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외전:ZZZ
* * *
“...엄마?”
나리는 조용히 문틈으로 머리를 내민 채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대신 들려온 건 희미한 숨소리였다. 나리는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으로 다가갔다. 충전기에 꽃혀 있는 X위치를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엄마? 자?”
화창한 날씨에 따스한 햇살이 유진이 누운 침대를 비춘다. 유진은 평온한 얼굴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작업을 한 탓에 수면시간을 보충하기 위한 잠이었다. 그녀의 몸이라면 며칠 정도는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인간은 잠을 자야 하는 법이니까.
세상모르고 자는 유진의 모습을 보며, 나리는 어쩐지 옆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제 늦게 잠을 자기도 했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리가 아직 엘프들과 살고 있었을 적에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낮잠을 자곤 했으니까.
X위치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던 손을 거두고, 나리는 살금살금 유진에게 다가갔다. 나리는 유진의 몸에서 나는 희미한 우유냄새에 이끌리듯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낮잠을 자려는 순간이었다.
“나리야! 노올~”
“쉿.”
유진의 애마인 에포나는 나리의 조용히 하라는 표시에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눈치 없이 날뛰는 에포나라고 해도 정말 좋아하는 주인의 숙면을 방해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결코 숙면을 방해했다가 집밖으로 던져질 뻔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인님 자는 거야?”
“엄마 어제 밤 늦게 까지 일하셨잖아. 그러니까 쉿.”
“아라써!”
“조용히 해! 조용히 안하면 너랑 안 놀거야!”
나리는 조용히 하랬더니 소리를 지르는 에포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에포나는 나리의 말에 귀를 축 늘어트리며 징징댔지만, 적어도 엄마에 관해서 나리는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에포나의 눈에 이불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나리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에포나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치사해. 혼자서 같이 자려고 하고!”
“그, 그런 적 없거든?”
에포나와 나리의 시선이 부딪혔다. 아무리 매일 같이 놀고 친한 사이라지만, 그렇기에 더 자주 싸우는 법이었다. 에포나가 귀를 씰룩이며 나리를 노려보자, 나리는 눈을 번뜩이며 에포나를 노려보았다.
“흥, 다 알아! 너 혼자 주인님을 독점하려는 거지!”
“나, 난 엄마 딸이니까 괜찮아!”
나리와 에포나가 으르렁거렸다. 바로 뒤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을 둔 것치곤 시끄러운 소리라, 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다. 몸을 뒤척이는 소리에 유라와 에포나가 급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협상이 필요했다. 아주 빠른.
“있다가 이야기 하자. 난 엄마랑 잘 거야.”
“시러. 나도 잘 거야.”
어린아이들에게 협상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둘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의 옆을 누가 차지 하냐는 유치한 경쟁이었다. 사실 양옆에 누우면 되는 일이지만, 일단 싸움이 붙은 시점에서 누가 자리를 차지 하냐 보다 누가 이기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치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니란 것은 둘 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리는 손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했다. 방에서 당장 나가란 소리였다. 하지만 말 안 듣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에포나가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난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아!”
“너 맨날 게임으로 나한테 졌으면서!”
“응 너 게임 개 못히잖아! 마지막에 이긴 자가 진짜 승자라고 주인님이 그랬어! 어제는 내가 막판에 이겼으니까 네 말 안들을 거야!”
둘의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리와 에포나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말을 듣지 않는 다면 남은 것은 실력 행사 뿐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엄마 안 잔다.”
“엄마?!”
“주인님?!”
옆에서 개판을 치고 있는데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진은 피곤한 낯으로 하품을 하며 한창 날을 세우던 두 꼬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곤 머리카락을 늘려 두 사람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애들아, 내가 자는 사람 옆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했어요...”
에포나와 나리가 풀이 죽은 채로 대답했다. 혼나는 것은 언제나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내가 싸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에포나와 나리가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나리와 에포나가 치고 박고 싸우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유진이 나서서 중재할 수는 없었다. 유진도 일을 해야 하고 언제나 사고뭉치 꼬마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별 시답잖은 이유로 싸워대는 아이들을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당장 며칠 전에만 해도 먼저 눈싸움을 할지 눈사람을 먼저 만들 지로 대판 싸웠던 두 꼬마였기에, 유진은 피곤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언제나 혼내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싸운 이유가 이유라 혼내기에도 유진 입장에서는 좀 껄끄러웠다. 자기 좋다고 싸우는데 싫어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여신이라도 그건 참지 못했다.
“애들아, 너희들이랑 같이 자려고 침대를 이렇게 큰 걸로 샀는데, 싸울 필요가 있겠니?”
“죄송해요...”
유진은 머리카락을 줄여 나리와 에포나를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유진의 품에 안긴 에포나와 나리는 코를 파고드는 희미한 우유냄새에 안도감을 느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냄새였다. 유진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리와 기분 좋다는 듯이 얼굴을 배에 파묻은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나랑 같이 자고 싶다고?”
“...이미 깨신 거 아니에요?”
“딸이 같이 낮잠 자고 싶다는데 더 잘 수 있지.”
“...잘래요.”
“나도나도!”
유진은 귀여운 두 꼬마를 보며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언제 봐도 귀여운 아이들이라, 유진은 최소한 둘 앞에서는 너그러워 지곤 했다. 애초에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유진은 에포나와 나리를 손으로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양 옆에 누운 에포나와 나리가 유진의 품안에 파고들자, 유진은 두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둘이 새근대며 꿈나라에 빠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이렇게 잘 땐 정말 천사 같은데 말이야.
이런 모습을 보면 누가 헤으응거리면서 사고치고 다니고, 고기 먹고 싶어서 수제 활로 새를 잡는 사고뭉치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적어도 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이 집안의 식구들은 그 의견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언...아.”
유라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방을 보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랑 같이 자는 엄마라니, 누구라도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었다. 저녁메뉴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던 유라는 슬금슬금 다가가 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 기념사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진이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이라 사진이 적은 것도 있었다. 유라는 세 사람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갔다. 원래는 저녁식사에 관해 이야기 하러 왔지만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저녁이야 정 배고프면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 그만이었다.
“오늘 저녁은 뭘 시킬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라는 계단을 내려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