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외전:フトスト!(1)
* * *
“주인님!”
에포나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주인, 소파에 누워서 폰을 만지던 유진에게 달라붙었다. 망아지 폼일 때도 줄곧 이렇게 들러붙고는 했지만, 인간화가 가능해진 순간부터 전보다 적극적으로 달라붙었기에 유진은 살짝 귀찮아졌다는 느낌이었다.
에포나는 언제나처럼 앉아있는 유진의 품에 안겨 가슴에 얼굴을 묻곤 주인님의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익숙하면서도 친숙한 향기. 에포나는 유진의 체취를 맡을 때마다 마음이 진정되고는 했다.
유진은 들러붙어서 머리를 가슴에 파묻은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위에 나있는 귀를 만지작거리며, 유진은 에포나가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에포나 본인 성격처럼 정신없이 흔들리는 꼬리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주인님!”
“왜?”
“당근 먹고 싶어!”
“안 돼.”
“왜에?”
“지금은 식사시간이 아니니까. 규칙적인 식사는 중요하거든.”
에포나가 실망한 듯 귀를 축 늘어트렸다. 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폰을 만지작거렸다.
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라니까.
똑 부러진 첫째에 살짝 잼민이스러운 둘째, 그리고 애교 많은 셋째 같은 느낌이라, 유진은 도대체 딸이 어디까지 늘어가는 거냐, 하고 속으로 한탄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돌봐주어야 할 아이들이 어느새 3명이나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한솔이가 은근슬쩍 “엄마~”라고 부르며 놀리는 것도 유진에게 있어서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유진 자신도 이제 엄마라고 불리는 걸 체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도 인정해버렸으니까 굳이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에포나.”
“왜?”
“일단 내 가슴에 얼굴 파묻은 채로 대답하지 말고...간지럽거든? 아니 됐다...리온은 어디 있니?”
“리온? 방에서 게임하고 있써!”
“그래?”
x물의 숲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고 유진은 생각했다. 역시 엘프라 그런가, 유진은 리온이 X물의 숲을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다른 게임은 건드리지도 않고 오로지 x숲 외길인생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아무렴 어때.
그 나이에 야겜이나 레오리 같은 게임 안하는 게 다행이지.
유진은 어린나이에 레오리 같은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가정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팀 게임은 채팅창이 너무 저질인 경우가 많았다.
욕은 기본이고 패드립도 꽤 자주 보이니...애들 정서교육에는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유진은 생각하곤 했다.
“주인님!”
“왜?”
“조아!”
“나도.”
“히히.”
애가 또 이러네. 유진은 좋다고 달라붙는 에포나를 나름대로 귀여워했다. 조금 사고뭉치에 괴상한 울음소리로 당혹스럽게 하기는 했지만, 에포나는 기본적으로 애교를 많이 부리는 편이었다.
본능적으로 사랑받는 법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주인이 좋아서 그러는 것인지 유진은 가끔 생각하곤 했지만, 아무려면 어때, 하고 넘기곤 했다.
중요한건 에포나가 자기를 좋아해준다는 사실이었지 왜 좋아하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따지느니 그 시간에 유진은 시공 한판을 하는 게 더 유의미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당근!”
“그건 네 식사고. 아, 당근 스튜 해먹을까?”
“조아! 헤으응!”
“헤으응은 그만 하고. 오늘 저녁은 당근 스튜로 하지 뭐.”
리온이 엄청 싫어하겠군. 엘프 주제에 야채를 싫어하는 리온이 당근 스튜를 보고 정색는 모습이 머릿속에 뻔히 그려졌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선 채식과 육식의 밸런스를 맞춰야만 하는 법.
유진은 오늘 채식 위주로 저녁메뉴를 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는 움직일 시간이었다. 스튜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편했으니까. 유진은 에포나를 안은 채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에포나의 사이즈가 작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포나. 이제 슬슬 저녁 만들 준비 할 거니까 리온이랑 같이 놀래? 아니면 세연이랑...”
“주인님이랑 놀면 안 돼?”
“응. 밥 만들 거야.”
“아라써...”
에포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유진의 품에서 떨어졌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에 유진은 피식 웃으며 에포나의 부드러운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아가도 아니고, 너무 들러붙는 거 아니니?”
“에포나는 아가야!”
“아...그래.”
그거 참 신박한 주장이로구나.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에포나 본체의 사이즈가 평소엔 강아지 수준이다 보니, 본인이 아가라고 주장해도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보통 말이라면 사람보다 훨씬 큰 게 보통이었으니까. 물론 자기 몸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에포나이다보니 일부러 작은 몸집으로 다니는 거겠지만, 유진은 에포나의 본래 몸 크기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이니었으니까.
유진은 주방으로 들어와 식재료를 살폈다. 스튜를 만들 재료가 있는지 파악하고, 없다면 장을 봐야 했다. 아니면 심부름을 시키거나.
“음...모자라네.”
1~2인분이면 모를까. 5인분을 하기엔 재료가 모자랐다. 이러면 장을 봐야 하는데.
“뭐가 모자라?”
“야채랑, 고기랑...유라 심부름 보내야 하나.”
그나마 이 집에 사는 인원들 중에선 똑 부러진 유라였기에, 심부름도 잘했다. 하지만 유진은 유라가 오늘 친구와 약속이 있어 저녁을 먹고 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장 보러 가야겠네.”
“나도 갈래!”
“응? 안 돼.”
유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트러블메이커인 에포나를 데려가면 무슨 난리가 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혹여나 에포나가 사람들 모인 곳에서 “헤으응!”을 외쳐버리면 유진은 다시는 집 바깥으로 외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두 주인님이랑 장 보러 가고 싶어...”
에포나눈 물기 어린 눈으로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유진이 이런 눈빛에 약하다는 것을 리온을 통해 할고 있기에 한 시도였다. 유진은 잠시 당혹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곤, 약간 뜸을 들이곤 대답했다.
“알았어. 데려갈게. 대신에 말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만세!”
에포나는 작전이 성공하자 팔을 쭉 뻗고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유진은 어쩐지 속은 기분이었지만,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