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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40화 (240/352)

〈 240화 〉 후일담: 저기 무슨 일 하세요?(1)

* * *

“나 회사 만드려고.”

한솔아, 입을 막은 대처는 가상하나 피가 사방으로 튀었구나. 나는 순식간에 충격의 살인 현장이 되어버린 식탁을 보며 생각했다. 저게 다 내 피라는 게 함정이지만. 내가 요 몇 달간 토한 피가 사람한테 해만 가지 않았으면 수천명은 살리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그만큼 한솔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피가 많았다 이 말입니다.

“회, 회사요?”

“응.”

유라야, 너도 표정이 왜 그래. 왜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이야. 내가 회사 만든다는 게 그렇게 피까지 뿜을 정도로 경악할 일이야? 내가 이래 뵈도 3년 정도 좆소기업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라 나름 회사구조나 대충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혹시 리온에게도 피가 튀었을까 싶어 쳐다보니, 역시 리온은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얼굴로 토스트를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요 귀여운 녀석. 그래 넌 계속 그렇게 남아 있어주렴. 나는 리온의 머리를 한 번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 말을 이어갔다.

“인터넷 방송이 사대보험이랑 세금문제 같은 거 처리하기 번거롭잖아? 그래서 이참에 MCN을 만들고 거기서 세금이랑 사대보험 같은 거 처리하게 하고 이런 저런 혜택을 좀 받아보려고.”

보통 요즘 시국에 회사를 만드는 건 정신 나간 짓이지만, 나라면 조금 사정이 다르다. 일단 자본도 어느 정도 있는 대기업이기도 하고, MCN이니까 방송인 관리만 전담해서 해주면 되니 어떻게 저자본으로 회사 유지될 정도로만 굴리면 되지 않을까.

회사를 크게 키울 생각은 없다. 내가 그 정도 굴릴 능력은 안 되는 걸아는 것도 있고, 적당히 스튜디오 하나정도 만들고 그걸로 내 방송 편집이나 시킬 생각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냥 지금 그대로 굴려도 되지만, 이래저래 세금이나 사대보험같은 문제가 좀 번거롭기는 해서 말이야.

애초에 좀 이름 있는 대기업 스트리머들은 자기 이름으로 회사 만들어서 굴리는 경우도 꽤 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나도 진짜 월에 억 단위로 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어지간한 ㅈ소기업 사장보다 많이 벌지 않을까.

“그런고로 회사 이름을 정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거수!”

“지, 진심이에요?”

“당연히 진심이지. 아무리 좆소기업이라도 그럴 듯한 직함이 달린 거랑 아닌 거는 크다고! 잘 생각해 봐! 직업이 뭐에요? 버튜버요. 네? 버튜버요. 아...그러시구나...사람들 반응이 다 이렇다고! 그럼 그냥 X튜브하고 있어요. 하고 대충 얼버무려야겠지? 그럼 무슨 X튜브 하시는 데요? 어...게임방송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혹시 X튜브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이요? 구독해드리려구요! 하지마! 하지말라고오오오오오오오!”

유라야 짜게식은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마! 한솔아 넌 내 마음 알지? 너도 바깥에서 대답하기 곤란했던 적 있을 거 아냐!

“근데 만약 중소기업 회사 사장이라고 생각해 봐. 직업이 뭐에요? 작은 회사 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막 와~그럼 어떤 회사 굴리시는 거에요? 이렇게 물어볼 때 딱 명함 보여주며넛 인터넷 방송 관련 사업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해주면 모두가 납득하고 넘어간다고! 얼마나 좋아!”

“어...그래서 회사 차린다는 거에요?”

“회사 차리는 게 은근히 메리트가 많다니까? 사대보험이나 세금 처리도 사람 고용하면 좀 편하고, 당연히 신생기업이니까 아마 창업지원도 받을 수 있고? 지금 변이자들 관련 정책으로 변이자들 자기 회사에 취업시키면 세금 감면 혜택도 있다고 하잖아? 근데 우린 다 변이자 잖아?”

변이자관리본부에서 변이자들 먹고 살길 마련해 주기 위해 펼치는 정책 중 하나라고 라쿤박사님이 이야기 해주셨다고. 마치 나한테 창업하라는 듯이 말이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정말 나한테 나쁜 이야기는 아닌데.

사람 고용해서 귀찮은 문제들을 대신 처리 시킬 수도 있고, 아무래도 버튜버라는 설명하기 애매한 직업 보다는 구멍가게라도 사장소리 듣는 게 더 좋기도 하고, 사람도 몇 명 고용하면 나름 이 사회에 기여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 머리에서 나온 것 치고는 너무 천재적인 발상 아니냐?

“잠깐만, 저도 포함이에요?”

“응.”

당연하게도 너도 포함 이란다 한솔아. 너도 무소속이니 아 참에 내 회사나 들어오렴. 아직 만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복지혜택이 풍부한 회사가 될 거란다.

복지혜택=재택근무 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굳이 출근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인 거잖아? 월급이야 기본급(자기 주머니에서 나옴)이 되겠지만. 그래도 무소속보다는 나름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저도요?”

“너도 감투 좀 써볼래?”

미성년자 고용은 불법이지만 이름은 올려줄 수 있는데. 나중에 성인되면 그럴듯한 직함을 줄 수도 있고. 과장이라거나 대리라거나. 중소기업 장점이자 단점은 사장 마음대로 지위를 정할 수 있다는 거지.

어...그건 대기업도 똑같나? 뉴스 보면 대기업들도 자기 가족들 높은 자리 앉혀 놓는 게 일상이잖아. 사실 가족경영은 사장의 기본 덕목이 아닐까? 분명 존재하지만 회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족 말이야.

“어...아니요.”

어릴 때부터 지위를 탐하지 않는 그 순수한 자세가 아주 아름답구나. 요즘 공부 열심히 하던데 너는 좋은 곳에 취직하렴. 나는 유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유라는 어색한 얼굴로 내게 미소 지었다.

“주인님! 나도! 나도 할래!”

“넌 비서실장 하렴.”

“비서실장?”

“그냥 옆에서 폼 잡고 앉아있으면 된단다.”

네 월급은 당근으로 지급해줄게.

“알았어!”

“그, 진짜로 만들 생각이에요?”

“진짠데?”

“네?”

“진짜 만들 건데?”

“진짜요?”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나. 나는 한솔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선을 당당하게 받아 넘기며 내 몫의 토스트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음, 고소하구만.

진짜라니까. 내가 언제 구라치는 거 봤어? 나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고. 내가 거짓말을 한 건 급식 시절 그릇 깨먹고 우리 집 왈왈이가 깼다고 구라치고 넘어간 것뿐이다. 왈왈아 미안해...

“넌 부사장 시켜줄게.”

“어...고마워요?”

한솔아, 부사장이 얼마나 좋은 직함인데! 좀 더 열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렴! 좀 더 기뻐해도 좋다고!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가지질 못한 직함이잖아!

“그러니까 회사이름 좋은 걸로 추천받습니다!”

추천해주십셔! 이왕이면 좀 있어 보이고 멋있는 걸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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