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후일담: 여신님, 닭장냄새 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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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민폐여신을 처리할 방법을 찾았으니, 이제는 실행만 하면 되겠네.
“엄마, 나 배고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줄래?”
...일단 애 밥 좀 먹이고 생각하자. 어차피 아직 봉인이 완전하게 풀린 게 아닌 이상, 시간은 충분했다. 얘 밥 해주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 그 동안 머리 좀 굴려보자고.
나는 리온을 한손으로 들어 올려 안은 채로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했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다들 자고 있을 때라 그런가. 생각해보니 오늘 토요일 아침이네. 황금 같은 주말 아침에 이 시간에 깨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생각해보니까 더 화나네? 모리안 이년 주말에도 황금 같은 꿀잠을 방해해? 진짜 모가지를 비틀어서 땅에 머리만 남기고 심어버릴까? 어차피 마리아랑 그쪽 신들 허락도 받았는데 좀 험하게 다룬다고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선 어디 묶어두고 바로 앞에서 고기 구워서 상추에 깻잎에 고기 한 점 쌈장 발라서 올려놓고 잘 버무린 파채를 싸서 한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직관시켜주면 좋아 죽겠지? 그 다음에 마무리로 시원하게 냉면 말아서 후루룩 먹어치우는 건 덤이다.
생각하니까 삼겹살 구워먹고 싶네. 집에 삼겹살이 남아있던가? 상추랑 대파는 다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리온, 먹고 싶은 거 있니?”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랑...소시지랑...김치?”
거 묘하게 한국적인지 서구적인지 알 수 없는 메뉴구만. 뭐 그래도 만들기는 쉽네. 김치야 있는 거 꺼내먹으면 그만이고. 생각해보니 김장도 해야 되나? 어머니가 하실 때 거들어본 게 전부지만 인터넷에서 좀 찾아보고 하면 할 만할 것 같은데.
“알겠으니까 저기 앉아서 기다릴래?”
“응!”
나는 내 품에서 내린 리온이 종종걸음으로 테이블로 향하는 것을 잠시 쳐다보다 찬장과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한솔이한테 사오게 시킨 우유식빵과 반쯤 쓴 버터, 할인이라 두판 사놓은 계란에 살짝 진한 맛의 소시지까지, 이왕 하는 김에 다른 애들 것까지 미리 만들어 놓을까.
애들 나올 때마다 만드는 건 좀 귀찮잖아. 나는 허벅지에 비벼지는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며,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에포나, 잘 잤니?”
“응! 주인님도 잘 잤어?”
“그래그래. 내가 지금 요리를 하고 있으니까 리온이랑 놀고 있어. 알았지?”
“헤으응! 알았어!”
...마리아도 같이 묻어버릴까? 그냥 저 자매를 쌍으로 묻으면 내게 오는 트러블의 절반은 사라질지도 몰라. 나는 프라이팬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아침식사 메뉴는 간단한 것 위주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리온 몫의 식사를 가져다 놓은 뒤, 냉장고에서 당근 두 개를 꺼내 깨끗이 씻고 에포나의 입에 당근을 물려주었다.
“에포나, 여기 당근 하나 더 먹고, 리온이랑 같이 있으렴. 내가 좀 할 일이 있거든? 유라랑 한솔이 깨면 아침 테이블 위에 올려놨으니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
“응! 알았어 주인님!”
나는 베란다 옆에 놓은 샌들을 신고 정원으로 걸어 나왔다. 날씨가 꽤나 쌀쌀했지만 몸이 너무 튼튼해진 탓인지 잠옷만 입고 있음에도 버틸 만 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나온 목적은 집들이날 선물 받은 검, 엑스칼리버 때문이었다.
이거 정말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이런 용도로 말이야. 나는 바위에 박아놓았던 엑스칼리버를 뽑아냈다. 엑스칼리버는 내가 손잡이를 쥐자 마치 잡히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착 감겼다.
너무 싱겁게 뽑히네.
뭐 실제로 주인이 나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야 되나? 근데 엑스칼리버 뺀건 좋은데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지? 취급사용설명서 같은 거 없나? 나는 고민 끝에 마리아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마리아, 나 유진인데, 엑스칼리버 사용법 좀 알려줘.”
[그냥 들고 에쿠스칼리버어어어어!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님 도르신? 혹시 님이 실험대가 되고 싶으신?”
[아...그건 좀.]
“그건 야겜이고 진짜 휘두른다고 빔이 나오지는 않을 거 아냐? 뭐 어쨌든, 여기다가 너네 언니좀 봉인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
[언니를요? 쉽지 않으실 텐데...자기 위험한 일에는 귀신같이 눈치가 빠른 여신이라. 그래도 같혀있느라 정신력이 딸려서 통할지도 모르겠네요.]
“뭐 일단 해보고 아님 말지 뭐.”
[그렇게 쉽게 말하셔도...일단 방법은 알려드릴 게요.]
나는 펜과 종이를 가져와 마리아가 알려준 방법을 적기 시작했다.
역시 이 망할 여신 새벽마다 끌고 들어오려는 속셈이었어. 진짜 선 넘네.
내 마음 속에 있던 아주 약간의 망설임마저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나는 구현된 침대에 앉아 곧 나타날 모리안을 기다렸다. 여기 무의식이니까 다른 것도 좀 구현시켜 놓자. 원래 사냥감을 잡기 위해선 적절한 미끼가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석쇠와 숯, 세로로 잘린 드럼통으로 만든 불판을 구현시켰다. 고기는 삼겹살이면 되겠지? 나는 최근에 사서 먹었던 질 좋은 삼겹살을 떠올렸다.
숯넣고, 불 피우고, 고기를 올려놓으면...
치익...치익...모리안 개새끼...
“맛있는 냄새로다...”
“사람 불러놓고 기다리게 하기 있기? 없기?”
“미안하노라. 잠깐 일이 있어서 말이니라.”
거 내 무의식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나는 뻔뻔한 낯짝으로 불판 앞에 의자를 만들어 앉는 여신을 보며 생각했다. 와 왠지 모르게 폭력성을 불러오는 얼굴이야. 미친척하고 엑스칼리버로 후려치고 싶다.
“뭐, 오늘도 풀어달라고 그러려고 부른거야?”
“그렇노라. 이곳은 너무...지루 하느니라.”
“아 예...그러시군요.”
나는 적절하게 익은 고기를 집게로 뒤집었다. 무의식인데도 냄새는 그대로네. 숯 특유의 냄새와, 고기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후각세포를 거침없이 자극한다. 역시 고기는 숯불로 구워야지. 돌아가면 바비큐 기계 하나 사둬야겠다.
“차라리 경계로 돌아가는 게 덜 지루할 지경 이느니라.”
“아직 안 익었어.”
근데 이 여신 왜 젓가락질 잘해? 왜 이렇게 자연스러워? 혹시 전생에 한국인이었어? 켈트랑 신라랑 신기하게 무덤양식이 비슷하다던데 호옥시 조상님?
“고기는 빨간 부분이 사라졌을 때가 제일 맛있느니라. 구운 고기의 감칠맛과 생고기의 비린 맛이 번갈아서 입맛을 돋우지 않느냐?”
“아니지, 고기는 원래 살짝 바삭하게 구워져야 제일 맛있는 법이라고. 이거 고기 먹을 줄 모르네!”
“나이도 어린 것이 건방지느니라.”
“고기는 굽는 사람 마음이야. 주는 대로 먹도록.”
“그건 맞느니라.”
생각보다 고분고분하네. 역시 사람은 고기 앞에서 고분고분해지는 구나.
“자, 먹어.”
“잘 먹겠느니라.”
무의식 속에서 먹는 고기 맛은 며칠 전 먹었던 고기맛과 똑같았다. 결국 내뇌보정이니까 기억속의 맛을 불러오는 건가. 여신은 고기가 아주 마음에 드는 듯, 느긋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빠르게 잘린 고기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좋은 솜씨니라.”
“마이 묵으슈.”
그게 님 신생 마지막 고기여. 나는 다 익은 고기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가운데에 생삼겹살을 3줄 늘어놓았다. 나는 계속해서 고기를 구우며 모리안의 눈치를 살폈다. 완전 고기 먹는데 정신이 팔렸구만.
이게 여신?
“갑자기 고기를 대접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그냥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좀 나눠보자 싶어서. 나도 언제까지 여신님을 몸 안에 넣고 살 수도 없고...”
내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이 여신이라면 내가 죽으면 그 시체가지고 장난질 쳐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고.
“흐음...나도 동의하느니라. 언제까지고 나도 이곳에 박혀있기는 싫으니까 말이니라.”
“그러니까 협상 좀 하자고. 다른 ‘몸’으로 옮겨줄게. 마리아랑 누아다씨가 협조해줬으니까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다른 몸말이더냐? 흐음...”
그 뭔가 아쉽다는 반응은 뭐야. 원래 내 몸인데 지 몸인 것처럼 고민하네? 꼴받네? 나는 모리안이 더 생각을 이어가기 전에 다 익은 고기를 모리안 앞쪽에 밀어놓았다. 아 고기 냄새 맡고 정신 차리지 말라고...
“그쪽도 나쁜 장사는 아니잖아? 어차피 마리아도 이 세계에 남아있는 판이고, 너 하나 늘었다고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사고만 안치면 매일 바깥에서 고기반찬 먹으면서 살 수 있다구?”
“고기...말이냐?”
“그러니까. 숯불에 구운 삼겹살에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 양념을 듬뿍발라 불판위에 올리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양념갈비에 살짝 퍽퍽 하지만 씹는 맛이 있는 뒷다릿살에 독특한 식감을 자랑하는 갈매기살, 그리고 가끔씩 튀김옷과 함께 즐기는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치킨, 가끔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살을 발라내서 먹으면 입이 즐거운 생선들...생각해봐. 밖에 나가면 잔뜩 먹을 수 있어. 고기는 내가 제공해 줄 수 있고. 응?”
“으으...”
고뇌하는 모습 아주 보기 좋아. 이래서 미끼를 놓는 거지. 나는 고뇌하는 모리안을 반찬 삼아 고기를 씹었다.
“...으...확실히 매력이로다...”
“그러니까 여기서 궁상떨지 말고 나가자고.”
“무례하도다...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도다...고기...”
아직 좀 애매한데. 뭔가 좀 더 필요하다. 이럴 땐 역시....
나는 마음속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양념갈비를 떠올렸다. 나는 곧바로 불판위에 양념갈비를 올려놓고 저 고기성애자 여신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은근슬쩍 손바람으로 냄새를 밀어냈다.
“밖에 나가면 이런 무의식이 아니라 멋들어진 집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니까?”
“...알겠느니라...”
“자자. 그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가 보실까!”
나는 모리안이 눈치 채기 전에 재빨리 손을 잡고 무의식에서 빠져나왔다.
“새로운 몸은 어때?”
[이게 무슨 짓이더냐아아아아!]
“왜 멋있잖아. 잘빠졌고, 나름 운치도 있고. 저기 앞에 바위에 꽃아놓으면 딱일 것 같지 않아?”
[네년, 네년이이이이이이이!]
“와, 꼴에 여신이라고 그 몸에 들어가고 나서도 말을 거네?”
나는 휴대폰 진동모드마냥 진동하는 엑스칼리버(IN 모리안)을 보며 통쾌함 가득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내 숙면을 방해하지 말았어야지. 그것만 방해 안했으면 이런 처참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한손에 마법진이 새겨진 종이가 손잡이에 붙어있는 엑스칼리버를 들고 원래 검이 꽃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없어?”
[네년...두고보거라...내가! 반드시...]
“응 다음 호구여신~”
나는 거침없이 바위에 다시 검을 박아 넣었다. 이제 안심이네.
“엄마, 왜 검이랑 이야기 해?”
“아냐, 그냥 혼잣말이야.”
“그런거야?”
“그럼.”
[후회하게 될 것이니라! 후회...]
나는 리온의 손을 잡고 정원을 떠났다. 내가 점점 멀어질수록 텔레파시는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그렇게 우리집의 명물, 고기 먹는 검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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