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4)
* * *
“치열하네요...대단해요...”
“마법소녀로 만들기만 하면 이 세계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냥...”
“...진짜 싫지만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는 게 짜증나네요. 죽어버려 이 좆냥이.”
“말이 너무 심하다냥?!”
아니 니들 사실 친하지? 누구는 영혼의 맞다이를 하고 있는 데 지들은 만담을 하고 자빠졌네? 너네 양심 없어? 안 돕냐? 요즘 마법소녀 메타가 혐성인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좀 너무하잖아?
나 그냥 돌아가 버린다?
“ARRRR,,,,”
“그 버섯커 같은 울음 소리 좀 그만하고 그냥 죽어주지 않을래?”
쓸데없이 날쌔가지고 피하기는 더럽게 잘 피하네. 나는 민첩한 놈보다는 둔하고 힘쎈 놈이 더 좋은데. 내가 싸움 좀 쳐본 인간도 아니고, 싸움 실력 자체는 일반인 이상 격투기 선수 미만의 어중간한 인간이라 뭐 덮쳐오는 걸 카운터 치니 뭐니 하기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저 놈, 세연이를 볼 수 있는 건지 동물적인 직감의 힘인지 내 비장의 수를 너무 쉽게 피해낸단 말이야. 세트리어트 미사일이 빗나간 건 처음 봤어! 애초에 이게 두 번째긴 하지만! 싸움을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봉인 당했으니, 결국 육탄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데...체급 차가 어지간해야지.
내가 아무리 힘 쎄도 저 정도 체구를 들어 올리거나 하지는 못한다고! 나는 몹집은 더럽게 큰 주제에 날쌔기는 진짜 늑대만큼 날쌘 괴수를 노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서로 유효타를 못 내니 쓸데없이 시간만 끌리고. 아직 체력적으로 크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올 거 같은데. 그걸 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진짜면 저 놈 머리도 꽤 좋은 게 아닐까.
유효타를 주질 못하니까 살살 간만 보는 게 빡치잖아. 뚜벅이 탱커하고 있는데 원딜이 슬쩍 슬쩍 포킹 한 대씩 날리는 기분이야. 아프지는 않은데 거슬려! 목덜미에 집요하게 닿는 시선도 기분 나빠!
“여, 역시 도움을 요청해야 될 것 같은데요...”
“1급 괴수 잡으려면 마법소녀 50명 정도는 필요하다며? 개내들 몇 명인데? 와서 도움이 돼? 그전에 지금 연락한다고 바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닐 거 아냐?”
“그래도 없는 것보단...”
“개내들 저 늑대 붙잡아 놓을 수 있어?”
“...아니요.”
“그럼 유효타는?”
“힘을 모으면 한 번 정도는...?”
“한 번 정도는 물려도 버틸 수 있나?”
“물리면 죽어요!”
“근데 왜 불러?”
“...”
“이상하다냥...보통은 여기서 ‘다른 사람은 걸리적거리니까’나 ‘이건 내 싸움이다, 아무도 끼어들지 마!’같은 쿨한 대사가 나와야 하지 않냥?”
“님 도르신? 정말 도르신?”
요즘 만화에서도 그러면 가오충이라고 욕먹어!
“입이 험하다냥...마법소녀는 이쁜 말만 해야 된다냥...”
“아니 니 옆에 있는 애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니?”
방금 재도 좆냥이라고 하던데?
“듣고 보니 그렇다냥...”
“왜, 왜 저를 까는 흐름이 되는 건데요?!”
“몰?루”
“뭐에요 그 묘하게 짜증나는 대답은.”
아! 몰루아카 모르시는 구나! 하긴 세상이 이 꼬라진데 나오기도 전에 회사가 망했겠네.
“ARRRR...”
“너 딱히 잊고 있던 건 아닌데,..”
어차피 너도 유효타 안 나오는 거 아니까 안 덤벼든 거잖아.
서로 유효타를 날리기도 힘들고, 그러자고 어느 한 쪽이 꼬리 말고 도망가자니 자존심 상하고. 그러니까 뭔가 저놈을 족칠 방법이 필요했다.
...아.
나는 거의 몽둥이처럼 휘두르던 엑스칼리버를 느슨하게 쥐곤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을 생각했다.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일단 지르고 보자.
나는 엑스칼리버를 양손으로 쥐고 달려 나갔다. 자세는 좀 어색해도 신체 스펙이 좋으니 꽤 그럴듯한 움직임이 나온다. 레비아탄인가 리바이어던인가 하는 늑대는 내 갑작스런 급발진에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눈을 부라리다가, 내가 급속도로 다가오자 그 날카롭고 섬뜩한 이빨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나는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늑대의 바로 앞에서 급정지했다. 보통이라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겠지만 나는 마음만 먹으면 경차 정도는 들어 올릴 수 있는 괴력이 있었다.
반대로 늑대는 저 거대한 몸집을 멈출 수 없다. 코뿔소만한 덩치가 급정거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할까. 늑대는 좋든 싫든 내 쪽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발끝으로 몸을 완전히 멈춘 나는 내 머리카락을 쥐고 목과 머리를 연결하던 머리카락을 풀어버렸다. 늑대는 본능적으로 목덜미를 물려고 하겠지만, 목이 없으면 물게 없다 이 말이야. 물론 저 몸무게로 날 깔아뭉개기만 해도 위험할 테지만, 그건 방법이 있었다.
시야가 낮아졌지만, 이 몸이 된지 벌써 8개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나는 머리카락 길이를 적당히 조절해 휘두르기 쉽게 만들었다.
늑대가 내 머리 뽑기에 당혹스러워 하며 위기감을 감지했는지 몸을 빼려는 사이에, 나는 머리카락을 쥔 팔을 언더스로로 휘둘렀다.
“이게 지성이란 거다 망할 개새끼야!”
내 머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전력으로 휘둘렀으니 보통이라면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져야 정상이지만, 내 머리는 자타공인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뚝배기기도 하고.
즉, 성유물 취급인 내 머리는 그 무엇보다 부정체에게 효과 적인 무기였다.
늑대는 내 뚝배기를 맞고 머리가 들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작정하고 휘두르면 신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공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실패하면 뒤가 없긴 하지만, 성공했으면 됐지.
“!*@(!^(!!”
나는 머리를 재빠르게 다시 목 위에 올려놓고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늑대새끼는 이번에는 데미지를 피하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입가에서 검은 피 비스무리한 것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쓸데없이 맷집은 좋아가지고.
나는 다시 머리카락을 쥐고 휘두르는 척을 하곤 세연이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비틀거리는 늑대의 머리에 들러붙은 세연이는 늑대의 미간을 향해 입을 벌렸다.
“울어라! 지옥참마도!”
“햄버거 세트 2개로는 모자라...구웨에에엑!”
세연이의 입에서 작살이 사출되어 늑대의 미간에 꽃혔다. 커다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늑대는 사출된 지옥참마도에 속수무책으로 찔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살은 늑대의 몸안에서 급격하게 가시를 생성해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시가 늑대의 몸에서 튀어나오자, 제 아무리 리바이어던인가 하는 그럴듯한 명칭을 가진 녀석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
“쓰러트렸...다?”
“해치웠냥?!”
“닥쳐! 그 대사를 외치지마!”
다된 밥에 재를 뿌리려고 작정했나! 저러니까 마법소녀들이 죽이려고 달려들지!
다행히도 망할 늑대는 점점 형체를 잃고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세연이는 지옥참마도를 회수하곤 내게 다가와 원망스레 중얼거렸다.
“햄버거 세트 5개만큼 기분 나빠...”
“알았어 알았어. 시켜주면 될 거 아냐.”
부정체와 붙어있었던 탓에 검은 액체를 뒤집어쓴 세연이는 기분이 나쁜 듯 연신 옷을 털어댔다. 아니 근데 어차피 귀신이라 몸에 안 붙잖아. 뭐 한번 파묻혀 있다 나왔으니 기분이 나쁠만한 하긴 하겠지만.
“그럼 이제 다른 마법소녀들이나 만나러 가볼...”
이건 뭐야.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러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챘다.
“화살을...잡았어?”
“장난감 화살도 아니고, 화살촉이 하트 모양이네...혹시 여긴 여아용 화살도 만드나.”
나는 핑크핑크한 드레스에 핑크핑크한 날개를 단 핑크핑크한 중딩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핑크는 광인의 상징이라고 배웠거늘,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복장이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저렇게 화려한 복장이라니.
X리큐어에 나와도 지장이 없을 것 같은 복장에 나는 이 소녀가 단박에 마법소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나야! 멈춰! 이 사람은...!”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이 머리를 떼고도 살아있는 건데!”
무척이나 타당하고 논리적인 발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납득하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