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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33화 (233/352)

〈 233화 〉 후일담:하와와 벌칙방송인 것이애오(2)

* * *

“하암...”

아침 6시 반. 살짝 이른 시간이었다. 보통 7시 쯤에 일어나니까...유라 학교 가기 전에 챙겨주기도 해야 하고 아침밥도 하고 오늘 방송 준비도 해야 하니까 이정도 시간에 일어나는 게 적당했다.

내가 앉아서 방송만 한다고 일이 적은 건 아니라고.

뭐 되는대로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 한 번을 하는 데에는 당연히 사전준비가 필수인 법이다. 컨텐츠 진행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해 봐야 하고, 새로운 이슈가 있으면 체크해 봐야 하고, 오늘은 합방이니 진행에 대해서 사전조율을 해야 하기도 한다.

할 거 더럽게 많네.

“유진아, 유진아, 혹시 빨래 돌려야 할 거 있어?”

“음...기다려봐. 샤워하고 나서 옷 줄 테니까.”

일단 먼저 씻고 뭘 하든지 해야지. 나는 방 바로 옆에 있는 샤워실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기이하리만큼 때도 뭣도 안 나오는 편리한 몸이지만, 그래도 기분이란 게 있으니 뜨거운 물에 찌뿌둥한 몸을 녹이고 씻은 다음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

쏴아아­하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아직 졸음기가 가시지 않은 몸을 마저 깨운다. 나는 머리를 든 채로 동물 목욕시키듯이 머리카락을 감기 시작했다. 이게 듀라한의 장점중 하나다. 대야 하나 가지고 와서 개 씻기듯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금방 젖으니까 번거롭게 머리를 감을 필요가 없다.

꺼내서 물 버리고 샴푸질 하고, 다시 넣어서 빼고 대야에 집어넣어서 샴푸 씻어내고, 샤워기로 머리를 다시 씻어낸 뒤에 머리카락을 줄여 숏컷 수준으로 만든 뒤에 몸을 씻고 머리를 수건으로 닦는다.

왜 머리를 감은 후에 줄이냐고?

사실 잠결에 서순이 꼬였다구.

씻고 나오니, 벗어놓은 옷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1층에서 희미하게 세탁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빨래라니, 오늘 날씨가 맑다고 해서 밖에 빨래를 널 예정인 것 같았다. 그냥 건조기 써도 되기는 하는데, 세연이는 직접 말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광건조가 나쁜 건 아닌데 ‘금일은 일광소독을 실시한다! 내가 쉬지 말라는 게 아니야 어쩌고저쩌고...’밖에 생각이 안나서 뭔가 짜증난다고.

도대체 지 주말에 일하러 나왔다고 병사들한테 지랄하는 이유가 뭔데! 그냥 대충 퍼질러 자던가! 보니까 폰으로 게임하면서 시간 잘 죽이더만! 병사들은 폰도 없어서 구석에 박혀 자거나 사지방가거나 헬스장 가거나 하는 거 밖에 못한다고!

“안녕하세요...”

“잘 잤어?”

“하암...네...학교가기 싫다...”

“어쩌겠어. 학생이니 가야지. 그래도 집에서 멍 때리면서 원격 수업 듣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래도 학교 가는 것보단 낫죠. 적어도 좀 늘어지게 잘 수 있어서 좋았는데...가도 서로 얼굴도 별로 못 본 사이라 어색하기만 하고. 그나마 아는 친구는 키만 멀대 같이 커가지고 저만 보면 들어올려서 X이온킹처럼 들고 다니질 않나. 제가 그거 때문에 별명이 라이온퀸이라니까요? 누굴 장난감으로 아나...”

이른 아침에도 유라의 끝날 줄 모르는 수다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나는 5분에 걸쳐 이어진 유라의 일장연설을 다 들어준 후에야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정신없구만. 나는 유라가 화장실에 들어간 것을 본 뒤에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거실에는 쇼파에 누워 폰을 만지작거리는 세연이가 있었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인 것 같았다.

“뭐 해?”

“폰 겜...요즘 잘나가는 게임이래.”

세연이가 화면을 대충 보여주니 아는 게임이었다. SD캐릭터가 화면에서 뾸뾸거리는게 인상적이었는데, 요즘 잘나가는 그 신작게임이구만. 그 주인공이 은행강도인 그 게임 맞지? 5분이면 세상을 턴다던 그거?

“유진아, 오늘 합방 날이지? 하기 전에 준비해야 되는 거 아냐?”

“그거야 아침 먹고 하면 되지...어차피 대략적인 건 이미 세팅 해 놔서 최종 점검만 하고 들어가면 되니까.”

한 두 번 한 일도 아니니 별로 어렵지도 않다. 그냥 귀찮아서 그렇지.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 들어갔다. 아침은 적당히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에 커피 정도면 되겠지. 심플하지만 먹기 좋은 식단이다.

심심하면 잼이든 설탕이든 뿌려 먹으면 되고.

프라이팬을 꺼내 예열시키고, 버터를 꺼내 두른 후에 토스트를 먹음직스럽게 굽는다. 버터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하며 침샘에서 침이 퐁퐁 솟아나게 만들었다. 대충 12개 정도만 구우면 되겠지. 사람 수가 다섯이니 그 정도면 된다.

내가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나니 벌써 시간이 8시였다. 교복을 챙겨 입은 유라가 낑낑거리며 의자에 오르고, 한솔이가 자기 자리에 앉아 내 피를 커피에 타고, 리온은 자기 몫의 우유를 홀짝거린다.

평범한 아침식사 광경이지만, 역시 집이 좋으니까 그림이 되네. 이러니까 사람들이 부동산에 목을 매지. 의식주 중에 괜히 주를 가장 높게 치는 게 아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마지막으로 고양이귀를 씰룩이며 나타난 시영이는 빈자리에 앉더니 반쯤 눈을 감은 채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잠은 잘 잤어?”

“네...푹 잤어요. 역시 방음이 잘 되는 집은 좋네요. 저희 집은 주변이 좀 시끄러워서 숙면하기가 어렵거든요. 자려고 하면 귀마개를 하고 자야 돼요.”

“그렇구나...확실히 시끄러운 곳 주변에 집이 있으면 짜증나긴 하지. 그래도 역세권이면 참을만 하지만 그것도 아니면 이사 가고 싶어진다니까.”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변이자가 되고 나서 몸이 완전히 야행성이 되버려가지고 생활 사이클 잡기가 힘든데 소리에 민감해지기까지 해서 죽을 맛이라니까요. 근데 그렇다고 이사를 가자니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이사가 돈이 많이 들기는 하지. 방 빼려고 정리하고 뭐하고 하는 것도 번거롭고 집도 좀 괜찮다 싶으면 비싸고...돈이 많지 않으면 타협의 연속인 게 집 구하기다.

역세권은 포기하고 직장이랑 좀 멀더라도 좋은 방에서 살거나, 아니면 직장하고 최대한 가까운 곳을 잡기 위해 집이별로라도 참고 살거나.

“라쿤 박사님 말로는 이 근처를 변이자 특별 거주지로 지정해서 개발한다느니 뭐니 했으니 나중에 이쪽에 집들 들어서면 구해보는 게 어떨까?”

“꼭 그래야 겠어요...이사할 돈이 모일지는 모르겠지만요...그래도 요즘은 좀 벌리니까 저축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주택 청약할 돈이라도 모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근처에 집들 들어서면 공사 때문에 시끄러워 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변이자 들 특별 거주구니까 아마 변이자들 위주로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니까. 그전에 공사를 해야 하니 우리 집 주변이 시끄러워 지는 게 문제겠지만. 이 집을 싸게 받는 대가로 계약한 거니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뭐 괜찮지 않을까? 보통 우리가 일하거나 쉬는 시간쯤에는 집에 없거나 방음실에 있을 테니 크게 문제는 안 될거야.

,..아마도?”

유라의 질문에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내 몫의 커피를 비웠다. 역시 고오급 기계는 맛부터 다르구만. 원두도 비싼 걸 쓰니 프랜차이즈 커피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혹시 더 먹을 사람 있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다들 소식하는구만. 하긴 아침부터 많이 먹으면 좀 속이 더부룩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저는 유라 데려다 주고 올게요~”

“잘 다녀와~”

나는 집을 나서는 한솔이와 유라를 배웅해주고,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다. 리온이 자리에 없는 걸 보니 화장실을 갔거나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폰이라도 만지작 거릴라나. 나는 토스트를 먹어치우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시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 아침도 먹었으니 합방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솔직히 내가 나 혼자 하긴 무서워서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온 거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 이래저래 할 이야기도 있고 말이야.”

“아, 네...”

묘한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사람이 혼자 하기 무서우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준비할 거야 네 아바타가 잘 출력되는지 체크하는 거랑, 서브컴에 네 방송 세팅 하는 거랑 방음용 칸막이 세팅 정도긴 한데...주의 사항이 몇 개 있어.”

“주의 사항이요?”

“내가 피를 토해도 놀라지 말 것.”

“...네?”

아니, 문자 그대로 의미야. 뭔가 잘못들은 것 같다는 표정 짓지 않아도 돼. 문자 그대로 피를 토할 뿐이야. 평범한 일이라고.

“문자 그대로니까 걱정하지마.”

“아니, 피를 토한다는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요?”

“좋아하는 애도 있는데 뭘.”

“좋아해요?!”

“있어, 우리 피에 환장하는 흡혈귀 말야. 아까 못 봤어? 내 피를 커피에 타 마시는 거.”

“...저는 뭐 특이한 향신료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였어요?”

“응. 내 피야. 그래서 내가 양동이에 피를 좀 자주 토하니까 너무 놀라진 말고.”

아니 왜 벌써부터 경악한 표정인데. 피만 토하는 거지 몸은 멀쩡하다고.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밀관리본부쪽 말로는 몸에 아무런 이상 없다던데?”

“어...변이자라고 해도 그건 좀 괴상하네요.”

“나도 이런 몸이 될줄은 몰랐다니까.”

“저도 원래 안경 쓰고 다닐 정도로 시력 안 좋았는데 시력이 엄청 좋아진 걸 생각하면 어떻게든 납득...이 되긴 하네요...?”

전혀 납득 못했단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도 좀 그렇지 않나.

“뭐, 첫 번째는 그거고, 두 번째는 방송 중에 방문 절대 열어놓지 말 것. 오늘은 자는 건지 아직 안 나왔지만, 내 애완동물 봤지?”

“아...그 망아지요? 되게 귀엽던데.”

“개가 울음소리가 좀 그렇거든...? 근데 개가 자주 운단 말이야. 그래서 방문은 꼭 닫아 둬야해.”

“울음소리요?”

“헤으응!”

거참 타이밍 좋게도 나타나는 구나 우리 망아지야.

나는 내게 다가와 무릎위에 올라탄 에포나를 안아주었다. 아침부터 응석을 잔뜩 부리네 이 망아지가.

“...이렇게 울어.”

“...아...네.”

시영이는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있는 에포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쳐다봤었지...

“세 번째는 그 뭐냐, 방송실 구석에 컴퓨터가 있거든? 그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가 지 멋대로 움직여도 신경쓰지 마. 내가 갑자기 허공에 대고 소리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

“그렇게만 알아두면 돼! 그럼 잠시 쉬고 방송준비나 하러 가자!”

“아, 어, 네.”

시영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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