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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63화 (263/352)

〈 263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6)

* * *

“아니 근데 내가 이런 걸 꼭 입어야 돼...?”

“마법소녀처럼 보이려면 어쩔 수 없어요. 유진씨 이야기를 막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다구요.”

아니 그렇긴 한데 이거 너무 복장이 좀...난 치마 싫은데. 맨다리가 드러난 게 어색해...바지를 안 입고 다니는 느낌이라 더! 치마는 강제로 입혀졌을 때 말곤 입은 적도 없는데! 나는 치마보다 바지가 좋다고!

“아니 그건 나도 동의하는데, 마법소녀는 바지 안 입어?”

설마 모든 마법소녀가 이렇게 하늘하늘한 회색빛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건 아니지? 리본 달려 있는 옷이라 더 소름끼쳐. 그렇다고 리본을 떼버릴 수도 없고...

내 물음에 인아는 고민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뜨곤 대답했다.

“바지 입는 마법소녀가 없지는 않지만, 극소수인데다 바지를 구하기가 힘들어서요. 그리고...예림이가 입던 옷이라, 후임이라고 속이기 쉬우니까요.”

역시 여성여성한 직업이라 바지 입는 애들이 별로 없다 이건가. 그럼 최소한 속바지 정도는 줬으면 좋겠는데. 치마가 생각보다 길긴 하지만 어쨌든 좀 그렇다고! 세연아 넌 뭘 실실 쪼개냐! 햄버거 세트고 뭐고 다 취소당하고 싶어?!

“후...알았어.”

싸우러 갈 땐 안에 바지 입고 간다 진짜.

“...다 끝났다냥...이딴 세상 망해버리라냥...”

나와 마법소녀 셋, 그리고 철창에 갇힌 삶의 의욕을 잃은 좆냥이(中)는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마법소녀로 변장을 하고 가는 건 내가 이세계인인 게 밝혀지면 일이 번거로워지니 마법소녀인 척을 하려는 거였고, 저 좆냥이를 협박해서 강제로 입을 맞춰뒀으니 내가 연기만 잘 하면 될 거다.

근데 연기는 자신 없는데.

“몸매 좋으시네요...”

아니 몸매 비교하지 마. 기분이상해지니까. 여자들한테 질투 받아봐야 귀찮단 말야. 내 가슴이 나름 거유라인에 속하지만 ‘진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니들 F컵 현실에서 본적 없지?

“피부도 좋으시고...”

“니들도 충분히 좋은데 왜 그래.”

“저희는 몸에 마력을 두르고 있으니까요. 마력이 언제나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그거 좀 대단하네.

“그런데 유진씨는 원래 세계에서 뭐 하고 살았어요?”

채하는 다소 평범한 질문을 나에게 건넸다. 나에 대한 호기심이 눈에서 잔뜩 묻어났기에, 나는 적당한 선에서 대답해주기로 했다.

“나? 방송했는데?”

“네? 방송이요?”

“응. 인터넷 방송이긴 하지만.”

“인터넷 방송하시는 분이 전투력이 대단하시네요...혹시 막 싸우는 걸 방송하고 그런 거에요?”

“아니. 그냥 게임 방송인데? 우리 세계에서도 난 특이 케이스야.”

듀라한에 전생 여신인데 이런 케이스는 지구에서 나 하나뿐이라고. 채하는 내가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확실히 내가 싸우는 걸 봤으니까 괴리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가.

유나랑 인아도 조금 놀라는 표정이긴 했지만, 채하 정도는 아니었다.

“방송이라...못 본지 오래됐네요.”

“맞아. 어릴 땐 맨날 TV앞에서 살았는데...”

“요즘 전자기기 쓰는 건 사치중의 사치니까요. 일부 지역에서만 전기가 공급이 되니...”

세상살이 참 암울하네 여기. 하긴 인류 멸망 직전 상태인데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애내들 아지트도 한 반쯤 폐허가 된 호텔방이던데. 그나마 이 근처에서 멀쩡한 건물이라 거기서 지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헤스티아만 처치하면, 발전소도 수복할 수 있을지 몰라.”

“교외에 있는 태양열 발전소만 확보해도, 전자기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전자레인지랑 전기밥솥도 쓸 수 있는 거지? 쌀은 있는데 전기밥솥은 못 써서 불편했다니까!”

희망에 부풀어 있구만,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애들답다면 애들다웠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서, 언제쯤 도착해?”

“저 건물이에요.”

나는 인아가 손으로 가리킨 건물을 쳐다보았다. 덩굴이 외벽을 감싸고 군데군데 유리창이 깨져 있었지만,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9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상태가 안 좋은데?”

“이 근처의 건물들은 죄다 비슷한 상태인데다, 이 건물은 이 근 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니까요. 높은 곳이 괴물이나 괴수를 확인하기 가장 편하죠.”

지형적 이점 때문에 고른 회담 장소라는 거구나.

나와 마법소녀 일행은 인아가 가리킨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갔는지 묘하게 깨끗한 유리문에 다가가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몸이 반쯤 땅에 파묻혀 있는 음침한 인상의 소녀가 보였다. 손에 만화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만화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녕.”

“지혜야. 여기서 뭐해?”

“문지기.”

“그렇구나...”

유나랑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지혜라는 이름의 소녀는 유나의 말을 단답형으로 흘러 넘기며, 유나의 어깨 너머에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뭐, 왜, 뭐.

“뒤에, 처음 보는 사람. 누구?”

“예림이의 후임이야. 이름은 유진, 마법소녀 듀라!”

“푸흡...흡...큭....푸하하하하하하!”

[거, 걸작이로다...흡...]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세연아 쳐 웃지 마라! 묶어놓고 눈앞에서 햄버거 먹방 찍어버리기 전에! 망할 모리안년도 쳐 웃지 말라고!

“아, 안녕!”

“...”

아니 왜 말이 없으세요. 나는 말없이 나를 훑어보는 음침한 마법소녀를 보며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무해함을 어필했다.

“너. 수상.”

“내, 내가 왜 수상해?”

“마법소녀. 냄새. 안 난다.”

개냐?

“무. 무슨 소리야, 이 분, 아니 얘는 신참 마법소녀에요!”

인아야, 너 연기 드럽게 못하는 구나? 유치원생도 네 어색한 연기보고 ‘이건 좀...’이라고 생각하겠다! 끔찍한 발연기에 눈물이 날 지경이야!

역시 지혜인가 혜지인가 하는 마법소녀도 인아가 의심스러웠는지, 인아의 코앞까지 다가가 지그시 인아를 노려보고는, 식은땀을 흘리는 인아의 볼을 거침없이 핥았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음. 거짓말을 하는 맛.”

...만화 좋아하는 구나? 현실에서 저 지거리를 하는 걸 볼 줄은 몰랐는데.

“음, 그러니까...지혜? 맞지?”

“무슨 일?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라니, 아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뭔가 머리를 한 번 쥐어박고 싶은 발언이네 그려.

“왜 내가 마법소녀가 아니라고 생각해?”

“너, 마법소녀 아니다. 마법소녀, 느낌 있다.”

말투 한번 독특한 애일세. 그나저나 이 애를 어떻게 설득시켜야 한다? 억지로 밀고 들어갈 수도 없고. 나는 지혜가 들고 있는 만화책을 쳐다보았다. 낡을 대로 낡아 너덜거리는 만화책. 도대체 얼마나 반복해서 읽은 거야.

그러고보니 저거 나 본적 있는 건데.

“그 만화, 재밌지? 주인공이 하반신 장애면서도 레이스를 달리면서­”

내가 갑작스럽게 만화책 이야기를 꺼내자 당혹스러웠는지, 지혜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동지를 찾은 씹덕의 반응 같은데.

“나, 다음권, 모른다. 다음권, 없다.”

그래서 저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은 건가.

“그거 다음권에선­”

“스포, 나쁜문명. 스포. 죽인다.”

이년 진짜였네! 대사에서 느껴지는 진한 씹덕의 스멜에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농담이야 농담!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왜 마법소녀가 아닌지 설명해볼래?”

“너, 마법봉. 없다.”

“있는데?”

“너, 없다.”

“진짜야. 잘 봐,”

나는 은근슬쩍 머리카락 사이에 숨겨놓았던 엑스칼리버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지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엑스칼리버를 쳐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이거. 마법봉 아니다.”

“봉이든 검이든 잘 들기면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검이 더 멋있지 않아?”

“그거. 동의한다.”

“그리고 마법봉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을까? 세상은 개성 넘치는 마법소녀를 원한다고! X탠드도 쓸 수 있는! 잘 봐!”

나는 열변을 토하며 세연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세연이에게 지혜의 만화책을 뺏어오도록 신호를 보냈다.

“그건 너무 한거 아니야?”

닥치고 해.

“...!!!”

나는 내손에 잡힌 낡은 만화책을 흔들며, 지혜에게 보여주었다.

“봤지? 이렇게 x탠드도 쓸 수 있...”

“지혜야!”

“이 불경한 자가!”

내 선동과 날조에 대한 대답은 극대노한 지혜의 오함마 내려찍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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