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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76화 (276/352)

〈 276화 〉 외전:이런 모습은 처음이야(3)

* * *

“그래서 뭐하고 놀고 싶은데?”

쇼파에 앉은 나는 양 옆에 자리 잡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에포나와 리온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오늘따라 더 애들 같네. 애들 맞긴 하지만.

“음...몰라! 주인님이랑 함께라면 뭐든 좋아!”

“나두요!”

아니,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대답이 ‘아무거나’라고. 정작 본인이 원하는 건 ‘아무거나’가 아니라서 대답은 아무거나라고 하는 것만큼 빡치는 게 없어. 자장면이면 자장면, 짬뽕이라면 짬뽕이라고 말을 하란 말이야!

왜 정확하게 말을 못해!

“그럼 산책이라도 할까?”

“좋아!”

“저두요!”

이런 데서까지 경쟁하지 마...나 피곤해...정원 몇 바퀴만 돌아주고 들어와서 간식 만들어주고 게임이라도 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럴 땐 온가족의 게임기 x텐도 스위치라는 최종병기가 있으니까 x리오 파티라도 같이하며 되잖아.

나는 리온과 에포나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옷을 두껍게 입히고,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되고나서 추위나 더위를 많이 타진 않는데, 그래도 계절에 맞는 옷차림을 하는 게 사람 같아서 좋다.

그래도 산책이 심심하지는 않겠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더니, 정원도 하얀색으로 물들어 눈사람이라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나는 애들과 함께 정원으로 걸어 나왔다.

“주인님! 바닥이 하얘!”

“아아, 이건 눈이라는 거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지.”

“눈사람?”

리온이나 에포나나 눈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였다. 생각해보면 둘 다 눈이랑은 영 연이 없던 것 같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나는 눈밭에 남겨지는 작은 발자국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아침부터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져서 당혹스럽긴 하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놀랄 짬도 아닌 것 같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겠지. 세상일이 이미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인데 이제 와서 이런 걸로 놀라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둘 다 이리 와볼래?”

나는 눈에 발자국을 만들며 놀다가 다가온 둘 앞에 두껍게 뭉친 눈덩이를 보여주었다. 내 괴력으로 누른 탓에 눈이라기 보단 얼음덩어리처럼 보이는 눈덩이였다. 이걸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너희들 눈사람 만들어 본적 있니?”

“눈사람이 뭐에요?”

“눈사람은, 눈으로 만든 인형 같은 거야. 이렇게 눈을 굴려서...”

나는 눈밭에 눈덩이를 차근차근 굴리기 시작했다. 야구공 정도 크기였던 눈덩이가 눈을 먹으며 점점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두 꼬맹이도 내가 눈덩이를 굴리는 것을 보고는 옆에서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덩이를 30분정도 굴렸을까, 야구공 정도의 크기였던 눈덩이는 어느새 짐볼 만큼 커져있었다. 이정도면 몸통은 충분하고...이번엔 머리를 만들까.

“한 번 너희들이 처음부터 굴려볼래?”

“네!”

나는 리온과 에포나가 눈덩이를 뭉쳐 굴리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귀엽네. 생각해보면 어릴 땐 눈사람 만드는 걸로 하루 종일 시간 보내고 했던 것 같은데, 눈사람을 안 만들어본지 거의 15년 이상 지난 것 같네. 성인이 되고 나서야 말할 것도 없고, 학생 때도 초등학생 이후로 눈사람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러니까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야.

내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리온과 에포나가 굴리기 시작한 눈덩이는 점점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엄청 열심히 굴리네. 둘 다 눈덩이 굴리는 데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나는 적당히 올려놓기 좋은 크기까지 눈덩이가 굴려진 걸 보고는, 두 꼬마에게 다가갔다.

“자, 여기까지. 이제 올려놓자.”

나는 눈덩이를 들어 만들어 놓았던 눈덩이 위에 올려놓았다. 커다란 눈덩이 위에 그것보다 작은 눈덩이. 훌륭한 베이스였다. 이제 여기다 눈코입 붙여주고 팔 붙여주면 되겠지...?

“이제 여기다가 돌맹이 같은 걸로 눈 코 입을 만들 거야. 자, 정원에서 쓸 만해 보이는 돌을 주워온다. 실시!”

“실시!”

나는 잽싸게 흩어진 둘을 확인하곤 조용히 집안으로 머리를 집어 던졌다. 몸뚱이까지 갈 필요는 없지. 나는 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곤 다시 돌아와 목 위에 안착했다.

역시 눈사람 코는 당근이 최고지.

나는 얼굴 한 가운데에 코를 박아 넣었다. 여러 번 만진 탓에 표면이 좀 단단해지긴 했지만 내 괴력 앞에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주인님! 가져왔어!”

“엄마! 나도!”

나는 리온과 에포나에게서 돌멩이를 받아 그 중 둥그런 형태의 조약돌을 눈 쪽에 박아놓았다. 그리고 길쭉한 형태의 돌멩이를 입이 있어야 할 위치에 차례차례 붙이니, 그럴듯한 얼굴이 생겨났다.

“오.”

그럼 이제 팔인가. 팔은...음.

“울어라, 지옥참마도.”

“아니 잠깐?! 우웨에에에엑!”

뒤에서 우리가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을 훈훈하게 지켜보던 세연이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는 것 같거든.

나는 지옥참마도의 모습을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변형시키곤, 반으로 쪼겠다. 좀 흉물스럽긴 하지만, 그게 눈사람의 묘미 아니겠어?

“자, 완성!”

“와!”

눈사람 하나 만드는데 2시간이라니,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리온이랑 에포나가 좋아하니까 뭐 됐나.

리온은 눈사람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주변에서 돌멩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주워와 주변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에포나는 잠시 시선이 눈사람의 코에 박혀있기는 했지만, 기어코 유혹을 참아내고 눈밭에 파묻힌 채로 뒹굴기 시작했다.

“와, 눈사람이네. 실제로 본 게 도대체 몇 년 만이야.”

“아, 방송 끝났어?”

한솔이었다. 방송이 막 끝난 건지, 다소 화려한 복장을 입은 한솔이는 리온과 에포나가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보며 나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애들이 노는 거 구경하는 게 생각보다 마음이 훈훈해지네.

역시 애들은 노는 게 최고야.

“어. 그래서 거실에서 눈 내리는 거 구경이라도 할까 했는데 정원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길래.”

“놀아주려고 하는데 생각나는 건 없고, 산책하면서 생각할까 하다가 눈이 많이 쌓였기에 생각했지.”

“하긴 눈사람 만드는 것만큼 시간 잘가는 것도 없지. 애들도 왠만하면 좋아하고.”

그러니까 말이야.

“애들 잔뜩 놀다가 지칠 때쯤에 간식이라도 만들어서 먹이고 집안에서 놀아줘야지...요즘 시국이 시국이라 밖에 데려가서 노는 건 좀 그러니까.”

“엄마 다 됐네.”

“...부정 할 수 가 없네.”

작년 봄까지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광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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