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10)
* * *
“이게 헤스티아?”
그냥 검은색 슬라임 처럼 보이는데. 이건 그냥 형태조차 없잖아. 나는 마치 먹물 같이 검은 빛을 내는 부정형의 액체괴물 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 맞을거에요.”
“근데 왜 안 움직이지?”
“듣기로는, 헤스티아는 어떤 공격으로도 손상을 입힐 수가 없다고 해요. 마법봉으로도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해서, 첫 공략 때도 그 사이에 다른 괴수들이 들이닥쳐서 전멸을 면치 못했다고...이 동굴 자체를 마법으로 무너트리는 게 최선이라고 하셨어요.”
아니 그런 건 먼저 말해달라고. 나는 엑스칼리버로 손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저걸 어떻게든 조져야 한다는 건데. 몸집은 범고래 마냥 더럽게 큰 주제에 공격은 안 통한다 이거 아닌가?
모리안, 저거 무슨 방법 없어?
[...저 치들이 모여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라. 희망이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니.]
그게 뭔 소리야. 좀 알아듣기 쉽게 말 좀 해봐.
[마법소녀...라 불리는 저 아이들과 저 괴수의 근원이 같다는 이야기니라. 같은 곳에서 비롯된 존재이기에 서로의 공격이 의미가 없느니라.]
아니, 괴수한테는 통했잖아.
[어디까지나 돌아갔을 뿐이니라. 저 거대한 고깃덩어리 안으로 말이니라. 하지만 그대라면 가능 하느니라. 그대는 반쪽이긴 하나 엄연히 여신이니, 신이 만들어낸 재앙에 불과한 저 고깃덩어리를 없애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데?
[검을 들거라. 그리고 저 꼭대기에 있는 상자가 보이느냐?]
상자? 나는 검은 형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상자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아는 그 신화대로라면 저게 본체 쯤 되는 거 맞지? 저거를 뺏기만 하면 되는 건가.
[판도라의 상자,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느니라. 아주 위험한 물건이라 엄중 보관해왔던 것으로 기억하거늘. 저 상자를 뺏어 재앙을 봉인하거라.]
그리스 신들 꼬라지 보면 왜 여기 있는 지 대충 납득가지 않나? 개내들 신화만 봐도 개판 오 분 전 인건 유명하니까.
[...부정할 수 없느니라.]
그치?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앞으로 걸어 나가 상자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저 커다란 놈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상자를 뺏어서 저 괴물을 봉인하면 모든 일이 마무리 된다는 거 확실하지?
[맞느니라. 덧붙여 말하자면 최대한 빨리 탈취하거라. 시간을 지체하면 저 위의 아이들이 더 많이 희생될 것이니라.]
아, 그러네.
“이제 동굴을 무너트려야...”
“기다려봐.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내 말에 유나와 채하는 반신반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없어요!”
“아냐, 있어. 아주 간단한 방법이...”
나는 상자를 향해 엑스칼리버의 손잡이에 머리카락을 묶은 채로 상자를 향해 집어던졌다. 엑스칼리버는 어둠을 가르며 꼭대기의 상자를 향해 나아갔다.
[마하아아아아아아아아!]
응 안 들려~어쩔티비~저쩔티비~ 나는 저 멀리 날아가는 엑스칼리버가 상자가 있는 꼭대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곤 손잡이에 있던 머리카락 일부를 떼어내 상자를 끌어당겼다. 쉽구만.
나는 손에 들린 낡은 상자를 들고 헤스티아에게 다가갔다. 내가 상자를 빼앗아간 것을 눈치 챘는지 괴성을 지르긴 했지만, 헤스티아에겐 전투능력이 없다고 했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 들어가.”
나는 상자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내 마력을 듬뿍 먹은 낡은 상자의 겉면이 빛나기 시작했다. 복잡한 문양이 상자의 표면 위를 달리며 푸른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하자, 상자가 열리고 헤스티아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그 상자는 뭐에요?”
“이게 그 좆냥이가 말하던 고대유물일걸? 판도라의 상자는 알지?”
“판도라의 상자? 설마 그 상자가...”
“맞아. 이게 그 판도라의 상자야. 아시다시피 이 안에는 온갖 재앙이 꾹꾹 눌러 담겨 있거든. 어째서 열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꺼다냥!”
나는 상자를 노리는 좆냥이의 기습을 머리카락으로 막아냈다. 내 머리카락에 붙잡힌 고양이는 상자를 뺏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한낱 좆냥이 따위가 내 머리카락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이 녀석 철창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아니지, 방금 뭐라고 했냐? 내꺼?”
“그건 내 물건이다냥! 돌려달라냥!”
“애들아, 물 좀 끓여봐. 이 새끼로 나비탕 끓여야 할 것 같다.”
“그냥 불태우면 안 될까요?”
“너가 원한다면야.”
유나가 불길이 넘실거리는 지팡이를 좆냥이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채하도 살벌한 눈으로 좆냥이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원한이 쌓인 모양이었다.
[흠, 이 고양이에게서 저 상자 속의 재앙과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구나. 아무래도 이 고양이가 상자를 연 듯 하느니라.]
“내 보물! 내 보물을 돌려달라냥!”
“뭐해? 빨리 태워버리자.”
“내 보물! 내 보물....”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려 좆냥이를 내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내가 우리한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멀리 좆냥이를 보내버리자, 유나의 불덩이가 좆냥이를 향해 날아갔다. 농구공만한 불덩이가 좆냥이에게 작렬하자, 좆냥이는 비명을 질렀다.
“냐아아아아아앙!”
어우 노린내. 나는 코를 손가락으로 막고 만악의 근원이었던 좆냥이가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걸로 끝?
“,..렇게 돼서,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지.”
“어쩌다 그 상자가 가지세계에...”
“나도 모르지. 마리아, 이거 경계에 가져다주고 올래? 이런 찝찝한 물건 지구에 남겨두긴 싫거든? 다시는 못 열리게 납땜을 하던지 봉인을 하던지 해서 경계에서 보관해줘.”
“알았어요.”
마리아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결국 나는 그 세계를 잠시나마 구하고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살아남은 마법소녀는 서른 남짓이고, 재앙은 상자 속에 갇히고 말았지만 희망은 그 세계에 남아 세계를 재건하는 원동력이 되겠지.
그 좆냥이가 불타죽은 이상 마법소녀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불명이지만, 뭐, 그건 내 알바 아니니까. 그 세계의 일은 그 세계의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도와줄 만큼 도와줬다고.
“엄마.”
“무슨 일이니?”
나는 안겨드는 리온을 무릎위에 앉혀놓고 내려다보았다. 내가 일주일 정도 사라졌다 돌아왔더니 애가 안 떨어지려고 하네. 내가 사라져서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리온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걸었다.
“저녁 먹고 싶은 거 있니?”
“음...불고기?”
“알았어. 해줄게. 대신에 야채도 잘 먹어야 돼. 알았지?”
“...응.”
...일주일 동안 밀린 일 처리하려면 고생하겠네.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