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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75화 (275/352)

〈 275화 〉 외전:이런 모습은 처음이야(2)

* * *

“주인님! 맘마조!”

“어, 음...그러니까, 저게 에포나에요?”

“...아마도?”

저런 공포스러운 단어를 현실에서 남발하는 건 에포나 밖에 없으니까 아마 맞지 않을까? 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섬뜩한 소리를 내뱉는 내 2P컬러 같은 느낌의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에 에메랄드 빛깔의 눈동자를 빼면 내 나이에서 10살 정도 어리게 한 느낌이었다.

정말 딸을 낳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뭘로 변하든 기본 컬러가 검은색 베이스 이었으니까 당연한 건가?

“좀 떨어져 봐,”

“주인님 나 시러?”

애가 왜 이런데. 나는 오늘따라 더 달라붙는 에포나를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유라에게 옷을 리온의 옷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유라가 사라지자, 방안에는 나와 나에게 달라붙은 에포나, 그리고 뭔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에포나를 쳐다보았다.

“알았으니까 좀 놔주면 안 될까?”

“시러.”

“떨어져!”

안 너 까지 왜 그래. 에포나를 뒤에서 붙잡고 당기는 리온을 보며 난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뭔데. 왜 갑자기 러브코미디 같은 분위기야?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에포나와, 질투심이라도 생긴 건지 에포나를 끌어내려고 하는 리온까지 아주 난장판이었다.

귀찮게시리. 나는 머리카락으로 에포나를 둘둘 말고 리온도 둘둘 말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둘 다 진정하고 에포나, 너 어떻게 변한 거야?”

“주인님이랑 똑같은 모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됐어! 대단하지!”

“그래...”

뜬금없기는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지 뭐. 애초에 판타지에 상식을 기대하는 것도 웃기고. 나는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

“일단 에포나는 유라가 옷 가져오면 옷부터 입고...리온, 이리 올래?”

리온은 내가 부르자 잽싸게 다가왔다. 왜 이렇게 기뻐 보이지? 나는 품에 안겨드는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에포나를 바라보았다.

“돌아갈 수 있지?”

“응!”

“일단 돌아가 줄래? 여러모로 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시러!”

“왜?”

“그냥!”

아...그래. 이놈의 망아지를 어떻게 하지. 아침부터 이런 개판이 벌어지니 잔게 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딴건 모르겠고 잠이나 자고 싶어. 그냥 무시하고 이불 덮고 잠이나 잘까? 에포나가 엉뚱한 짓 하는 게 한 두 번도 아니고.

“그래? 그럼 네가 원할 때 돌아가...난 좀 더 자야하니까 비켜줄래?”

“놀아줘!”

“아­그럼 지금부터 놀이를 하자. 놀이 이름은 늦잠 놀이야. 누가 부를 때까지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돼. 알았지?”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다시 침대로 다이빙했다. 양 옆에 들러붙은 꼬물이들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것보단 당장의 수면이 중요했다.

그렇게, 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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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포크 들 수 있어!”

“그래그래, 잘했어.”

“엄마! 나도 젓가락 이제 잘 써!”

“그래그래.”

애내들 왜 갑자기 경쟁 심리를 불태우는 거야. 나는 수상하리만큼 서로를 째려보며 밥을 먹는 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유라와 한솔이는 그 상황이 재밌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인기 많네요.”

“원래 여자들한테 인기 많잖아.”

“내가?”

“여기 모인 사람들만 봐도...”

한솔이가 말끝을 흐렸다. 어...확실히 그렇긴 하네. 이렇게 되고 나서 여자하고만 엮이긴 했어. 남자는...그나마 라쿤 박사님? 근데 그쪽은 남자라기 보단 수컷이잖아. 수컷도 남자가 맞긴 하지만, 인간은 아니니까...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변이자가 되고 나서 라쿤박사님 말고는 남자랑 제대로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

굳이 만날 생각도 없고. 지금 여자라고 내가 남자를 좋아할 리가 있나.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네. 나는 그냥 우리 귀여운 딸이랑 오순도순 살 거야. 돈 많으면 미혼모고 뭐고 꿀릴 일 없다고!

수명도 더럽게 길어서 결혼해봐야 손자 손녀한테 “할머니는 왜 엄마보다 어려요?”소리 듣는 것보단 낫기도 하고.

와! 수명물! 와! 불로불사!

와! 망할 까마귀년!

오늘은 근처 잡초나 뜯어서 먹여주고 올까. 뭔가 빡치네.

“난 딱히 사귀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냥 편하게 애들이랑 살거야.”

“그럴 것 같았어. 나는 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은데~”

“저두요.”

내가 연애세포가 사멸해 버린 건가. 어쩌면 마망세포가 연애세포를 다 잡아먹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남자랑 친해지고픈 마음도 없고, 당장 리온이랑 저 망아...아니 에포나를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으니까.

“한솔이는 썸타는 사람 없어? 너 외출도 자주 하잖아.”

“대부분 쇼핑하러 나갔다 오는 거고, 저는 얼굴도 까서 연애하다 걸리면 그대로 나락가요. 몰래 연애야 할 수 있지만 흡혈귀인거 까발려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좀 무서워하기도 하고...요즘은 변이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니까 썸은 꿈도 못 꾸고.”

“나는 너무 작아서 학교 애들한테도 애들 취급 받아요! 뭐만하면 들어 올리곤 놀리질 않나...”

하긴 너 정도 사이즈면 또래 애들도 X바마냥 들어 올릴 수 있겠다. 까놓고 말해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인간이 유라니까. 집안 내 서열은 반대로 아주 높은 편이지만. 한솔이는 생활력이 절망적인 수준이라 도대체 어떻게 자취했나 싶은 수준이라 유라한테 은근히 갈굼 당하고, 애들이야 뭐 애들 중에 연장자인 유라는 잘 따르는 편이고.

나야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마 서열 최상위는 맞...겠지?

“뭐, 잘 해봐~ 나는 영원히~솔로로 살테니까~”

“솔로는 무슨, 이미 홀몸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겠다.”

“동정녀도 아니고 딸이 둘...보기 드문 조합이죠.”

“주인님! 봐바! 깨끗하게 다 먹었어!”

“나도!”

그래. 야채만 빼고 깨끗하게 다 먹었구나?

“가지랑 양파도 먹어야지.”

“나는 다 먹었어!”

“그래그래, 잘 했어.”

내가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리온은 질 수 없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남겨놓은 야채를 입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경쟁심리 효과 좋네.

에포나가 계속 인간 형태로 있으면 리온도 야채 편식은 안할라나.

나름 장점이 있긴 하네. 나는 식사를 마친 두 꼬마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여운 애들이라니까.

“방금 언니 진짜 엄마 같았어요.”

“평소엔 아니었단 소리야?”

“평소엔 좀...”

왜 말끝을 흐리는데. 내 평소 이미지가 어떻기에 그러는 거야. 방송하면서 소리 지르고 헛소리하고 잼민이처럼 구는 건 방송 컨셉이야. 방송 컨셉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일상생활에서부터 그렇게 막나가진 않아!

“엄마, 놀자!”

“주인님! 놀자!”

...애내들 진짜 왜 이럴까.

나는 내 양팔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두 꼬마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놀아줘야하나. 어차피 쉬는 날이니 평소엔 못 놀아준 만큼 놀아줄까?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손 좀 놓으렴.”

지칠 때까지 놀아 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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