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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20화 (220/352)

〈 220화 〉 후일담:이사를 했으면 집들이는 국룰이지?(4)

* * *

인기척이 드문 곳에 집이 있어서 다행이지, 사람 많은 곳에서 내렸으면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도 못 했겠네...이 이상의 관심은 사절이야.

나는 내 앞에 멈춰선 마차를 보며 생각했다. 마차가 완전히 멈추자, 마차의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마차 안에서 나타났다. 얼핏 보면 서양의 미중년의 영화배우가 생각나는 외모의 남성은, 나를 보며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를 했다. 은빛으로 뒤덮인 손은 딱딱해 보였지만, 마치 인간의 살처럼 물렁했다.

“나는 누아다 아르게틀람일세. 정말...흠흠, 아닐세.”

자신을 누아다라 소개한 신은 나를 묘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뭔가 아련한 눈길이었다. 제우스 죽이고 나서 본 건데 이 신은 어쩐지 나를 오랜만에 본 듯한 얼굴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전생 관련인가.

누아다면 켈트신화에서 신들의 왕쯤 되는 위치로 기억하는데. 전생에 나랑 연관이 있었나?

근데 한분만 오신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이어서 여신이 내렸다. 전쟁 중에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었던 여신인 헤카테였다. 헤카테는 가슴이 푹 파인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빛 드레스 위에 백의를 입은 기묘한 차림새였다.

“2주 만이군요. 그동안 잘 쉬었는지 모르겠네요.”

“저기, 그 백의는 뭐에요?”

“요즘 지식인들은 하얀 옷을 걸친다기에 입었네요. 실용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마법 도구들을 넣어두기에 아주 좋겠네요.”

“아 예...”

...눈 둘 곳 없는 가슴이 다 파여서 좀만 잘못하면 아예 다 보일법한 노출도 쩌는 드레스 위에 백의 하나 걸쳤다고 지적으로 보일 리가 없다. 오히려 야함만 더해졌을 뿐. 눈요기하기엔 좋지만. 내 가슴은 싫지만 남의 가슴은 좋은 법이니까!

내가 달면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남이 달면 아주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게 가슴이라고!

“더 오신 분은 없나요? 그리고 마리아는요?”

“마음 같아선 전부 오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몇 명의 신은 경계를 순찰해야 하기에 신들을 대표하여 온 것은 저희뿐입니다. 마리아는 따로 올 겁니다. 저희는 편법을 통해서 이곳에 강림한 거라 따로 왔네요. 시기가 샴하인과 딱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네요.”

“샴하인이요?”

“아, 요즘은 할로윈이라고 불렀던가요. 이 즈음에는 현세와 저승의 경계가 흐릿해지니, 약간의 편법을 써서 하루짜리 몸을 만들어 이곳에 나타났네요. 시기가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초대에 응하지 못했겠네요.”

그렇구만. 대충 무슨무슨 방법을 써서 마차타고 이곳에 왔다는 건 알겠다. 신들이 이래저래 묘한 마법 같은 걸 쓰고 다니는 건 계속 봐왔으니까, 어지간한 일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정도의 침착함은 있었다.

“마차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네. 인간이 유령을 보지 못하듯이 말일세.”

어디까지나 유령이라 그건가. 하긴 유령마니까. 나는 커다랗고 늠름한 유령마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럼 여기다 계속 세워두는 게 낫나?

“미안하지만, 이 아이들을 위한 요깃거리라도 제공받을 수 있겠나? 이곳까지 힘들게 마차를 끌고 왔으니 인간계의 음식정도는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말이네.”

“그 정도야 뭐...”

에포나 주려고 사놓은 당근이라도 주면 되나? 뭐 그건 나중에 물어보자.

“고맙네. 그리고 이건 집들이 선물이네. 이곳에선 새 집을 장만하는 사람들 하게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다고 들어서 급하게 준비했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며 누아다씨는 나에게 고급스러운 천에 쌓인 길쭉한 무언가를 건넸다. 양손으로 물건을 받아드니, 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천속에 쌓여있는 물건에서 심상치 않은 오오라가 느껴지는데.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물건인 것 같았다.

“이게 뭔가요?”

“콜브랜드일세. 세기의 명검이지. 인간들은 엑스칼리버라 부르더군.”

...엑스칼리버가 왜 여기서 나와?

“대성보구는 저희 집에 필요 없는 데요?”

“대성보구?”

“아, 대충 이런 보물은 좀 부담스러운데...”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니, X이트를 하나하나 설명할 순 없잖아.

근데 집들이 선물을 떠나서 이거 국보수준 아냐? 엑스칼리버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내 두뇌의 파렴치한 시도로 인해 손이 떨려왔다.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지? 못해도 수백~수천억은 하지 않을까?

이거 완전히 부동산 뺨치는 투기수단이잖아?

“어차피 쓸 사람이 없어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물건이네. 이왕이면 자격 있는 자가 가지는 것이 그 검도 바랄 걸세.”

와! 성유물! 와! 대성보구! 이제 소환주문만 외치면 우리 집에도 밥순이가 튀어나오나? 나도 에에에에엑~스 칼리바아아아아아아! 외치면서 휘두르면 도시를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나?

이런 거 주지 마! 무섭잖아! 장난삼아 휘둘렀다가 집이 반 토막 날지도 모르는 무서운 물건을 집들이 선물로 주지 말라고! 뭔가 우주에서 외계인이라도 찾아올 것 같잖아! 아니면 뭐, 예수님 술잔 쟁탈전이라도 일어나?

에반데. 정말 에반데. 이 세상에 마법사가 남아있다 쳐도 그런 쓸데없는 짓 하는 놈 있으면 내가 박치기로 이승과 영영 이별시켜주마. 어떻게 찾은 일상인데 소란스럽게 하는 놈은 떼찌야 떼찌.

“그, 호수에 반환이라도 하시는 게?”

아서왕 전설처럼 말이야. 아니, 그 회수한 요정한테서 받아온 걸까.

“...반환할 호수는 세월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네. 뭣하면 저기 있는 돌에 꽃아 놓는 것이 어떻겠나? 멋진 장식처럼 보일 걸세. 근처에 꽃아 놓기만 해도 주인에게 행운을 보장해 주니 아주 쓸만 할걸세.”

어...그건 좀 땡기는데? 가챠 돌릴 때 검 앞에서 돌리면 쓰알먹기 좋다는 거잖아. 정원에 구석에 있는 돌덩이에 적당히 박아 넣을까?

일단 안으로 들여보내야지. 마리아는 알아서 연락하겠지. 나는 대충 마리아에게 문자를 보내놓고는, 마차를 저택 옆 공터에 주차시키고 두 신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유진아, 새로운 손...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외국인 둘의 등장에 어버버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나와 두 신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님이라고 데려온 사람들이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서양인 둘이었으니 그런 표정을 지으실 만도 했다. 뭐라고 설명하지. 적당히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나는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 대충 넘기기로 했다.

“일하면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 제가 초대 드렸어요. 이쪽은 누아다 씨고, 이쪽은 헤카테 씨에요.”

“H...Hello?”

“한국어로 말하셔도 됩니다 마담.”

오우. 젠틀하시네. 외모에 걸맞은 섹시한 허스키 보이스로 대답한 누아다씨는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어머니는 멍한 얼굴로 인사를 겨우 받으시고는, 어색하게 미소 지어 누아다씨의 인사에 화답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요.”

내 집이 엄마집이고 엄마집이 내 집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아버지도 어머니의 뒤에서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얼굴로 누아다씨를 쳐다보다가, 누아다씨가 내민 손을 어색하게 잡고 악수를 했다.

악수를 끝내고 누아다씨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덕담을 날렸다.

“따님을 정말 잘 키우셨더군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진양이 없었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호호, 제가 유진이를 잘 키우긴 했죠...”

자식 칭찬은 부모를 웃게 한다더니, 어머니는 아닌 척 하시면서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마리아랑 시아는 언제 오려나.

나는 엑스칼리버를 거실 한켠에 비스듬이 세워두고 TV에 다가선 헤카테님에게 다가갔다. 언제 저기 붙으셨대.

“마하. 이건 뭔가요.”

여전히 날 마하라고 부르시네. 나는 헤카테 여신님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건 TV에요.”

“티­브이? 이상한 이름이네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요.”

“방송국에서 틀어준 영상을 보여주는 건데...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시는 게 빠르겠네요.”

나는 쇼파 팔걸이 위에 올려놓은 리모콘을 집어 전원을 틀었다.

[범 내려온다~범이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음악방송 채널 틀어놓고 요리했었지. 묘한 뮤직비디오와 함께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헤카테 여신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티브­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놀랍군요. 어떻게 사람이 저런 납작한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흥미롭군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니고요...”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한솔아, 너 이과지? 빨리 와서 설명해봐! 눈 피하지 말고! 으으으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그, 마법 중에 수정구로 다른 장소를 보거나 하는 마법 있지 않나요?”

영화나 만화에서 마녀들 나오면 맨날 굴려먹는 그거 말이야 그거. 이걸로 시도해보고 아니면 아 몰랑 대충 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법도 있네요.”

“그걸 인간이 나름대로 궁리해서 만든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주 흥미롭네요. 해체해보고 싶어요.”

산지 며칠 안 된 85인치 짜리 TV니까 그건 좀...

“어...음. 아주 비싼 물건이라...”

“그런가요. 아쉽네요.”

다행히도 헤카테 여신님은 TV를 순순히 포기했다. 후, 한숨 돌렸네. 나는 잠시 헤카테 여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다시 세팅하고 있는 유라와 한솔이를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 조용히 소파 구석에 앉아 피곤하신 듯 폰을 만지작거리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오랜 시간을 운전 하시느라 피곤하신 모양이었다.

오, 거의 다 왔나 보네.

나는 줄기차게 진동하는 내 휴대폰 화면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잠깐 사이에 X톡이 스무개나 쌓였네. 대부분은 마리아와 시아였다.

“저기 소파에 앉아서 잠시 쉬고 계실래요?”

“그러도록 하겠어요. 흠,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네요...”

어린애도 아니니까 소파를 망가트리진 않으시겠지.

나는 X톡을 통해 양쪽 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정보를 확인하곤 다시 한 번 현관 앞으로 나갔다. 오늘 이 앞에만 몇 번을 왕복하는 건지 모르겠네.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자 저 멀리 있는 버스 정류장 앞에 익숙한 실루엣들이 내리는 게 보였다. 우연히도 둘이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모양인지, 시아와 마리아, 그리고 시아의 언니분이 나란히 서서 오는 게 보였다.

마리아는 폰을 보면서 걷고 있고, 시아와 시아의 언니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것을 보니서로가 같은 방향인지 모르는 것 같아보였다.

“시아야! 마리아! 여기야 여기!”

“오랜만이에요.”

“보름 밖에 안 됐는데?”

“그것 밖에 안 되었나요?

...생각해보니 주간 레이드를 두 번씩 돌렸으니 맞네요.”

그걸 게임 주간 컨텐츠 횟수로 계산하지 말라고 이년아. 나는 뼛속까지 K­RPG에 물들어버린 마리아를 내버려두고 반가운 얼굴로 고양이 귀를 씰룩이는 시아, 본명 송시영과 시아의 언니를 쳐다보았다. 손에 든건 집들이 선물인가. 무난무난한 화장지인 모양이었다. 이쪽은 변이자 치고는 크게 외모가 변한 것은 아니었는지, 언니분도 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오랜만이에요! 유진언니!”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시영이의 언니인 송수영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뭐라고 할까, 동생인 시영이가 활발한 미녀라면, 언니분인 송수영은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날이 차니 빨리 들어가죠.”

라쿤박사님이랑 은하만 오면 끝이네.

띠리리리링. 주머니에 넣어놓은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라쿤 박사님도 도착하셧나 보네. 주변을 둘러보니 고급진 검은색 승용차가 우리 집 쪽 길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승용차는 곧 나와 일행 앞에 멈췄다. 조수석 쪽의 창문이 열리고, 라쿤 박사 붉은 스웨터에 하얀 가운을 걸친 복장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랜! 만이군! 자네도! 시영양도! 마리아양도!”

“어, 안녕하세요?”

아, 시영이도 변이자니까 라쿤 박사님 뵌 적 있겠구나.

“차는! 어디에! 주차하면! 되나!”

“저쪽 공터 보이시죠? 저기 옆에 주차하시면 되요.”

“알겠네!”

나는 라쿤 박사님과 은하가 차를 주차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 라쿤 박사님 은하가 차에서 내리자 모두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많으니까 전부 모이는 것도 힘드네.

이제 더 올 사람은 없으니 슬슬 파티를 시작해볼까.

나는 모든 사람들을 거실로 불러모았다. 내가 이곳의 집주인이니까 본격적인 파티를 시작하기전에 건배사라도 해야지.

거실에 모든 사람이 모인 것을 확인한 나는 술이 든 유리잔을 들었다.

"집들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는 파티가 될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상! 건배!"

모두가 유리잔을 높게 들어 부딪혔다. 10개가 넘는 유리잔이 맑고 고운 소리를 냈다.

파티의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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