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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80화 (280/352)

〈 280화 〉 외전: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 *

잘라놓은 재료를 잘 풀어놓은 계란물에 넣어 계란을 듬뿍 묻히고 밀가루를 묻혀 프라이팬에 굽는다.

말만 들으면 이렇게 간단한 요리가 없단 말이야.

실제로 그렇게 만들기 어렵지 않기도 하고. 물론 그게 조금이라면 말이야. 나는 큰 접시를 가득 채우다 못해 쌓이기 시작한 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명절음식은 아무리 만들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진짜 이거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나 몰라.

두 시간 가까이 부친 것 같은데 아직도 끝이 안보여...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근데 다른 애한테 맡기면 불안해서 못하겠어....아, 이건 좀 타버렸네. 망친 건 그냥 먹어야지. 나는 살짝 타버린 애호박전을 입에 집어넣었다.

비싼 애호박으로 부쳐서 그런가 입에서 살살 녹네. 이래서 애호박전이 좋다니까.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먹기도 편하고. 어육전은 생선 안 좋은 거 쓰거나 제대로 손질 안 해놓으면 아무생각없이 어육전을 씹었다가 입안에 가시가 박힐 때의 고통은...

난 그래서 어육전이 싫어. 그래도 만들긴 하고 있지만.

“언니, 교대할래요?”

“아니. 꼬치는 다 꽂았어?”

“아니요...너무 많아요. 역시 한솔이 언니도 부르는게...”

“음식물 폐기물이라도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

“...그냥 혼자 할게요.”

“리온이랑 에포나 불러서 같이 해도 되는데. 재내들도 재밌게 할 것 같고.”

꼬치 꽂는 정도라면 크게 위험하...기는 한가? 이쑤시개가 뾰족하니까 위험하기는 할 것 같은데. 근데 유라 혼자 하게하는 것도 좀 그런데. 역시 부르는 게 낫겠다.

나는 내 머리를 한손으로 집어서 베란다 쪽으로 집어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내 머리는 창 바로 앞에 떨어졌다. 머리카락을 늘려 문을 연 나는 열심히 눈덩이를 굴리는 두 꼬맹이들에게 소리쳤다.

“애들아! 들어와봐! 할 일이 생겼어!”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두 꼬마를 부르자 둘은 굴리던 눈덩이를 내버려두고 내 머리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려 애들 몸에 들러붙은 몸을 털어내고 욕실로 보냈다. 일단은 씻겨야지.

“일단 들어가서 씻고 와. 일은 그 다음이야.”

“네~”

“한솔아!”

“왜!”

“리온이랑 에포나좀 씻겨줘!”

“알았어!”

한솔이가 가사에 영 재능이 없기는 하지만 애들 씻기는 것도 못하진 않겠지. 나는 머리를 튕겨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머리를 목 위에 올려놓고 다시 전을 부치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30분이 지나갔다.

“엄마~! 나왔어!”

“주인님! 헤으응!”

“...둘 다 유라 도와서 꼬치 만들자. 양이 너무 많아서 유라언니 혼자 하기 힘드니까 너희 둘이 도와주는 거야. 알았지?”

“네!”

귀여운 녀석들. 나는 유라 옆에서 앉아서 유라에게 설명을 듣고 꼬치를 만들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엔 사고뭉치들이지만 이럴 때는 마냥 귀엽단 말이야. 그나저나 부모님은 어제쯤 오시려나.

지금 시간이 4시고, 부모님이 슬슬 오실 것 같으니까 마저 끝내고 나도 옷 갈아입어야지. 나는 설 기념으로 미리 준비해놓은 한복을 입을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것도 다들 준비했으니 다들 갈아입어야지.

나는 얼추 다 구운 전을 다른 접시에 옮겨 담고 애들을 불렀다.

“저기 상에다가 깔아놔. 그리고 이제 옷 갈아입으러 가자.”

“네!”

애내들은 한복 입을 줄 모르니까 내가 입혀줘야겠지. 사실 뭐 요즘 개량한복은 입기 쉬워서 입는 법만 알면 쉽지만, 애들은 애초에 한국인이 아니잖아. 이번이 처음 맞이하는 설이고.

“유라야 너도 가자. 옷 갈아입어야지.”

“귀찮은데.”

“그래도 이런 날 아니면 입어볼 일 없으니까 한 번 입지 않을래?”

나는 애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하나하나 갈아입혔다. 내가 주문제작 하느라 돈이 얼마나 깨졌는데. 에포나는 말 변이자 취급이라 내가 웃돈까지 얹어서 급하게 주문했다고. 내가 보고 싶어서 입히는 거니까 내가 불평할 건 아니지마는.

전부 한복으로 갈아입히고 거실로 나오니,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부모님이 도착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현관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아버지 길은 안 막혔어요?”

“다행히도 길은 그리 안 막히더구나. 그런데 유진아, 잘 차려입었구나.”

“뭐...그렇죠. 애들 입히는 김에 제껏도 맞췄어요.”

“몇년 전 만 해도 한복 입기 싫어하던 네가 여자가 되어서 한복을 입고 우리를 맞이하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그건 그래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구요.”

누가 갑자기 여자가 되고 용사가 돼서 세상을 구할거라고 예상해? 심지어 몸뚱아리는 여신이라 불로일 예정이지. 불사...는 모르겠다만. 죽으려고 하면 죽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은 제쳐두고. 나는 부모님을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 펼쳐놓은 고급진 나무로 마들어진 큰 상에는 명절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정도면 다른 건 몰라도 대충 준비했단 소린 안듣지.

“오늘 힘들게 준비했어요.”

“고생 좀 했구나. 일단 밥 먹기 전에 세배부터 할까? 보통은 반대지만, 요즘 순서가 뭐가 중요하겠니. 잘 보내기만 하면 되지.”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뀌었어. 옛날엔...”

“조용히 하고 절이나 받아요.”

“끙...”

여전하시네. 나는 애들을 불러모아 나란히 선 뒤에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물론 여기에 나 말고 피로 이어진 혈육은 없다지만 그게 문제될 거리가 있나. 한 집에 사니 한 가족이지.

그래도 감개무량하네. 작년에는 혼자서 구석에서 시공하면서 보냈는데, 오늘은 명절 음식도 만들고, 한복도 입고, 부모님까지 초대해서 절까지 하는 구나.

내 인생에 이런 장족의 발전이 가능할 줄이야. 인생 진짜 한치 앞도 모른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라니까?

이제는 세상까지 구하고 나름 평온한 인생을 보내고 있으니 계속 이렇게 한결 같은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구했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소원으로 빌어도 되잖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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