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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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마법소녀가 빌딩 옥상에서 도열해 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장관이었다. 뭔가 약간 X블 영화에서 히어로들 모여가지고 최종결전 준비하는 느낌이잖아.
그게 알록달록 총천연색 시스터즈니까 문제지!
핑크 레드 블루 옐로우 블랙 퍼플 온갖 색들의 복장을 입은 애들이 군인 마냥 엄숙한 얼굴로 모여 있으니까 이상한 느낌이야! 이래서 군인들한테 군복을 입히는 거라는 걸 이런데서 깨닫고 싶지 않았어!
“저희는 오늘 이곳에서 끝을 볼 겁니다. 전세계가 부정체에게 점령당했지만, 그들의 모체인 헤스티아만 처치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희망이 생기겠죠. 오늘 우리는...”
나는 모두의 앞에 서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김미영 팀장, 아니 마법소녀 김미영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세종시 한가운데에 생겨났다는 싱크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싱크홀은 뉴스나 X튜브에서만 몇 번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네. 사거리 하나가 통째로 꺼졌는데도 안이 시커먼 걸 보면 도대체 얼마나 깊은 거야. 나 나름 시력 좋아서 2.0은 가뿐히 찍는데도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그래도 저 싱크홀에서 흘러나오는 불쾌한 기운은 느껴지지만. 저 아래 있을 텐데도 여기까지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최초의 괴수다웠다. 원래 이런데서 최초 어쩌구 최후 어쩌구 이런 수식어 붙으면 존나 쎈건 국룰이니까.
[흠...신기한 존재니라.]
뭐가?
[저 부정체라 불리는 것들 말이니라.]
왜?
[이토록 부정적인 감정들만 뭉쳐서 만들어진 인공생명체라니, 신기하지 않느냐?]
폼 잡지 말고 이야기 좀 해봐. 그래서 저 부정체가 정확히 뭔데? 마이너스 에너지 어쩌고 하던 것 같은데 보통 그런 거 뭉쳤다고 저런 괴물이 나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보통이라면 그럴 것이니라. 하지만 알지 않느냐? 어떤 것이든 정도 이상으로 모이면...이변이 일어난 다는 것을 말이니라.]
틀린 말은 아니네.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니까.
[인간사회는 욕망으로 뒤얽힌 거미줄과 다를바가 없느니라. 수많은 인간들이 자기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희생되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그들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 마이너스 에너지의 방향성이 인간을 향한 혐오이기 때문일 것이니라.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당했겠느냐?]
인간을 향한 혐오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네. 내가 사는 세상도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팽배한 곳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올까.
뭐, 뭐가 됐든 나는 저 놈들 족치고 집가서 밥해야 돼.
그전에 여기서도 밥을 하게 생겼지만.
“...그럼,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죠.”
나는 미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카락으로 옆에 끓고 있는 가마솥의 뚜껑을 열고 큼지막한 국자를 들었다. 요리 할 큰 냄비 없냐고 하니까 갖다 주더라. 도대체 가마솥을 어디서 가져온 거야?
메뉴는 떡국이다. 근처 가게에서 털어온 물건 중에 처치 곤란이었던 떡들이 많기도 했고,
어차피 오늘 작전 성공 못하면 다 죽는다고 식량 있는 대로 다 쓰라고 하더라. 하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니까 이상한 건 아니지. 근데 니들 도대체 밥 어떻게 해먹은거야.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모였는데 떡국 하나 제대로 끓일 줄을 몰라?
가정적인 마법소녀는 어디 갔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가정적인 마법소녀가 없다니 너네 지금까지 요리 안 배우고 뭐했냐고!
...라고 물었지만 나이가 많아봐야 20대 초중반 어린애들이라서 요리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하긴 요리 잘하는 꼬마가 그리 흔한가. 요즘은 인스턴트 식품도 잘 나와서 밀키트만 대충 사서 먹어도 되는데.
“냄새...”
“맛있는 냄새. 의외.”
거, 잔말 말고 먹지? 나는 그릇에 떡국을 한가득 퍼 담아 줄을 선 마법소녀들에게 하나하나 건네주기 시작했다. 배식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데 이 정도면 내 양 조절 솜씨 안 죽었군.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더 줄까?”
“아뇨! 이정도면 되요!”
뭐, 맛있게 먹으면 된 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나는 흐뭇하게 내 몫의 떡국을...없네.
생각해보니까 내 몫까지 다 퍼다 줬구나.
뭐 굶는다고 탈나는 몸은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밑에서 기운이 느껴져요...”
나와 함께 타격조로 편성된 채하가 말했다. 타격조는 4명. 나, 채하, 인아, 유나였다. 왜 이렇게 짜였냐면, 애초에 총 인원이 50 남짓한 상황에 타격조의 인원이 많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 밑으로 전부 내려간다 쳐도 위에서 부정체들 몰려오면 죄다 압사 당할 테니까 위에서 누군가 지켜야 하는데 구멍 자체가 더럽게 넒어서 수가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 헤스티아를 죽이는 데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 없다...고 내가 주장했다. 반박은 미트, 아니 엑스칼리버로 대신했다. 이게 그냥 날만 잘 드는 검 같아 보여도 나름 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라 마력 우겨넣으면 작은 건물 정도는 손목 스냅만으로도 갈라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마법소녀 중에 나 이상으로 강한 공격력을 가진 녀석도 없고 나처럼 빌딩 벽을 뛰어 올라가는 곡예를 부릴 수 있는 녀석도 없다.
사실 나도 했는데 돼서 놀랐다니까. 조금만 있으면 코리안 닌자라고 불려도 되겠네!
뭐, 그리고 애내들 전투력으로는 떼거지 올려가야 1급과 겨우 대치가 가능한 수준인데 그럼 좁을지 넒을지 모르는 저 아랫 공간에서 많은 인원을 데려가는 것도 거치적거리고. 그리고 나에게는 진짜 수틀리면 내밀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 소수가 좋았다.
지들이 쎄봐야 그 망할 그리스 불륜마보다 쎄겠냐고. 니들이 번개 맛 좀 볼래? 근데 생각해보니까 번개 던지는 거 되게 부럽네? 나도 그런 원거리 기술 쓸 줄 알았으면 그냥 위에서 죽을 때까지 던져대면 그만이잖아.
예로부터 원딜은 꼼수의 상징이었다고.
나중에 마리아든 헤카테든 한 번 가서 물어나 볼까. 내 인생에 마가 제대로 낀 거 같은데 내 몸 멀쩡하게 돌아오려면 소년만화처럼 무식한 수준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련은 해야 할지도 몰라.
일단은 이 상황이나 해결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겠지만...그런데 그 좆냥이 사고치진 않겠지? 철창에 가둬놓고 오기는 했는데 뭔가 영 찜찜하단 말이야.
인아의 마법으로 조심스럽게 밑바닥으로 내려온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일단 광원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유진아, 좀 으스스하지 않아?”
너가 으스스하잖아 너가.
처녀귀신이 으스스하다고 물어보면 내가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는 거야?
“그것 보단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더 문제야...혹시 불빛 같은 거 만들 수 있는 사람?”
“저요.”
그래 유나야. 빨리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자꾸나. 나름 정통파 마법소녀 같은 복장을 한 유나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세워 추켜올리며 주문을 외쳤다.
“빛나라! X모스!”
어디선가 들어본 굉장히 익숙한 주문과 함께, 유나가 들고 있던 지팡이의 꼭대기의 구체에서 밝은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섬광탄이라도 터트린 듯 한 광량에 모두가 시선을 피했지만, 그랬기에 주변 환경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내려앉아 박살난 건물들, 주위를 어지럽히는 자동차와 표지판들로 가득찬 공간. 그야말로 싱크홀의 안쪽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헌터물 속 던전에 들어온 느낌이네.
“내가 지금 저작권에 심히 위반되는 듯한 주문을 들은 거 같은데.”
“그 저작권 따질 법은 이미 없어졌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건 그러네. 국가가 붕괴됐는데 저작권이 무슨 소용이야. 나는 지켜야 되지만. 아무튼 생각보다 내부가 조용한데.
혹시 이미 헤스티아인지 가슴끈 여신인지 뭔가 하는 년 낌새 눈치 채고 도망간 거 아니겠지?
[...도대체 어떤 유물이 이 사달을 만들었는지 궁금했건만, 그런 것이었나.]
...뭔데? 나도 좀 알려줘.
[고대 유물들은 대부분 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남겨놓은 물건들이니라. 이 검부터가 신들이 남긴 유물 중 하나니라.]
신들이 쓰던 물건이라...솔직히 불길함 밖에 안 느껴지는데.
[틀린 말은 아니니라. 고대 유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져 버렸기에 찾을 수 없었거늘. 그 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 같느니라.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물건 말이니라. 세계가 멸망 직전으로 몰린 것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니라.]
그래서 그게 뭔데.
[세상의 온갖 재앙을 담아놓은 상자를 알고 있느냐?]
에반데.
그거 진짜 에반데.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물건이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데.
“유진...언니?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요...”
나는 채하의 말에 앞을 바라보았다. 모리안이랑 대화하느라 눈치 못 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두 번씩 들려오는 걸 보니 이족보행 하는 놈인가. 유나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앞쪽으로 빛을 집중시켰다.
유나의 지팡이에서 나온 빛이 앞을 비추자,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루엣은 인간과 흡사했다. 분명 괴수는 인간형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조금 다르다면 팔이 마치 칼날같이 생겼다는 정도였다.
괴수답게 몬스터 어필은 끝내주게 해주시네.
“저게...뭐죠?”
“괴수...? 하지만 괴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은데...인간보다 조금 거대한 크기의 괴수는 처음이에요...”
“...괴수 맞는 것 같은데.”
못해도 그 리바이어던인가 하는 놈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더 날쎄려나.
나는 양손으로 엑스칼리버를 쥐고 검을 어깨위로 치켜들었다.
싸움은 선빵이지!
“주거!”
“유진언니?!”
나는 마력을 있는 대로 쏟아 부은 엑스칼리버를 집어던졌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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