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후일담:여신님, 닭장냄새 나...(2)
* * *
“그래서 제 언니가 유진씨를 덮쳤다고요?”
“응.”
“언니가 오랫동안 봉인당하더니 정신줄을 놓은 건가...원래 나사 빠진 작자이긴 했는데...”
마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시켜놓은 허니브레드를 먹기 좋게 잘라 입안에 집어넣었다. 꽤 맛있어 보이네. 나도 저거 시킬걸 그랬나. 생각보다 샌드위치가 맛이 없는데.
역시 샌드위치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제일이지. 쓸데없이 웰빙 어쩌고 하면서 야채만 이것저것 쑤셔 넣는 샌드위치보다 야채사이에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특제소스에 버무린 것을 야채랑 함께 끼워 먹으면 그게 참맛이지.
“일단 제가 누아다 할아버님에게 이야기는 해 놓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주세요. 그 언니가 원래 좀 막나가는 면이 있어서...”
취급 참 박하구만. 얼마나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으면 대놓고 골칫덩이 취급이라니. 골칫덩이 맞기는 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듀라한으로 만들질 않나, 몸을 뺏으려고 수작을 부리질 않나, 덕분에 중요한 일에 차질을 빚질 않나.
이게 여신?
차라리 로키를 부르는 게 나았겠다!
“그럼 나야 고맙지.”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레이드 약속이 있어서...”
“아...그래. 적당히 하고.”
레이드 약속을 매일 잡아 놓는 거야? 어제도 레이드 돌고 있지 않았어? 도대체 레이드를 몇 번씩 뛰는 거야? 도대체 언제 편집을 하기에 영상은 꼬박꼬박 올라오는 거지? 저게 신의 능력인가?
아니 그런데서 능력 발휘해도 잉여력 발산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누아다씨가 알면 침통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쳐다보지 않을까. 누아다씨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던데.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나는 마시던 커피를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해야지. 어차피 지금 모리안은 내 무의식에서 밖에 활동 못하는 것 같고. 다시 튀어나오면 그때는...
A.
무의식 속인가. 이번이 세 번째니 바로 알아보겠네. 평생 다시 올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이나 여길 오다니 나도 참 재수가 없지.
“저번의 일은 기억하고 있노라. 어떻게 나한테 그런 짓을 할 수 가...!”
“아이고 여신님. 혹시 제 몸을 뺏으려고 하신 건 기억에도 없으십니까?”
“대의를 위해서였느니라!”
“그 대의가 혹시 노릇노릇하게 익은 웰던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서 입에 넣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니죠?”
“다, 당연하지 않느냐!”
거 입가에 침 흘리지 마십쇼. 이 여신 얼마나 고기에 진심인 거야. 저쪽에서 평생 1등급 고기 무상제공 했으면 배신 때리지 않았을까.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나 이정도로 고기에 진심인 사...아니 여신 처음 본다고.
육식동물들도 이 정도는 아닐 거야. 옛날에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 생각나네. 고기에 그렇게 환장했었지...
“근데 그 대의고 뭐고 이제 다 끝났는데 밖으로 나올 이유가? 다른 신들은 저언부 돌아갔는데요?”
“나도 돌아가고 싶노라!”
아니, 너 어제만 해도 내 몸 뺏으려고 했잖아. 이제 와서 딴 소리네? 몸은 못 뺏을 거 같으니 수작 부리는 거 맞지? 그렇지? 이 망할 여신을 어떻게 처리하지? 내가 이렇게 고민중인건 아무래도 이 여신이 내 무의식 속에서 수작질을 부릴 것이 뻔한 탓이었다.
아직 봉인이 제대로 풀리지 못한 건지, 아니면 푼 직후라 힘이 없는 건지 무의식이 아니면 말을 걸어오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나한테 간섭하겠지. 그럼 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으니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재봉인? 그건 좀 그런데. 봉인하려면 최소한 마리아는 있어야 할 테고. 그때까지 이 고기성애자 여신이 수작을 부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애초에 봉인하는 방법조차 모른다. 난 마법 같은 건 쓸 줄 모른다고.
우주에 바라면 뭐? 그건 언어 한정이래. 바벨탑 어쩌고저쩌고 때문에 그냥 신들 종특 같은 거라던데. 신들 살적에는 언어가 다 같아서 그렇다나.
“...말은 듣고 있느냐!”
“응? 뭐라고 했어요?”
“나를 풀어다오! 그대라면 할 수 있다!”
“내가? 여신님을? 어떻게? 왜? 언제?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굳이?”
내가 굳이 너를 풀어서 얻을 이득이 있나? 이제 좀 인생 편해져서 마음 편하게 인생을 구가하려고 했더니만...귀찮게 하네. 적당히 놀리다가 빠져나가야지. 잘 자고 있는데 무의식에 부른 복수다.
오늘은! 휴일도! 아니라서! 푹 자고! 일어나야만! 한단! 말이다!
“그 열 받는 반응은 무엇이더냐!”
“음~그냥?”
오, 얼굴 붉어졌다. 나랑 똑같은 얼굴이 빡치면 저렇게 되는 구나. 근데 이 무의식은 매번 불려오지만 참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야. 내 무의식인데 무의식 같지 않기도 하고. 폭풍 사원이 있는게 내 무의식 답기는 하지만.
역시 나는 무의식까지 레스토랑스였다는 점이 뿌듯하기도 하고.
“...후. 내가 어린아이와 말을 섞는 것이 아니었거늘...”
“할매요...”
“뭐라?”
“할매요. 나이든 티 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고 계십쇼. 나 자러 가야 되니깐. 또 부르면 그때는 마리아한테 부탁해서 다시 봉인해 버리는 수가 있지 말입니다?”
어? 봉인 당한 김에 수십년 정도만 거기 박혀 있어! 어차피 내 수명이 길어봐야 얼마나 길다고 그 새를 못 참고 봉인에서 풀려나오려고 하는데? 그냥 나 죽고 나서 탈출하던가! 그쯤 되면 뭐 탈출해도 상관은 없겠지?
“그럼 전 갑니다? 다시 부르면 그땐 진짜 누가 죽는지 함 봅시다.”
“자, 잠깐 가...”
나는 모리안이 나를 붙잡기 전에 무의식 속에서 빠져나왔다.
“맨날 아침마다 부르고 지랄이야 지랄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마다 이게 뭔 지랄이야. 왜 나는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없는 거냐고...
“지랄? 그게 뭐야?”
엥. 너가 왜 여깄니. 나는 내 침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는 리온을 보곤 경악했다.
“어...”
나는 눈을 반짝이는 리온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차마 내입으로 그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어! 없다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지랄?”
“으아악!”
내가 그 여신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서 호수에 던져 버릴거야!
...호수?
그런 방법이 있었지? 나는 창문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바위에 꽃혀있는 검을.
찾았다. 방법.
확실하게 여신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