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후일담:하와와 벌칙방송인 것이애오(1)
* * *
“실례합니다...”
“실례는 무슨, 빨리 들어와. 밥은 먹었어?”
“아직이요.”
급하게 온 탓인지, 시영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이었다. 뭐 내가 물귀신 짓을 해서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하지만 내 생애 한 점 부끄럼 따위 없다! 오프 콜라보는 어쨌든 윈윈전략이라고! 바로 옆에 있으니까 티키타카 맞추기도 좋고! 시아 입장에서야 내 시청자를 좀 더 자기 쪽으로 끌어올 수 있으니까 좋고!
저녁대접은 덤이다. 내가 불렀으니 저녁 대접은 해야지. 나는 내 뒤에 숨어 시영이를 바라보는 리온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나리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안녕~”
시영이는 나리와 눈을 맞추고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나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시영이의 머리에 난 귀를 올려다보았다. 확실히...신기하긴 하지. 만화도 아니고 고양이귀가 달린 사람이라니.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이래저래 좀 보기 그렇지. 위화감이 장난 아니라고. 지금까지 내가 본 여성 변이자들은 전부 외모가 예쁘기는 했다. 외모 보정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그 끝판왕이고.
나는 전 여신 출신이라 그런 거라 좀 케이스가 다른가.
“만져볼래?”
나리는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시영이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진짜 고양이랑 감촉이 비슷한지 좀 궁금한데.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나리랑 놀고 있어, 저녁 준비 중이거든? 내가 급작스럽게 초대한 것도 있으니 밥은 든든하게 먹여 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
“유진언니가 준비한 식사라면 기대되네요!”
내가 한 요리 하긴 하지. 이왕이면 요리 자격증도 따볼까. 내 실력 정도면 좀 연습하면 딸 수 있지 않을까.
요리 잘함>요리 자격증까지 있음 이게 좀 더 있어 보이잖아. 어차피 음식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게 필요하겠냐마는. 내가 요리왕 듀라가 될 것도 아니고. 요리 x튜버도 아니니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다.
나는 주방에서 김을 뿜어내는 전기밥솥을 보며 미리 재워둔 고기를 꺼냈다.
호옥시 제육볶음이라고 아십니까? 매.우 맛있습니다. 예로부터 제육볶음만큼 무난하고 먹기 조은 고기 요리가 없지 말입니다? 붉은색 옷이 입혀진 먹음직스러운 때깔에 매콤하면서도 달짝찌근한 향기와 눅진하게 묻어나오는 양념이 일품인 요리지.
제육볶음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이 세상에 없어! 그 더럽게 맛없는 급식이랑 군대 밥조차도 제육볶음 나오는 날은 사람이 붐빈다고! 맛없게 만들기도 힘들어서 언제나 무난하지! 여기에 하얀 쌀밥에 상추에 깻잎에 쌈장 초고추장 파채 마늘에 김치까지 넣는다?
헤으응...
후. 그새 다 익었네. 나는 다 볶은 제육볶음을 그릇 위에 예쁘게 올려놓았다. 상추랑 마늘은 미리 씻어놨고...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를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놓고. 에포나 몫의 당근을 준비 했다.
고기를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본인은 당근보다 맛이 없단다. 확실히 동물한테는 너무 자극적인 맛이라 그런가.
“유라야, 밥 좀 퍼줄래?”
“네, 언니.”
“밥 먹자아아아아아!”
“잘 먹었습니다. 요리 진짜 잘하시네요.”
“자취 경력 3년이면 이 정도는 껌이지.”
“저도 자취하는데요?”
“그냥 너가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닐까?”
그런가?
자취하면서 밥 해먹다 보니까 늘어난 건데. 이렇게 되고나서 밥 만들어줄 일이 많아져서 늘어난 것도 있겠지만. 나는 갓 내린 커피들과 먹기 좋게 잘라 놓은 과일들을 모두의 앞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 한솔이, 유라, 시영이, 에포나, 리온...5명+1마리나 되는 구만.
“으, 여기 커피. 갓 내린거라 향긋하다고.”
“감사합니다. 후식까지 대접해주시다니...”
“손님 대접은 집주인의 중요한 의무니까.”
“헤으응...”
예로부터 손님 대접은 후하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나는 내 발치에 앉아 내 발등에 얼굴을 부비며 이제는 모두가 익숙해져버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에포나를 발가락으로 간질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날씨가 순식간에 추워져 가지고 겨울 옷좀 사러 나가야 겠더라.”
“아직 11월인데 날씨가 너무 추워요...이젠 창문 열면 찬바람이 훅 들어와서 힘들다니까요.”
“그런...가? 난 잘 모르겠어. 흡혈귀라 그런 걸까?”
흡혈귀가 추위 탄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보긴 했지. 지금도 커피에 내 피를 타 마시는 한솔이를 보며 생각했다. 붉게 물든 커피가 어쩐지 좀 섬뜩하다. 아니 당연한 건가. 내 앞에서 당당하게 내 피를 커피에 타 마시는데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도 웃긴 거지.
“그런 거 아닐까요? 흡혈귀는 흐르는 물이나 십자가나 성수나 마늘 아니면 효과가 없다고 들었으니까...어 그런데 한솔 언니 마늘 먹지 않아요?”
“어...그러네? 마늘가지고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게 일어난 적은 없었는데. 방금도 쌈 싸먹으면서 마늘 먹었는데...”
한솔이가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금 전에도 마늘을 고기와 함께 야무지게 싸먹었으니 그런 표정이 나올 법 했다.
“그건 한국인이라 그런 거 아닐까. 저기 서양 쪽 흡혈귀 변이자들은 마늘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 보인다던데.”
역시 한국인. 마늘을 먹지 못하면 그건 한국인은 아니지...단군신화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은 몸의 체질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다 이건가. 하긴 한국에서 마늘을 못 먹는다는 건 그냥 굶어 죽으라는 소리랑 다를 바 없긴 하지.
한국에서 마늘이 안 들어가는 요리를 찾는 게 훨씬 쉬울 지경이란 말이야.
나만 해도 간이 심심하다 싶으면 마늘부터 투입하고 보는 걸.
“역시 한국인...일단 요리에 마늘부터 넣고 보는 민족 답네요.”
“그치? 나도 일단 요리할 때 마늘을 얼마나 넣을지 고민부터 하고 보거든.”
식탁 위에서 소란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얼마 안 되는 온화한 시간이자, 휴식시간이다. 평소라면 잠시 1시간동안 요리하고 먹고 바로 들어가서 방송 하느라 이런 여유가 잘 안 나온다고.
오늘은 합방이라 일찍 끝나서 다행이지.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잡담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속으로는 벌칙 방송에 대한 계획을 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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