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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42화 (242/352)

〈 242화 〉 후일담:저기 혹시 무슨 일 하세요?(3)

* * *

생각보다 회사를 만드는 절차가 간단하구만. 나는 세무서를 나오며 생각했다.

요 몇 년 사이에 창업 캠페인이니 지원이니 다 하니까 정부가 창업절차를 전에 비해 간소화 시켰다고 하더라. 나야 편하긴 한데 그래도 기업을 만드는 건데 절차가 좀 허무하리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게 묘한 기분이었다.

세무서 직원이 회사명을 보고 ‘뭐지 이 애들 장난 같은 이름은’ 얼굴로 서류를 보긴 했지만, 회사 설립 자체는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뭐 내 외모보고 좀 놀라기는 했지만 요즘 변이자들이 거리를 자주 활보하고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더라.

보니까 엘프 변이자가 SNS에서 사진 올려서 인기 엄청 끌던데. 엘프나 수인이나 좀 이쁘장한 걸로 변한 변이자 들은 인기 많더라고. 나처럼 외모 이전에 쇼킹한 듀라한 같은 게 아니었으면 저 흐름에 은근슬쩍 끼어서 돈 좀 빨아먹었을지도 모르겠네.

뭐, 지금도 충분히 많이 벌기는 하지만. 그럼 이제 대충 작은 방 구해서 회사도 차려놨고, 거기에 적당히 인테리어 하고 마리아를 거기에 처박으면 되는 건가.

다른 사람이요? 어차피 방송인인데 재택근무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마리아만 여기에 박아놓으면 되는 거야. 결코 레이드 돌린다고 편집을 게을리 해서 박아두려는 게 아니고 마리아가 일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다.

내가 출근도 웬만하면 안 할 건데 얼마나 좋아?

원래 회사 직원들은 사장이 출근 안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게다가 이런 구멍 가게급 회사는 사장이 바로 뒤에서 매번 지켜보는 곳도 많은데 내가 안 오는 게 직원 도와주는 거야. 내가 출근해서 할 일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고.

어쨌든 준비했던 일이 일단락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아직 비워져 있는 방을 보며 생각했다. 이 방도 사실 청년창업이니 뭐니 혜택 받아서 얻은 방이라 좀 싸긴 했다. 이 시국이라 방 자체가 정말 안 나가기도 했고.

입지가 노답이긴 했지만 내가 음식점을 할 것도 아니고. 건물 자체는 지은지 얼마 안됐지만 무슨무슨 정책으로 싼 가격에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인테리어는 중고 가구 몇 개 사서 놓으면 될 것 같은데. 지어진지 별로 안 돈 건물이라 기본 벽지 같은 건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청소만 한 번 하고 가구나 들여놓으면 완벽할 것 같았다. 컴퓨터?

...사야 되나? 망할 채굴 때문에 글카 더럽게 비싸서 좀 그런데. 영상편집하려면 아무래도 좋은 그래픽 카드 들어가 있는 컴퓨터가 있어야 하니까...마리아는 무슨 컴퓨터 썼더라. 이건 나중에 해결하고, 일단 박사님한테 가서 감사인사 좀 드리고 올까.

그쪽에서 이런 저런 도움을 준 덕에 일이 쉽게 끝났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나는 방을 사진으로 여러 장 찍어두고 변이자관리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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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엄청 많네요?”

나는 지나가는 길에 본 못해도 수십은 되어보이는 변이자들을 떠올리곤 라쿤박사님에게 말했다.

“그렇다네! 숨어! 살던! 변이자들이! 요즘! 전부! 신체검사와! 지원을! 받으려고! 오고! 있다네!”

“안 그래도 여기 오는 거 되게 번거로운데 사람들이 고생이 많네요.”

“그래서! 새로운! 관사로! 옮길! 예정이네!”

“어디로요?”

“그리! 멀지는! 않네! 땅값! 때문에! 다소! 외각으로! 밀려! 나기는! 하지만! 덕분에! 더 넒은! 공간을! 활용 할 수! 있게! 됐네! 건물은! 강북! 쪽에! 있네!”

집이랑 조금 더 가까워지겠네. 우리 집에서 서울 시청은 아무래도 좀 멀단 말이야. 안 그래도 변이자관리본부에 자주 드나드는데 가까워진다면야 난 환영이지.

“집이랑 좀 더 가까워지네요. 그럼 전 편하죠 뭐...”

“그런가! 어쨌든! 무슨! 일인가!”

“아무런 문제없이 일이 끝났다고 말씀드리려고요. 그냥 전화로 할까 했는데, 그래도 많이 도와주셨는데 직접 와서 감사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서...여기요.”

나는 변이자관리본부에 오는 도중에 사온 물건을 내밀었다.

“본부직원들이랑 같이 마시세요.”

“그걸! 한손으로! 들고! 왔나!”

“네.”

피로회복제 20개입 6박스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걸 담는 게 어렵지 들고 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스끼리 차곡 차곡차곡 쌓아서 장바구니에 넣어오면 그만이니까. 사람들이 좀 쳐다보긴 했지만 이정도면 일반인도 충분히 들고 남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구석에 박스가 든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내 기억으로 직원이 100명 남짓이었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뭐.

“어쨌든! 고맙네!”

“아뇨아뇨. 뭐 제가 도움 받은 것도 많으니 이정도야...”

“알겠네! 잘! 받도록! 하겠네!”

“그나저나 매일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방문하는 거에요?”

“그렇다네! 그 사건! 이후로! 변이자들이! 급격하게! 늘었다네! 기존의! 거의! 3배! 가까이! 늘었더군!”

3배? 조금도 아니고 3배면 엄청 많이 늘었단 소린데. 그러니까 변이자관리본부가 바빠 죽는 거구나. 내가 여기 처음 온 게 언제쯤이었더라. 라떼는 여기서 라쿤박사님이랑 면담을 했었지.

“그러고 보니 요즘은 변이자들 면담 안하세요?”

“한다네! 지금은! 잠시! 휴식시간이라! 말일세!”

그렇구만. 나는 라쿤박사님이 양손으로 열심히 휘저은 믹스커피를 공손하게 받아마셨다. 믹스커피는 오랜만이네. 요즘은 집이든 어디든 원두커피 마시는 게 대세가 되어버렸으니 은근히 믹스커피를 마실 일이 적었다.

“30분! 후부터! 새로운! 사람이! 올 걸세! 요즘은! 비교적! 수인계열! 변이자가! 많더군!”

저 호통만 아니면 마스코트 취급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아니 이미 마스코트 취급인가? 나는 여직원들이 가끔 라쿤박사를 쓰다듬고 지나갔던 것을 떠올렸다. 라쿤 박사님 생각보다 직원들한테 인기가 있긴 했지.

“그래요?”

“그렇다네! 꽤! 흥미로운! 일일세! 수인계열! 변이자만! 수가! 급격히! 불어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나저나! 자네!”

“네.”

“사람은! 얼마나! 고용할! 텐가! 많을수록! 지원도! 많아질 걸세!”

“사람을? 왜요?”

“혹시! 서류! 안 읽었나!”

그 좁쌀만 한 글씨로 빼곡하게 들어찬 서류요? 눈 아파서 대충 읽었는데.

“못해도! 직원이! 다섯 명은! 있어야 하네!”

“네?”

난 그냥 가족 같은 기업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굳이 가‘좆’같은 기업으로 만들라는 건 에반데. 난 그냥 우리 애들 대충 집어넣고 4대보험이랑 세금 같은 거 쉽게 쉽게 혜택 받는 쪽으로 써먹으려고 했던 거였단 말이야.

어디보자, 다섯 명이면 나는 제외하고 마리아, 한솔이, 시영이 이렇게 셋이니까 최소 두 명은 더 있어야 한다는 건가. 사장은 제외하는 게 맞겠지?

“이왕이면! 변이자! 직원들! 위주로! 뽑게! 그 쪽이! 혜택이! 더! 많을! 테니!”

“그게 조건이라면 별 수 없죠.”

이미 만들었는데 바로 폐업하기는 좀 그렇지. 적당히 편집자나 몇 명 더 뽑아서 굴려야지. 회사 크기를 굳이 키울 생각도 없고.

“근데 갓 만든 구멍가게 회사에 사람들이 오긴 할까요?”

“자네! 뉴스도! 안보고! 사나! 요즘! 변이자들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뭔가 X것이 알고 싶다 에서 변이자 관련으로 취재하면서 난리가 났던 것 같긴 한데. 솔직히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어서...

나야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버는 쪽이니 바깥 외출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도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특별한 도구나 조치 같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아예 전용의복이 필요한 수인계열 변이자나 살기 위해서 혈액이 필요한 흡혈귀쪽 변이자들로 많이 시끌시끌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둘 다 이미지가 좀 그런 게 있어서... 흡혈귀야 말할 것도 없고, 수인계열도 듣기로는 그나마 친근한 개나 토끼, 고양이 같은 변이자는 그럭저럭 받아들여진다지만, 맹수 쪽 변이자는 사람들이 많이 무서워 한다던데...

결국 세상이 전쟁의 여파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단 이야기다.

지금까지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만 해결해야 했다면, 이제는 거기에 변이자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새로운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시작하고 있다는 거다.

외국에서는 변이자들이 모여 만든 정당까지 출범했다고 하니 한국은 아직 찻잔속의 태풍처럼 조용하다면 조용한 분위기에 가깝고.

우리 같은 소시민에겐 뭐 방법이 있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몸 비틀며 살아가야지.

난 믹스커피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믹스커피의 특유의 달달한 맛이 입안을 휘감았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고용 건은...뭐 채용공고라도 내볼게요.”

“알겠네! 그럼! 잘! 돌아가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변이자관리본부를 나왔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일이 더 늘었네. 이 건은 애들이랑 상담해야겠지...

나는 부쩍 소란스러워진 시청 주변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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