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 후일담:다들 오래 기다렸지?(3)
* * *
“아이고,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어요? 남의 방송 와서 영업방해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참 할 짓도 없으셔라. 나는 목소리를 내리 깔으며 한자 한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뭐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방구석 여포들답네. 방구석에서 뭐라도 된 것 마냥 분탕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놈들이.
결국 수만 많아졌을 뿐인 분탕이다. 나들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목소리 ㄷㄷ
진짜 빡치셧네;;
듀라가 이렇게 까지 빡친 건 처음 보는데;;
얼굴 보여주는 거 가지고 되게 생색내네 ㅋㅋㅋㅋㅋ
채팅창을 슥 훑는다.
어디보자, 닉네임이 뭐? 와, 양파주스구나. 군대에서 x니언 많이 처먹었을 것 같은 닉네임이시구만. 평생 양파주스만 먹여버릴까 보다.
“양파주스님, 제가 얼굴 보여주는 걸로 생색을 낸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요? 양파주스님, 제가 얼굴을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나요? 해명이요? 제가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논란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방송을 하고 있을 뿐인데?
양파주스님, 제가 캠방을 하는 X트리머도 아니고 엄연히 노캠을 지향하는 버튜버를 하고 있는데 제가 굳~이 얼굴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요? 뭐, 그걸로 시청자 떡상이요?
양파주스님, 저는 얼굴 안 까고 방송해도 충분히 시청자들 많아요. 양파주스님, 어디보자, 3분전에는 ‘여스 주제에 존나 비싸게 구네 ㅅㅂㅋㅋㅋㅋ’라고 쓰셨네요? 주제에? 주제에에에에에에에?
양파주스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에요. 누구든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죠. 제가 노캠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그게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거랍니다.
양파주스님, 아시겠어요? 뭐 양파주스님은 재미로 들어와서 난리를 치고 있는 거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영업방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요? 양파주스님, 이런 재미는 한순간이지만 님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평생 가겠네요. 4만 명 가까이 되는 시청자들 앞에서요. 어디보자, ‘이건 조리돌림 아니냐’고요? 글쎄요? 양파주스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누구든 공개적인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할 수 있는 법이에요. 그리고 양파주스님이 하고 있던 짓을 생각해 보세요.
양파주스님, 평소에 진상손님 썰 같은 거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상손님 좆같다고 생각하시죠? 양파주스님, 님이 그 진상손님이에요. 양파주스님, 현실에서 진상손님은 쫒아내기 어렵지만, 여기선 언제든지 쫒아낼 수 있어요.
방송하는 사람들에겐 방송을 방해하는, 혹은 채팅방의 물을 흐리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밴을 먹일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요. 양파주스님, 잘 가세요. 뭐 부계로 오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제 방송이나 조용히 보러 오시는 게 어떨까요? 아, 자기가 자기 발로 나가셨네.”
그런다고 영구 밴을 안 걸진 않아요~ 나는 양파주스에게 영구 밴을 먹였다. 부계로 찾아와서 또 분탕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또 밴을 먹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정도로 말했으면 쪽팔려서라도 못 찾아오겠지.
ㄷㄷㄷㄷㄷㄷㄷ
갈구는 거 미쳤네;;
톤 하나도 안 바뀌고 내리깔고 말하니까 소름 끼치네;;
“어디보자,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채팅을 읽기가 힘드네요. 흐음...”
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새로운 먹잇감을 물색하는 척을 했다. 채팅창을 읽기 힘들다고 했지만, 저속모드로 바꿔놓고 보면 될 일이었다. 내가 속사포로 한명을 찍어서 나갈 때까지 두들겨 팬 것이 꽤 효과가 있었는지, 아까보다 채팅방에 올라오는 욕설과 개소리의 빈도가 줄어있었다.
다들 자기가 타겟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몸을 사리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가 다음 타겟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지치지도 않고 헛소리를 내뱉는 분탕들이 눈에 띄었다.
나랑 체력 싸움 하자고? 너네 모르는 구나. 내가 이 몸 되고 나서 체력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거든? 하루에 9시간씩 방송하는 게 쉬워 보이나 보구나. 이쯤에서 추가타를 날릴까. 나는 생각해 두고 있었던 말을
스트리머가 저래도 됨?
ㅅㅂㅋㅋㅋㅋㅋ 스트리머는 공공재인데 공공재 주제에 지금 시청자 쫒아내네 ㅋㅋㅋ 장사할 줄도 모르는 년ㅋㅋㅋㅋㅋ
“이응이응님, 공공재요? 제가 언제부터 공공재였을까요? 뭐, 어디 몇 조 몇 항 법이 있어서 ‘스트리머는 공공재’다 라고 명시되어 있나요? 어디 뭐 적혀있으면 법 조항이라도 가져오세요.
이응이응님,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방송해도 시청자가 4천을 넘는답니다. 아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법한 이응이응님 과는 다르게요. 어디보자, 5분전에는 ‘물소들한테서 돈 뽑아먹는 년이 뭐라도 된 것처럼 구네 ㅅㅂ’라고 쓰셨네요.
이응이응님, 뭐 제가 편하게 돈 뽑아먹는 것처럼 보이세요? 그렇게 부러우세요? 앉아서 편하게 돈 번다고? 이응이응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요. 괜히 머기업 스트리머들이 함부로 뛰어들지 말라고 하는 건줄 아세요? 뭐, 사다리차기라도 하는 것 같나요? 알 사람은 다 알아요. 이쪽 업계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고 나머지는 시청자 10명도 못 붙잡고 접는다는 거요.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이 도전했다가 처참한 현실에 좌절하고 방송을 접어요. 흔히 말하는 머기업은 그 레드오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이에요. 방송을 하고, 방송이 끝나면 시간을 들여가며 컨텐츠 기획을 하고, 자는 시간을 줄여 직접 영상을 편집하기도 하고, 논란이 될 거리가 없나 일일이 체크하고 방송이 아니더라도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이응이응님. 그런 말 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자는 게 어떨까요? 쓸데없는 짓 하느니 차라리 잠이라도 자는 게 더 유익할 거에요. 아니면 게임이라도 하시든가. 적어도 여기서 낯부끄러운 소리 적어가며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을까요?
이응이응님을 위해서 영구밴을 선물로 드릴게요. 잘 주무시구요.“
나는 이응이응에게 영구 밴을 날리고, 한층 더 느려진 채팅창을 쳐다보았다. 5천 명 정도 나갔네. 그래도 3만명 가까이 남아있으니,
사이다네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분탕들 겁먹었죠? 먹었죠?
[AAAAA님이 100000원 후원하셧습니다]
듀라 파이팅! 이대로 분탕들 전부 영구밴 가즈아~
“AAAAA님 1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영구밴은 이미 돌리고 있어요~”
이제 채팅창은 원색적인 비난이나 욕설은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은 탈곡기를 더 돌려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성능 좋은 탈곡기를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근황토크나 좀 하고 게임하려고 했는데, 근황토크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자, 오늘 할 게임은 제 시청자 분이라면 다 아시는 우주 갓겜!”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그럼, 모두 듀바~ 내일 만나요~”
나는 헤드셋을 벗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방송은 정말 다사다난 하구만. 나는 마지막에는 만명 대로 줄어들은 시청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훅 갈 수 있는 말들이 좀 있었지만, 세간에서는 이런 걸 사이다라고 추켜세우곤 하니까, 오히려 인기 반등의 발판이 될 수도 있겠지. 떨어져도 상관없다. 애초에 분탕이나 흥미로 잠깐 들어온 시청자들을 붙잡을 생각은 없으니까.
수익에 눈 멀어 분탕을 시청자로 끌어안는 건 독이 든 성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거침없이 방송 내내 거침없이 탈곡기를 돌려댄 것이다.
1만이나 8시간 연속 시공타임에 살아남았다면 많이 살아남은 거지.
역시 시공이야. 시청자 탈곡기 성능 확실하지.
이게 바로 시공이 세계 최고의 갓겜이란 증거가 아닐까?
저 중에 반이 또 날아간다 해도 5천명이나 남는 거다. 내 원래 시청자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조만간 매니저 하나 더 뽑든지 해야겠네. 이왕이면 좀 일처리 확실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구해야지.
기지개를 켠다. 신체 컨디션은 언제나 최상이지만 기분상 기지개라도 켜지 않으면 일을 끝낸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유진아, 수고했어.”
“너도 수고했어. 진짜 매니저 더 고용해야겠어.”
아니, 차라리 MCN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최근에 기밀관리본부의 기획중에 변이자 취업 관련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조금 약아빠진 생각이긴 했지만, 규모는 작아도 변이자 출신 스트리머나 변이자들을 모아서 MCN을 설립하면 지원금도 좀 타먹을 법 한데.
게다가 기밀관리 본부랑 나는...깐부잖아?
안그래도 서로 상부상조 하는 사이니 충분히 수월하게 진행 할 수 있겠지.
크게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비율은 2~3할 정도만 해도 될 법하다. 채팅방 관리자나 영상 편집자 정도만 고용해서 굴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하게 고민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개인이냐, 회사 소속이냐는 일처리를 할 때 큰 차이가 있으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생각하며, 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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