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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53화 (253/352)

〈 253화 〉 외전: 아테나 표류기(5)

* * *

유진의 집에 임시거주하게 된 아나트의 일과는 비교적 단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방을 청소하고, 마력을 가다듬기 위한 명상을 하고, 유진의 식사준비를 도왔다. 유진은 한사코 거부했지만 아나트는 마냥 호의를 받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거 설탕! 이게 소금!”

“*그, 그렇군요.”

“*...식탁 세팅을 좀 해줄래? 포크5개랑, 냉장고에서 김...아, 김치가 뭔지를 모르겠네.”

유진은 그냥 자기가 직접 꺼내기로 했다. 머리카락을 늘려 냉장고를 열은 유진은 김치가 튼 그릇을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손으로는 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며 스튜가 끓기를 기다렸다.

아침메뉴가 스튜인 것은 아나트를 위한 배려였다. 1년에 마늘만 7kg을 먹는 다는 한국인의 식단은 마늘범벅이었고, 아나트는 마늘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리온이나 에포나, 한솔이는 오히려 마늘을 좋아했기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유진은 머리를 굴려 마늘을 사용하지 않는 서양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직접 요리를 하시나요?”

여신이나 되시는 분이 직접 요리를 하시다니. 아나트는 컬쳐쇼크를 느꼈다. 여신이 어떤 존재인가.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게 높아서 뭐든 손가락 하나 까딱여서 대령시키는 게 일상인 존재 아니던가.

적어도 아나트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그녀 본인은 비교적 검소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전생에는 요리를 만들어본 적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요리란 당연히 누군가 만들어서 가져오는 것이었으니까.

아나트의 현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밖에서 야영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귀족이 직접 요리를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아나트에게 있어서, 유진은 충격적인 존재인 것이다.

“*난 맛없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아...우리 집에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나뿐이거든.”

“*따로 요리사를 고용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내 취미기도 하니까.”

그렇군요. 하고 아나트는 조용히 납득했다. 그저 세계가 다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도 했고, 그녀의 눈에 집을 청소하는 유령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유령 쪽은 자기가 보인다고 눈치 채지 못했지만.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아나트는 우아하게 스튜를 한술 떠 입에 가져갔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푹 익은 건더기의 맛이 깔끔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요리가 취미라더니, 요리솜씨가 심상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만족스러운 듯, 스튜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아나트의 눈에 보였다.

“*어때, 먹을 만 해?”

“*네. 맛있네요.”

“*엄마 요리 맛있어!”

“*은근슬쩍 야채 빼지 마렴.”

“*쳇...”

채식을 선호하는 엘프가 야채를 편식하다니, 묘한 광경이군요. 아나트는 야채를 은근슬쩍 밀어내고 고기만 집어먹던 리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모녀가 아닌가. 어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지만, 아나트가 그리워하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적에 부모를 잃었으니까.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잘 먹었습니다.”

아나트는 잠시 산책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슬리퍼를 신고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잘 정돈되어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나트는 정원을 거닐다, 검을 발견했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검이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은 신성해 보였지만,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아나트 입장에선 소름끼치는 마력도 같이 느껴졌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마력의 파동에 아나트는 무시하려 했지만, 도저히 마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저 검은...”

아나트는 바위에 꽃힌 검을 향해 다가갔다. 마치 검이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아, 아나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홀린 듯 검을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한걸음, 두걸음...점점 아나트가 가까워지자, 검이 마치 유혹하듯 진동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검을 잡을 수 있었기에, 마검은 환호하며 더욱 거세게 진동했다.

호기심일까, 아니 그저 유혹에 이끌리는 것뿐일까. 아나트는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검이 그녀를 유혹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나를 이용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어...

...나를 쥐어, 그리고 최고가 되는 거야...

...너를 방해하는 녀석들을 전부 베어넘길 수 있어...

아나트는 이제 바위 앞에 멈춰서 검에 손을 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나트의 손이 검에 닿기 전에, 누군가 아나트의 손목을 잡고 멈추었다. 정신을 차린 아나트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쳐다보니, 붉은 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옆얼굴도 보였다.

“*후, 다행이네. 이 검이 성질이 지랄 맞아서 말이야. 만지지 말라고 하는 걸 잊고 있었네. 저기서 빠져나가려고 아주 발버둥을 치고 있거든.”

“*...저런 검이 왜 정원에...”

신이 사는 집이다 이건가. 현대에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무기가 버젓이 존재하더라니. 아나트는 한숨을 쉬며 검에서 완전히 눈을 떼어냈다. 검이 발악하듯 더 크게 진동했지만, 유진이 던진 무언가에 맞고 침묵했다.

“*저, 뭘 던지신...”

“*고기. 저 검 고기 엄청 좋아하거든. 가끔 저렇게 발광할 때 있는데 고기 큼지막한 거 하나 던져주면 맛있게 챱챱 씹어 먹으면서 조용해지거든.”

그거 참 신박한 마검이군요. 아나트는 짜게 식은 눈으로 고기를 점점 먹어치우는 마검을 바라보았다. 마검은 만족했다는 듯이 진동을 멈추고 고기의 맛을 음미했다.

“*다가가지만 않으면 되겠지만 조심하길 바라. 재수 없게 잡히면 안에 있는 녀석이 몸을 뺏으려고 할 테니까.”

“*안에 누군가 봉인되어 있나요?”

“*...뭐, 그렇지. 고기에 환장하는 여신이 봉인되어 있으니까.”

“*그, 그렇군요.”

“*뭐 그건 그렇고, 정원구경은 다 했니? 슬슬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아나트는 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이야 나중에 다시 오면 되는 일이니 그것보다는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니까.

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살풋 웃고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아나트는 살짝 미련이 남은 듯 마검을 잠시 쳐다보고는, 유진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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