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후일담:저기 무슨 일 하세요?(2)
* * *
“그래서, 저랑 마리아를 부른 게 회사 이름 지으려고 그런 거라고요?”
“응.”
뭐 왜 뭐. 왜 둘 다 귀찮은 일 생겼다는 얼굴이야. 우리 사이에 그 정도 고민은 같이 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시영이는 둘째 치고 마리아, 너는 고용주 앞에서 그런 건방진 표정을 짓는 거냐.
진짜 삭감한번 당해 볼래?
“하아...급한 일이라고 해서 달려왔는데 이런 일이었을 줄은...황금 같은 휴일이었는데...”
“밥은 맛있게 해줄 테니까 여기서 쉬어. 어차피 머리 조금만 굴리면 될 일이잖아?”
“그건 그런데요...후우. 알았어요.”
시영이는 의자를 끌어와 내 옆에 앉았다. 마리아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리온 옆에 앉았다.
식탁이 6명 정도는 거뜬히 앉을 정도는 되어서 다행이네. 역시 큰맘 먹고 식탁을 큰 걸로 사길 잘했어. 이제 도합 여섯 명의 두뇌로 누가보아도 좀 있어 보이는 회사 이름을 고민해야할 때였다.
“자, 좋은 이름을 떠올린 사람은 손을 들고 발언 하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한솔이었다. 한솔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는, 생각한 이름을 외쳤다.
“듀라컴퍼니 어때요?”
“한솔아, 네 네이밍센스에 참으로 통탄을 금할 수밖에 없구나...”
네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 않니? 사장 이름을 고대로 갖다 붙이다니 나는 그런 귀차니즘에 찌들어있는 이름 인정할 수 없어! 좀 더 성의 있는 이름을 생각하라고! 하다못해 아나그램이라도 해서 좀 덜 노골적으로 만들던가!
“일단 불합격. 다음 발언희망자는 손을 들어 주세요~”
이번에는 유라구나. 그 짦은 팔로 손을 드느라 고생이 많다.
“언니를 중심으로 모이니까, 듀라피플?”
역시 머리에 피가 흘러 넘쳐서 꽤 느낌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구나. 하지만 그래도 내 방송용 이름을 붙이는 건 좀 그런데. 뭔가 오글거리잖아. 좀 노골적으로 ‘여긴 내 회사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꽤 괜찮은데, 내 이름은 일단 떼 주면 안 될까? 좀 오글거리거든?”
“왜요, 어차피 언니 회사니까 그렇게 짓는다고 뭐라 할 사람 없잖아요? 게다가 회사이름에 자기 이름 붙이는 건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유구한 전통중 하나로 이름 있는 대기업 중에 자기 이름이나 성 붙인 회사는 수도 없이 많다구요? 예를 들면...”
“잠깐 스톱!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으니까 일단은 회의를 계속 진행할게!”
“헤으응!”
“에포나야, 저쪽 가서 리온이랑 같이 놀지 않으련?”
“알았어!”
“리온, X위치 해도 되니까 방 가서 놀고 있어, 알았지?”
“응!”
나는 리온과 에포나를 위로 올려 보냈다.
저 헤으응 거리는 거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하지가 않단 말이야. 망아지가 그러는 것도 있지만 현실에서 헤으응 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난 당장 도망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봐, 아는 사람이 갑자기 헤으응~ 거리면 어떤 사람이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진짜 강아지 사이즈의 망아지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승마용 채찍 들고 후려쳤을 거야...다큰 말이 해으응 거리는 거 상상만 해도 충격적이니까 진짜 다 크기 전에 고쳐놔야지.
근데 말은 몇 살 먹어야 다 크는 거지...?
“흠흠, 그럼 이어서 계속 진행해 보자고.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이번에는 우리의 짜가 금태양 마리아구나. 행동과 외모와 이름이 서로 모순되는 마리아양의 대답을 한번 들어볼까.
“그래서, 어떤 이름을 생각했는데?”
“에린은 어때요?”
“좀 오글거리지 않아?”
“그래도 멋들어진 이름 아니에요?”
“음...그렇긴 한데...”
“이름이 생소한 단어로 지어진다면 쓸데없이 겉멋만 들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가?”
유라의 태클에 마리아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고는, 유라의 대답에 반박했다.
“그래도 있어 보이는 이름이 괜찮지 않을까요?”
“확실히 없어 보이는 이름보다는 낫긴 한데, 너무 생소한 단어니까...일단 보류.”
왜 상심한 표정이야. 이거 그냥 이름 정하는 거잖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럼 다음 사람?”
이번에는 시영인가. 고양이귀를 실룩이며 손을 힘차게 들어 올린 시영이는 내가 시선을 향하자 자신 있게 외쳤다.
“시공협회!”
“콜!”
“아니 그건 좀...”
“왜! 이름에 시공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참냐고!”
“아니 유진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태클 걸지마! 어떻게 시공이란 단어가 들어갔는데 태클을 걸 수 있냐고! 이 세상에 시공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
“그 시공 미국갔잖아요.”
“시공은 원래 미국 게임이야!”
“개발팀도 해체되서 개발팀도 없는 게임이 살아있는 게 맞나요?”
“그만! 그만해! 나에게 참혹한 현실을 들이대지 마!”
“아니 얼마나 시공에 진심인 거에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지 마라! 시공의 참맛을 모르는 너희들이 불쌍해! 시공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갓겜이라고! 인생 반을 손해보고 살고 있구나!
“그럼 전시협?”
“아까보단 낫네요.”
한솔이의 태클이 뼈아프다. 뭐가 문제인건데! 왜 ‘유진이가 유진했네’ 같은 분위기가 된거야! 난 그냥 시공을 사랑했을 뿐이라고...레스토랑스로서 시공을 어떻게 참냐고...
“그...그럼 다른 의견은 없슴까...”
“변구빛?”
님 X아하는 거 티내고 다니지 마십쇼. 확 삭감해 버릴까보다. 내 싸늘한 시선에 마리아는 잠시 툴툴 거리고는, 새로운 이름을 내놓았다.
“다다다?”
”무슨 뜻이야?“
“다종족의 다양한 다목적 방송기업?”
“나쁘지 않은데요? 부르기도 쉽고, 귀엽기도 하고...”
처음으로 유라한테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솔이도 썩 나쁘지 않다는 눈치였고. 그나마 지금 나온 것 중에 가장 그럴듯하다는 분위기에 나는 억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공협회, 전시협이 뭐가 어떻다고...
“시공협회, 전시협도 나쁘지 않은데...”
“아니, 유진씨 혼자 만들고 혼자 하는 거면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도 고용할거면 그런 이름은 좀...이름보고 다들 도망갈걸요?”
“어째서?!”
이름 개쩔지 않아? 누가 봐도 개쩌는 이름이라고 바로 입사신청을 할만한 개쩌는 이름 아냐?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름이 다른 건 둘째 치고 좀...어린애들이 할 법한 작명센스거든요?”
“너무해...”
우리 깐부잖아...내 편 들어줄 수 있는 거잖아...
“적어도 소속된다면 남한테 말할 때 좀 평범하게 납득할 수 있는 이름이 좋아요.”
“그건 맞네. 근데 유진언니네 회사 들어가요?”
“아무데나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장이 친구인 회사가 좋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죠? 떼먹힐 가능성도 적고, 유진언니가 좀 괴짜긴 해도 사람은 착하니까...?”
왜 거기서 의문문이야?
“그런데 회사를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요? 그냥 그룹 형태로 적당히 짜도 되지 않나?”
그렇긴 하지. 약간 길드 같은 느낌으로 그냥 모임을 만들어도 될 일이다.
근데 라쿤 박사님이 창업해서 변이자 직원 고용하면 혜택이 쩐다잖아! 은근히 나한테 창업하라고 눈치 주기도 하고 나도 대외적으로 뭔가 그럴듯한 직위가 필요하기도 하고!
내가 한국에서 변이자를 대표하는 사람이라 앞으로도 이래저래 불려갈 일 많을 텐데 ‘혹시 무슨 일을 하시는 지...’ ‘인터넷 방송하고 있어요’ ‘아 네...’이런 어색한 대답은 싫어! 적어도 업체 이끄는 사장이라고 하면 좀 더 있어 보이잖아!
“그래도 이정도면 나올만한 건 다 나왔는데 한 번 투표해 볼까요?”
시영아 그 제안 고마운데 지금 상황이 나한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어...음...아직 좀 더 많은 의견을 들어봐야...”
“또 시공 붙인 괴상한 이름 지으시려구요?”
“...”
“...저는 다다다가 괜찮은 것 같아요.”
“혹시 다다다에 반대하는 사람?”
왜 아무도 없어? 뭔가 어린애들이 좋아할 법한 달콤 쌉사름한 로맨스 만화가 생각나는 저 이름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는 다니, 세상이 말세야 말세!
“전시협이 마음에 드는 사람? 시공협회는?”
내 최후의 희망은 여지없이 바스라졌다. 왜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거야! 내 눈 피하지마! 아이디어를 낸 시영이 조차 내 눈을 피하고 손을 들지를 않는 비참한 현실에 나는 절망했다.
그렇게 회사명은 ‘다다다’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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