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후일담:다들 오래 기다렸지?(1)
* * *
화면이 깜빡거린다. 컴퓨터가 기계음을 내며 부팅되고 있었다.
컴퓨터를 켠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의자위에서 생각에 잠겼다. 거의 몇 주만의 방송인지 모르겠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방송을 켰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약 2주일 전에 온 세상에 변이자의 존재가 알려졌고, 그 즈음에 나는 방송 휴식을 선언하고 이곳저곳에 불러 다녔다. 전쟁터부터 기자회견장까지, 방송을 할래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뭐 장기 휴식을 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으니까.
문제는 내가 아직까지도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이란 점이다.
변이자. 그리고 변이자들을 대표해서 기자회견에 나타난 의문의 여성. 내 외모부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까지, 인터넷에서는 아직까지 나에 대한 추측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 커뮤니티들이 달아올랐을 때에, 아마도 내 시청자일 누군가가 새로운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사람 목소리 누구랑 닮지 않았음?’
똑같을 수밖에 없지. 동일인물이니까. 그리고 내가 따로 방송용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방송 중의 내 목소리와 기자회견에서의 내 목소리를 대조해보고 기자회견에서의 여성과 듀라가 동일 인물이라는 설은 인터넷에서는 거의 확정이 난 상태였다.
즉. 지금 방송하면 아주 난리가 난다는 거다.
결국 내가 기자회견에 서기로 결심했던 일이고, 인터넷 방송을 업으로 삼은 이상 방송을 켜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문자 그대로 뭔 개판이 벌어지더라도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 아마 내가 방송을 키는 순간 수많은 시청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질 거다. 아마 평소보다 더 많은 어그로와 사람들이 내 방송에 몰려들겠지.
취미로 하는 방송이라면 잠잠해질 때까지 잠수를 하든지 그냥 아예 방송을 포기하든지 했겠지만, 나는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전업 방송인이 있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리고 기밀관리본부와 이것저것 약속을 한 것도 있었기에, 어쨌든 나는 방송을 켜야만 했다. 내가 괜히 얼굴마담으로 나선게 아니니까. 내가 사고 치면 변이자들에 대한 인식에 악영향이 갈 수도 있었다.
이래저래 진짜 ‘공인’이 되어버린 이상 그 자리에 걸 맞는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만거다.
원래 스트리머나 버튜버나 공인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나는 정부 공인으로 변이자들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 섰으니 내 실수 하나가 변이자들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내 이미지는 여타 방송인에 비하면 나쁜 편은 아니라서, 동일 인물설이 인터넷 전체에 펴져도 그걸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도 대부분 왜 뽑혔는지 알겠다는 반응이 많은 편이었고.
뭐 왜 뭐.
시공 빠는 게 문제될 거리는 아니잖아...
아무튼 생각해봐.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아름다운 외모+미성+충격적인 특이성 때문에 나보다 변이자라는 종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니까?
골 때리는 건 기밀관리본부에 온갖 연구소에서 연락세례가 쏟아지고 있다고 하드만. 다행히도 라쿤 박사님이 자기 선에서 컷해주었기에, 나에게는 전화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금 과학자들 사이에서 내 취급이 거의 아주 흥미롭고 할 수 만 있다면 노벨상도 노려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실험체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이거 좀 과격하게 나가면 날 납치하려고 드는 거 아냐?
내가 얌전히 잡히진 않겠지만. 저어는 작정하면 작은 자동차 정도는 들어올릴 수 있다 이겁니다. 나를 밴에 넣으려 하면 내가 밴을 들고 그대로 경찰서 앞에 내려주마.
아, 방송세팅 언제 끝내놨지? 역시 2주를 쉬었지만 몸은 내가 할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미리 가져다 놓았던 콜라를 한모금 마시곤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적혀진 시간을 체크했다.
12시 50분. 본격적인 방송 시작 시간 까지는 10분이 남았다. 이제 마우스 한 번만 딸깍이면 방송이 켜지는 거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지. 그냥 평범한 방송일 뿐인데. 적당히 해명을 하든 얼버무리든 하고 그냥 평소대로 방송을 진행하면 될 뿐이다.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먹고 살려면 지나가야 하는 해프닝일 뿐이라고.
내가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괜히 버튜버로 넘어온 게 아닌데. 버튜버의 가장 중요한 수칙은 안의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것! 빨간약 언급은 금지야!
그러니까 아무튼 기자회견장의 이유진이랑 듀라는 다른 사람입니다. X희와 X템만큼 달라요. 반박은 받지 않슴다. 저기 정원에 X년퍼즐 비스무리한 연식을 가진 무언가가 있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 이집트가 훨씬 옛날인가.
역사공부를 한지가 오래되서 이젠 연대가 거의 기억이 안나네. 대충 수 천년 지나 마침내 선택받은~ 이니까 이집트가 더 오래된 거 맞겠지.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시 커뮤니티를 뒤적거리며 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니, 순식간에 7분이 지나있었다.
마지막으로 세팅을 점검해야지.
방송 프로그램 양호.
X위치 서버 상태 양호.
X튜브 상태 양호.
인터넷 회선 상태 양호.
컴퓨터도 렉 없이 원활하게 잘 돌아가고. 오늘 주요 컨텐츠인 저챗이랑 몇몇 간단한 게임들도 준비 됐고. 이제는 정말 방송을 켜야 할 때였다.
방송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치네. 신경 쓸게 많아지니 머리가 아파. 예전에는 그냥 무지성으로 방송을 켜도 재밌게 할 수 있었는데, 기자회견 이후로 뜨거운 감자가 되니 별로 달갑지가 않네.
결국 내가 하기로 한 거니까 불평할 수는 없겠지만.
59분.
1분남았네.
나는 마우스 커서를 방송 송출 버튼에 갖다 대었다.
뭐, 별일 있겠어?
그래봐야 그게 뭔데 씹덕아 소리 듣는 상황에서 그걸 왜 몰라 씹덕아 소리를 듣는 정도라고.
...생각해보니까 존나 다른데?
왠지 욕이나 섹드립이나 개드립 치면 안 될 것 같은데?
에반데.
나는 마우스 좌클릭 버튼을 눌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