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외전:엘프는 예로부터 육식주의자였다(2)
* * *
엘프란 종족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엘프가 활의 명수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엘프는 왜 활의 명수가 되었는가?
그것은 다른 생명체를 사냥하기 위함이다. 그 대상이 외적이든, 사냥하여 먹을 동물이든 간에 그 사실만은 확실했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외모와 희귀한 숫자를 자랑하는 엘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동물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환상을 가지지만, 현실은 언제나 환상과 거리가 먼 법이다.
과일과 채소만으로는 엘프들도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뛰어난 신체능력과 시력을 가진 엘프가 동물을 사냥하기에 궁술만큼 편리한 것이 없었다. 엘프들은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과정에서 궁술을 익혔고,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명사수가 되었다.
그런고로, 마지막 순혈 엘프인 리온은 나름 사냥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가 한 동안 살았던 곳에서의 유일한 놀이가 사냥 정도였고, 나름 몇 년 동안 사냥에 시간을 투자했었으니 엘프의 이름값을 할 정도의 사냥 솜씨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실력을 발휘할 도구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 리온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칼로 조심스럽게 나무를 깎아 냈다. 공원에 있는 나무로는 그리 좋은 물건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공원 구석에서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리온은 30분 만에 그럴듯한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냈다. 살짝 휘어진 모양의 나무는 활대가 되었다. 리온은 미리 벗겨놓은 나무껍질을 꼬아 활시위를 만들었다.
요즘 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방법이었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법한 물건에 쓰는 옛날 방식이었으니까. 활을 완성한 리온은 곧 이어 화살도 몇 개 만들었다. 그리고는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활을 쏠 수는 없었으니까. 리온의 목표는 인적 드문 곳에 사는 새들이었다. 크면 좋고, 작아도 좋다. 어느 쪽이든 살코기만 있다면 튀겨서 치킨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엘프답게 재빠른 몸놀림으로 산속에 도착한 리온은 그녀의 서너 배쯤 되는 나무의 위에 앉은 새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군더더기 없는 자세였다.
하나, 둘, 셋.
리온은 시위를 놓았다. 활대의 탄력을 받은 화살이 추운 겨울바람을 가르고 이변을 눈치 채지 못한 참새의 몸을 관통했다. 리온은 화살에 꿰뚫린 채로 추락한 참새의 시체에서 화살을 빼고 가져온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리온은 퍽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끔찍하게 추운 겨울이라서 그런지, 새들이 별로 없었다. 좀 더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산 속에서 활동하는 것에 정통한 엘프라도 처음 온 산의 지리를 전부 꿰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1시간 정도 돌아갈 수 있는 범위에서 주변을 탐색한 리온은 수많은 사냥감들을 발견했지만, 사냥하지 못한 채로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참새 한 마리 정도로는 당연히 만족할 수 없었으므로, 리온은 은밀하게 움직이며 사냥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주먹만 한 참새보다 크고, 살이 많아야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닭 못지않게 살이 올랐으면서, 잡기도 쉬운 조류...등에 활을 매고 한손에 자루를 든 리온은 거리로 나섰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활을 맨 리온에게 꽂혔지만, 리온에겐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새들을 찾아나섰다. 닭만큼 크고, 잡기 쉬운 조류...그것이 지금 리온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였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돌아다녔을까. 공원의 한 구석에서, 리온은 애타게 찾아다니던 식재료를 찾을 수 있었다.
“구구?”
비둘기, 그것도 땅에서 하도 먹이를 주워 먹은 탓에 비대해진 나머지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닭둘기들이 한데 모여 돌아다니고 있었다.
츄릅. 리온은 풀숲사이에서 입맛을 다시며 화살을 매기고 시위를 당겼다.
“구구구구구구!”
당연하게도, 명중이었다.
집 바로 옆 공터의 으슥한 구석에서, 리온은 솜씨 좋게 잡아온 새들의 깃털을 뽑아냈다. 새야 숲에서 살 시절에 몇 번이고 잡아본 적이 있으니 리온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깃털이 처치곤란이긴 하지만, 적당히 땅속에 파묻어두면 알아서 썩어 사라질 테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30분의 시간을 거쳐 털을 전부 뽑아낸 비둘기와 참새의 모습은 처참했지만, 리온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목을 집에서 슬쩍해온 식칼로 단번에 토막냈다.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닌 솜씨에 리온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세연은 담장 너머로 리온의 기행을 보며 감탄했다.
“근데 저거 먹어도 되는 건가...?”
유진이 한테 알려야 될까? 그래도 좀 신기하니까 좀 더 구경해도 되겠지? 세연은 조금 더 구경하기로 했다. 리온이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료한 시간을 청소로 달래고 있던 세연에게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으니까.
비둘기를 손질하는 리온의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도 세연이 잠자코 구경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린애가 칼질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해 보이기는 했지만,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리온의 칼솜씨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능숙한 솜씨로 거죽을 벗겨낸 리온은 머리를 자르고 피를 바닥에 버린 뒤에, 비둘기 참새의 목을 잘라내고 몸을 먹기 좋게 토막내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손이 비둘기의 피로 물들었지만 리온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사냥한 먹잇감을 요리하기 위해선 이런 과정이 필수 였으니까.
리온은 미리 준비해온 물을 떠온 대야에 붓고 잘라낸 고기를 담가서 피를 빼고, 다른 대야에는 우유를 부어서 고기를 재워둘 준비를 했다.
여름이었다면 곧바로 부패해 버릴테니 의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영하를 넘나드는 한 겨울이었다. 보통이라면 힘들었을 요리도 상할 걱정 없이 바깥에서 몰래 조리를 시도할 수 있었다. 마침 미세먼지도 적은 참이라, 랩으로만 잘 싸두면 될 일이었다.
차가운 물에 손이 닿은 탓에 리온의 손은 감각이 없었지만, 치킨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리온은 피가 다 빠진 고기들을 건져 우유가 담긴 대야에 전부 집어넣었다. 이렇게 우유에 넣고 30분을 재워두는 게 좋다는 레시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치킨...치킨...히히.”
리온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울 준비를 하며 곧 만들어질 치킨을 상상하며 웃었다. 조금만 더 수고하면,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직접 만든!
치킨을 먹기 위해서라면 이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리온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뭇가지를 한데 모아 몰래 챙겨온 휴지를 뜯어 위에 나뭇가지 사이에 묻어두고, 라이터를 꺼냈다.
공원에서 누가 버린 것을 주워온 라이터였다. 안의 기름이 거의 다 달아서 제대로 켜지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휴지를 태우는 데는 약간의 불씨만 있어도 충분했다.
손으로 비벼서 불을 키는 것보다는 라이터를 이용하는 게 훨씬 쉬우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뭇가지를 비벼서 불을 붙이는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손바닥이 아프게 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우는 것은 수고가 많이 드는 일이었으니까.
적당히 평평한 돌을 나뭇더미 사이에 두고, 몇 번의 시도 후에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리온은 치킨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속이 깊은 후라이팬을 꺼냈다.
평평한 돌 위에 후라이팬을 얹어놓은 리온은 휴대폰으로 찾아낸 설명서 대로 충분한 양의 식용유를 붓고, 식용유가 끓기를 기다리며 재워둔 살코기에 튀김가루를 입혔다. 곧 이어 튀김가루를 입힌 비둘기고기가 기름위로 떨어지자, 기름튀기는 소리와 함께 치킨이 튀겨지기 시작했다.
튀김이 끓는 것을 구경하며, 리온은 치킨을 뜯는 상상을 했다. 물론 전문적인 치킨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직접 만든 치킨은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초보가 만든 치킨이 맛있기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렇게 리온이 행복회로를 돌리며 잘 튀겨진 치킨을 하나 꺼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바삭바삭한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러운 튀김옷이 입혀진 치킨은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리온은 사소한 것보다 지금 당장 그리운 치킨의 맛을 음미하는데 조금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비둘기로 만든 치킨이 드디어 리온의 입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바삭하고 맛있는 향기를 풍기는 치킨의 향기가 리온의 코를 통해 들어가고, 미각세포를 일깨웠다. 추위로 인해 얼굴은 새하얗게 변했지만, 마음만은 치킨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렸다. 그렇게 리온은 생애 최초의 자작 치킨을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이었다.
“리온, 치킨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망했다.
리온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