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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66화 (266/352)

〈 266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9)

* *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검중 하나가 거침없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정체불명의 인간형 괴수는 날아오는 검을 잡으려다, 미칠 듯이 울려오는 본능의 경고에 황급하게 몸을 뒤틀어 엑스칼리버를 피해냈다.

괴수는 다시 몸을 돌려 자신에게 검을 던진 상대를 쳐다보았다. 침입자를 처치하기 위해 태어난 지 10분밖에 안된 인간형 괴수는 반은 하얀 머리, 반은 붉은 머리를 한 여성을 보며 경계심을 키웠다.

태어난 지 1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괴수는 태어날 때부터 성체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가장 위험한 적이 누구인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판단력은 있었으니까. 괴수는 손대신 달린 칼날을 앞으로 내밀었다.

분명 그에게 검을 던졌건만, 그녀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집어던진 검은 서양식 롱소드에 가까운 검이었고 손에 들린 검은 동양에서 사용하는 환도였다는 점이었다.

서양풍 이목구비를 가진 소녀와 환도의 조합은 기묘한 느낌이었지만, 괴수는 그런 언밸런스함에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걸어오고 있는 소녀를 상대하는 것이 그가 태어난 이유였으므로.

“야, 그냥 비키지?”

살의가 넘쳐흐르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괴수는 조용히 양 팔을 가슴 앞에 모아 교차시켰다. 그가 할 일은 둘 중에 하나 였다. 침입자를 전부 처리하거나, 아니면 시간을 끌거나.

최소한 괴수들의 어머니, 헤스티아가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 버텨내야만 했다. 아주 잠깐의 고민 끝에, 괴수는 판단을 내렸다.

눈앞의 소녀를 죽이기로. 선두에 선 소녀를 제외하면 방해조차 되지 못할 만큼 약했기에, 괴수의 목표는 눈앞의 소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선두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만 죽인다면 나머지를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일 테니까.

유진은 손을 앞으로 모아 X자로 교차한 괴수의 행동을 보곤 혀를 찼다.

‘역시 쉽게 쉽게 갈 생각은 없나보네. 어차피 그냥 던져본 말이긴 하지만.’

엑스칼리버는 통로 너머로 사라졌기에, 유진은 지옥참마도를 고쳐 쥐고 발끝에 힘을 주고 몸을 전방으로 튕겨 날렸다. 무협에서나 볼법한 신속하고 강력한 동작에 괴수는 마찬가지로 칼날과 같은 팔로 베어버리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쾅!

불똥이 튄다. 팔과 검이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유진은 혀를 차며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괴수를 밀어냈다. 전체적인 신체스펙은 그녀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에, 괴수는 속절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괴수는 밀려날 때의 반동을 이용해 뒤로 도약하곤 상황을 살폈다. 상대의 기량은 아직 가늠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신체적인 스펙은 괴수인 그보다도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괴수이기에 감정이 희박한 그에게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간에게 있어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므로.

그의 신체능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급조된 괴수라고 하나, 그의 힘은 트럭 정도는 몸으로 밀어낼 수 있는 1급 괴수에 비견되는 것이었으므로. 그저 상대의 스펙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는 게 문제였다.

1급 괴수와 맞대결을 해도 밀리지 않는 인간이 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괴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유효타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괴수가 가진 특유의 초재생은 시간을 끄는 데는 최적이었다.

“귀찮게...그냥 죽어주면 안될까? 나 집가서 밥해야 되거든?”

검과 팔이 부딪히며 통로를 울린다.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뒤에서 창백한 얼굴로 지켜보던 마법소녀들은 결의에 찬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합을 맞춰 본 적이 없으니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방해밖에 되지 않으니, 그녀들은 그녀 나름대로 이 싸움을 지원해야만 했다.

“유진언니! 시간을 끌어줄 수 있나요?”

“얼마나!”

“5분이면 되요!”

유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1급 괴수에게 통할 정도의 마법이라면 긴영창과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마법소녀들은 유나의 등에 손을 대고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유나 혼자만의 마력으로는 긴 영창에 필요한 마력을 충당하지 못했기에 필요한 도움이었다.

“알았어!”

유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거칠게 괴수를 몰아붙였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괴수는 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기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위험하다는 것 뿐.

검과 팔을 맞대곤 교차하던 인간과 괴수는 동시에 서로의 팔을 뒤틀곤 공격을 흘려냈다.

다시 한 번 검과 팔이 부딪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괴수는 유진과 충돌할수록 정면대결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것보다 신체능력이 열세였기에,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지만 수압 고분자커터를 들이대도 흠집이 날까말까한 강도의 팔에 상처가 늘어가는 팔을 보며 이대로 가면 저 뒤쪽에서 수작을 부리는 마법소녀는커녕, 눈앞의 마법소녀에게 팔 째로 머리가 뭉개질 판이었다.

3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괴수는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고, 상대는 급하게 태어나 완전한 1급 괴수가 되지 못한 그로서는 버거운 상대였으니까.

괴수는 뒤로 뛰어올라 거리를 벌렸다. 유진은 괴물의 후퇴에 바로 따라붙으려 했으나, 그보다 괴수의 행동이 한 수 더 빨랐다, 괴수는 팔 한 짝을 떼어내 마법소녀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이런 미친!”

유진은 예상치 못한 괴물의 행동에 급하게 몸을 돌려 칼날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등 뒤로 날아간 거대한 칼날은 마법소녀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애들아! 피해!”

유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법소녀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다. 마법소녀들은 유나에게 마력을 전달해주고 유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마법을 쓰려는 중이었기에, 당장 마력전달을 끊고 피하려고 해도 몸에 부담이 가니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유나와 채하는 날아오는 죽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칼날은 그들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유나는 자신의 얼굴에 튄 뜨겁고 비린 액체에 눈을 떴다.

“인아...언니?”

“계속...외워.”

인아는 희미한 시야로 비치는 부러진 마법봉과, 하반신 아래로는 아예 감각이 없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네...

인아가 생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인아야!”

유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분노를 감추지 못 한 채로 자신의 목에 칼날을 휘두른 괴수를 노려보았다. 괴수는 전력으로 유진의 목에 칼을 휘둘렀음에도 한 치도 들어가지 않는 칼날에 당황하며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유진이 팔을 붙잡은 것이 더 빨랐다.

괴수는 팔을 붙잡힌 채로 유진에게 전력으로 걷어차였다. 괴수의 팔이 유진의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뽑혀나갔다. 괴수는 뽑혀나간 팔을 다시 재생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가슴에 자신의 ‘팔이었던 것’이 꽂히는 것이 더 빨랐다.

강제로 몸이 바닥에 고정된 괴수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유진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유진은 양 팔을 순식간에 재생시킨 괴수의 양 어깨를 붙잡고 뽑아냈다. 괴수는 갑작스레 뽑혀나간 팔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죽음의 공포가 괴수에게 드리운다.

유진은 괴수의 어깨에 양 팔을 박아 최소한의 저항조차 틀어막았다.

이윽고 벌레 표본처럼 꼼짝없이 박혀버린 괴수에게, 5분의 영찰 끝에 완성된 유나의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어어어어! ‘서리거인의 숨결!’”

모든 걸 얼려버릴 듯한 푸른 광선이 통로를 휩쓸었다. 휩쓸리기 전에 머리카락으로 온 몸을 감싸고 구석으로 피한 유진은 머리카락 너머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유진은 머리카락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완전히 얼어버린 통로를 보곤 괴수가 있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건 완전히 동상처럼 얼어버린 괴수였다.

“좆같은 새끼.”

유진은 발로 괴수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렸다.

온 몸이 얼어버려 재생할 수 없었던 괴수는 그대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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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언니...”

채하와 유나는 몸이 반으로 갈려나간 인아의 시신을 수습해 마법으로 땅을 파내곤 손수 매장했다. 인류의 사활을 건 전쟁 중이었기에,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유진은 울먹이며 손으로 직접 구덩이에 흙을 채워 넣는 모습을 씁쓸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흙을 다 채워넣은 유나와 채하는 흙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반으로 부러진 마법봉을 올려놓았다.

유진은 씁쓸한 눈으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영혼만이 남은 인아가 두 사람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애내 둘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 보낼 테니까.”

유진의 말에 인아는 유진에게 시선을 돌리곤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성불한 걸까.’

유진은 다시 주워온 엑스칼리버를 머리카락 속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그 물건을 회수해 뚜껑을 닫으면 더 이상 부정체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니라.]

‘...최대한 빨리 회수해야겠네.’

“...애들아, 가자. 헤스티아만 처리하면...이기는 거야.”

유진의 말에 채하와 유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모든 것을 끝내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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