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후일담:이사를 했으면 집들이는 국룰이지(5)
* * *
“오, 이건 아주 독특한 맛이로군. 이 음식 이름이 뭔가?”
“그건 잡채라는 거에요. 보시다 시피 온갖 야채와 고기, 당면을 버무린 음식이죠.”
만들기 더럽게 힘들다. 재료들을 죄다 따로 익히고 당면도 불리고 잡채가 명절 말고는 상에 올라오지 않는 이유가 있다니까. 누아다씨는 잡채가 생각 외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잡채를 포크로 파스타 마냥 둘둘 말아서 먹는 모습은 뭔가 묘했지만. 잘 먹으면 된 거지.
“이걸 다 유진언니가 만든 거예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요리 엄청 잘하시네요. 혹시 방송하시기 전엔 요리사셨나요?”
“그냥 회사 다니던 회사원이었어.”
접시에 한가득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구나. 그래 음식들을 다 끝장내 버리렴. 나는 음식을 만들고 나서 잔반이 남는 게 제일 싫어. 차라리 배 터져 죽어!
내가 인원 계산을 잘못해서 너무 많이 만든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음식들이 절찬리에 접시를 타고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주 기분이 좋다. 역시 요리는 맛있게 먹어줄 때가 최고지. 나는 내 몫의 파스타를 덜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식사를 하는 테이블로 향했다.
손님들을 위해서 정원에 설치한 차양이 달려있는 원형 테이블이 아주 마음에 드신 듯, 부모님과 리온은 단란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생각보다 리온이 잘 녹아든단 말이야. 애가 착해서 그런가.
아니면 워낙 이쁘게 생겨서 이쁘게 보시는 건가.
“식사는 어떠세요?”
“네가 이걸 다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구나.”
“다 만들려니까 준비만 몇 시간씩 걸리더라고요. 내가 다시는 잡채 안만들 것 같아.”
“어머, 명절엔 내려와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아.”
저는 명절에 내려가서 음식까지 만들 생각은 없는데요. 솔직히 그 전쟁 통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즘이야 이 시국이다 뭐다 해서 잘 모이지는 않지만 나는 친척이 많은 편이라, 수십 명이 우리 집에 모이니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안해! 안가! 나 불꽃 효녀 할래!
...생각은 이렇게 해도 결국 내려가겠지만. 명절이잖아. 내려가지 못할 이유가 사라져버린 이상 부모님이 나를 이곳에 그대로 있게 할 리가 없다. 추석 때 안내려간 걸로도 엄청 서운해 하시는 것 같은데 설에 쇠러 안내려간다?
그 다음에 날아오는 건 잔소리 폭탄을 넘어서 폭격이 되겠지.
부모님이 나를 일찍 낳으셔서 아직 나이가 아주 많으신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두 분 다 쉰을 넘어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계시니 몇 년 뒤면 예순 잔치를 준비해야할 날이 오신다. 아버지기 목공일을 그만두시면 아무래도 여기에 모셔서 살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시골집은 나중에 살던지 아니면 부모님 살기 편하게 리모델링이라도 하던가 하고. 솔직히 집 자체가 수십 년이 지나서 너무 낡았단 말이야. 게다가 너무 시골이라 주변에 뭐 있는 것도 없고.
요즘 시대에 읍내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 가까이 가야하는 게 말이 돼?
“리온은 어때, 맛있니?”
볼을 빵빵하게 채운 리온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구, 양념갈비 소스 튄다. 턱받이라도 사올걸 그랬나. 나는 야무지게 갈비를 뜯는 리온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애가 은근히 먹성이 좋단 말이야.
그 나이 때는 다 그런가? 그전에 리온 나이가 몇 살이었지?
나는 부모님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내 몫의 접시를 전부 비웠다. 이제 다시 좀 돌아다녀야지. 원형 테이블을 여러 개 세팅해 놓고 일행들끼리 앉아서 먹을 수 있게 세팅을 해놓았기에, 나는 집주인으로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야 했다.
이왕 하는 거 좀 색다른 집들이가 좋아서 한 선택이지만, 반응이 좋으니 나쁘지 않네. 솔직히 신이나 변이자나 이런 특이한 손님들이 많아서 죄다 합석시키면 뭔 일이 생길지 몰라서 그런 것도 있고.
어느 정도 일반인과 신화 쪽 관계자, 변이자들을 떼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뭐만하면 일이 터지는데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않을까. 다행히 신들도 내 의도를 눈치 채고 최대한 그쪽 이야기를 부모님 앞에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었다.
역시 나이가 많으니 눈치가 엄청 빠르시구만.
나는 빈 접시를 싱크대에서 빠르게 닦아내고 꽃아 놓은 뒤에 유리잔에 와인을 3분의 1쯤 따랐다. 와인은 꽉꽉 채우는 것보다 3분의 1정도만 따르는 게 운치 있지. 영화에서 자주 나오잖아. 나는 유리잔을 한 손에 든 채로 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솔직히 궁금하잖아. 신들이 무슨 이야기 하는지. 내가 다가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세 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 하는지 한번 들어봐야지.
“게임이란 거, 그렇게 재밌나?”
“게임이라. 인간들의 흥미로운 놀이네요. 궁금하군요.”
“한번 해보실래요? 이걸 이렇게...”
저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마리아가 두 신에게 폰으로 게임을 가르치는 기묘한 광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 딴 것도 많은데 왜 게임을 가르치는 거야. 심지어 하고 있는 건 시공의 영원한 라이벌, 폭동사의 AOS, 레오리 모바일이다.
감히 신성한 내 집에서 LOL을 킨다고? 너 시공 맛 좀 볼래? 니가 X서한테 망치 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리지.
“거, 마리아야 이분들한테 게임을 가르치는 건 좀 그렇지 않니?”
“두 분이 궁금해 하셔서...”
그래. 그러시겠지.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는 헤카테님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이거 무슨 갓세계물도 아니고 아아, 이것은 스마트폰이란 것이다. 사람을 빡대가리로 만들지. 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조금만 더 놔두면 아까처럼 해체해보려고 하실 것 같은 분위기다. 가는 길에 안 쓰는 공기계라도 하나 드려볼까.
“일단 식사 시간엔 식사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보다 먹성 좋은 사람이 많아서 딴 짓하다간 배불리 먹기 힘들걸?”
“저는 소식가라 서요.”
언제부터 접시 두개에 한가득 음식을 담아놓고 먹어치우는 인간이 소식가가 된 걸까. 나는 마리아 앞에 쌓인 접시를 전부 집어 들었다. 싱크대에 넣고 와야지.
“현대 문물은 깊게 빠져드시지 않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철저하게 쾌락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 한번 빠져들면 골치 아프거든요.”
“나는...모르겠군...이런 쪽은 문외한이라서 말일세.”
“이것 또한 연구할 가치가 있어 보이네요. 이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어딘가요. 돌아가기 전에 구매하고 싶네요.”
뭘로 구매하시려고. 설마 황금 덩어리 같은 거 주시면서 구해오실 생각은 아니시겠지. 가기 전에 공기계라도 충전해서 하나 드려야지. 쓸데는 딱히 없을 것 같지만.
애초에 충전이 안 되잖아.
“제가 하나 드릴게요. 이 나라 화폐도 없으실 테니 구매하지는 못하실 거고.”
“고마워요.”
저 셋이서 나둬도...되겠지? 나는 유리잔에 든 와인을 홀짝이며 시영이와 그 언니분, 그리고 라쿤박사님과 은하가 모여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래서! 말일세!”
“식사는 어떠세요?”
“아주! 훌륭하군!”
라쿤 박사님이 손가락을 든 채로 내게 칭찬을 날렸다. 너...아니 라쿤의 앞발 구조로는 사람처럼 엄지만 척 드는 게 힘들 텐데 잘도 하시네. 역시 변이자로서 짬밥을 헛으로 드신게 아니시네.
“정말 맛있어요!”
“훌륭한 솜씨시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평가가 왜 그런데. 은하야. 내가 널 평소에 많이 굴리게 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대답하면 좀 내가 마음이 아파...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네요.”
근데 그 앞발, 아니 손으로 젓가락질을 용케 하시네요.
라쿤 박사님도 역시 한국인이었어! 역시 한국인은 포크보단 젓가락이지! 손가락이 3개인 손으로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시다니 이게 박사의 품격인가?
“자네! 덕분에! 입이! 호강하는구만!”
그 뭐냐, 저는 마치 식탁 앞에 동물을 앉혀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그러고 보니 에포나는 어디 갔지? 아까 정원에서 특제 당근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졌네.
혹시...만나러 간 걸까.
나는 조용히 정원을 벗어나서 옆 공터로 향했다. 역시 여기 있었네. 나는 멀리서 두 유령마들 사이에서 몸을 비비는 에포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닮았다 했는데 부모 였나봐.
그럼 이대로 즐기게 놔둬도 되겠지. 나는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 특제 레어 스테이크를 즐기는 한솔이와 이것저것 음식을 가져와 먹고 있는 유라에게 다가갔다. 애가 많이 배가 고팠는지 평소보다 먹는 양이 많네.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얼굴이 안쓰럽다. 아침부터 몇시간 동안 준비했으니 지칠만도 했다.
“오늘 고생 많았어.”
“이걸 다 치울 생각을 하니 힘이 빠져요...”
“설거지만 해줘. 힘쓰는 일은 나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까.”
머리카락으로 촉수 플레이하면 테이블 나르는 건 금방이다. 어차피 설거지가 문제인 거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니까...
“너무 피곤하면 굳이 억지로 깨어있지 말고 들어가서 쉬어. 정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집들이 끝날 때까지는 깨 있어야죠...”
“걱정하지 말고 쉬어. 아까도 봤잖아. 저 긴 테이블 혼자 들고 나르는 거.”
솔직히 그 작은 몸으로 고생하는 거 안쓰러우니까 그냥 들어가서 자라. 리온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그래봐야 중학생이잖아. 일손 하나 빈다고 뒷정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될 뿐이다.
그럼 다시 한 바퀴 돌러 갈까. 집주인으로서 손님 응대는 중요한 일이니까.
나는 다시 회장 한 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정원을 가로 질러 음식들이 놓여진 장소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자네. 잠시 할 이야기가 있네만.”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누아다씨였다. 무슨 일이지? 나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누아다씨와 눈을 마주쳣다.
“그건 아닐세.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 저쪽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아. 네.”
나는 유리잔을 내려놓고 누아다씨와 함께 정원 한 구석으로 이동했다.
정원 한켠에 달빛을 받으며 서있는 누아다씨는 화보에 나오는 모델 같은 모습으로 서서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네 뒷목에 있는 봉인, 모리안이 갇혀있는 그 봉인이 맞나?”
“맞을걸요.”
나한테 나도 모르는 봉인이 더 있다면 모를까.
“잠시 확인해 보아도 되겠나?”
“네.”
나는 뒤로 돌아 뒷목의 봉인을 보여주었다. 내 뒤에서 잠시 누아다씨는 침음성을 흘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풍겼다.
“흠...다시 돌아봐도 되네.”
뒤돌아 보니 누아다씨는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내가 대신 사과함세...미안하네.”
어, 어? 갑자기 사과를? 왜?
나는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임? 뭐가 어떻게 된 거임?
“모리안은...내 손녀일세. 그 아이가 사고뭉치인 것은 알았지만...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은 몰랐네.”
“어...음...”
이 아저씨가 모리안 그 고기에 환장하는 여신의 할아버지라고? 그럼 나도 전생으로 따지면 할아버지되는 분이시란 건데.
“그 아이가 일단 저지르고 보는 버릇이 있어서 말일세.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겠지.”
그렇게 자책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어차피 봉인 됐으니까 영원히 못 나오는 거 아닌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누아다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봉인이 풀리고 있네. 아마 근시일 내에 봉인이 풀릴 테니, 주의하게. 그 아이가 쉽게 포기할 리 없으니 말일세...”
어, 그 년이 다시 튀어나오려고 한다고?
그건 좀 에반데. 그냥 그 년 영혼만 뽑아다 어따 인형 같은데 때려 박을 수 없나. 인형에 박아두고 괴롭히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정신만 차린다면 그 애가 자네의 쉬이 빼앗지는 못 할 걸세. 자네는 이미 신으로서의 힘을 각성했으니, 영혼의 격이 크게 차이나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그리고 만약 자네 몸을 뺏으려고 한다면...”
누아다씨는 고개를 돌려 내가 아까 정원의 바위에 꽂아 놓은 엑스칼리버를 쳐다보았다.
“저 검을 잡게”
끝났네.
처음하는 집들이는 무난하게 끝을 맺었다. 신들은 샴하인이 어쩌고 하면서 내 공기계 스마트폰을 들고 가장 먼저 돌아갔고, 뒤를 이어서 라쿤 박사님과 은하, 시영이와 시영이의 언니가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집의 식구들과 부모님 뿐이었다.
“유진아, 우리도 도와 줄테니 빨리 끝내자. 너희도 피곤하잖니.”
“아 괜찮아요. 저기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
정신적으로 지친거 말고는 몸은 쌩쌩하다구. 전쟁이 끝난 지금도 기어스는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랑 달리기 시합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나는 내가 두명 정도 누워 있을 법한 길이의 테이블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서는 들 수 없을 것 같은 크기의 테이블을 한손으로 들어 올리자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힘이 쎄서 혼자 해도 되요.”
“장볼 때 편하겠구나.”
“어...그렇죠?”
나는 어머니가 뭐라 더 말하시기 전에 부랴부랴 뒷정리를 시작했다. 한솔이와 세연이도 조용히 정리에 참가했다. 다행히도 뒷정리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제 멋대로 설거지되는 싱크대에 좀 놀라시긴 했지만, 전 집에서 알게 된 귀신한테 시키고 있다고 말하니 그럭저럭 납득하는 눈치였다.
하긴 듀라한도 있는데 귀신이 있는게 이상하진 않지?
TV나 x튜브에서도 요즘 엄청 활발하게 오컬트 적인 이야기가 흥하고 있던데.
뒷정리를 끝낸 나는 정원 한 구석에서 자고 있는 에포나를 들어서 문 옆에 내려놓고, 정원에서 달을 쳐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옆에 나란히 섰다.
“달 보고 계세요?”
“...유진아.”
“네?”
“...네가 고생이 많았다.”
“아뇨...뭘.”
“네가 처음 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단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아들이 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있었겠니.”
“그렇긴...해요. 저도 정말 놀랐었으니까...”
“솔직히 네가 처음 서울에 상경했었을 때, 금방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단다. 타지 생활은 아주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는 몇 년 째 계속해서 서울에서 내려오질 않더구나. 네가 생각보다 잘 사는 것 같아 안심했단다. 그러다가 네가 여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지. 정말 놀랐다. 하지만 나는 너를 직접 도와주기보다 지켜보는 쪽을 택했단다.”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한 적이 도대체 얼마만일까.
“아들이 딸이 되어도, 내 자식인건 똑같으니까 말이다. 네가 우리 품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위해 날개를 펼쳤는데 그 날개를 꺾어버리는 것은 못할 짓이지. 다행히도 너는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좋은 사람들과도 많이 사귀고 말이다. 네가 초대한 사람들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더구나.”
그런가...나는 잘 하고 있던 걸까. 반년동안 많은 일일 겪으면서 사귄 사람들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는 것은 내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잘 사는 모습을 보니 이제 한 시름 덜 수 있을 것 같구나.”
“나갈 때도 말했잖아요. 부모님 실망시킬 일은 없을 거라고요.”
그게 이런 방향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 그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찾아오려무나.”
“차라리 여기서 사시는 건 어때요? 이제 슬슬 은퇴하실 때도 되지 않았어요?”
내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가족 먹여 살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아직은 목공 일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구나.”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예전에는 네가 내 뒤를 이어서 목공일을 했으면 바랬는데.”
“싫다고 제가 난리 쳤었죠. 용돈에 넘어가버려서 일을 도와드리긴 했지만요...”
반쯤 차오른 달이 눈부시다.
나는 달빛 아래서 아버지와 정말 오랜만의 담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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