쓸데없이 커진 감이 있긴 한데, 그래도 규모가 엄청 큰 건 아니니까 아직까지는 할 만하지. 솔직히 이젠 방송 그만두고 회사 사장 노릇하면서 살아도 될 것 같기는 해. 까놓고 이제 회사도 커져서 버는 돈도 꽤 크고. 소속된 스트리머만 30명 가까이 되고.
이 바닥에서 10년이면 진짜 오래 버틴 거니까, 솔직히 10년 넘게 인터넷 방송에서 살아있는 사람 정말 보기 힘들잖아. 이제 인터넷 방송인만 전 세계에서 천 만 명이 넘어간다는데, 그 중에 10년 이상 활동하는 사람이 5만? 그 정도라고 하니까...
애초에 인터넷방송이란 분야 자체가 역사가 짧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보통 10년 정도 오면 현타도 오고 트렌드 따라가기도 힘들고 하니까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나도 요즘은 트렌드 따라가기 힘들어서 유행어 같은 거 잘 모르겠고, 내 방 시청자는 연령대가 30대 이상이 되어버려서 자식이랑 같이 방송을 보고 있기도 하고.
10년 정도 더 지나면 아예 방송을 접어야 될지도 모르겠네. 솔직히 10년 더하면 20년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많이 한 거잖아?
솔직히 지금 방송 접어도 평생 먹고 살 돈은 벌...생각해보니까 내 수명 생각하면 10대가 먹고 살 돈 정도는 벌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끔찍한데. 나도 한 10년만 더 해먹고 은퇴하던지 해야지.
“슬슬 방송기기도 한 번 갈아야 하나? 요즘 건 별의 별 기능이 다 있던데...”
마지막으로 바꾼게 5년 전 쯤 이었으니까, 마이크랑 모션 트래킹용 장비랑 이것저것 전부 다 사면 돈 좀 깨지겠네. 이왕 맞추는 김에 좋은 걸로 맞춰야지. 이제 가성비 따질 위치도 아니고. 일단 시험 삼아 세팅 좀 해볼까.
나는 평소처럼 방송 세팅을 맞추고, 최근에 새로 맞춘 컴퓨터를 가동 시켰다. 6090TI없는 사람 없제? 흐, 전기를 에어컨 마냥 잡아먹는 미친 전력 요구량이긴 하지만 방송인이라면 최신 사양으로 맞춰 주는 게 좋으니까.
문제는 이것도 요즘 나오는 게임들 최고사양으로 돌리는 데에는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이제는 그래픽이 더 발전해도 더 좋아진 건지 체감이 잘 안된단 말이야. 요즘은 인디게임도 그 옛날 X이버펑크 2077 뺨치는 수준으로 나오니까...
오늘은 게임할 생각도 없으니 방송이나 4K로 틀어야지. 평소라면 별 의미 없는 수준이었겠지만, 오늘은 시청자들한테 보여줄 깜짝 선물도 있으니까...
나는 평소랑 다르게 책상 옆에 놓아둔 택배상자를 꺼냈다. 이 날을 위해서 주문한 비싼 물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물건을 꺼내 컴퓨터에 연결하곤, 적당한 위치를 잡아 설치했다.
오늘 방송이 기대되네.
얼마나 시청자들이 놀라려나?
나는 컴퓨터를 켜고 방송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최신 물건이 좋긴 좋네. 오늘 방송은 문제없고.
나는 컴퓨터의 상태만 확인하고 컴퓨터 켜둔 채로 방을 나왔다. 슬슬 에포나도 일어났을테니 점심이나 만들어야지. 요즘 에포나한테 요리 가르치는 맛이 쏠쏠하단 말이야. 애가 평소에 하는 짓 치곤 꽤 요리를 잘 배운단 말이야.
본인도 뭔가에 꽃혔는지 몰라도 요리도 열심히 배우고, 집안일도 세연이한테 발 배우기도 하고.
근데 왜 메이드에 꽂혔는지 모르겠어.
나 개가 뜬금없이 목소리 깔고 고슈진사마 하는 거 들을 때 마다 오글거린다고. 그냥 주인님이라고 불러! 들을 때마다 온 몸에 닭살이 돋아서 소름끼친다고! 물론 외모가 내 판박이니 나름 어울리기는 하지만, 메이드복만 입고 다니니까 데리고 돌아다니기 좀 그렇다고!
내가 이상한 취향 가진 인간으로 보이잖아! 아니면 하다못해 좀 정상적인 메이드복으로 입던가! 왜 미니스커트인데! 그것도 맨날 뭔 일생기면 전력질주 하는 놈이!
도대체 왜!
메이드는 롱스커트가 최고라고!
“고슈진사마, 평안하셨습니까.”
“아니 주인님이라고 하라니까?”
“제가 감히 고슈진사마를 주인님이라 부르겠사옵니까.”
“아니 둘이 같은 뜻이거든? 여기 일본도 아니거든?”
“하지만 고슈...읍.”
“그 오글거리는 호칭으로 날 부르는 건 이 입이지? 꿰매줄까?”
“주, 주인님.”
“좋아. 앞으로 그냥 주인님이라고 불러. 아니 하다못해 그렇게 부르라는 거고 밖에서는...알지?”
“네, 고슈...아니 주인님.”
어쩌다가 애가 이렇게 됐을꼬. 나리는 그래도 참하게 자란 것 같은데...생각해보니까 애가 저런 걸 배울만한 소스가 나리밖에 없는데...?
나리를 심문해야 되나?
아 몰라. 애도 나이 좀 먹으면 알아서 흑역사 갱신하고 그만두겠지. 원체 4차원이라 평생 중2병끼 넘치게 살지도 모르지만 존재 자체가 중2병 그 자체니까 그러려니 하자고. 밖에 나가서만 안 그러면 돼.
“자, 에포나, 점심 만들러 가자.”
“네, 고...아니 주인님.”
나는 에포나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기념 방송 전에 최고의 점심을 만들기 위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