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외전: 아테나 표류기(4)
* * *
“다녀왔습니다~”
‘훌륭한 저택이군.’
현대 건축양식에 대해 문외한인 아나트도 단박에 그런 감상을 품을 만큼 집은 넓고 깔끔했다. 작지만 정원도 있고, 집안은 먼지 한톨 보이지 않아 어떤 가정부인지 몰라도 매우 유능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 그래, 다녀왔어? 산책은 잘했고?”
미성이었다. 아나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다정한 얼굴로 리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이 아이의 어머니인가. 엘프는 아니군. 엘프만큼이나 화려한 외모였지만 귀는 보통 인간의 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나트는 자신의 선택이 괜찮은 건지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그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있는 애는 친구니...?”
“응! 방금 친구가 됐어!”
“방금?”
유진은 리온의 말에 아나트를 쳐다보았다. 아나트는 갑작스레 그녀에게 향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맹수와 눈이 마주친 초식동물 같은 느낌에 아나트는 본능적으로 저 여자가 절대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저 여자는.
“리온, 에포나랑 같이 들어가서 씻고 있으렴.”
“응? 하지만 친구...”
“그래도 일단 씻어야지. 씻고 나서 놀아도 늦지 않으니까 에포나랑 같이 욕실로 가서 씻으러 가렴.”
“알았어! 가자 에포나!”
“헤으응!”
“...”
유진은 말을 꾹 참고 에포나와 리온이 욕실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아나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여기 앞에 앉아봐.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여기 말은 할 줄 몰라서...엘프어로 대화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역시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구나?”
“*네.”
아나트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적의를 가지고 노려보지는 않지만, 경계심을 품고 있는 눈이 허튼 짓을 하면 절대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아나트가 굳이 적대의사를 표할 이유도 없었으니, 아나트는 순순히 협력할 생각이었다.
“*일단 이쪽에 앉아봐. 이야기가 꽤 길어질 테니까.”
아나트는 유진의 말에 따라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유진은 그녀가 자리에 앉아 일어나 주방 쪽으로 향했다.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제가 이곳 음식은 잘 몰라서, 같은 걸로 부탁드려요.”
“*쓴건 잘 마셔?”
“*...단 걸로 부탁드려요.”
쓴것보다는 단 쪽이 더 취향이었다. 유진이 그녀의 앞에 컵을 내려놓자, 아나트의 코에 향긋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동시에 그동안 참고 있었던 갈증이 밀려왔다. 당장 이틀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기에 눈앞에 놓인 코코아는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아나트가 잔을 들자, 동시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나트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굳어버렸다. 유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밥이라도 먹고 이야기 할까?”
“*가, 감사합니다.”
아나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볼까.”
“*네. 무엇이든 물어봐 주세요.”
“*이 세계에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왔냐라, 아나트는 망할 사고뭉치 성녀를 떠올렸다. 실험에 도와달라고 불러놓고선 온갖 삽질을 하다가 휘말려서 이세계로 날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기에, 아나트는 간단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실험 중에 사고가 나서...이 세계로 튕겨진 것 같습니다.”
“*실험? 흠...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 딸이랑 친구라던데 그건 무슨 말이야?”
“*그, 여기서 엘프를 보게 될 줄은 몰라서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결코 해를 끼칠 생각은 아니었어요.”
황금색 눈동자가 진위여부를 파악하듯 아나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인간의 것이 아닌 박력에 아나트는 손에 힘을 주고는 버텨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졌다고 아나트는 생각했다. 눈앞의 여성은 리온을 정말로 딸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
유진의 황금빛 눈동자가 아나트를 꿰뚫어보자, 아나트는 그 시점에서 확신했다.
이 여성은 절대 인간이 아니라고. 적어도 신이거나 신에 근접한 존재일 것이라고. 어떻게 이 뿌리세계에 그런 존재가 멀쩡하게 살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프레셔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평범한 인간이 머리카락을 움직일 수 있을 리도 없고. 요리를 할 때 머리카락으로 필요한 물건을 집어오는 것을 목격했기에 나오는 결론이었다. 목이 분리되는 것 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걸 제외해도 증거는 충분했다.
“*...흠, 뭐 믿어줄게. 그래서 무슨 도움을 원하는데? 돌아가는 거?”
“*네. 저는 돌아가야만 해요.”
시간축이 얼마나 어긋나 있을지는 모른다. 운이 좋으면 며칠, 재수가 없으면 몇 년쯤 시간축이 어긋날지도 모른다. 아직 아카데미 졸업도 하지 못했고, 신이 사라지고 신앙만이 남아버린 세상을 둘러보고자 하는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아나트는 그녀를 적대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은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들면 고향이라고, 아카데미는 이미 그녀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기에.
“*부탁드립니다.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지 않아도 돌려보내줄 생각이었어. 일단 그게 나한테 가능할 거 같지는 않지만. 일단 다른 신들한테 물어는 봐 줄게.”
“*감사합니다!”
“*그 동안은 여기서 지내. 생활하는 건...리온 한테 물어봐.”
그렇게 말하곤 유진은 자기 몫의 커피를 마시며 아나트의 반응을 살폈다. 외모는 차가운 느낌의 미인이었지만, 희로애락이 행동에서 눈에 띄게 잘 드러나는 여자애라 유진은 어쩐지 스트리머 시키면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정하고 스트리머로 키워보고 싶다.
유진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커피를 끼얹어 내려 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