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외전:아테나 표류기(3)
* * *
“*엘프어를 할 줄 아니?”
“*응! 엘프니까!”
작은 조랑말을 탄 꼬마, 리온은 신기하다는 듯이 아나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나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살던 곳에서 엘프를 보기란 정말 어려웠고, 엘프들은 그 희귀성 때문에 인신매매의 목표로 노려질 때가 많아 정체를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엘프임을 밝힐 줄이야. 아무도 못 알아 듣는 다지만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아나트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엄마 빼고 엘프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네. 엄마가 자기 말곤 엘프말 못하니 한국어로 이야기 하라고 했었는데.’
그녀를 거둔 유진을 제외하면 엘프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엘프어를 거의 쓸 일이 없었던 리온이지만, 오랫동안 엘프어를 써왔기에 눈앞의 언니가 엘프어를 쓰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리온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양어머니인 유진의 말마따나 ‘사람은 얼굴에 성격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했었으니까. 리온은 아나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나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용을 썼다.
“*음~모르겠어!”
“...?”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서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보는 구나.”
“*웅...에포나는 특별하니까!”
“*에포나?”
옛 여신의 이름이군. 아나트는 아주 오래전에 면식이 있었던 여신을 떠올렸다. 그 여신도 말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었기에, 아나트는 오랜만에 아테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리온은 아나트의 감회에 젖은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리온과 아나트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원에서 중형견만한 말을 타고 다니는 외국인 꼬마와 마찬가지로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둘이 대화하는 언어는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지의 언어였다. 지구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포나는 말이야!”
저 말을 말하는 거였군. 아나트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포나를 보곤 양 손을 들고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어필했다. 그녀 입장에서 이 세계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건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고, 지혜의 여신이었던 그녀가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었으니까.
“*그, 그렇구나.”
“*근데 언니는 여기서 뭐해? 땡땡이치는 거야? 유라 언니가 이시간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고 했는데...”
땡땡이라니, 건전하지 않은 발언이구나. 아카데미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성실한 우등생인 그녀가 듣기엔 너무나도 불쾌한 단어였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긴 했지만 어쨌든 최소한 저쪽과 이쪽시간이 같다 쳐도, 하루는 수업을 빼먹은 셈이었으니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 어쩌면 실종으로 처리되어 자퇴처리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어쩌면 이때다 하고 그녀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한시바삐 돌아가야 했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 아나트는 차근차근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뭐, 그런 셈이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지만 말이다...”
“*왜에?”
“*원래 아주 먼 곳에서 살았는데, 사고로 여기에 떨어지게 됐단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혹시 네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함부로 대화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갑작스레 들려온 엘프어에 무심코 반응하고 말았지만, 리온은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도망쳐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나름 숲에서 사냥 좀 하고 다녔던 엘프로서의 직감이 이미 늦었다고 속삭였다.
아나트는 겨우 잡은 동앗줄을 절대 놔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리온의 뒤를 조용히 밝아서라도 리온의 부모와 접촉할 생각이었다. 엘프어를 알아서 깨우칠 수는 없으니, 분명 엘프어를 가르쳐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건 높은 확률로 부모일터였다.
그리고 엘프의 부모라면 엘프. 그것도 아주 오래 산 엘프일 확률이 높았다. 엘프의 수명은 거의 300년에 육박하니까.
“*웅~안 돼.”
리온은 오른손으로 턱을 짚고는 의뭉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온의 양어머니는 화를 자주 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한 번 화나면 그녀가 싫어하는 피망으로 가득한 저녁식사를 내주곤 했기에, 리온은 어머니를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두 요즘 코로네인가 코로나인가 하는 게 돌아다녀서 엄마가 산책도 짦게짦게 다녀오라고 했는데. 리온은 이러나저러나 유진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그래도 피망은 싫지만.
“*괘, 괜찮다면 이유를 말해주지 않겠느냐?”
“*엄마가 친구가 아니면 집에 데려오면 안 된다고 했어.”
“크윽...”
어린아이의 정론에 아나트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든 구슬려야 해! 그것만이 살길이야! 정신 차려라 아나트! 아카데미에서 유력가 자제들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은 나다! 어린아이를 구슬리는 것 따위 쉬운 일이란 말이다!
“*그, 그럼 지금부터 친구가 되지 않겠니?”
“*친구? 친구 해주는 거야?”
“*그래. 친구가 되어줄게.”
아나트는 그녀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친구비 줘.”
“*그래...그렇게 하...응? 잠깐, 뭐라고 했니?”
“*친구비 줘. 유라언니가 여기선 친구를 사귀려면 친구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
아나트는 뭔가를 달라는 듯이 손을 내민 리온을 보곤 할 말을 잃고 황망한 눈으로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작고 앙증맞은 손바닥이 보였지만, 아나트의 눈에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려는 악마의 손바닥처럼 보였다.
이곳은...친구를 사귈 때 친구비를 내야 하는 건가! 어떻게 이런 각박한 세상이 있단 말이냐! 우정마저 돈으로 확인하는 세상이라니! 도대체 이 세계는 얼마나 잔혹한 것이야!
상식을 초월한 이세계의 문화에 아나트는 속으로 절규했다.
설마하니 어린아이를 꼬시는데 돈이 필요할 줄은! 아나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필요하게 될 줄이야. 몇 개 주워두길 잘했을지도...가치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고 아나트는 생각했다.
아나트는 주머니에서 호기심삼아 주운 동전들을 떨리는 손으로 꺼냈다. 아나트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리온의 손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이, 이것밖에 없다...친구가...되어다오...”
“*알았어! 이제 우린 친구야!”
아나트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최고의 굴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