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IF:사이버엘프 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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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은 소란스럽다. 원체 치안이 좋은 나라이기도 했지만, 원래 서울의 밤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으니까. 한참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2차니 뭐니 하면서 돌아다닐 시기, 한 번화가 길거리에 3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래?”
“보나마나 또 변이자가 사고 친 거겠지...”
요원들을 눈치 챈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것을 무시하곤, 변이자관리부의 현장담당관인 이나리는 같이 파견 온 부하들과 함께 사건 현장을 확인했다.
우악스러운 힘에 뜯겨져 나간 파이프, 타고 올라가기라도 했는지 푹 파인 흔적이 나있는 벽, 부산스럽게 널브러진 잔해들. 음식점에서 변이자가 난동을 부렸다는 신고를 받고 온 나리는 이번 사건이 수인계열 변이자의 짓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벽을 탄 것으로 보아 수인쪽, 그것도 고양이과의 변이자 인가. 벽을 타고 옥상으로 도망친 모양이군.
“그래서, 벽을 타고 도망쳤다 이겁니까?”
“네, 그렇다니까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보험을 들어놓으신 게 있다면 곧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에 관해 연락이 올 겁니다.”
음식점 가게의 주인장은 갑작스런 재난에 한동안 영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했는지, 당장이라도 곡소리를 낼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리는 사장을 달래는 부하와 현장을 조사하는 부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야근은 확정이군.
이 일에 종사하게 된지 40년째, 나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사건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제도 사건, 어제도 사건, 오늘도 사건. 사건이 연달아 터지니 강철체력을 자랑하던 그녀의 눈가에도 조금씩 거뭇거뭇한 기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진짜 때려치울까.’
30년 정도면 인간 기준으로는 아주 오래 일한 거였다. 엘프 기준으로는 사회초년생 수준이지만, 아직 100살 이상 산 엘프가 이 세상에는 없다. 이제 50대인 나리도 나름 엘프 중에서는 꽤 나이가 있는 편이었다. 인간이었다면 진즉에 정년을 앞두고 있는 나이였다.
외모가 20대다 보니 나이에 맞는 취급을 받은 적은 드문 편이었지만, 그래도 나이를 꽤 먹다보니 점점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었다. 요즘 문화는 따라가기 쉽지 않다. 사이버태권도라던 지 네오경기라던 지 이름이란 이름에는 죄다 사이버니 네오니 하는 괴상망측한 단어를 붙여대는 게 요즘 트렌드였기에, 나리는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현실에 한탄하면서도, 나리는 부하들과 함께 계속해서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패인 자국이 있는 벽을 따라 옥상으로 이동해 얼마 안 되는 흔적을 휴대용 스캐너로 찾기를 한 시간, 나리는 범인의 위치를 파악했다. 한 건물의 내부였다. 수많은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건물에 달린 간판을 보니 이 근방에서 인기가 많다는 클럽이었다.
몇 번 일 때문에 들러본 적이 있었기에 나리는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람 많은 곳에 숨어있으려는 건가.
하지만 그런 얄팍한 수작이 현장담당관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변이자관리부 현장담당관은 용의자를 특정되는 상대의 머리에 심어진 사이버신분칩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에, 상대만 특정된다면 어디든지 추적할 수 있었다.
“너는 뒷문을 지키고 있도록. 클럽에는 나랑 현아가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몸조심 하십시오!”
한명을 뒷문으로 보내고, 나머지 한명을 이끌고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클럽은 성황리에 운영 중인 덕에 바로 옆의 소리도 알아듣기 힘들 만큼 시끄러웠다. 나리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기에 클럽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은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아야, 너는 클럽 주인장한테 가서 이야기를 해놓도록 해. 나는 이곳에 숨은 범인을 제압하러 갈테니까.”
“넵! 맡겨만 주세요!”
신입답게 패기 넘치는 경례와 함께 저 너머로 달려가는 현아를 잠시 쳐다보다가, 나리는 클럽의 댄스홀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니?”
“불도 안 켜시고 뭐하고 계세요?”
나리는 걱정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유진의 옆에 앉았다. 유진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시간을 죽였다. 아무도 없어 보이는 정원은 누군가에 의해 차근차근 정돈되어 가고 있었다.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나리는 거실 쇼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녀의 양어머니, 유진을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외모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유진은 이제는 그녀보다도 어려 보였다. 나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쳐다보다, 옆에 앉았다.
요 근래 유진은 우두커니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은 최근에 병으로 죽은 유라일 것이라고 나리는 확신했다. 그녀에게도 큰 충격이었으니 거의 딸처럼 돌봐주던 유진의 입장에선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당장 결혼식에도 부모 역할을 대신 해주었던 것을 나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리는 사람들이 유진을 보고 딸이냐고 묻던 것을 잊지 못했다. 그녀나 나리나, 제 나이에 비해 과하게 젊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진에게 있어서는 그것 또한 큰 충격이었기에, 요 근래 잡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 쯤 죽는 걸까.
마리아도 육신이 노화가 심해졌다는 이유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고, 한솔이는 흡혈귀답게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났다. 최근에 손녀를 봤다며 연락해왔던 것을 나리는 잊지 않았다. 언제 결혼 하냐는 질문은 덤이었다.
뭐라고 대답했더라, 나리는 적당히 얼버무렸던 것 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소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던 저택은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이제 이 저택에서 사는 것은 나리와 유진, 그리고 세연과 에포나 뿐이었다. 에포나는 주방인가. 나리는 주방 쪽에 켜진 불을 보곤 에포나가 요리를 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주인이 요리를 잘 하는 덕인지, 에포나는 어느 샌가 요리를 배워 저택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온 건지 메이드 복을 입은 것은 덤이었다. 본인 말마따나 “주인님을 잘 섬기기위해선 복장부터 완벽해야 하는 법!”이라며 어디선가 가져온 복장이었다. 말꼬리를 흔들어대며 요리를 하는 모습은 방정맞았지만, 결과물은 꽤 괜찮다고 나리는 생각했다.
물론 어머니의 손맛과 비교하면 다소 손색이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요리 경력 차이가 수십 년 단위로 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리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맡으며 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무 고민에 빠져도 안 좋아요. 평소처럼 게임이라도 하시는 게 어때요?”
“요즘은 뭘 해도 재미없더라. 확실히 방송을 켜지 않으니 재미가 없어...”
수십 년을 게임방송을 하면서 먹고 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을 켰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게 하던 게임도, 방송을 끄고나면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은퇴하지 말 걸 그랬나, 하고 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은퇴를 번복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유진은 요즘 트렌드인 가상현실게임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겉으로만 나이를 안 먹었지, 이제는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를 생각하면 새로운 문물에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아무래도 최신 밈이나 요즘 세대의 취향을 따라가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녀의 나이만큼이나 그녀의 시청자들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시청자들의 부고소식이 그녀의 방송으로 들려 올 때면, 그녀는 잠시 진행을 멈추고 묵념을 하곤 했다.
수십 년 동안 그녀의 방송을 보았던 팬에 대한 예의였다. 이 정도로 장수한 방송이 존재하질 않았으니 그녀의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화자 되고는 했다.
“주인님! 식사 다 됐어!”
주방에서 들려오는 에포나의 목소리에 유진과 나리는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에포나가 차려놓은 식사가 있었다.
“...카레인데 주황색이 좀 많네.”
“내가 만든 특제 카레야!”
“당근을 얼마나 넣은 거야...”
나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의자를 두 개 빼고 자리에 앉았다. 유진은 나리가 빼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밥 먹자.”
“잘 먹겠습니다.”
똑똑똑.
침대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유진은 돌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들어오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나리였다. 잠옷 차림으로 나타난 나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니?”
“오늘은 함께 잘까 해서요.”
“애도 아니고.”
“가끔은 좋잖아요?”
나리는 유진 옆에 앉아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얼굴도, 깨물어보고 싶은 가느다란 목도, 서글서글한 눈길로 바라보는 황금색 눈동자도.
어릴 적엔 올려다보아야 했던 모습이 이제는 내려다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네가 내 침대에 자주 들어오곤 했지.”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네요.”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그래서, 우리 리온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같이 자겠다고 들어왔니?”
“혼자 놔두기에는 좀 그래서요. 요즘 기운이 많이 없으시잖아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시간 지나면 금방 기운 차릴 수 있어.”
“...딸이 어떻게 엄마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요?”
가까스로 나온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그건 그렇구나.”
유진은 나리의 말에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리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유진을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리는 유진을 볼 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나리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당혹스러워 했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금단이니 뭐니를 떠나서, 처음인 탓이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을지도 모른지. 그저 마음이 시간을 먹고 더 커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리는 차마 유진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거절한다면 이 견고한 관계마저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기로 했다.
둘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이상을 더 살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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