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외전:마법소녀 듀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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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급 부정체를 잡으려면 마법소녀가 10명은 필요한데...”
...약하네. 이 세계가 이 꼬라지가 날만하구나. 시공의 폭풍이 국민겜이란 말에 눈이 뒤집어져서 온 게 잘못이었나. 이미 말을 꺼냈으니 번복할 수도 없고...적당히 원인만 제거하고 튈까.
난 2등급 괴수의 잔해를 발로 툭툭치며 생각했다. 죽으니까 몸의 반 이상이 증발하는 모습은 장관이더라. 근데 왜 증발하는 겨? 사람의 어두운 감정을 먹고 살아서 감정 부분이 증발한 건가.
자동차 매연이라도 돼? 좀 골 때리네. 아무튼 2등급의 전투력은 대충 파악했으니 이제 돌아다니면서 해결해봐야 하나. 솔직히 신들에 비하면 위협적이지도 않고.
“어, 엄청나다냥! 이 정도면 세계를 혼자서 구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냥! 나와 계약을 하자...ㄴ”
“시꺼. 내가 뭐가 좋아서 너 같은 좆냥이랑 계약을 해야 하는데? 엔트로피고 뭐고 이상한 소리 꺼내면 그대로 머리만 잘라서 저어기 보이는 부정체 괴물한테 던져버린다?”
“나, 난폭하다냥...”
“니가 우리 집에 한 짓을 생각해라 이 망할 고양아.”
니가 깬 유리가 특수한 유리라서 돈이 얼마나 깨질지 모른다고! 물론 감당 못할 비용은 아니지만 예상외의 지출은 언제나 빡쳐! 안 그래도 회사다 연말이다 뭐다 하면서 돈이 엄청 빠져나가는 중인데 뭐? 세상을 구해?
지랄하고 자빠졌네.
전직 반반 여신으로서 생각하는 건데, 자기 세계는 좀 자기들이 구하면 좀 덧나나? 하다못해 다른 세계에 도움을 요청할거면 그랜절과 함께 깍듯하게 부탁이라도 해보던가. 맨날 불시에 찾아와서 살려 달라 구해 달라 ‘해 줘’ 외치는 데 참 도와주고 싶겠다. 그치?
“2등급 괴수는 문제없고, 1등급 괴수인가 뭔가 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강하냐?”
“최소 2등급 괴수 5마리 정도만큼 강하다냥. 하나 잡는데 마법소녀가 50명 가까이 필요해서...전력을 동원해도 이길 수가 없다냥.”
“왜? 마법소녀로 유명해졌다매. 그럼 숫자도 꽤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죽었다냥. 1등급 괴수 리바이어던을 막다가 마법소녀의 절반이 쓸려나가서 지금은 각자 남은 도시를 지키기에도 버겁다냥.”
처참한 세상이네. 문자 그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 자체인 세상이다. 가지세계는 죄다 이 꼬라진가?
[그렇느니라. 멸망이 확정된 세계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멸망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느니라.]
그건 아는데, 가지세계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맞나? 어차피 내가 뭔 짓을 해도 멸망하는 거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느니라. 마리아에게 들었다만, 신들과의 전쟁 도중에 누군가 가지세계를 우리의 세계에서 완전히 떼어냈다고 들었느니라. 이 세계가 새로운 뿌리가 된다면 이 세계도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이느니라.]
그래서, 어떻게? 그건 대규모 마법 같은 게 필요한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마법이라곤 배워본 적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모래나 흙을 주워서 닌자 놀이 같은 거 밖에 할 줄 모른다고.
근데 여기 부정체도 모래 주워서 뿌리면 녹아내리나?
[이들도 근본적으로 세계의 균형을 망치는 이물이니, 통하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그럼 좀 쉽네.”
“무슨 소리냥?”
“그냥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날 거 같아서 말이야.”
내 능력이 통한다면 일은 쉬웠다. 물론 이 세계를 살리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 내가 아니라 애내들이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대충 1급 괴수들만 적당히 족쳐서 카운트다운만 늘려주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될 것 같은데.
내가 세기말 구세주전설을 찍을 것도 아닌데 A부터 Z까지 다 떠먹여 줄 수는 없잖아. 결국 그 제우스가 있었던 세계도 자력갱생에 성공해서 살아남은 거고. 어디까지나 자기 세계의 일은 자기들이 처리한다.
그게 가장 올바른 길이다.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지들이 못하겠다고 짬 때리는 놈들은 그냥 멸망해도 할 말 없지.
“그, 채하야. 혹시 1급 괴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1, 1급 괴수요? 세, 세종시에도 하나 있는 걸로 아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대충 위치 알면 안내해줘. 일단 하나 조지고 시작하자.”
“네? 조, 조져요?”
“응. 2급 괴수인가 뭔가 하는 놈 잡아서 어느 정도인지 파악은 했고...2급 괴수 5마리 정도면 할 만하네.”
“1급은 차원이 달라요! 섣부른 자만은 목숨을 잃는 지름길이라구요! 지금은 일단 다른 마법소녀들과 합류해서...”
“합류해도 도와준단 보장이 없잖아.”
“...아니에요! 그 애들이라면...!”
“그래서 바로 불러올 수 있어?”
나는 빨리 끝내고 집가야 한다고. 며칠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방송도 해야되고, 나 없으면 애들 밥 제대로 안 챙겨 먹을까봐 걱정되고, 신입사원도 교육해야 되고. 할게 얼마나 많은데.
아, 돌아가면 리온 숙제도 봐줘야겠네. 슬슬 한국어도 의사소통 정도는 자유자재로 할 정도로는 익혀서 학교 다녀도 될 것 같은데. 검정고시도 준비시켜야 하나. 엘프라 성장이 느리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니게 하긴 좀 그렇고. 중학생 정도는 되어야...
“,,,안되겠죠. 그래도 혼자 가는 건 자살 행위라구요! 최소한 몇 명이라도 지원을 받는 게 최선이에요!”
“그 1급 괴수인가 뭔가 하는 거 저거 아니야?”
뭔가 만들다만 찰흙같이 생긴 놈일세. 나는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1급 괴수를 노려보았다. 저 놈부터 잡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일처리가 편해지지. 겸사겸사 저거 잔해라도 들고가서 증거로 삼기도 좋고. 그리고 쓸데없이 여기 애들이랑 엮이고 싶지도 않다.
[예전과는 다르게 담대해졌도다.]
전쟁터에서 한 번 굴렀는데 이 정도 일이야 그러려니 하기도 하고, 그때만큼 위기감이 생기지도 않고. 2등급 괴수도 옛날의 그 산군만큼 강하지도 않은 걸 보니 아마 1등급 괴수정도는 되어야 산군과 비슷하지 않을까.
“따라와, 최대한 빠르게 치고 빠진다. 좀 있으면 밤인데 어두운데서 싸우기는 싫으니까.”
“잠깐만요!”
나는 좆냥이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급하게 내딛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잘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네. 지금 거의 시속 60KM로 달리고 있는데.
“사람이 뭐가 이렇게 빨...라요!”
“사람 아닌데? 아까 기억 못해?”
내가 뚝배기 분리 쇼도 했는데 벌써 까먹었나? 내 말을 들은 채하는 그 광경이 떠오른 건지, 순식간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그렇게까지 반응하면 내가 정말 나쁜 년이 된 것 같잖아...
“괜찮아?”
“그, 그건 그만 말해주시면...동료 중에 괴수한 테 머리만 먹혀서 죽은 아이가 있어서...”
“미안. 힘들면 저쪽에서 쉬고 있어봐.”
어, 음. 제가 천하의 개쌍년이었나 봅니다. 내가 미안해! 이러면 내가 정말 답도 없는 썅년이잖아! 탈룰라 각도 안 나와!
“아니에요. 저도 따라갈게요.”
“무리하진 마.”
“지금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냥? 저 코너만 지나면 1급 괴수가 있는 곳이다냥!‘
그래, 그 존나 큰 늑대 말이지. 거의 코뿔소 사이즈던데. 2등급 괴수보다 확실히 몸집이 작기는 하지만, 더 날렵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느껴지는 기운도 아까 그 괴수보다 훨씬 크기도 했고.
[그리 강한 상대는 아니도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말거라.]
웬일로 걱정을 해주신데요? 매날 고기 줄 때마다 온갖 저주는 다 퍼부으셨으면서.
[그대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나도 돌아가지 못하느니라!]
아 그렇네. 내가 죽으면 답이 없네.
죽을 생각은 없지만.
나는 지옥참마도와 엑스칼리버를 고쳐 잡았다. 창과 검의 기묘한 조합이지만, 어차피 창은 던지면 그만이고 검은 몸둥이 대신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불길한 여신이 봉인되서 남은 고기 처리용 마검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왕년의 성검이 약할 리가 없다.
성검답게 빔을 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저런 놈들한테 정말 잘 드는 칼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세연아, 알지?”
“...꼭 해야 돼?”
“수제 햄버거 1세트.”
“3세트”
“2세트.”
“굿.”
“그럼 먼저 가볼게...”
나는 세연이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 조심스럽게 건물 외벽에 붙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80미터 정도인가. 이 정도면 할 만하네.”
나는 아까처럼 작살을 던지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속으로 숫자를 세며,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곤 리바이어던을 향해 작살을 겨누었다.
하나,
둘,
셋!
작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거칠게 허공을 찢으며 나아간 작살은 리바이어던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흡사 거대한 화살이 날아가는 듯 한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는지, 리바이어던인가 뭔가 하는 괴수는 순식간에 몸을 튕겨 작살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가 생각날 정도로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ARRR...”
[실패했느니라.]
뭐 맞을거라곤 생각도 안했다. 1급 괴수라는 애가 저거 맞고 바로 죽었으면 허탈해서 그냥 바로 집갔지.
나는 엑스칼리버를 양손으로 붙잡고 자세를 잡았다. 물론 용자검법 같은 괴상한 자세가 아닌, 예전에 중세검술 X튜브에서 본 그럴듯한 자세였다. 물론 자세만 그럴듯한 거지만.
“살다살다 칼 들고 몬스터 사냥을 하네...”
“ARRR...”
“수, 숨을 못쉬겠다냥!”
“그, 그대로 10분만 참아...”
“그럼 죽는다냥!”
니들 뭐하냐. 두 얼간이들이 어처구니 없는 대화를 하는 것을 들으니 조금 긴장이 풀린 나는 자세가 조금 흐트러질 수 밖에 없었다.
멀리서 호시탐탐 내 빈틈을 노리던 늑대는, 내가 잠시 긴장을 풀자 사냥감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오는 맹수처럼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